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th Circle Lord

# 107Attack

드워프들의 실력을 보는 것은 나중이다. 루터는 일단 이 돔 형태의 감옥에서 나가기로 했다.

대규모 공간 이동 마법으로 지상을 나섰다. 외부의 공기를 마시는 이종족들의 표정이 밝다.

습하고 어두컴컴한 심연의 감옥에 있다가 따사로운 햇빛을 쬐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루터는 정령왕들과 계획을 짰다.

“여기가 드래곤 영역의 최후방이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지금처럼 한 마리만 상대하는 일은 드물거다.”

드래곤 한 마리만 상대하는 건 문제 없지만, 앞으로 숫자가 늘어나면 까다로워진다.

드래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뛰어난 마법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상대하기 벅찬 상대를 맞이하면 낙사노르의 마물을 끌어들인다.

마왕이 그토록 미증유의 힘을 갖고도 드래곤을 정리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마물 소환 때문이었다.

상황의 불리함을 느끼면 망설임 없이 낙사노르의 마물을 불러들일 것이다.

이미 전례가 있었다.

한 드래곤이 마왕을 배신한 부하들과 함께 소환을 하려 했다.

그 때문에 전면전은 불가능하다.

힘이 있는데도 때려잡을 수 없으니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낙사노르의 마물은 강하다.

루터는 일을 은밀하고 조용히 치룰 생각이다.

개별로 천천히 처리하여 눈치 채지 못하게 한다. 밀물이 점점 차오르듯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잠식한다.

루터의 이 같은 계획에 정령왕들 모두 동의했다.

그들도 낙사노르의 마물에 대해 잘 알았다.

드래곤 사냥은 신중함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첫 단추는 잘 꿰었다.

드래곤 영역의 마지노선에 있는 블루 드래곤 제레이라를 순탄히 잡았고 이종족들을 해방 시켰다.

이제 남은 일은 이 같은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드래곤은 자신들의 영역에 대해 민감한 것 같으니 당분간은 우리들의 일이 알려지진 않을 거다.”

작심하고 침범하지 않는 이상 제레이라의 영역에 드래곤들이 얼씬할 일은 없다.

일단 시간은 많다.

이제 천천히 나아갈 일만 남았다.

그는 엘몬트 지방의 사막에서 도시를 세운 것처럼 전초 기지를 세우려다 멈칫했다.

고개를 돌린 그의 눈이 드워프에게 닿았다.

드워프는 대략 오백 가량 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스스로를 대장장이라 칭한다.

루터는 증명을 원했다.

그는 고르딘을 불렀다.

“이제 실력을 발휘할 차례다.”

고르딘이 야무지게 말했다.

“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전투 기지를 세울 생각이다. 들키지 않아야 하고 수성에 능해야지. 할 수 있겠나?”

고르딘은 루터의 의도를 알아 차렸다. 그는 자신들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자 한다.

눈을 빛낸 고르딘이 당차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다만, 도구가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은 전부 대주지.”

“일단 대장간이 필요하고 도구를 지급해 주십시오.”

“알았다.”

요구사항을 받아들인 루터는 즉각 제작에 나섰다.

모루와 풀무. 그 외에 사용되는 장비를 마련해 주었다.

노아스와 샐리온이 도와주었다.

샐리온은 풀무를 할 불꽃을 제공했고 노아스는 광석이 매장된 지반을 알려 주었다.

도구 제작은 제레이라의 비늘 껍질이 이용되었다.

드래곤의 피부에 난 뿔과 껍질 등은 미스릴보다 단단하다. 

그가 즉석에서 망치 등을 만들어 보이자 고르딘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솔직하게 말했다.

“굳이 저희들이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하시겠군요.”

“맞아. 하지만 너희들을 시험하진 못하지. 잘해야 할 거다.”

“물론입니다.”

순식간에 오백의 드워프들이 원하는 장비가 속속들이 나타났다.

무장하듯 도구를 쥔 그들의 표정이 결연했다.

“한 번 제대로 해 보겠습니다.”

“기대하지.”

드워프들이 열의를 불태울 때, 엘프 역시 의욕이 충만했다.

정령왕이 돌아왔다.

명맥이 끊겼던 정령 계약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령왕들도 엘프를 위해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엘프의 특징은 타고난 친화력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타고난 종족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지 속속들이 정령 계약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안가 정령사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리라.

