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na, Alien hunting

15 Colleagues (2)

일행은 개울에 얼굴을 처박고 물을 마셨다.

나 역시 목이 말랐지만 토끼의 피가 다 빠질 때까지 들고 있어야 했다. 근데 이거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하지?

“이리 주세요. 제가 들고 있을게요.”

물을 다 마신 이준호가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일행 중에서 이준호가 가장 마음에 든다.

개울물을 마시고 세수도 마쳤을 때쯤 토끼의 피가 다 빠졌다.

이젠 해체를 해야 하는데, 우리 중 나이프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것도 실프에게 맡겨야 했다.

실프는 바람의 칼날로 토끼를 해체했다. 인터넷으로 동물을 해체하는 방법을 대충 공부했기 때문에 제대로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아랫배를 가르고 발목을 자른 뒤에 가죽을 벗긴다.

“욱!”

그걸 보던 이혜수가 헛구역질을 했다. 이해한다. 나도 미치겠는데 여자는 어떻겠는가.

머리를 잘라 가죽을 완전히 벗기고 나니, 붉은 몸통이 나타났다.

다시 실프를 시켜서 항문 쪽부터 배를 가르니 대장·소장·간·심장 등이 드러났다. 간과 심장은 먹을 수 있으니 따로 떼어놓고 나머지는 전부 들어내 땅속에 파묻었다.

일행들은 해체 작업을 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 생명을 죽여서 해체하는 일은 나로서도 처음이라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익숙해져야지.’

개울물로 이물질을 전부 씻어내니 토끼의 몸통이 먹기 좋게 해체 완료 되었다.

“우와, 그런 것도 할 줄 아셨어요?”

구경하던 이준호가 감탄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뇨, 인터넷에서 보고 대충 공부해 뒀죠. 실프 덕분에 어떻게 되긴 되네요.”

“준비성 진짜 좋으시네요. 그래서 형님이 가장 많은 카르마를 얻었나 봐요. 아,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그냥 형이라고 부르세요.”

“네, 형! 그럼 형도 말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마음이 잘 맞았던 이준호와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다 됐으면 빨리 구워봐. 배고프네.”

박고찬은 나무 둥치에 기대고 털썩 주저앉았다. 아 놔, 저 인간이 진짜.

난 강천성에게 물었다.

“오늘은 여기서 쉴까요? 아니면 좀 더 이동할까요?”

“마음대로.”

강천성의 대답은 성의가 없었다.

‘아, 속 터져.’

강천성은 다른 의미로 박고찬 못잖게 짜증나는 작자였다.

우리 중에서 가장 강자이고, 박고찬이 꼼짝 못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강천성이 리더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다면 팀워크도 원활해질 텐데, 시종일관 무관심이다.

‘눈치도 없나?’

여기서 쉬어가자는 박고찬의 생각 없는 의견에 반대하려고 일부러 강천성에게 물어본 건데.

레드 에이프 무리가 쫓아올 거라고 가정한다면, 아직 대낮인데 벌써 한곳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는 수 없나.’

나는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일단은 좀 더 이동한 다음에 저녁 때 야영을 하기로 하죠.”

“알았으니까 일단 밥부터 먹자고 새끼야.”

“그럼 불을 피워야 하잖아요.”

“피워 인마.”

“피울 줄 아세요?”

“뭐?”

“불 피울 줄 아시냐고요. 엄청 힘들 것 같은데 그걸 지금 하고 나중에 야영할 때 또 하자고요?”

“네가 하면 되잖아 새끼야.”

박고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한 마디만 더 하면 폭발할 기세였다.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그래, 난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 저런 폭력배가 무섭다. 싸운다면 내가 이기겠지만, 그래도 무섭다. 정말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서로 얼굴 붉히기가 부담된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강천성에게 말했다.

“일단은 이동하는 게 좋겠는데 괜찮겠죠?”

“그러지.”

“그렇다는데요?”

난 박고찬에게 물었다.

“이런 씨…….”

박고찬은 낭패 어린 기색이 되었다. 강천성이 가자고 하니 반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단 토끼 고기는 가죽과 함께 챙겼고, 우리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이동을 했다. 동굴 같은 안전한 장소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그때, 박고찬이 내게 다가왔다.

“어이, 김현호.”

“예?”

“조심해라.”

“…….”

“한 번만 더 아까처럼 말대답하면 모가지를 따버린다. 알겠냐?”

“실프처럼요?”

