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on the Mound

2. Can you see the numbers? (3).

7.

7회 초.

점수는 7대6, 1점으로 뒤지고 있는 레드 이글스의 마지막 공격 이닝.

주자 상황은 1사 만루 상황.

타석에 있는 타자는 신장 188센티미터에 체중은 100킬로그램쯤 되어 보이는 근육 빵빵한 슈퍼맨.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신장 170센티미터에 체중은 68킬로그램에 불과한 그냥 평범한 남자 사람.

‘내가 가진 장점은 하나다. 오늘 저 박준형이란 놈이 내 공을 보는 게 처음이라는 것.’

누가 보더라도 주인공과 엑스트라의 역할이 분명해 보이는 이 무대 속에서 엑스트라, 이진용은 생각했다.

‘공이 눈에 익숙해지면 안 돼. 그럼 많은 공을 던져서도 안 돼. 최대한 적은 공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이길 생각.

말 그대로였다.

지금 이 순간 엑스트라에 불과한 이진용은 저 슈퍼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이진용의 속마음을 엿들었다면 비웃음이 절로 지어졌을 법한 일.

그 정도로 가소롭다 못해 가련하기 그지없는 일.

‘못할 건 없어.’

그러나 이진용에게 있어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이진용은 그래왔으니까.

이진용이 고비 앞에 무릎을 꿇고 야구를 그만두긴 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야구 앞에서 불성실했던 적은 없었다.

동시에 이진용의 야구 인생에서 남들보다 재능으로 압도했던 적은 초등학교 시절이 유일했다.

김진호의 말이 맞았다.

그는 다윗이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놈의 피지컬은 프로급이다. 하지만 진짜 프로에서 통할 놈이었으면 프로에 있겠지. 여기에 있다는 건 완전한 프로는 아니라는 것.’

때문에 이진용은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지언정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외면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답을 내놓았다.

‘초구는 존에 넣는다. 저쪽도 당장 초구를 노리기보다는 내 공을 한 번 보고 견적을 짜겠지.’

답이 나오는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그 답을 실천했다.

마운드 위에 섰고, 슬쩍 1루와 3루를 두리번거리며 주자들에게 눈빛을 쏘았다.

그 후 발을 움직이는 것으로 그라운드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공을 던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몸을 꽈배기처럼 꼰 후에 그것을 풀어냈다.

펑!

그렇게 이진용의 손을 떠난 공은 성 부장이 내밀고 있는 포수 미트 안으로 가볍게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주심은 곧바로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그뿐이었다.

벤치나 주자들, 야수들은 그 사실에 큰 의구심이나 문제점을 가지지 않았다.

‘하나 봤네.’

‘하나 봤구나.’

이 게임은 이미 박준형이 지배하는 게임이 되어 있었으니까.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갔다? 그건 투수가 집어넣은 게 아니라 타자가 들어가도록 허락한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런 느낌이군.’

박준형은 이 순간 초구 스트라이크가 잡혔다는 사실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구속은 100킬로미터 중반 정도. 무브먼트는 나쁘지 않아. 그리고 저 투구폼. 확실히 타이밍이 다른 투수와는 다르다.’

박준형의 머릿속에 오늘 자신이 삼진을 당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타석에서 물러나는 그림은 조금도 그려지지 않았으니까.

‘타이밍만 잡으면 못 칠 이유는 없다.’

그가 그릴 수 있는 최악의 그림은 그가 친 공이 빗맞아서 외야플라이로 끝나는 것, 그뿐이었다.

그게 이유였다.

‘좀 더 봐도 좋겠어.’

박준형이 공을 보는 이유.

그는 최악의 그림을 피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배트에 공이 빗맞는 것을 피해야 했으니까.

하나 더 볼 거야.

그런 그의 심리를 파악하는 이가 있었다.

“예, 제 생각도 그래요.”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쟤 입장에서는 땅볼이나, 플라이가 나오는 게 가장 최악의 상황일 테니까요.”

마운드에 있는 둘은 지금 이 순간 박준형의 심리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심리를 읽는다고 해서 야구는 끝이 아니었다.

“문제는 어설프게 존에 들어가는 공이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거죠.”

아무렴. 어설프게 오면 아마 공을 우주로 날릴 걸?

박준형이 최대한 공을 보리란 건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기 좋은 공이 오는데 가만히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약 조금 전과 같은 공이 나오면 박준형은 전심전력을 다해 그 공을 먼 곳으로 보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순간 김진호가 기꺼이 조언을 뱉었다.

야구는 심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신장으로 하는 거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마운드에서 글러브로 입을 가린 이진용이 반문했다.

내가 지금 지어낸 거야.

“틀린 거 아닌가요? 심장하고 신장하고. 혹시 신장이 콩팥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죠?”

내 국어 능력을 너무 얕보네? 내가 학교에서 시험 보면 국어 점수가 제일 높았어.