루터는 드워프들의 작업을 지켜봤다.

작지만 부지런하다.

분주히 움직이는 드워프들이 광맥이 연결된 지반을 파고 광석을 캔 뒤, 불순물을 제거하며 철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눈 깜빡할 새에 이루어졌다. 

루터는 헛웃음을 일으켰다.

“확실히 재주가 보통이 아니군.”

스스로를 대장장이라 표현했지만, 루터가 보기에는 무언가 만드는 것에 재주가 있었다.

부지를 확보하고 건축에 필요한 물건들을 뚝딱 거리며 만들었다.

모두가 바빴다.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외따로이 선 키아라와 루터는 서로를 바라봤다.

“우린 이제 뭐해?”

“켈라일 말로는 제레이라의 거처가 따로 있다는 군. 전설에 따르면 드래곤의 공동에는 보물이 가득하다 하더군.”

루터는 전설을 제법 신뢰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대부분 진실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키아라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보물을 찾으러 가 볼까?”

“아마 근처에 있을 테니, 한 번 보러 가자.”

루터와 키아라가 둥실 떠올랐다.

하늘을 가로지른 그들은 제레이라의 거처로 짐작되는 곳을 찾아 움직였다.

제레이라의 영역은 넓었고 당연히 아무도 모르는 그의 거처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있었다.

드래곤이 자신의 보물을 드러내 놓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마법을 이용해 엄폐나 방어를 해 놨을 거라 짐작했고, 마법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아 움직였다.

인위적인 마법은 룬어를 작용한다.

루터는 물질의 근본인 룬어를 볼 수 있다.

그렇게 발견한 곳은 해안가의 절벽 중간 지점이었다.

루터는 해안가를 보자 감탄사를 터트렸다.

“제레이라의 영역이 상당히 넓구나.”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긴 동부 해안이다. 우리가 있던 곳은 북서쪽이었고, 그렇다는 말은 제레이라의 영역이 최소 대륙의 동서를 가로지를 정도로 길다는 거지.”

그의 설명에 키아라도 감탄사를 뱉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드래곤의 영역은 다 이렇게 길고 넓은가?”

“아직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진 못했지만 작진 않겠지. 하긴 그들의 거대한 몸을 생각해 보면 넓은 것도 이해 안가는 건 아니다.”

드래곤이 본체를 현신하면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영역도 넓다.

제레이라의 거처는 예상대로 엄폐 마법진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누가 보면 단순한 절벽처럼 보였지만, 가운데에 큰 구멍이 나 있다.

루터는 마법진을 해제했다.

드래곤의 마법 체계는 알지 못하지만 근본적으로 룬어를 사용하는 것은 같았다.

룬어를 없애거나 되돌리면 마법진은 사라진다.

제레이라의 1차 저지선을 간단하게 주파한 루터는 절벽의 거대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공간이 둘을 맞이했다.

루터는 광구를 켜 사방으로 퍼트렸다. 

빛이 내부를 밝히자 키아라가 눈에 불을 켰다.

동굴 내부는 거대한 공동이었다.

제레이라가 본체로 잠을 드는 장소인지 평평한 바닥이 넓게 펼쳐져 있고 벽 마다 문이 있었다.

양각된 문은 금빛 일색이다.

“뭐가 있는지 볼까?”

무작위 선물 상자를 여는 기분이다. 신이 난 키아라가 가까운 문 앞에 섰다.

스르륵!

마법이 걸렸는지 문은 자동으로 옆으로 밀려났다.

내부에서 빛이 번쩍였다.

자세히 보니 휘황찬란한 보석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와! 루터. 이것 좀 봐. 전부 보석 천지야.”

“드래곤은 반짝이는 걸 좋아한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루터는 반대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금빛이 비췄는데,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 모두 황금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내부 역시 금으로 만든 주화였다.

그 밖의 방들도 보물 천지였다.

어떤 방은 미스릴로 만든 무기로 도배되어 있었고, 방어구도 있었다.

말 그대로 보물로 가득한 곳이다.

보석을 가공한 방에서 팔찌와 왕관 등을 착용한 키아라의 표정이 싱글벙글 이다.

“드래곤을 하나씩 잡을 때마다 이런 보물이 가득하겠지?”

“아마도 그럴 것 같다.”

