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에서의 볼 일을 끝내고 유현은 여관으로 돌아갔다. 현재 일행이 머물고 있는 여관은 여행의 나그네라는 곳으로, 상당히 허름한 곳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여관을 구한 것도 다행이다.

로렐라이의 시설들은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니 당연스럽게도 플레이어들이 머물기 위한 시설 또한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길거리에서 담요 하나만 덮은 채 자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나마 요정의 원정군들은 나름 쓸만한 곳에서 지내는 것 같지만.

“보여줄 게 있어 모두들 이리 와봐.”

유현은 방 안에 모두를 부르고서 미궁의 나침반을 보여주었다. 침대 위로 로렐라이에게 받은 주머니를 털자 정확히 6개의 나침반이 차례대로 떨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이게 미궁의 나침반이라는 거군요. 훈련소에서 봤던 걸 제외하면 실물로 보는 건 역시 처음이네요.”

남궁민이 조심스레 나침반을 손에 쥐며 씨익 웃는다. 어린 소년 같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새겨진다.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미궁에 나가는 걸 기대하는 건가.

훈련소에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 그 중에서는 당연히 미궁 탐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미궁의 나침반은 원정군 또는 원정대에게 목숨과도 같은 것.

이것이 없으면 미궁에서 요정의 던전으로 돌아오는 건 상당히 힘들 수밖에 없다. 망망대해 위를 나침반 없이 떠도는 것과 똑같다고 봐도 좋다. 미궁의 나침반을 잃어버리면 던전으로 무사히 돌아올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한다.

남궁민을 따라 나침반을 관찰하던 길유미가 고개를 든다.

“그럼 우리는 이제 미궁으로 나가는 건가요?”

“응. 그럴 생각이야. 너희들도 훈련소에서 나오고서 나쁘지 않게 성장했으니, 혹시 불안해?”

“아니요.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리는 데요? 헤헤.”

길유미의 반응을 보니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그렇지만 의문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듯 이서연이 조심스레 손을 들며 물었다.

“저기요···. 그런데 너무 성급하게 나가는 게 아닐까요? 아직 여기서 좀 더 경험을 쌓아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음···.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송가연도 이서연의 말에 동의한 듯 유현을 쳐다본다. 둘의 질문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아직 로렐라이에서 내주는 퀘스트를 진행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일행만 빠르게 미궁으로 나가는 건 조금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현은 둘의 생각을 이해했다.

“그건···.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랑 류트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 혹시 레벨 제한 영역이라는 걸 들어봤어?”

“···예. 훈련소에서 배운 건데 잊을 리가 없죠.”

송가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훈련소에서 있었던 필기시험에서 그녀는 항상 만점이었다. 게다가 평상시에도 책을 즐겨 읽는 그녀니 언젠가는 류트보다 아는 게 많아 질 것이다.

유현은 힐끗 류트를 쳐다봤다. 마침 류트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유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없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의 생각을 읽는다.

레벨 제한 영역.

일정 레벨이 넘은 상태에서 사냥을 반복할 경우 페널티를 부과하는 영역이었다.

고레벨의 무차별적인 사냥을 막아 에이리어의 붕괴를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머지않아 레벨 제한이 영역이 생긴다. 서로 쓴웃음을 짓다가 유현이 입을 열었다.

“오늘 신전에서 로렐라이에게 레벨 제한 영역에 대해 확인을 하고 왔어. 그랬더니 머지않아 레벨 제한 영역을 만든다고 하더군. 그러면 너희들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랑 류트가 문제가 될 거야.”

유현의 말에 송가연이 짐짓 놀란 얼굴을 한다. 군인으로서 일한 류트니 그의 레벨이 상당히 높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유현의 레벨은 쉽게 짐작을 못했나 보다.

유현의 레벨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높았다.

“···류트는 그렇다 쳐도, 오빠는 도대체 레벨이 어느 정도 되길래?

“내 현재 레벨은 11. 아마, 이번 레벨 제한 영역에 걸릴 확률이 크겠지. 물론 그래도 사냥할 영역은 여러 있겠지만 락피그를 잡기 위해 움직인 거리보다 더 멀리 움직여야 할 거야.”

“11레벨···. 엄청나군요.”

송가연의 눈이 차갑게 빛난다. 다른 일행도 멈칫하며 허허, 웃고 있었다.

“형 혼자 무슨 경험치를 두 배로 받는 건가요? 저는 이제야 겨우 7레벨인데.”

“저 오빠라면 정말 그럴지도 몰라···. 나도 남궁민 너랑 비슷하게 7레벨인데.”

“우우···. 나, 난 6레벨.”

결국 기여도의 차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일행이 딴 짓을 하며 묻혀가는 건 아니었지만 매 전투마다 유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혼자 레벨이 높게 되었다.

“그런데 송가연 너는 레벨이 몇이냐?”

모두들 차례대로 레벨을 말하는데 송가연만 가만히 있자 길유미가 먼저 물었다. 송가연은 길유미의 물음에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8레벨.”

