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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Scavenger of the Destroyed World 6

재밌는 일이야.

차원을 물어뜯어 균열을 낸 뱀의 아가리로부터 기어 나온 여인이 흥미롭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이미 모든 희망을 잃고 말라비틀어질 일만 남은 세상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일. 새로운 토대를 발견했으니 말라비틀어지지 않도록 지켜줄 뿐.

그녀의 뒤를 이어 나온 남성형의 괴물이 무뚝뚝함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그녀의 혼잣말에 대꾸했다. 여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따분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삶을 즐길 여유가 없는 거야. 좀 더 유연하게 사고하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할 거야. ……응?

한가로이 그런 말을 지껄이며 허공에서 기지개를 켜던 찰나, 여인은 눈앞으로 날아드는 황금빛의 스파크를 발견했다.

뭐야, 왜 이 세상에 이런 강력한

그리고 강대한 번개에 휩싸여 그대로 소멸했다. 반사적으로 방어결계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함께 통째로 구워진 것이다.

이 차원의 것이 아냐…… 핫, 히어로 유니버스!

여인에게 ‘따분하다’는 말을 들었던 괴물이 다급히 몸을 바로 했다. 설마 자신들이 세상을 감지하고 찾아오는 것보다도 빨리 놈들이 찾아오다니? 아니, 아마도 반대이겠지. ‘놈들이’ 이 세상을 정상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자신보다 앞서 나갔던 여인…… 즉 자신의 보스를 단숨에 격살한 그 뇌전의 파괴력이었다. 제아무리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고는 해도 그녀는 뇌전 한 방에 죽어버 릴 만큼 연약하지 않다. 상대가 규격 외라는 뜻이었다.

일단 물러난다.

끼이이이이이이이!

“안 돼.”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자신의 뒤를 이어 게이트로부터 빠져나오던 몬스터들에게 죽어버린 보스를 대신해 지시를 내리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거기부터가 좋지 않았다. 자신의 보스를 죽인 사람…… 뇌제의 움직임을 마크하지 못했으니까.

“너흰 갈 수 없어.”

신은아가 뻗은 손으로부터 복잡한 형태의 마법진이 사출되었다. 억지로 닫으려던 균열을 잡아 허공에 고정시키는 모습에 괴물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마법진에 갖추어진 고도의 술식도 놀라웠지만 보다 놀라운 것은 그 술식을 이용해 균열을 고정시키고 있는 무지막지한 힘(마력)이었다.

무슨, 어떻게 이런…… 괴물인가!

“괴물은 너희겠지.”

신은아가 냉소했다. 나머지 한 손으로 허공을 쥐어짜듯 비틀어, 균열을 마법진과 완전히 맞물리도록 붙들었다. 끔찍한 정밀도의 마력 계산과 출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으나 신은아는 회전식 자물쇠를 돌려 맞추듯 간단하게 그 작업을 수행해냈다.

“줄여둘 수 있을 때 최대한 줄여둬야 하는, 인류가 해가 되는 괴물.”

이것으로 균열은 완벽하게 파괴되기 전까지는 닫히지도, 그렇다고 크기가 확장되지도 않을 것이다. 마도를 연구하는 이라면 방금 신은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을 벌인 것인지 알 것이다.

‘좋아, 그럼 이제 제대로 해볼까.’

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한 [게이트 고정 작업]을 순식간에 완료한 신은아는 재차 양손을 펼쳐 뇌전을 쏘아냈다.

마법을 다루는 데에는 소질이 없는 괴물은 잽싸게 몸을 피했으나 놈의 뒤를 이어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던 몬스터들은 그대로 바짝 타버렸다.

신은아는 한 팔을 게이트 쪽으로 고정시켜 끊임없이 뇌전을 쏘아내며 나머지 한 팔을 도망친 놈에게로 뻗었다.

크아아악!?

그녀가 다른 몬스터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틈에 급습하려던 괴물은 이번에야말로 그녀의 뇌전을 피하지 못하고 직격 당했다. 어쩌면 자신이 그녀의 틈을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간파당했는지 몰랐다.

