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nster Hunter Born of Capitalism

71. It was difficult to play and play.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유성의 몸은 여전히 이불 속에 있었다. 노예 상인의 집에서 훔쳐온 이불과 침대는 너무나도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 덕에 유성은 지금 침대와 혼연일체가 된 채로 빈둥거리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간단한 터치만으로 인터넷 세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스마트폰이 충전기에 연결된 채 침대 위에 있었으며, 노예 상인이 사용하던 4K UHD 티비의 리모컨 역시 침대 위에 있었다.

좁은 자취방에 저 큰 티비를 다느라고 조금 애를 먹기는 했지만 어찌어찌해서 벽에 달고 나서는 침대에 누워서 편히 티비를 볼 수 있었다. 뉴 월드에서 보던 티비만큼 생생하고 실감 나는 화면은 아니었지만 늘 지직거리던 브라운관 티비만을 보다가 다른 화면을 보게 되니 눈이 되게 편했다.

“하지만 유성님. 식사를 하려면 결국엔 이불 밖으로 나가야 하잖아요.”

[맞습니다. 지금은 오후 1시. 이미 점심시간은 지났죠.]

“너희들 말이 맞아. 밥을 먹기는 먹어야 하지. 그런데 음식을 해먹는 게 너무 귀찮아.”

[배달을 시키면 되는 일 아닙니까?]

“배달을 시켜도 배달 음식을 받으려면 문까지 걸어가야 하지. 그런데 그것도 너무 귀찮아. 이브, 너 드론에 요리 기능은 없냐? 그 가제트 만능 팔로 밥 좀 해줘.”

[제게 그런 기능은 없습니다. 포기하고 얼른 식사나 하시지요.]

“티타니아. 저기 찬장에서 컵라면 좀 꺼내와. 커피포트 전원도 좀 켜놓고.”

“네? 제가요?”

“그래. 니가요. 이것도 일종의 서포트야. 불평 말고 얼른 컵라면이나 가져와라.”

“힝.”

티타니아는 날개를 파닥이며 찬장에서 컵라면을 가져오고, 커피포트의 전원을 켰다.

우우웅!

커피포트가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오늘 점심은 컵라면이다. 컵라면 하나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오늘 일정은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전부다. 소모하는 에너지가 적을 테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물이 다 끓자 티타니아가 낑낑대며 컵라면 용기에 물을 붓고 유성에게 컵라면을 가져다주었다. 도중에 젓가락을 빼먹어서 두 번 왔다 갔다 한 것은 비밀이었다.

훅! 후욱!

면발을 한 젓가락 집어 든 유성은 입김을 불면서 면발을 먹기 좋은 온도로 식히고 있었다.

‘됐다. 지금이 딱 먹기 좋은 온도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면발을 식힌 유성이 입으로 젓가락을 옮기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띵동!

“주말에 예의 없이 남의 집을 방문하다니. 티타니아, 가서 문 좀 열어.”

“네? 제가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힝힝.”

티타니아가 날개를 파닥이며 문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금을 해제했다.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무서운 표정을 한 은아리였다.

“히익!”

은아리의 표정을 보고 놀란 티타니아가 잽싸게 유성에게로 날아와 뒤에 숨었다.

“저건 서포트 요정. 역시 오빠 헌터였구나.”

“어…….”

‘망했다.’

유성의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머리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오빠 또 라면 먹어?”

“컵라면을 무시하지 마. 컵라면은 한 끼 칼로리까지 계산해서 만든 음식으로 히말라야로 등반을 떠나는 산악인들도 빼먹지 않고 챙겨가는 훌륭한 음식이라구.”

“그거 먹지 마. 내가 밥해줄게.”

“엥?”

자신에게 분명 화를 낼 줄 알았던 여동생의 입에서 밥을 해주겠다는 말이 나오자 유성은 다시 한 번 당황했다.

‘무슨 속셈이지? 일단 밥은 먹이고 조지겠다는 뜻인가?’

왠지 그런 뜻일 것만 같았다.

***

“꺼억. 잘 먹었다. 요리 솜씨 되게 늘었구나. 아리야.”

“말 돌리지 말고 거기 앉아.”

“넵.”

자연스럽게 대화를 돌리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유성은 은아리와 마주 보고 앉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

“넵.”

“그런데 왜 그런 거야?”

“그야 헌터는 돈도 많이 버는 직업이니까. 예전처럼 월급 받는 것보단 이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오빠는 몇 급인데? A급이라도 돼?”

“훗. 이 오빠는 A급도 발라버리는 C급이란다.”

유성의 말은 정말 사실이었지만 은아리는 유성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쨌든 C급이라는 거잖아. 당장 그만둬.”