“···아?”

순간이지만 모두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 만큼이나 송가연의 레벨이 놀라웠나.

“자, 잠시만···. 너는 또 혼자 8레벨이야?”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지.”

“우우···. 저렇게 말하니까 뭔가 더 화나.”

별 감흥 없이 대답하는 게 더 화나는지 길유미가 볼을 부풀린다. 아무래도 경쟁 심리라도 있는 듯 싶다. 옆에 있던 남궁민도 내심 놀랐는지 약간 얼굴이 굳어 있다.

그에게서 더 열심히 싸워야겠네, 이런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송가연이 길유미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류트가 그 답을 알려주었다.

“경험치라는 건 말 그대로 전투 경험의 축적을 말합니다. 아마, 송가연 씨는 정령을 통해 정찰 및 추적뿐만 아니라 싸울 때마다 많은 변수에 대비해 왔으니 여러 분들보다 성장이 빠를 수밖에 없죠. 잘 아실지 모르겠지만 나름 송가연 씨가 매 전투에서 보이지 않은 활약을 많이 하시고 있습니다.”

류트가 마법을 다룬다면 송가연은 정령을 다룬다. 정령의 힘 또한 마법 이상으로 여러 상황에 능숙히 대처할 수 있다. 다룰 줄만 알면 전투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유용하다.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유현은 송가연이 남들 모르게 많은 부분에서 세심한 신경을 써왔다는 걸 알고 있다. 아마, 류트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경험치는 단순히 잘 싸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러 행동들이 복합적으로 더해지는 수치였다. 그런 면에서 송가연의 성장은 그다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유현은 레벨에 대해 떠드는 걸 멈추게 했다.

“사실 레벨 제한 영역이 없더라도 이번 미궁 탐사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거야. 너희들이 좀 더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서는 미궁에 빠르게 진출할 필요가 있었거든. 지금 여기서는 직업을 얻기 위한 조건인 업적 점수를 쌓을 수가 없어.”

“···업적 점수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데요?”

아무래도 훈련소에서 알려주는 부분이 아니었는지라 길유미가 의아한 얼굴을 한다. 교관들도 업적 점수라는 게 뭔지 잘 모른다. 플레이어한테만 적용되는 항목이었다.

“미궁 내에서 본 걸 보고 하여, 그 결과물을 측정 받는 것도 좋지만, 역시 네임드 몬스터를 잡는 게 제일 빨라.”

“네임드 몬스터라면...?”

길유미가 눈썹을 찌푸린다. 훈련소에서 배운 덕에 대충 아는 듯 싶지만 자세하게 떠오르지는 않는 듯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름이 붙은 몬스터라고 해야 할까. 다르게 말하면 별명이나 이름이 붙을 정도의 강함을 가진 그 종 내에서도 특수한 몬스터라고 할 수 있어. 그 만큼 위험하지만 점수는 후하게 줘. 그렇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일러.”

네임드 몬스터는 강하다.

그런데 현재 로렐라이의 에이리어에 네임드 몬스터는 없었다. 거대한 집단을 이룰 정도의 힘을 가진 몬스터는 이미 요정의 원정군에 다 토벌 당한 상태였다.

훈련소를 졸업하고 로렐라이에 왔을 때 겪었던 몬스터 웨이브의 보스가 마지막 네임드 몬스터였다. 그걸 잡아냄으로서 로렐라이는 몬스터의 습격에서 그나마 걱정을 덜하게 되었다.

네임드 몬스터는 요정의 던전을 위협하는 제일 위험한 존재였다. 적당히 컨트롤 할 수 있는 녀석이라면 몰라도 컨트롤이 안 되는 놈은 처치하는 게 좋다.

“물론 굳이 그거 말고도 업적 점수를 쌓는 방법은 여러 개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뭐라고 생각해?”

“아마, 모험가를 죽이는 거겠죠.”

대답은 송가연이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이 정답임을 알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모험가를 죽이기 위해 돌아다니지는 않을 거야. 어쩌다가 모험가들을 종종 만나기도 하겠지만 굳이 그들을 잡으러 다니는 건 위험하고 귀찮은 짓이니까.”

“···음. 뭔 소리인지 대충은 알 거 같아요. 예전에 싸웠던 고블린들을 생각하면 좋은 거죠?”

“그런 거지.”

몬스터들도 지능이 있기에 머리를 쓰긴 하지만, 그래도 모험가들만큼은 아니다.

로렐라이의 위치상 만나는 모험가들은 대다수가 고블린일 확률이 컸다.

헤이라는 고블린의 미궁 도시라고 했으니까. 로렐라이 부근의 미궁에 있는 모험가들은 전부 헤이라에서 내려온 이들일 것이다.

그나마 다른 종족에 비해 고블린 모험가들이 낫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고블린 모험가들은 멍청할지 몰라도 얼간이들은 아니었다.

미궁에서 싸울 때는 상당히 귀찮은 수단을 써올 확률이 컸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일행에게 미궁에서의 싸움은 불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