9th Circle Lord

# 9Not easy 3

오해는 금방 풀렸다.

“하체에 마법진을 새기겠다.”

루터의 말에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몸에 마법진을요?”

“그래. 힘이 늘어나고 회복을 도울 거다. 사냥 개시 첫날인데 한 마리에 만족할 수 없지.”

엘레나와 케인의 입이 벌어졌다.

마법진을 새기는 것만으로도 신체 능력이 증가한다니 신기할 노릇이다.

그사이 돌켄과 자크가 다가왔다.

“확실하게 죽였습니다.”

자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켄이 물었다.

“마법사님. 대체 오우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

“환각을 일으키는 마법진이다. 마법진에 갇힌 몬스터는 무기력해지니 방금처럼만 작업하면 된다.”

돌켄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그게 가능한 겁니까?”

루터는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 해가 중천이니 시간은 많았다.

“궁금증은 여기까지다. 앞으로 잡을 몬스터가 많으니 서두르자.”

일단 오우거를 잡았으니 해체 작업을 하고, 다시 유인해야 한다.

루터는 무언의 시선으로 엘레나를 재촉했다.

엘레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 뒤돌아.”

돌켄이 어리둥절했다.

“왜?”

“하자는 대로 해. 마법사님이 엘레나의 몸에 마법진을 새길 건데, 조금 은밀한 부분이다.”

케인의 설명에 돌켄은 깜짝 놀랐다.

“사람 몸에 마법진을 새긴다고? 아니, 그게 어떻게?”

루터는 슬슬 돌켄이 짜증났다.

그를 보는 루터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너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구나.”

살벌한 시선에 돌켄의 몸이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세 사람이 몸을 돌리고 엘레나는 바지를 벗었다.

루터는 그녀의 속옷에 눈을 두지 않고 그을린 허벅지와 종아리에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지켜보는 엘레나의 눈에 탄성이 떠올랐다.

손가락으로 슥슥 그릴 뿐인데, 문신처럼 새하얀 원과 글자가 나타났다.

“됐다. 입어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가만히 있으면 된다.”

루터는 다시 바지를 착용한 그녀의 다리를 향해 마나를 주입했다.

체력 회복과 신체 강화가 섞인 마법진이 제 역할을 시작했다.

“어머!”

엘레나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뒤돌아 있던 세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엘레나. 왜 그래?”

“몸이. 몸이.”

“몸? 왜? 몸에 이상이 생겼어?”

“너, 너무 가벼워.”

떨리는 목소리를 보니 농담 같지 않았다.

엘레나는 선 자리에서 껑충 뛰었다.

그녀의 몸이 1미터 가량 떠올랐다.

“헉!”

돌켄의 억눌린 신음이 터지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자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터는 폴짝 뛰는 그녀에게 말했다.

“적응이 되면 바로 유인해라. 해 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

케인은 몬스터 영역에서 밤에 활보하는 것은 위험한 짓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니 해가 지면 야영을 준비해야 한다.

“다녀올게요.”

적응을 마친 엘레나가 전방을 향해 달렸다.

쏜살같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케인이 중얼거렸다.

“마법이란 엄청나군.”

그는 새삼 마법사의 위대함에 감탄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사람의 몸에 마법진을, 그것도 한 가지 이상의 능력을 새기는 것은 마법진에 대한 이해력이 높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이해력을 갖춘 마법사는 마도사밖에 없었다.

오우거는 끌려오는 족족 사냥감이 되었다.

루터의 마법진은 마나가 주입되는 이상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유인하는 엘레나는 늘어난 신체 능력에 신이 나 보이는 족족 몬스터를 끌고 왔다.

덕분에 땅거미가 질 무렵에 죽은 오우거의 시체가 아홉 마리나 되었다.

시간을 좀 더 할애하면 이상의 몫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어차피 오늘만 사냥하는 건 아니라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케인은 야영 장소를 정했다.

평평한 구덩이에서 조금 낮은 지형이었다.

게다가 주변이 갈대밭이라 은신하기도 좋았다.

자리를 잡고 네 방위에 모닥불을 피웠다.

죽은 오우거의 내장을 태워 일행의 냄새를 지웠고, 말뚝처럼 세운 막대기에 끈을 묶어 정찰을 나갔다.

중앙에 피운 모닥불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그들은 대화를 하는 와중에 오우거 시체를 쳐다봤다.

간간이 보는 시선이 제법 흐뭇했다.

돌켄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얼마나 할까?”

엘레나가 대답했다.

“적어도 2천 골드는 하겠지.”

“엘레나. 농담해? 저걸 보라고. 가죽에 생채기 하나 없어. 그런데도 고작 2천 골드?”

“그러면?”

“최소 3천 골드부터 시작할 거야. 길드에서 경매를 붙일 테니, 그 이상도 족히 나올 테고. 벌써부터 눈에 아른거리지 않냐? 상인들이 기를 쓰고 입찰 경쟁을 하는 모습을 말이야. 흐흐흐.”

상상만 해도 좋은지 돌켄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는 옆에 앉은 자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자크. 술 한 잔 거하게 사라.”

자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일에 비해 막대한 재화를 얻으니 돌켄에게 신세진 것이나 다름없다.

엘레나는 바지를 걷어붙였다.

종아리에 새겨진 마법진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법진 말이야. 문신처럼 오래가진 않나 봐.”

“어째 목소리가 실망스럽네. 아쉬운가 보지?”