끄으, 어, 찌……!

내구력은 처음 죽었던 여자보다 더 높았던 것일까, 바로 죽지 않고 버티는 괴물을 보며 신은아는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녀가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자 한층 거센 뇌전이 토해져, 다음 순간 놈을 깔끔하게 태워 소멸시켰다.

“더…… 세게 해도 될 것 같은데.”

신은아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공에서 춤을 추듯 두 손을 우아하게 뻗어, 반짝이는 마나 입자로 그려진 수십 개의 마법진을 허공에 만들어냈다.

자신의 특성을 극한에 가깝게 끌어올릴 수 있는 보조 마법진. 사실 이전까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보다 정확히는, 뇌전의 지배자 특성을 활용하고 있는 중에는 다른 마도를 어느 정도 이상 발휘하는 것이 불가능했었던 것이다.

베나딜라이트 입자를 받아들이며 생체병기화한 지금이야말로 비로소, 뇌전의 지배자와 마나의 지배자라는 특성을 조화시켜 최대의 파괴력을 뽑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후우.”

가볍게 기합을 넣어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마법진으로 나뉘어 흘러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사방에서 튀는 스파크의 소음이 클래식처럼 감미롭게 느껴졌다.

키이이…….

새로운 땅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저기에 있다.

저 대지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이 느껴진다. 찬란한 생명의 기운이!

마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뇌전의 폭격이 잠시 멎었기 때문일까, 게이트 너머에서 주춤하던 몬스터들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마침 좋은 타이밍이다. 아슬아슬한 부유감에서 벗어난 그녀는 다시 마법진 무리의 제어를 되찾아, 충전이 끝난 모든 마법진의 목표를 재설정하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흡!”

허공에 무수히 겹쳐 떠오른 마법진들이 시계태엽처럼 맞물려 회전하며 끔찍한 광량과 함께 무수한 번개를 토해냈다!

크가가가각!

쾅!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수천, 수만 줄기의 뇌전이 균열 내부로 비집고 들어가며 그 안에서 몸을 비틀며 기어 나오던 몬스터들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렸다.

콰직

세상이 빛으로 가득 찬 한순간.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그 순간,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신은아는 본능적으로 게이트가 파괴되었음을 감지했다.

“끄응, 이 정도려나……."

신체성능이 증폭되며 출력이 높아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최대출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있는 힘껏 실력발휘를 한 덕에 대충은 감이 잡혔다.

‘탑 랭커…… 가능하겠어.’

세계 초인랭킹 1위부터 7위까지를 가리켜 말하는 탑 랭커. 지금 이대로 그들과 맞붙어도 결코 밀리지 않으리란 자신이 있었다.

아마 자신이 변화한 육신에 조금 더 적응한다면 또 한 차원 달라질 것이다. 세계랭킹 1위에, 도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후. 흔적은 없고. 끝.”

다른 데에 게이트가 열릴 것 같은 기척도 지금은 없다. 호되게 당했으니 상황판단을 하고 다시 덤비기까지 최소 몇 달에서 몇 년까지도 소요될 터. 그 정도라면 금은서족이 자리를 잡기에는 충분한 유예가 되어줄 것이다.

신은아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곤 하강했다.

“아니, 선배, 지금……."

공방에 달린 창문을 통해 전투 현장을 보고 있던 강신혁은 어느덧 공방 밖으로 나와 입을 헤 벌린 채 신은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신은아는 괜히 뿌듯해져 작게 웃었다.

“잘 봤지? 어때? 어때?”

“어떻고 자시고……."

게이트가 열리고 그 밖으로 튀어나온 2인조를 떠올리며 강신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그렇게 완벽한 인간 형태를 취한 몬스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자신으로선 감히 눈도 마주볼 수 없는 초강자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환룡무가 아니었으면 그나마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인가를 하며 폼을 재던 것이, 요르문간드라는 조직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것들이 아닐까 했는데.’ 아니, 놈들에게서 풍겨지던 기세로 판단컨대 분명 간부급은 되었으리라.