좋아하는 키아라를 보니 오기를 잘한 것 같다.

루터는 화려한 보석이나 뛰어난 무기보다는 다른 것을 찾았다.

‘기록 같은 걸 담아둔 게 있을 텐데.’

제레이라의 고상한 취향 보다는 실속 있는 것들을 원했다.

그들의 역사나 학문적인 서술이 담긴 기록서였는데, 설마 이 많은 방에 하나 정돈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즐거운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방을 둘러보던 키아라가 루터를 불렀다.

“루터. 여기는 좀 다른 것 같아.”

키아라가 부르는 방으로 향하니 예상대로 룬어가 적힌 양피지가 수북이 쌓인 방에 들어섰다.

루터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바닥에 흐트러진 양피지를 들어 올렸다.

룬어로 적혀 있었는데, 내용이 심상찮았다.

키아라가 표정이 일변한 루터를 보며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왜 그래? 문제 있는 거야?”

“아니. 좋은 걸 얻어서 기쁜 거다.”

“그게 왜 좋은 건데?”

“드래곤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어.”

그리고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상대의 약점, 습성, 서식하는 위치까지 모두 망라되어 있다.

루터가 빙그레 웃었다.

“이거 정말 좋은 걸 얻었군.”

뜻밖의 소득이 만족스럽다.

그가 기뻐하자 덩달아 신이 난 키아라가 웃으며 물었다.

“루터에겐 이게 제일 좋은 거네.”

“당연하지. 전력에 차이가 있어도 상대를 모르면 패하기 패할 수 있다. 방심하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준비를 해야지. 제레이라가 남긴 이 기록 덕분에 드래곤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거다.”

특히나 지금처럼 드래곤이 경계심을 느끼지 못하게 은밀하게 제거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더 없이 소중한 정보다.

루터는 죽은 제레이라를 떠올리며 실소를 흘렸다.

‘이제 보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군.’

키아라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게 도와주었고, 드워프의 맛 좋은 식량이 되어 주었다.

그 뿐 만이 아니라 보물에다 다른 드래곤에 대한 비밀 정보가 적힌 기록까지 남겨 주었다.

이 쯤 되면 아군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루터는 제레이라에 대한 선입견을 지웠다. 이제 보니 제레이라는 좋은 녀석이었다.

루터는 제레이라와 경계를 구축하는 세 드래곤의 영역을 알아냈다.

그린 드래곤 알렉시아.

화이트 드래곤 판테라.

마지막으로 레드 드래곤 칼닉스. 

요 세 드래곤이 블루 드래곤 제레이라와 영역을 마주한다.

그들의 성향도 알게 되었다.

알렉시아는 간계에 능하고 판테라는 냉혹하며 칼닉스는 오만하다.

제레이라의 입장에서 본 세 드래곤의 성향이었는데, 루터는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드래곤과의 접점이 생겼을 경우 일기장처럼 기록한 일지에 따르면 제레이라는 좀 더 깊숙이 드래곤 영역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알렉시아와 판테라가 연합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고 한다.

반면 칼닉스는 같은 드래곤인 제레이라조차 오만하다고 평할 정도로 다른 드래곤을 업신여긴다고 한다.

알렉시아와 판테라가 연합을 맺을 때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했다고 하니 어찌나 앙금이 남았는지 기록에 의하면 칼닉스를 잡아먹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루터는 세 드래곤의 성향을 보곤 공략 지점을 결정했다.

“알렉시아를 먼저 제거해야겠어.”

인간이든 드래곤이든 권모술수에 능하면 성가시다.

무슨 수작을 벌일지 모르니 최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게 우선이다.

마침 영역도 가까웠다.

동부 해안을 곧장 따라가 올라가면 되니 거리상으로도 멀지 않았다.

“게다가 약점도 뚜렷하고.”

제레이라는 고맙게도 알렉시아를 제거 할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알렉시아는 성욕이 강해 엘프와 수인들을 성적인 도구로 삼는다고 한다.

그렇다는 말은 성욕에 몰입하여 취했을 때를 노리면 된다는 말이다.

루터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제레이라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알렉시아를 공략할 방법을 연구했을 테니, 그의 방법으로 하자.’

제레이라는 결국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남은 자신이 대신하면 된다.

루터는 알렉시아를 제거할 계획을 짜고 실행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