“……!”

이번엔 박고찬이 흠칫했다. 박고찬이 얼마나 악명 높은 건달이었든, 모가지 따는 건 실프가 훨씬 잘한다.

솔직히 나도 놀랬다. 하도 실프를 시켜서 박고찬 목 따는 상상을 많이 한 탓이 그만 반사적으로 나온 대꾸였다.

박고찬은 한동안 나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지만, 이내 계속 가던 길을 걸었다.

‘하아…….’

그만 한숨이 나왔다.

이제 첫날인데. 싸움은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걷는 중간 중간 나는 실프를 소환해서 주변 정찰을 하고 지낼 만한 동굴이 있나 살폈다.

몇 시간을 걷고 나니 마침내 실프가 동굴을 발견했다. 고개를 하나 넘고 나서야 그 동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는 게 좋겠죠?”

이준호와 이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고찬과 강천성은 여전히 묵묵부답.

뭐, 그래도 동의한 줄 알고 나는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불을 피워야 하니까 다들 주변에서 마른 나뭇가지랑 낙엽, 지푸라기를 모아주세요.”

그렇게 말해놓고 나 역시 동굴을 나섰다.

이준호와 이혜수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움직였지만, 박고찬은 동굴 안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천성도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 * *

나와 준호, 이혜수는 함께 다니며 나뭇가지와 낙엽, 지푸라기를 주웠다.

“준호도 그렇고, 혜수 씨도 무기가 필요하시죠?”

내가 물었다.

“네…….”

“필요하죠. 그렇지 않아도 무기로 쓸 만한 걸 찾으려 했는데.”

“나무로 창을 깎으면 어떨까요?”

“와, 그럼 감사하죠.”

“감사합니다.”

이혜수도 그걸 원하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아마존 뺨치는 숲이라 징그러울 정도로 큰 나무들이 넘쳤다. 나는 대충 아무 나무나 하나 골라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실프.”

냥.

다시 소환된 실프.

“2미터 이상 되는 굵은 나뭇가지 두 개만 잘라줘. 최대한 곧게 자란 걸로.”

냐앙.

실프는 쏜살같이 날아간 실프는 이윽고 썩둑썩둑 나뭇가지 두 개를 잘라서 내 앞에 대령했다.

계속해서 나는 실프를 시켜서 잔가지를 모두 쳐내고 나뭇가지를 일정 굵기로 깎았다.

나뭇가지가 장대처럼 반듯해지자, 끝을 뾰족하게 깎았다. 그렇게 두 자루의 나무창이 완성됐다.

“좀 엉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이걸 쓰세요.”

준호와 이혜수에게 나눠주었다.

“고마워요, 형.”

“감사합니다.”

나는 땔감으로 쓰기 위해 실프를 시켜서 나뭇가지 몇 개를 더 잘라 토막 냈다.

동굴에 돌아왔을 때, 강천성도 돌아와 있었다. 강천성의 발밑에도 땔감이 쌓여 있었다.

도끼도 없는데 땔감을 어떻게 만들어왔을까 싶었는데, 땔감의 상태를 보니 짐작할 수 있었다.

‘헐, 주먹으로 부쉈구나.’

오러를 쓴 주먹은 저런 굵은 나뭇가지도 부숴 버릴 정도인 모양이었다.

“형, 불 피울 줄 아세요?”

“응.”

이런 때를 대비해서 야밤에 태조산에서 연습 삼아 불장난 좀 해봤다.

“저도 도울게요.”

“그럼 이 나무랑 이걸 잡고 계속 문질러.”

“네.”

준호는 나뭇가지를 들고 땔감에 대고 강하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문질러야 했는데, 체력보정 초급 2레벨 덕분인지 준호는 끈덕지게 계속 문질렀다. 대단하군. 나도 얼른 체력보정을 익히고 싶다.

마찰열로 검게 타고 연기가 피자 나는 실프를 소환해서 지시했다.

“실프 산소를 집중시켜 줘.”

냐앙.

바람의 정령 실프에게는 이런 재주도 있었다. 낙엽과 지푸라기를 가져다대고 실프가 산소를 집중시키자,

화륵―

불이 피어올랐다.

“됐다!”

준호가 뛸 듯이 기뻐했다.

모아온 낙엽과 지푸라기, 마른 나뭇가지를 다 투입해서 불을 키우고 땔감을 모았다. 그렇게 동굴 앞에 모닥불을 피우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