“할 말만 하세요. 더 이상 시간 끌면 경고받아요.”

투수는 신장이 높으면 유리해. 타점이 높아지니까. 그런데 타자는 반대야. 신장이 크면 스트라이크존도 커지지.

“다 아는 소리를 하시네.”

아, 나 기분 다운됐어. 말 안 할래. 알아서 해.

김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 사실에 이진용은 미소를 지었다.

‘김진호 선수 말이 맞아. 높거나 낮은 공, 분명 아슬아슬하게 존을 걸치는 그 공에는 섣불리 배트가 나오지 않겠지.’

그때 이진용이 읊조렸다.

“심기일전.”

그러자 이진용의 눈에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8.

펑!

포수 미트에 공이 들어오는 순간, 박준형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하나였다.

‘들어왔나?’

그 생각에 대한 답은 곧장 나왔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말에 박준형은 입가를 찌푸렸다.

박준형의 반응은 거기까지였다.

‘들어왔군.’

하루이틀 야구를 해본 박준형이 아니다. 자신의 스트라이크존이 일반 선수들보다 위아래가 크다는 건 그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주변은 그러지 못했다.

“씨발 저게 무슨 스트야? 높았잖아!”

“아니, 눈깔이 달렸으면 볼이지! 저걸 스트로 잡아주는 게 말이 돼?”

“나가? 나가? 벤클 함 일으켜봐?”

레드 이글스 벤치에서는 폭발한 화산과도 같은 격한 반응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블랙 타이거즈 벤치도 다를 건 없었다.

“캬, 주심 판정이 아주 칼이네, 칼. 눈에 현미경을 넣으신 모양이네.”

“레드 이글스 새끼들, 괴수를 세워뒀으면 양심이 있어야지. 저 거인한테 저 정도 높은 건 잡아줘야지.”

“주심님, 퇴장! 저 새끼들 말 안 들면 레드 카드 뽑으세요!”

그 소란 속에서 마운드의 이진용은 들뜬 기색 대신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타석을 바라봤다.

‘두 개 잡았다.’

이제 아웃카운트까지 남은 스트라이크는 하나.

‘문제는 이제 앞으로인데.’

그러나 이진용은 결코 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두 개의 스트라이크를 잡은 대가로 잡자던 사자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는 것을, 그것도 양쪽에 동시에 집어넣었다는 것을.

지금 자신이 상대할 박준형은 성난 사자와 다를 바 없는 맹수라는 것을.

어지간한 공은 다 걷어낼 거야. 하물며 네 똥볼은 저 정도 레벨의 타자에게 티볼이나 같지. 티볼이 뭔지는 알지 그냥 공 세워두고 치는 걸 티볼이라고 해.

“정말 눈물 날 정도로 고마운 조언이네요.”

그렇기에 이진용은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공을 치려는 타자, 그 타자를 이진용이 공략할 수 있는 법은 오직 하나였으니까.

때문에 이진용은 기꺼이 성 부장을 향해 자신이 던질 구질에 대한 사인을 줬다.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펴서 자신의 어깨 올려놓았다.

그 사인에 김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사슴 새끼인 줄 알았는데 개새끼였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된 사냥개 새끼.

9.

박준형이 후회를 시작한 건,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똥볼이 더 이상 똥볼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느린 공이 될 무렵이었다.

그 후회는 곧바로 결과로 나왔다.

후웅!

박준형의 배트가 너무나도 힘이 없어 추락하듯 떨어지는 공 앞에 허공만을 갈랐다.

그 광경을 앞에서 모두가 경악했다.

너무나 경악해서 잠시 동안 사고가 잊을 정도.

심지어 주심마저도 이 상황에서 놀란 듯했다.

그 상황에서 사고가 가능한 건 둘 뿐이었다.

야, 3루.

‘3루?’

그리고 그 둘 중 행동이 가능한 건 한 명뿐이었다.

“성 부장님 3루!”

“엉?”

그 한 명의 행동이 곧바로 주변을 깨웠다.

이진용의 외침에 공을 잡은 성 부장이 얼빠진 표정을 지은 채 3루를 바라봤다.

그러자 3루와 홈, 그 중간 지점에 있는 3루 주자가 얼빠진 표정으로 홈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멈춰있던 시간이 흘러갔다.

“3루 빽!”

“3루 던져!”

양팀 벤치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와 동시에 터져 나왔고, 그 소리가 터짐과 동시에 포수인 성 부장이 3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퍽!

그렇게 포수의 손을 떠난 공이 3루수의 글러브를 향해 들어갔을 때 3루 주자는 3루 베이스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씨발!”

자신의 심정을 짤막한 두 글자로 토해내며 이번에는 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3루수가 훨씬 더 빨랐다.

“터치! 터치!”

단숨에 자신의 글러브로 3루 주자를 터치한 3루수가 3루심을 향해 격렬히 소리쳤다.

