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nster Hunter Born of Capitalism

146. Kingdom of Ice (5)

“오랜만이군. 인간.”

실내를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

옥좌에 앉은 거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에 유성은 압도되었다.

거인의 목소리에는 지배자의 위엄과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그리고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옥좌의 거인은 침입자를 마주하고도 조금도 떨지 않았다. 그를 지켜줄 어떠한 호위 병력도 없었지만, 그는 당당했다. 오히려 그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좋아졌구나. 그 정도 실력이면 인간들 수준에서는 최상급이겠군. 축하한다.”

“넌 누구지? 나를 아나?”

얼음왕은 마치 유성을 잘 안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성의 기억에는 저런 거인은, 저런 강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거 섭섭하군. 내가 목숨까지 살려줬는데 날 까맣게 잊다니.”

“너 설마…… 그때 그 고블린이냐?”

“고블린이라…… 그래, 그랬던 적도 있었지.”

얼음왕은 눈을 감고서 과거를 회상이라도 하는지 감상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하찮은 몸뚱아리는 초월한 지 오래다. 나는 신을 죽이고 신의 힘을 손에 넣었다. 나는 이곳 요툰헤임의 지배자, 우트가르트의 왕 로키다.”

“……네가 우트가르트 로키라고?”

인간을 초월한 신들이 입을 모아 강력하다고 말했던 서리 거인의 왕 우트가르트 로키.

예전에 만났던 그 알비노 홉 고블린이 우트가르트 로키라니?

믿을 수 없었다.

“…….”

“믿지 않는 눈치군. 하지만 네가 믿든 안 믿든 내겐 상관없다. 내가 신을 죽이고 그 힘을 빼앗은 것은 사실이니.”

알비노 홉 고블린, 아니 우트가르트 로키는 자신이 신을 죽이고 그 힘을 빼앗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장난의 여신 : 진짜 우트가르트 로키네?]

[겨울처자 : 생긴 건 똑같이 생겼는데 내용물은 완전 달라. 진짜 우트가르트 로키는 저 녀석보다 더 강해.]

[빅 망치맨 : 죽은 우트가르트 녀석의 힘을 흡수했나 보군. 하지만 힘을 완전히 흡수하지는 못했어. 하긴, 저 녀석은 필멸자이니 신의 힘을 온전히 흡수하는 건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녀석이야. 저놈 벌써 몸에 신단을 만들었어. 그렇게 큰 크기는 아니지만, 녀석은 신력을 다룬다.]

[장난의 여신 : 그런데 원래 우트가르트 놈은 대체 왜 죽은 거지? 저런 녀석한테 죽을 놈이 아닌데.]

[빅 망치맨 : 차원이 찢기면서 녀석의 힘도 같이 찢겼겠지.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부러운 새끼…….’

채팅창에 올라온 신들의 말에 따르면 저 고블린 녀석은 차원이 찢기며 함께 힘이 약화된 우트가르트 로키를 만났고, 운 좋게 놈을 이겨 신력을 얻은 것이다. 참으로 부러운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저놈 저거 처음 볼 때부터 느낀 거지만 운빨 하나는 대단한 녀석이네.’

처음에 진화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운 하나만큼은 대단한 몬스터였다. 무슨 만화 속 주인공을 보는 것 마냥 자꾸만 파워 업을 해서 나타난다.

“네가 이곳에 온 것을 보면 조만간 인간의 군대도 온다는 소리겠지. 최대한 빨리 끝났으면 한다. 너희 인간 말고도 나는 신경 쓸 일이 아주 많으니.”

“야, 우트가르. 너 우리 인간들을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죽은 줄 알아? 너도 그 뒤를 따라가게 될 거야.”

“우트가르? 날 말하는 건가?”

“그래, 우트가르트 로키는 너무 길잖아? 이름 하나 부르다가 시간 다 갈걸.”

“웃기는군. 인간, 너는 누군가를 웃기는 재주가 있구나. 예전에 내게 목숨을 구걸했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참 재미난 농담이었다.”

