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na, Alien hunting

First Trial (1)

“유전이에요. 시험자 김현호의 부친께서도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셨죠?”

“어… 그, 그건…….”

소스라치게 놀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기 천사의 말은 틀림없었다.

아버지도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으니까 너도 조심하라고 엄마가 당부했었다.

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 정말 죽은 거야?”

“안되셨네요.”

참새처럼 파닥파닥 날갯짓하며 아기 천사가 날 위로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 나이가 겨우 29세.

남자로 태어나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다.

번듯한 직업을 가져서 가족을 돌보지 못했고, 제대로 사랑을 해보지도 못했다.

내가 죽으면 가족은?

엄마는?!

엄마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시고서 엄마는 힘들게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다.

이래저래 속 썩였지만 난 엄마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나까지 이렇게 죽어버리면?

아직 제대로 효도 한 번 못해봤는데. 장난처럼 주고받은 어젯밤의 전화통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고?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난 거라고?

“이렇게 죽을 순 없어!”

“그렇죠?”

“내가 뭘 하면 돼? 기회를 준댔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나 살려주는 거지?”

“물론이에요. 제가 사기를 치겠어요? 저 천사라고요, 천사.”

아기 천사는 우쭐한 표정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이런 놈이 천사라니 도리어 의심되는 거잖아! 8등신 미녀가 날개 달고 나타났으면 철석같이 믿었겠지.

“뭐든 하겠어. 그러니 날 살려줘.”

“좋아요. 그럼 시험자가 되어 모든 시험을 완수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하시는 거죠?”

“그래.”

아기 천사는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야호, 시험자가 되신 걸 축하드려요.”

“축하는 개뿔. 근데 방금 ‘모든’ 시험이라고 했지? 시험이 하나가 아니라는 거야?”

“네, 공무원 시험 문제가 하나가 아니듯이 말이죠. 수십 차례의 시험을 완수하고 최종 목표를 달성해야 해요.”

거기서 공무원 시험을 예로 들다니, 정말 이 번데기 자식이 얄미워진다.

“좀 너무하지 않아?”

“뭐가요?”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시험을 수십 번이나 치러야 비로소 날 살려주겠다니 심하잖아!”

“아, 그건 아니에요. 시험을 한 번 완수할 때마다 열흘에서 길게는 2개월까지 휴식시간을 드려요.”

“휴식?”

“네, 휴식기간 동안은 살던 현실세계로 돌아가 머물 수 있어요.”

“쉽게 말해 시험을 클리어할 때마다 내 수명이 열흘에서 2개월까지 연장된다는 거네.”

“맞아요.”

“그럼 만약에 시험 치르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혹시 영혼이 소멸된다든지…….”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원래대로 저승에 가시는 거니까 손해 볼 것 없어요.”

…확실히 손해는 아니군.

“그리고 시험을 클리어할 때마다 보상을 드려요. 보상 내역에 따라 전보다 더 윤택한 삶을 누릴 수도 있죠. 물론 가장 큰 보상은 모든 시험을 완수하고 완전히 죽음에서 해방되는 거지만요.”

이 천사 녀석이 날 속이는 것 같지는 않다.

비록 볼품없는 번데기를 달고 있는 놈이지만, 겉보기야 어쨌든 벼락도 떨어뜨릴 수 있는 대단한 녀석이잖아. 등에 날개도 달렸고.

그런 놈이 뭐 하러 날 잡아놓고 속이겠어?

시험이 얼마나 힘들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느니 발악이라도 해보는 게 낫다.

살아서 엄마 얼굴을 다시 보고야 말 거다.

“그럼 지금부터 시험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알려드릴게요. 먼저 ‘석판 소환’이라고 말씀해 보세요.”

“석판 소환? 그게 무슨…….”

파앗!

갑자기 눈앞에 노트 크기의 석판이 나타났다.

“어? 뭐야?”

난 놀라서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석판을 바라보았다.

석판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다.

성명(Name): 김현호

클래스(Class): 1

카르마(Karma): 0

시험(Mission): 레드 에이프를 처치하라.(미달성)

제한시간(Time limit): 30분 00초

“이게 뭐야?”

“시험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험에 관한 사항을 간단하게 명문화시켰어요.”

“…대충 알아먹겠는데, 클래스랑 카르마는 뭐야?”

“클래스는 시험자 김현호의 현재 역량이에요. 카르마는 쉽게 말해 시험 성적이라 보시면 되고요. 시험을 잘 치를수록 포인트를 많이 얻어요.”

“포인트 많이 따면 좋은 거야?”

“그럼요. 시험을 클리어하고 얻은 카르마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카르마를 많이 축적하면 그만큼 보상도 커지죠.”

나는 유심히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카르마로 얻을 수 있는 보상 중에 시험에 도움 될 만한 것도 있어?”

“당연한 말씀을. 좋은 무기도 얻고 무술·마법·초능력 등도 얻을 수 있죠. 카르마를 잘 써서 자신의 힘을 강화시켜야 모든 시험을 완수할 수 있는걸요.”

그때, 석판이 허공에 흩어지듯 사라졌다.

“어라?”

“석판은 가만 놔두면 알아서 사라져요.”

“석판 소환.”

그러자 다시 석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기 천사는 씨익 웃었다.

“석판은 환영에 불과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영향력도 없고 타인의 눈에 보이지도 않아요. 그리고 아무데나 집어던지면 사라져 버려요.”

“그래?”

난 석판을 집어던졌다.

그러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석판이 뿅 하고 사라졌다.

거 참 신기하네.

근데 아쉽다. 물리적인 영향력이 없다니 급할 때 방패나 무기로 쓸 수도 없는 거잖아.

아기 천사가 손뼉을 쳤다.

“자자, 그럼 모두 숙지하셨으니 첫 번째 시험을 시작할게요.”

“잠깐!”

나는 급히 천사를 제지했다.

“뭘 모두 숙지해? 레드 에이프가 뭔지 가르쳐 줘야 시험을 치르든 할 거 아냐, 이 번데기 자식아!”

“그건 스스로 알아내셔야 해요.”

“뭐? 얌마, 최소한 동물인지 식물인지 곤충인지라도…….”

“됐고, 어서 가시기나 하세요.”

아기 천사가 앙증맞은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내 눈앞에 낡아빠진 문짝이 슉 튀어나왔다.

“시험의 문이에요.”

“시험의 문?”

“그 문을 열고 나가시면 제2차원계 ‘아레나’에 도착하실 거예요. 아레나는 앞으로 시험자 김현호가 싸워 나가야 할 무대죠.”

“아레나…….”

“후딱후딱 문 열고 나가세요.”

아기 천사가 파닥파닥 날갯짓하며 내 등을 떠민다.

알았다고, 이 새끼야. 어디서 포경수술도 안 한 자식이 이래라 저래라야.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시험의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끼이익―

열린 문틈으로 밝은 빛이 쏟아졌다. 눈부셔서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한 발짝 내딛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문 너머로 나아갔을 때, 꿈에서 깨어나기를. 참 이상한 꿈이었다고 피식 웃으며 투덜거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