그 광경을 본 3루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터치아웃.

7회의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잡히는 순간.

“으랴아!”

맘마미아!

그 순간 마운드에 있는 이진용과 김진호가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런 그 둘의 눈앞에는 보였다.

[삼구삼진으로 타자를 잡았습니다. 포인트 보너스가 추가됩니다.]

[위기를 막았습니다. 포인트 보너스가 추가됩니다.]

[최초로 삼구삼진을 잡았습니다. 브론즈 룰렛 1회 사용권이 지급됩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460포인트입니다.]

달콤한 승리의 결과물이!

10.

독립리그.

말 그대로 프로리그와 다르게 독립된 채 운영이 되는 리그를 말함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부분이 열악하다.

팀의 숫자도 적고, 선수들의 숫자도 적으며 당연히 선수들 수준도 프로리그보다 떨어진다.

그런 독립리그의 수준은 사회인 야구리그와 프로리그, 그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흔히 말하는 준프로들의 무대인 셈.

독립구단인 고양 스타즈가 있는 무대는 그런 무대였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보다 갑자기 오신다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렸어요. 오래 있을 순 없어요.”

벤츠 G65 AMG 모델, 그 가격만 4억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값을 자랑하는 그 각진 차량을 자가용 삼아 다니는 여인, 175센티미터의 훤칠한 키, 숏컷 머리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고양이 외모를 가진 여인에게 어울리는 무대는 아니었다.

“그보다 박준형 선수는 어디에 있나요?”

하물며 그녀는 단순한 미녀가 아니었다.

구은서.

현성 그룹의 현 회장인 구정범 회장의 손녀이자, 현성 그룹의 가장 핵심 기업인 현성 전자의 회장인 구현승의 무남독녀.

“정말 엔젤스에서 준형이를 영입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리고 현재 현성 그룹 산하 프로야구리그 구단인 서울 엔젤스의 운영팀장인 여인이었다.

말이 운영팀장이지, 사실상 구단주나 다름없는 위치.

“결정을 하려고 직접 여기 온 거잖아요? 보지도 않고 거래를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에요. 그래서 박준형 선수는 어디에 있죠?”

“오늘 시합이 있어서 잠시 빠졌습니다.”

“시합?”

“사회인 야구팀 친선 시합입니다. 그동안 준형이를 보살펴주던 공장 사장님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나간 겁니다. 지금쯤 끝났을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말을 멈춘 고양 스타즈의 감독, 정범석가 스마트폰을 꺼낸 후 곧바로 통화를 시도했다.

통화는 곧바로 이루어졌다.

“어, 준형아. 그래, 시합은 어떻게 됐어? 졌어? 어떻게 하다가? 3연타석 홈런을 쳤는데 7회 초 1사 만루 상황에서 삼진을 당했다고? 알았다.”

그리고 금방 끝났다.

통화를 마친 정범석 감독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정범석 감독을 향해 구은서가 짧게 말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긴 모양이네요.”

“그런 모양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날을 잡아서 듣도록 하죠. 2월 16일, 엔젤스 2군하고 연습 게임 때, 그때 박준형 선수를 선발출전 시켜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그 대화를 끝으로 아직 엔진도 식지 않은 자신의 차에 탑승하고는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그녀가 사라진 후에야 고양 스타즈의 투수코치인 김정호가 다가왔다.

“감독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다른 이도 아니고 구은서 엔젤스 운영팀장이 직접 여기까지 오다니?”

김정호 투수코치의 물음에 정범석 감독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쪽 사정이야 난들 알겠나?”

그 쓴웃음 사이로 나지막이 말했다.

“분명한 건 그녀가 엔젤스 운영팀장이 된 게 구정범 회장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 다음이라는 것과 구정범 회장이 누구보다 엔젤스의 우승을 바란다는 사실뿐이지.”

“설마?”

“뭐, 우리들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일세. 그보다 준형이 녀석에 사회인 시합에서 삼진을 당했다더군.”

“예?”

“7회 초, 7대6 1사 만루 상황에서 처음 올라온 투수에게 삼구삼진.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했다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정호 투수코치가 헛웃음을 흘렸다.

“대단한 투수가 나온 모양이군요. 선출인 모양입니다?”

“그건 모르겠지만, 그 투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00킬로미터 중반이었다고 하더군.”

“예? 준형이가 고작 그 정도 구속을 던지는 투수에게 삼구삼진을 당했다고요?”

김정호 투수코치의 반응에 정범석 감독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왠지 느낌이 2017시즌에는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군.’

그 한숨과 함께 정범석 감독은 머릿속의 어지러운 것들을 날렸다.

“조금 전 한 말은 신경 끄게. 한국프로야구리그 사정보다는 우리들 사정이 더 시급하니까. 그래서 현재까지 트라이아웃 신청자 중에 눈에 띄는 선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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