“농담처럼 들리나 보지?”

“그럼 너는 너희 인간들이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 나를? 신을 죽인 나 우트가르트 로키를?”

유성의 말에 우트가르는 코웃음 치며 답했다.

“너희가 나를 어떻게 이긴다는 거지?”

스윽!

우트가르는 유성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우트가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성은 긴장하며 웨폰이터로 손을 가져다 댔다.

팟!

우트가르가 손을 펼쳤다. 그가 손을 펼치자 유성의 옆에 있던 커다란 얼음 기둥 하나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나는 손짓 하나만으로 거대한 얼음을 부수고.”

이번엔 우트가르가 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실내에 거센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트가르가 만들어낸 작은 폭풍은 얼음 궁전을 뒤흔들어 놓았다. 거센 바람에 물건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몸조차 가누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손을 한번 휘둘러서 폭풍을 일으킨다. 너희 인간들이 이런 걸 할 수 있나?”

우트가르는 폭풍 때문에 너덜너덜하게 변한 유성을 내려다보며 질문했다.

확실히 평범한 인간은 우트가르처럼 할 수 없다.

인간이 거대한 얼음을 부수기 위해선 주먹으로 치든, 검을 휘두르든 뭔가를 해야 했고 마법을 쓰지 않는 한 저런 폭풍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네 말이 맞아. 인간은 너처럼 손짓 하나만으로 얼음을 부수고 폭풍을 일으킬 수는 없지.”

“인정하는군.”

“사실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어쩌라고?”

“흠?”

“넌 그냥 운이 좋은 거야. 운이 좋아서 약하디 약한 고블린에서 홉 고블린으로 진화한 거고, 이번에도 운이 좋아서 그 우트가르트 로키인지 뭔지를 죽이고 힘을 얻은 거지. 그리고 네가 손짓 하나만으로 얼음을 부수고 폭풍을 일으키는 게 뭐? 그런다고 네가 안 뒤지냐? 무슨 불로불사라도 되나 보지?”

“입을 잘 놀리는 게 좋을 거다. 인간.”

“내가 원래 직설적인 성격이라 말을 돌려서 못하거든. 그러니까 귀 똑바로 열고 들어.”

타앗!

유성은 스프린트를 사용하며 우트가르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웨폰이터를 빠르게 휘둘렀다.

“네가 신이든 뭐든 상관없어. 너도 목 자르면 죽겠지.”

카앙!

파즈즈즈!

유성의 검이 단단한 에너지 장벽에 가로막혔다.

“봐봐. 역시 운이 좋다니까.”

“옛정을 생각해서 인간의 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살려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누가 들으면 우리가 옛날에는 친했었는지 알겠다?”

혼천검 제일초 풍아.

유성은 빠르게 풍아의 자세를 잡았다.

“그래도 예전과는 다르게 잡기를 익히기는 했군. 장족의 발전이야.”

“그럼 받아보던가!”

날카로운 검풍이 우트가르를 향해 날아갔다.

우트가르가 몸을 움직인다. 그는 팔을 움직여 검풍을 막아내려는 듯했다.

‘성공이다! 역시 저 녀석도 풍아의 실체가 뭔지는 몰……. 어?’

방어 자세를 준비하던 우트가르가 갑자기 자세를 풀고서 달려드는 유성의 목을 붙잡았다.

“큭!”

“역시 잡기는 잡기에 불과하군. 내가 그런 하찮은 속임수에 속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초식은 완벽했는데…….”

“그런 허접한 기술에 지금까지 당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구나.”

우트가르는 풍아의 검풍이 그저 위협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넌 내가 그저 운이 좋아서 강해졌다고 말했었지. 하지만 나는 그저 운 하나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게 아니야.”

딱!

우트가르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우트가르가 앉아 있었던 옥좌에서 거대한 해골 하나가 나타났다. 어마어마하게 큰 크기의 해골이었다.

