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소리를 쫓아 달리자 머지않아 우리는 도망치고 있는 듯한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숫자는 총 네 명으로 남학생 2명, 여학생 2명이었다.

넷 모두 교복은 반 쯤 찢어 진채 살결을 드러내고 있는 거지같은 꼬라지를 하고 있었다.

찢어진 의복 사이로 엿 볼 수 있는 상처는 그 동안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쪽도 그제야 우리를 발견했는지 도망치던 무리에서 제일 앞에 있던 남학생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도망쳐! 너희들 거기 멍청히 서 있지 말고 당장 달려! 괴물이 온다고!”

괴물이라면 이 숲에서 널린 게 괴물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지만 소리친 남학생의 혈색을 볼 때 그럴 여유는 보이지 않는다.

얼굴의 특징이 보일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선두로 달리던 학생들 말고 다른 학생들의 모습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제일 먼저 남학생 등 뒤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같이 달리고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죽기라도 한 걸까.

들려오던 소리를 생각해 볼 때 저들은 친구를 구하려다가 포기한 듯했다.

“···오빠 어떻게 하죠.”

길유미가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물었다. 도망치고 있는 그들의 기색을 볼 때 보통 놈이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나는 대답 대신 검을 뽑아 드는 걸 선택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주위를 울리고 아이들 또한 말없이 무기를 뽑았다. 내 행동에서 이미 어떻게 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미 뒤로 물러서기엔 늦어 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등을 돌리면 더욱 위험할 뿐이다.

‘싸울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런 우리의 행동에 도망치던 남학생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듯한 구겨진 표정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뭐, 뭐하는 거야! 도망치라고! 우린 그 녀석을 이길 수 없어!”

“이미 도망치기엔 늦었다.”

선두로 도망치던 남학생에게 그렇게 말하며 나는 고개를 당겼다. 그들의 뒤로 검은색 이형이 은밀히 숲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재빠른 놈이다. 아마 고블린은 아니겠지.

몸집은 사람보다 커 보였고, 순간이지만 나는 녀석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싸늘하게 식어 있는 금빛의 눈은 짐승의 것이었다.

아마···. 그 종족인가.

“귀찮게 되었네.”

감에 의존한 증거 없는 확신이지만 호수에 들르기 전에 봤던 참상의 주인이 분명했다.

사람을 잔혹하게 찢어내고 잡아먹던 괴물. 그럴 존재는 지금 저 놈밖에 없다. 숲의 어둠에 교묘히 몸을 숨기며 도망치는 사냥감을 쫓고 있는 움직임은 내 눈으로도 쫓기 어려울 정도였다.

확실히 막 소환 된 플레이어들로는 잡기 어려운 존재다. 어쩌면 잡으라고 만든 존재는 아니겠지. 플레이어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한 보스 격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블린 같은 것만이 아닌 이런 괴물들이 이 세계에 있다고 알리기 위한.

'빨라. 조금만 방심해도 당하겠어.'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녀석을 회귀 전 튜토리얼을 진행 할 때는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꼈다.

잘도 저런 괴물을 회귀 전에는 만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 때의 나에게 그런 행운이 있었다고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며 어둠속에서 흉흉하게 빛나는 짐승의 눈을 나는 계속해서 주시하며 언제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크르르릉···.”

이윽고 어둠 속에서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이 땅을 밟자 공기를 통해 따가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살기였다. 순간이지만 피부가 바싹 메마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의 살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가진 것만 같다.

비록 나는 괜찮지만 다른 녀석들은 어떨까.

모습을 드러낸 건 개를 닮은 짐승의 주둥아리를 가졌고, 위압적인 털과 함께 짐승의 눈을 가진 녀석이었다.

하지만 짐승과 다를게 있다면 녀석은 2m가 넘는 거대한 체격으로 두 발로 걸어 다닌다.

게다가 치명적인 상처를 피하기 위한 방어구와 손에 쥐어져 있는 도검은 녀석이 이 세계에 수없이 많은 이종족들 중 하나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녀석은 짐승의 형태를 가진 이 세계의 주인 중 하나인 것이다.

인간을 밀어내고 전쟁에서 승리한 종족들 중 하나.

그런 짐승의 주둥아리에 갈무리 되지 않은 흉측한 이빨들 사이로 사람의 것으로 생각되는 붉은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손에는 여학생으로 생각되는 존재가 붙잡혀 있었다. 여학생은 기절한 듯 인형 마냥 짐승의 손에 목을 붙잡혀 여기까지 끌려온 듯했다.

그녀의 다리가 바닥에 쓸려 피와 상처로 가득했다. 그녀의 핏물로 그어진 붉은 선이 바닥에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아픔을 못 느낄 정도로 깊게 기절한 것인가.

얼핏 보면 시체로 밖에 보이지 않는 탓인지 남궁민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은 건가?”

“아니, 살아 있어. 미약하지만 숨을 쉬고 있는 게 보이네.”

남궁민의 중얼거림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아직 그녀의 목울대가 가늘게 떨고 있는 걸 보아 숨은 쉬고 있었다. 다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하다.

