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떻게 흑쇄봉진을 파훼한 거지?”

믿을 수가 없었다. 봉인진은 완벽했다.

그런데 파훼라니?

흑쇄봉진은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그런 봉인진들과는 달랐다. 봉인진을 발동시키는 매개체인 봉인구는 상점에서 파는 아이템이지만, 그 봉인구에 특별한 봉인진 술식을 새김으로써 흑쇄봉진은 완성된다.

흑쇄봉진은 사마련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봉인진이다. 처음 사마련을 세운 무환의 원주민들이 만든 봉인진이기 때문에 사마련 소속이 아닌 헌터들을 절대 이 봉인진을 풀 수 없었다.

헌터들에게 후원과 선물을 주는 신이나 신령이라면 알 법도 하지만 그들은 지켜보기만 할 뿐 직접적인 도움 같은 건 주지 않는다.

흑쇄봉진의 파훼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련주와 소련주를 제외하고는 사마련의 원로나 장로, 호법 같은 고위 간부들 밖에 없다. 극소수의 인원만이 흑쇄봉진의 술식과 파훼 방법을 전수 받는 것이다.

“설마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건가?”

장동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맞습니다. 배신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동휘의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푹! 푸욱! 푹!

“그 배신자는 바로 저희입니다.”

장동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고 그의 배에선 시뻘건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대, 대체 왜…… 너희들이…….”

장동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절대 배신을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해온 사람들이었다. 아비인 장환의 뒤를 이어 자신을 보좌할 그런 사람들이 배신을 했다.

호법이자 자신을 늘 호위하는 김무련, 그리고 장환이 젊었을 적부터 장환을 보좌했던 장로들 그리고 사마련의 무인 대대의 대주들까지. 배신자들의 정체는 사마련의 최고 간부들이었다.

최고 간부들과 그 부하들이 아군들에게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는 명백한 배신이었다.

“어째서냐……! 대체 왜! 크헉!”

장동휘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김무련에게 물었다. 장동휘의 물음에 김무련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게 이상한 겁니까? 소련주님.”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소련주님은 련주님의 무서움을 모릅니다. 한유성이 죽든 살든 련주님이 돌아오면 저흰 죽은 목숨입니다. 그럼 조금이나마 살 수 있는 쪽에 목숨을 거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헛소리 마라…… 너희들이 배신만 하지 않았어도……. 쿨럭!”

장동휘의 얼굴이 거뭇거뭇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으며 호흡도 가빠졌다.

“말씀을 아끼시지요. 말을 하시면 하실수록 독이 빨리 퍼질 겁니다.”

“한유성이 대체…… 뭘 약조한 거지? 부와 명예라도 약속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와 명예는 한유성의 자그마한 소길드가 아니라 이 사마련에 있습니다. 그리고 배신의 이유는 아까 제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흰 살기 위해서 이 방법을 택했다고요. 소련주님께선 련주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십니다. 호랑이도 자기 자식에겐 완전히 이를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15년이 넘게 장환을 옆에서 보좌해왔던 김무련은 장환이 어떤 사람인 줄 잘 알고 있다. 그는 기회주의자이며 욕심쟁이이다.

사마련의 촉망받는 무인 중 하나였던 장환은 자신의 세력을 모아 전대 련주를 암살했다. 사마련이라는 단체의 힘이 탐이 났기에 장환은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와 지원을 아낌없이 주었던 전대 련주를 거리낌 없이 죽였다.

김무련 역시 장환의 반란에 동참했고 장환이 사마련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그를 성심성의껏 도왔다. 김무련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장환을 도왔기에 장환이 사마련을 손에 넣고 난 이후에 그간 했던 노력과 충성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무련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목숨과 충성을 장환에게 바쳤지만, 그가 돌려준 것은 부와 명예 따위가 아닌 소련주의 뒤치다꺼리였다.

장환은 자신이 배신과 반란을 통해 권력을 얻었기에 그들을 견제한 것이었다. 한 번 배신한 사람들은 또다시 배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마련의 련주가 된 이후로 장환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했던 무인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갔다.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그들을 죽였고 독살과 암살을 밥 먹듯이 행했다. 그 부당한 대우에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은 모두 제거를 당했고, 살아남은 것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꼬리를 내리고 있었던 사람들뿐이었다.

구세대의 충성파 무인들을 정리한 장환은 신세대의 무인들로 그 빈자리를 메꾸었다. 그는 머리가 굵어진 기존의 무인들보다 신세대의 무인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며 그들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었다.

김무련 역시 조용히 장동휘의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지금 배신에 동참한 이들 역시 김무련과 같은 부류였다. 장환의 무서움을 알고 조용히, 죽은 듯이 지내 살던 이들이었다.

“련주님에게 저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죽이고 싶어도 죽일 이유가 없으니 가만히 내버려 둔 것이 저희였지요. 하지만 련주님은 늘 저희를 제거할 이유를 찾고 계셨을 겁니다. 저희는 살기 위해서 최대한 조용히 살았지만 결국 이번에 그 이유가 생겨났습니다.”