“저게 바로 내가 쓰러트린 우트가르트 로키다. 네 말대로 엄청나게 약해진 상태였지. 하지만 그래도 놈은 강력했다. 신이 약해졌다고 신이 아니게 되는 건가? 아니, 신은 신이었다. 본래의 힘에 수천, 수만 분의 일로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강력한 존재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을 쓰러트렸다.”

파삭!

우트가르가 손을 움켜쥐자 우트가르트 로키의 해골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너도 저렇게 만들어주지.”

우트가르를 중심으로 강력한 힘의 파장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유성의 몸을 저절로 떨리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괜히 열 받게 만들었나? 미친 졸라 쎄잖아…….’

그래도 나름 신령이 되기 바로 직전의 단계인 SSS급이었기에 어느 정도 비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신령의 힘을 가진 우트가르와 유성의 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이 세상에서 깨끗하게 지워주마.”

고오오오!

우트가르의 손에 푸른빛의 구체가 생겨났다. 맞으면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 응축된 구체였다.

“야! 이 새끼야! 바로 필살기부터 날리는 법이 어디 있냐! 그런 건 뒤지기 전에 써야지!”

“인간들의 법칙으로 나를 옭아매려 하지 마라.”

우트가르가 손을 올렸다. 구체를 날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트가르의 공격은 유성에게 닿지 못했다.

“이봐! 서리 거인! 그래도 급에 맞는 사람이랑 놀아야 하지 않겠어? 아직 걔는 평범한 인간이거든.”

“소이현!”

갑자기 주인공처럼 나타난 소이현이 우트가르의 공격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소이현이 쳐낸 우트가르의 구체는 궁전의 한쪽 구석으로 날아가더니 블랙홀 마냥 주변의 것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다 소멸했다.

‘미친 졸라 쎈 기술 맞잖아.’

저 구체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아마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내가 정말 완벽한 타이밍에 왔나 보다. 네가 그렇게 반가운 표정을 짓는 거 처음 봐.”

“다른 사람들은?”

“지금쯤 도시에서 싸우고 있을걸. 여기 얼음 도시라니 스케일이 상상을 초월하더라.”

“얼음 도시고 나발이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도시에 있는 몬스터들은 그래도 잡을 수 있는데 저 녀석은 아니거든.”

유성의 말에 이현이 우트가르를 쳐다보았다. 눈앞의 서리 거인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나 볼법한 신령급의 존재였다.

“신령급이니까 당연히 세지. 저 녀석 반신이야. 미치겠네. 이 시점에서 신령급을 만날 줄이야.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저 녀석 저거 네가 그때 말한 고블린 맞지? 그냥 고블린이라며? 대체 고블린이 뭔 짓을 하면 우트가르트 로키를 죽이고 그 힘을 흡수할 수 있는 거냐?”

아무리 이레귤러라고는 하지만 과거가 비틀려도 너무 비틀렸다. 끽해야 레이드 보스급이라고 생각했는데 레이드 보스를 넘어선 신령급이다. 그리고 몸에는 작기는 하지만 신단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제대로 안 싸우면 질 수도 있겠는데?’

이현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백현과 싸우기 전까지는 그래도 좀 편안하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초장부터 틀려버렸다.

“쨔샤! 이제 2대 1이라 이거야!”

“야, 도발하지 마!”

“너 회귀자라며? 너 쟤 못 이기냐?”

“지는 건 아닌데 쟤랑은 한 번도 싸워본 적 없잖아. 방심은 금물이야.”

“난 너만 믿는다. 내가 봤을 때 나는 쟤랑 싸우면 한 방 컷이야 한 방 컷.”

‘나만 믿어. 내가 언제나 네 등을 지켜줄 테니까.’

“하아…….”

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귀 전 언제나 자신만 믿으라고 말했던 믿음직했던 동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는 책임감 없는 친구만이 존재했다. 말 더럽게 안 듣는 남동생이 하나 생긴듯한 기분이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