저 짐승 녀석이 손아귀에 조금만 힘을 주어도 연약한 여학생의 목쯤이야 쉽게 부러질 테니까. 지금 당장만 해도 날카롭게 세워진 짐승의 손톱이 여학생의 목을 파고들고 있었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고서 우리는 묘한 분위기로 대치했다. 그런 우리의 상황에 놀란 듯 도망치던 학생들도 어쩔 줄 모른 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도와줄 것 같지는 않다. 조금만 일이 터지면 곧 바로 도망칠 것 같은 표정들이 바로 저기에 있다. 나는 그 표정들이 너무 나도 짜증이 났다.

이도저도 아닌 놈들이다. 차라리 도망칠 거면 도망치고, 도와줄 거면 도와줄 것이지 저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만 있는 건, 보기만 해도 불쾌하게 느껴진다.

“인간···. 많군. 나쁘지 않아.”

짐승이 입맛을 다지며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한 포식자의 눈이다. 저 눈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모두를 조롱하듯 기쁜 듯이 웃고 있는 짐승의 모습에 나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피해야 할 녀석이다. 녀석과 싸우기에는 이쪽의 능력치가 부족하니까.

게다가 아이들의 실력으로는 저 녀석과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기적이겠지. 나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방금 전 본 녀석의 움직임만으로도 녀석과 나의 능력치 차이는 극명하게 갈려 있다.

···하지만 가슴 한 쪽으로는 완전히 불가능 하다고만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짐승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스르륵. 스르륵.

녀석이 말없이 조용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번 사냥은 손에 쥐어져 있는 여학생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처럼. 목을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여학생을 우리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구해주고 싶어도 구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녀석은 무방비하게 등을 돌리고 있지만, 거대한 체격에서 뿜어진 살기는 숨이 막혀올 정도였으니까. 짐승이 성큼성큼 숲 안으로 사라지자 등 뒤로 한 여학생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유, 유진아···. 미안해···. 내가 미안해···.”

녀석의 손에 붙잡혀 있던 여학생은 유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안타까운 일이군. 그녀는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걸 확신했다.

‘살기는 글렀군.’

어둠 속에 사라진 짐승을 보며 나는 송가연이 발견 했던 참상을 되새겼다. 지금 끌려간 여학생 또한 그렇게 되겠지. 잘기잘기 찢겨진 채 짐승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아마 그대로 정신을 잃은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게 그녀에게 그나마 나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

별로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행이 추가되었다. 게다가 가지고 있던 물 또한 없는 빈곤한 파티였다. 덕분에 우리는 다시 호수를 찾아 돌아가게 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물을 나누어 주면 진행에 차고가 생긴다. 물이 부족해 헐떡이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한 번 움직였던 길이기에 호수로 돌아가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는 있었기에 도착할 때의 시각은 주위가 어둑어둑하게 변한 저녁이었다.

본래라면 모닥불을 피우는 일은 없겠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불을 피웠다. 어둠 속에도 환하게 빛나고 있는 따스한 불빛을 나는 차갑게 바라보며 등을 돌렸다.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건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지만 한 가지 생각할게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호수에서 거리가 있는 바위 위에 올라 나는 품속에 있는 차가운 금속 덩어리를 매만지며 상념에 잠겼다.

‘이 숲에 죽은 지 오래 된 경찰관의 시체가 있었다?

송가연이 그날 밤 나에게 말한 이야기는 생각지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솔직히 이런 건 생각도 못했다. 만약 그녀가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영영 몰랐을 것이다.

그 시체는 언제 생긴 걸까. 그녀의 말을 떠올리면 요정들이 이벤트성으로 만들어낸 단순한 인형 따위들은 아닐 것이다. 실제 지구인의 시체겠지.

그럼 나보다 먼저 앞서 소환된 이들이 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절단 된 기억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자세히 아는 것보다는 머리 한 쪽으로 슬그머니 고개만 내미는 기억.

예전에 지금 우리가 소환되기 전, 이미 CBT라는 게 있었다고 한다.

그건 일종의 테스트였다. 요정들이 지구인을 소환할 수 있는지, 자신들이 마련한 시험장에서 생각대로 어울려주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그걸 위한 테스트에 소수의 인원이 몇 년 앞서 소환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CBT 당시에 소환 된 경찰의 시체인가.”

그렇게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내가 회귀 전에도, 지금도 튜토리얼을 진행하기 전에 이미 오래 전에 먼저 소환되었던 사람.

송가연이 발견한 시체는 분명 CBT 튜토리얼을 겪었지만 끝내 통과하지 못하고 이름 모를 숲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조금 이상한 일이다. CBT 때 죽은 이들의 시체가 아직도 남아 있는 건가.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죽은 이들이고, 숲에 시체가 남아 있는 걸로 우리에게 큰 영향 같은 걸 줄 리가 없다.

어딘가 복잡해진 기분에 복잡한 눈초리를 하고 있을 때 나는 품속에 숨겨져 있던 물건을 꺼냈다. 다행히 오늘 밤은 환한 달빛이 내려오고 있었기에 물건을 관찰하기 좋았다.

어쩌면 요정들도 생각지 못했을 물건이다. 그리고 그게 내 손에 들어올지도 생각 못했을 테고. 이 세상에서는 본래 존재할 수 없는 물건이니까.

“권총이라···. 이거라면 잡을 만 하지.”

하지만 문제는 총알이 두 발 밖에 없다는 걸까.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짐승을 떠올리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한 방 가지고는 못 잡을지도 모르지.

녀석은 그런 괴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