사마련주가 반드시 성공시키라고 소련주에게 명령했던 흑룡 레이드의 실패, 그리고 쑥대밭이 돼버린 천루까지.

이는 장환이 자신들을 찢어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크나큰 실패였다.

흑룡 레이드는 결과적으론 성공했지만, 여의주와 내단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했고, 사마련의 자존심이자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천루는 적습을 당해 너덜너덜하게 변했다.

분명 련주인 장환이 돌아오면 자신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자신들의 목숨으로 밖에 질 수 없는 무거운 책임이 될 것이다. 소리 소문도 없이 죽임을 당하고 시체는 바닷속이나 첩첩산중에 흩뿌려질 것이다.

이 세상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한유성이 죽든 살든 련주님은 우릴 죽일 겁니다. 하지만 한유성이 살아남는다면 저희가 살 확률이 조금 올라갑니다. 제가 보기에 한유성은 련주님을 죽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 멍청한 놈들! 아버님이 저런 녀석에게 죽을 것 같으냐……!”

“련주님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입니다.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른다는 소리는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한유성에게서 보았습니다.”

“너희 같은 배신자들을 누가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장동휘는 배신자인 김무련을 비웃었다.

이 세상에 배신자를 받아주는 넓은 아량을 받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배신하는 장면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 사람은 자신 역시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보게 되면 마음속에 저절로 의심의 씨앗이 심어지고, 마음속에 심어진 의심의 씨앗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럭무럭 자라나 끝에 가서는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 정도로 화려한 꽃을 피운다.

“크큭…… 한유성 저 녀석이 아무리 바보 같은 놈이라고 해도 이렇게 눈앞에서 배신을 하는 장면을 봤는데 너희를 몸 성히…….”

“아닌데? 난 그런 거 상관 안 해. 나야 두 팔 벌리고 환영이지. 저희 식구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여러분.”

죽어가던 장동휘는 유성의 말을 듣자 인지부조화가 올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배신을 하는 장면을 봤는데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태연하게 두 팔 벌리고 환영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정말 생각이 없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장동휘는 유성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어떻게 태연하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지?”

“배신을 할 만한 상황을 안 만들면 배신당할 일도 없잖아? 그리고 저 녀석들이 닐 배신한다고 쳐도 날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쟤들이 트럭으로 배신해도 나한텐 아무런 피해도 못 줘. 내 입장에선 쟤들이 배신해서 련주를 족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면 땡큐지.”

“미친놈.”

“요즘 들어서 맨날 듣는 게 그 소리라 이젠 별로 감흥도 없다.”

“푸하하핫!”

심드렁한 유성의 대답을 들은 장동휘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독이 온몸에 퍼져 몸을 기괴하게 비틀며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은 최후의 발악을 하는 광인(狂人)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난 이렇게 죽는다! 하지만 똑똑히 기억해둬라! 너희들 모두 내 아버님께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아버님께서 너희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 내 무덤에 너희들의 머리를 올려줄 것이다!”

장동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저주의 말을 쏟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눈에선 피눈물이 흘러내렸고 입과 귀 그리고 코에서도 한 줄기의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저세상에서 너희들이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다.”

털썩!

장동휘가 쓰러졌다.

사마련의 소련주가 죽음을 맞이했다.

***

김무련과 배신자들은 투항한 몇몇 무인들을 제외하고 장동휘를 따르던 무인들을 모조리 죽였다.

유성으로선 참 편리했다.

귀찮게 검을 휘두를 필요가 없었으니까.

천루가 정리되자 죽은 장동휘의 시체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유성은 홍세린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세린씨. 저기 죽은 소련주 강령술로 다시 살릴 수 있어요? 네크로맨서니까 언데드로 다시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갑자기 그건 왜…….”

“한, 세 번 정도 더 죽이게요.”

“어……. 그러니까 유성씨의 말은 죽은 소련주를 살려서 또다시 죽이겠다는 소리인가요……?”

“네. 불가능한가요?”

“아, 아뇨. 불가능한 건 아닌데 그게……. 되게 생각도 못한 말이라서요…… 조금 놀라서 그래요.”

홍세린은 죽은 강동휘를 흑마법으로 다시 살려냈고 유성은 정말 말했던 대로 장동휘를 세 번 정도 더 죽였다.

죽은 사람을 다시 언데드로 살려내어 성수를 뿌리며 고문해가며 죽이는 그 모습에 김무련과 배신자들은 치를 떨었다.

“너희 배신자들은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얘 한 번만 더 죽이고 나서 나랑 따로 얘기 좀 다시 하자.”

“끄아아아악! 차리리 날 죽여! 이 악마 같은 녀석!”

“넌 이미 죽어서 언데드로 되살린 건데 죽이긴 뭘 죽여. 이미 시체인 놈이.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쟤들이 대신 죽였으니 그 값은 치러야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둬라!”

“아 떽떽떽떽 되게 시끄럽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말 알지? 그러니 입 좀 닫자. 친구야. 최고급 성수의 맛은 어때?”

“끄아아아악!”

언데드로 부활한 후 성수 고문을 당하는 장동휘의 비명소리에 김무련과 배신자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나 수십 번이나 다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