그런데 신은아는 그것들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손을 휘둘러 가볍게 태워버렸다. 그뿐인가? 최소한 S급 이상의 몬스터의 기척으로 득시글거리던 게이트를 단숨에 소멸시키기까지 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수십 개의 마법진에서 끓어오르던 기운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과연 그녀의 말이 맞았다. 단순히 무한의 마나를 뿜어내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이 정밀하게 가다듬어져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세상이라도 능히 파괴할 수 있을 듯한 절대적인 힘을 느꼈다.

‘나는 정말 멀었구나.’

강신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이건 뭐 자신과 비교를 할 수도 없을 만큼 아득한 경지여서, 감히 질투심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목표가 세워진 느낌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그런데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지금이라도 수련을 하고 싶다는 기분과 함께, 또 다른 충동이 그를 덮쳤으니…….

‘저런 힘을 담아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전의 그였더라면 아마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만, 불쑥 떠오른 충동이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소중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아마도 그리 쉽게는 사라지지 않을 영감을.

어쩌면 이런 충동도 그가 성장했음을 증명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검사가 아니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영감과 충동을 소중히 하자는 생각이 들어, 절로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우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은아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것이 슬슬 손녀 모드로 넘어가려는 조짐이 보였다.

“칭찬 안 해줘? 나쁜 놈들 잔뜩 해치웠는데.”

“일단 묻겠는데 칭찬의 형태는 뭘까요?”

“머리 쓰다듬어주기.”

“……음, 그 정도면 나름 양호한 축이려나.”

지금은 아슬아슬하게 하이브리드 모드의 경계선에서 버티고 있는 느낌이지만 너무 길게 어리광을 들어주면 완벽한 손녀 모드에 돌입하겠지.

강신혁은 적당히 신은아의 머리를 쓸어주고는 더 달라붙기 전에 떼어냈다. 신은아는 불완전연소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강신혁이 무리였다. 가히 뇌신과도 같은 위용을 보여준 그녀를 자신이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이 황송해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전투는 완벽하게 끝난 건가요?”

“아니, 완벽하지는 않아.”

더 쓰다듬어줬으면 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신은아의 모습에 화제를 돌려보려 아무 말이나 (존댓말로) 던졌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그것을 바로 물어주었다.

“요르문간드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 세상 고유의 몬스터들이 활동을 개시했다는 증거야. 요르문간드를 단순히 외부의 침략자라고 생각해선 안 돼. 놈들을 외부에서 발견했다면, 반드시 내부에도 있어.”

“저그나 바퀴벌레 같은 느낌인가요.”

“비슷할지도 몰라.”

한 마리 발견하면 30마리는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강신혁은 조금 우울해졌다. 물론 외부에서 침입해온 저 말도 안 되는 강자들처럼 강력한 몬스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이 세상에 적응해 살아야 하는 금은서족에게는 썩 좋지 않은 소식일 테니까.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후배. 인류가 있는 이상 몬스터는 반드시 있는걸.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무서운 거야.”

“아,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어요. 바퀴벌레가 있다는 걸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와, 바퀴벌레가 없는데도 바퀴벌레의 흔적을 집안에서 발견했을 때는 공포감이 또 다르니까……."

“몬스터를 인식하는 방법이 바퀴벌레로 고정되어버린 것 같은데……."

신은아와 그런 느낌의 대화를 계속하며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완벽히 성공했을 즈음, 두더지 한 마리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모루님,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응? 뭐야, 혹시 방금 선배가 싸우는 걸 보고 있었나?”

“네? 여기서도 몬스터가?”

“여기서도?”

강신혁과 신은아의 눈이 동시에 가늘어졌다. 두더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땅을 파고 있던 중에 그 안에서 갑자기 습격해 와서, 그러니까, 지저왕께서......."

강신혁은 그 말을 들으며 멍하니 신은아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선배의 말이 맞았다며 웃어버리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웃음이 지어지질 않았다.

지저왕의 장례식은 그날 오후에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