그러고는 유성에게 통장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야?”

“오빠 써.”

유성은 통장을 열었다. 통장에는 0이 9개나 찍혀있었다.

“잠깐, 이게 얼마야? 60억?”

이전에 숫자송을 들을 때 지구의 인구수가 60억이라고 했었는데 그 숫자와 동일한 숫자가 통장에 쓰여 있었다. 유성이 마정석을 팔아서 번 돈이 3억이었다. 포션을 산다고 대부분 써버리기는 했지만, 그 3억도 힘들게 모았다. 그런데 지금 손에 들려 있는 통장에는 그보다 20배나 많은 금액이 들어 있었다.

“그래. 내가 모은 거야. 그 돈 오빠가 써. 그 정도 돈이면 오빠가 배우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당장 헌터 그만둬.”

“오늘이 만우절도 아닌데 이런 통장은 어디서 구한 거야?”

유성은 동생인 아리가 보여준 통장이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은아리는 유성에게 헌터 라이센스를 건넸다.

“은아리…… 헌터 등급 S급?”

“그래. 난 S급 헌터야. 태극 길드 소속이고.”

“너 나한테 이런 말 안 했잖아. 설마 네가 한다는 알바가 헌팅이었어?”

“맞아. 이게 내가 말한 알바야. 그리고 당연히 오빠가 걱정할 테니까 숨긴 거고.”

“은찬이랑 신부님은 아셔?”

“아니, 모르셔. 내가 숨겼어. 학교 간다고 말하고 에스텔과 던전에 갔으니 신부님도 모르셔.”

“너 그럼 대학은…….”

“자퇴했어.”

“야! 너 미쳤어? 대학을 왜 자퇴해!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갔잖아!”

“대학보다 이게 더 돈이 되니까.”

“그런데 나보고는 왜 그만두라고 하는 건데? 너도 헌터면 잘 알잖아.”

“같은 헌터니까 하는 말이야. 오빠는 약해. C급? 겨우 그 정도 등급이면서 목숨을 걸고 던전을 돌고 싶어? 몬스터의 무기에 피부가 찢기고, 저주에 걸리고, 파티원들이 죽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은 거야?”

은아리는 그동안 던전을 돌고, 이세계를 탐험하며 동료들과 파티원들이 죽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매번 다른 던전, 다른 상황이었지만 그들이 죽는 이유는 모두 똑같았다. 그들은 약했으니까 죽었다.

그녀는 더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래서 강해졌다. 하지만 그녀가 약자들을 돕기 위해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다. 약자들은 자연스레 약자들끼리 뭉친다. 강자들이 약자들을 돕기 위해 내려오지 않는 한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자들은 약자들을 위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강자들도 끼리끼리 뭉친다.

은아리는 강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강해졌다. 강자들도 약자들처럼 서로 협동하여 던전을 돈다고는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강자들은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안다. 스스로를 지킬 줄 알며, 숱한 경험 덕에 노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과 함께하면 더는 죽는 사람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유성이 헌터 일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자신의 오빠는 약했다. 겨우 C급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소리는 언제 어디서 소리 소문도 없이 죽을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은아리는 오빠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오빠는 A급 헌터도 개발라버리는 C급이라니까. 그 천사섬에서도 내가 솔턴 길드의 간부들을 대부분 죽였어.”

“C급이 A급을 잡았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나한테는 마나와 내공을 뚫어버리는 총이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어떻게 그런 무기를 얻었는지는 묻지 않을게. 하지만 그런 잔꾀가 계속해서 통할 것 같아?”

“내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무기를 쓰면 돼.”

“그러기 전에 죽을 거야. 그러니 당장 그만둬.”

“안 죽어.”

“죽어.”

“안 죽는다니까.”

“죽는다니까.”

“오빠 못 믿니?”

“뭘 보고 오빠를 믿으라고? C급 라이센스? 좋아, 정 그렇게 헌터가 하고 싶으면 나를 이겨봐.”

“너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니? 아리야, 오빠다. 피는 하나도 안 섞였지만 난 네 오빠야.”

“자신이 없으면 그냥 포기해. 나도 오빠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요것이 오빠를 자꾸 무시하네. 좋아! 그럼…….”

‘그럼 한 번 붙어보자!’라고 자신 있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유자재로 형태변환이 가능한 웨폰이터를 사용하기에 여러 가지 무기를 다루는 유성이었지만 그가 주로 다루는 무기는 총이다. 마나와 내공을 뚫고서 큰 피해를 입히는 마나탄이 유성이 사용하는 비장의 한 수였다.