“당연한 거 아냐? 너희들도 봤잖아.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내일도 마법사님이 해주실까?”

그녀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돌켄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날아다니는 네 모습을 봤는데, 안 해줄 이유가 없지. 그나저나 엄청나더군. 사람들이 괜히 마법사를 경원시하는 게 아니더군. 솔직히 말해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야.”

대규모 토벌 사냥을 하루 종일 해도 오우거를 이렇게까지 잡지 못한다.

감탄하던 그가 고개를 힐끗 돌렸다.

모닥불에서 거리를 둔 마법사는 검은 로브에 파묻은 채, 미동도 없었다.

“나도 해달라고 부탁해볼까?”

“무슨 부탁?”

“몸에 새기는 마법진 말이야. C급인 너도 종횡무진 하는데, 나는 어떻겠어? 솔직히 네가 부러울 정도야. 분위기도 좋은데, 마법사님이 들어주시지 않을까?”

묵묵히 듣던 자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왜?”

자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엘레나가 대신 대답했다.

“아까 네가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마법사님의 심기가 안 좋았던 거 기억 못 해?”

“너무 궁금한 걸 어떻게 해.”

“그래도 입 닫는 게 좋을 거야. 솔직히 말해서 이번 파티는 인원이 너무 많아. 길잡이 케인만 있어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가만히 입 닫고 있어. 괜히 마법사님 심기 거스르지 말고.”

엘레나의 경고는 효과적이었다.

돌켄은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말대로 마법사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건 없다.

루터는 바닥에 놓인 오염된 마력석을 바라봤다.

‘크기는 중급 마력석 정도 되는 군.’

중급 마력석은 상급 마력석의 백분지 일이다.

그가 원하는 수량을 채우려면 잡아야 할 몬스터의 숫자가 여전히 부족했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겠어.’

몬스터 영역은 넓다.

그는 오우거 이상의 몬스터를 잡을 생각이었다.

‘이번 기회에 사전 조사도 충분히 해보고.’

몬스터 영역을 터전으로 삼기로 한 이상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케인이 나타났다.

은밀한 암살자처럼 조용히 등장한 그는 루터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근처에 헌터들이 있습니다.”

루터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케인이 경고했다.

“그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

“놈들은 몬스터를 노리는 게 아닙니다.”

루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몬스터 영역은 치외법권이다.

사실상 무법지대라는 말인데, 그런 영역에서 오우거 아홉 마리를 사냥한 일행들을 다른 헌터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지금 이 일대를 수색 중입니다. 야간 사냥은 자살 행위나 다를 바 없으니 목적은 아마 다른 데에 있겠죠.”

“다른 목적?”

“다른 파티를 습격하려는 겁니다.”

케인은 몬스터 영역 길잡이로 4년 간 활동했다.

그의 오랜 경험이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루터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숫자는?”

“스무 명 가량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답은 뻔하지 않나?”

일어선 루터가 싸늘히 대꾸했다.

“전부 죽여야지.”

그는 케인과 함께 일행에게 향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화기애애하던 세 사람이 루터를 쳐다봤다.

루터는 여상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적이 나타났다. 죽이러 가자.”

듣던 그들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무기를 챙기고 분분히 일어선 가운데, 자크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사람입니까?”

“그래. 전부 팔 걷어붙여라. 마법진을 새겨주마.”

돌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가장 먼저 앞으로 다가온 그가 팔을 내밀었다.

돌켄을 시작으로 케인까지 근력 증강 마법진을 새긴 루터가 단검을 뽑았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은 돌켄이 물었다.

“마법사님. 마나 지팡이 안 쓰십니까?”

루터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명령했다.

“다른 사람 방해 않게 조용히 죽여. 그리고 길 잃어버리지 마라.”

케인이 조언했다.

“낮은 지형으로 갈수록 우리 야영지고 알아 볼 수 있게 갈대를 꺾으며 움직이면 헤맬 일은 없을 거다.”

두 사람씩 짝을 맺었다.

케인과 엘레나. 돌켄과 자크. 루터는 당연히 혼자였다.

“가자.”

루터가 먼저 갈대밭으로 몸을 넣었다.

일행이 뒤따르고 갈라졌다.

조용히 움직이던 루터는 인기척에 그대로 멈췄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자들이 있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연기가 피어올랐어.”

“멍청한 놈들. 죽음을 자초하는 군.”

“잡은 몬스터 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두 명이었다.

접근한 루터가 조용히 뒤를 잡았다.

“하암. 밤중에 움직이니 피곤하네.”

“조금만 참어. 곧 끝날 테니까.”

동료의 조언은 현실이 되었다.

일어선 루터가 하품하던 자에게 접근한 뒤, 단검을 찔렀다.

단검이 뒷목을 찔러 목울대를 관통했다.

“커커컥!”

목을 부여잡는 동료를 보던 장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입이 경고를 외치기 직전에 스트렝스 마법이 걸린 손아귀가 목을 틀어쥐었다.

“커헉!”

목 잡힌 장한이 주먹을 휘둘렀으나 힘이 없었다.

수영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던 장한의 눈이 점점 죽어갔다.

루터의 손속은 자비가 없었다.

목이 단검에 관통당한 자는 짚단처럼 쓰러졌고, 목줄기를 잡힌 자는 그 상태로 절명했다.

루터는 죽은 이들을 내려다보다 다시 몸을 낮추고 갈대밭을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