하지만 총은 대련에서 봐 줄 수 없는 무기다. 다른 냉병기나 마법은 상대를 다치지 않게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총은 다르다. 검은 살살 다룰 수 있어도 총은 살살 다룰 수 없다. 다리를 쏘든 팔을 쏘든 해서 제압은 할 수 있어도 다치지 않게는 할 수 없다. 방아쇠를 당기면 무조건 다칠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을 가진 무기가 바로 총이었다.

“그럼 뭐?”

“그러니까…….”

‘어떡하지? 아리에게 총을 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렇다고 검술로 싸울 수도 없고. 마법은…… 겨우 1서클인 내 마법으로 덤볐다가는 절대 이길 수 없어. 젠장 진짜 어떡하지…….’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린 유성이었다.

“그러니까 뭐냐고? 말을 해!”

“딱 반년! 반년만 줘봐!”

“뭐? 반년?”

“그래. 내가 반년 안에 S급을 찍든 너를 이기든 둘 중 하나는 할게. 오케이?”

“좋아. 반년이라고 그랬지? 기다려 줄게. 그런데 오빠는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헌터 등급은 처음 정해진 등급에서 오르기가 힘든 건 알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금수저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흙수저가 되는 것처럼 헌터도 똑같아. 강자는 처음부터 강자고, 약자는 처음부터 약자야. 그건 절대 안 변해.”

“내가 보여줄게.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기적을 말이야.”

“대단한 자신감인데? 그럼 한번 해보자고. 대신 약속해. 반년 안에 둘 중 하나라도 못 달성하면 헌터는 그만두는 거야.”

“그래. 약속할게.”

유성의 말을 들은 은아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부님께는 비밀로 해줘. 많이 걱정하실 거야. 그리고 하은찬, 그 촉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 그 녀석은 금방 다른 사람한테 말할 녀석이니까.”

은아리 역시 하은찬이 촉새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네가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은 비밀로 할게. 그리고 은찬이 그 새끼…… 아니, 걔가 촉새인 건 나도 알아. 비밀로 할게.”

“알겠어. 그럼 난 가볼게.”

은아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유성은 그런 은아리의 이름을 지긋이 불렀다.

“아리야.”

“왜? 벌써 포기할 생각이 든 거야?”

“아니, 갈 때 쓰레기봉투 좀 버려주라. 거기 신발장에 있어.”

“…….”

가는 김에 쓰레기봉투 좀 버려달라는 유성의 말에 은아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은 봉투를 집고 있었다.

“병신.”

“야! 병신이라니! 아리, 너 오빠한테 말본새가!”

쾅!

문이 거세게 닫혔다.

“저저, 못된 것. 오빠한테 병신이라니. 뒤늦게 반항기가 온 건가?”

병신이라는 말에 상처를 받은 유성이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침대에 누운 유성은 오늘 은아리와 한 내기의 내용을 다시금 되새겼다.

“나도 마정석 광산을 얻어서 헌터 때려치우고는 싶은데 마정석 판매는 헌터밖에 못한단 말이지.”

일반인은 마정석의 유통 및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이나 음지의 사람들은 알음알음 몰래 빼돌리기도 하지만 일단 법적으로는 그랬다. 일반인이 마정석에 터치가 가능한 경우는 오로지 마정석 관련 국가 산업에 종사하는 종사자들만이 가능했다.

그래서 유성이 헌터를 때려치우고 싶어도 팔기 위해선 헌터를 계속해야 했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아리한테 마정석만 팔아달라고 할까? 아니지, 남자가 쪽팔리게 한번 내뱉은 말을 무를 수는 없지.”

당당하게 반년만 달라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무르기는 좀 그랬다. 그리고 뉴 월드의 기술력이라면 S급은 충분히 찍고도 남는다.

‘S급 찍고 헌팅은 그만두고 마정석이나 팔면서 살면 되겠지.’

유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후원 메시지가 날아왔다.

[장난의 여신이 ‘100,000포인트’를 후원하셨습니다.]

[장난의 여신 : 현명한 선택이야! 너 헌터 때려치웠으면 내가 직접 죽였음 ㅋㅋ. 요즘 이거 보는 낙으로 사는데 이거 없으면 다 엎는다.]

“헌터를 그만뒀으면 날 죽였다고? 진짜?”

[장난의 여신 : 리얼 다큐임 ㅋㅋ. 신이 허언하는 거 봄?]

아무래도 신들의 관심이 식기 전까지는 헌터를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유성의 목표가 여동생과의 내기를 이기기 위한 헌팅에서 생존을 위한 헌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젠장.’

편하게 놀고먹기가 힘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