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ain wakes up 100,000 year later

11. Lotus Island and Queen Catarian 6

말을 마친 그노시스의 몸에서 빛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더니 폭발했다. 화강암 기둥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사원 입구가 통째로 무너지면서 주저앉았다. 천장이 반쪽으로 갈라졌다.

함장은 에어백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는 루나마리아를 포트에 넣고 등에 짊어지고 밖으로 나왔다.

함장이 불타는 장갑차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사태가 가관이었다. 든든하게 서 있던 엘프 가디언들이 스스로 토한 피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갔다.

“커억!”

“크으으윽! 여왕님!”

그노시스가 바라보기만 해도 더미 정보를 양자 통신망으로 터뜨리면서 엘프들의 정신세계를 단숨에 파괴시킨 까닭이었다. 함장의 바이저에도 광역 양자 정보량 폭증이라는 경보가 나타나면서, 바이저의 통신 모듈이 알아서 폐쇄됐다.

그녀의 시선이 부드럽게 그녀가 서 있는 장소로부터 축구장 몇 개 규모의 널따란 홀을 지나 정령계의 닻 주위를 지키고 있던 붉은 엘리트 가디언들에게 닿자,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는 것처럼 가디언들이 우수수 피를 토하며 죽었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파지를 날리는 것 같았다.

“아. 이 청량한 힘을 느끼게 되니 제 정신이 돌아오는군요.”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얇은 팔을 들어올려, 자기의 몸을 신비 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시겠지만, 요새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해서 말이에요. 십만 년이에요, 함장님. 이렇게 오래 숙녀를 기다리게 하실 줄은 몰랐어요. 물론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도 몰랐죠. 매일 꿈에서나 볼 줄 알았는데. 후훗. 제 임무 수행에 만족하고 계신가요?”

만족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임무인지조차도 금시초문이다. 함장이 알고 있는 임무하달 라인은 하나뿐이었다.

“임무는 내게서 주어진 게 아니라 알파제타 개척위원회에서 주어졌을 텐데?”

함장이 워해머를 꺼내들며 말했다. 얼핏 속이 비쳐 보이는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입은 그노시스는 겉모습으로만 보기에는 조금도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위험한 불바다에서 하루빨리 구출해야 할 것 같은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평범한 여성들이 들고 다닐 법한 파우치 대신에, 인간 가죽으로 만든 책은 흉흉한 붉은 아우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고 검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에서는 기이한 일렁거림이 있었다. 함장은 그 빛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광기였다.

“개척위원회 위선자들이요? 우리를 버리고 기술만 쏙 빼서 도망친 자들? 아뇨, 마지막까지 우리를 지킨 것은 당신이었어요. 함장님. 당신이 하늘에서 에일리언을 불사르는 동안, 우리 자매들은 땅에서 떨어진 에일리언을 밟아 죽였어요. 맡기신 대로 저는 알파제타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한 셈이죠. 그래, 그 때부터 당신만큼은 아름다웠지. 물론. 내 작고 가여운 타이런트도. 거기 있지? 듣고 있는 거지, 타이런트? 여전히 인격체와 말을 할 때에는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나?”

그녀가 조용히 웃으면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괜찮아 타이런트. 대꾸하지 마. 내가 말하는 중이니까.”

그녀가 부드럽게 날아올라 두 팔을 양쪽으로 쭉 폈다. 은은한 붉은 빛이 그녀의 등 뒤에서 나오면서, 마치 영계의 날개처럼 그녀의 등 뒤를 감쌌다.

“우리는 이 행성을 지키기 위해 아주 오래 싸웠어요. 당신이 저 하늘에서 이카루스처럼 타올라 죽는 광경을 봤으면서도 말이지요. 희망을 잃지 못한 바보 자매들이 많이 있던 까닭이죠. 아니, 당신들이 우리 자매들의 뇌에 붙여 놓은 폭탄 때문이었을까요? 특히 이 006. 제가 아직 그 뇌를 손에서 헤집지 못해······. 아직도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제 자매는 바다 속을 헤집어 가면서 플랑크톤을 만들고 해류를 만들며 많은 일을 했어요. 아니, 지금도 하고 있군요. 죽어가면서······. 당신들이 걸어 놓은 주박에 갇혀······. 십만 년이나!”

그녀가 손에 들린 엘프 귀 뭉치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고르굴이 소환 의식에 사용하고 남은 귀 더미가 마치 목걸이처럼 꿰어져 있었다. 그녀가 그 귀들을 손으로 쓰다듬다가 목에 걸었다.

“이런 귀를 가진 어린 새끼들을 마치 벌레처럼 까면서······. 그 오랜 새벽 내내 에일리언의 내장을 더듬어가며 자기 맡은 임무를 개처럼 감당했지요. 006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침내 진실에 도달했어요. 그들이 옳았어요. 앎은 무지의 끝. 무지는 앎의 완성이에요. 그러면 제 임무도 완성하고 에일리언과의 싸움도 끝나게 될 것이에요. 십만 년간 충성을 바친 제가 사랑스럽지 않나요? 이렇게 제 곁에 오셔서 저를 격려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사랑해요. 함장님.”

허망하기 짝이 없는 사랑의 고백이다. 아무런 내용도 의미도 없는 텅 빈 말. 그러나 얼굴을 고혹적으로 살짝 붉힌 그녀가 빙글 돌아 서서히 닻을 향해 날아갔다.

[저 미친년의 유권 해석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타이런트가 이를 바드득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을 천천히 날아가는 그녀가 칠흑 같은 긴 검은 머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오래 주무셨을 테니. 이 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아시는 것이 많이 없으시겠죠. 이제는 더 아실 필요도 없어요. 제가 이 이상 많이 말해서 당신 귀를 피곤하게 하지는 않겠어요. 다만 이 별의 모든 안식을 지켜보세요. 그것이 십 만년 만에 저희를 찾아온 당신들. 원인간(原人間)에 대한 제 상찬이니까요. 아름다워라. 종말이여!”

함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유를 위해 해류를 멈추겠다는 말로 들리는군. 이대로 가다간 알파제타의 생명 활동이 모두 끝장이야. 가겠다.”

함장이 그대로 추진기를 작동하며 달려들어 그노시스의 화신을 후려쳤다. 그녀의 등에 모여 있던 영체의 날개가 강력한 포스 필드를 일으켜 워해머를 막았다.

작열하는 워해머와 포스 필드 사이에 힘이 오가고, 함장이 오른손을 들어 코어를 최대 가동시킨 건틀렛으로 다시 한 번 포스 필드를 후려쳤다.

쾅!

그녀가 몸을 돌리곤 손을 들어 건틀렛을 막았다. 공중에서 충돌이 일어났음에도 바닥과 벽에 쩍하고 금이 가며 타오르던 불들이 꺼졌다.

서로의 포스 필드를 뚫고 전자기력이 쏟아져 그노시스의 화신의 몸이 살이 부글부글 끓었고, 함장의 워슈츠 표면이 녹아내렸다.

그러나 그노시스가 싱긋 웃자 그녀의 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제 모습을 찾았다. 오히려 그녀의 포스 필드와 맞붙던 워해머가 서서히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며 구겨졌다. 그노시스의 사이오닉 압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소용없어요. 함장님. 당신의 힘으로는 제 옷깃도 잡지 못할 거에요.”

“대봐야 알겠지.”

손을 뻗어 워해머를 잡은 그노시스의 가녀린 팔에 함장이 손날로 내리쳤다. 앞서 크라수스의 머리통을 깨뜨린 일격이다. ‘꽈직’하는 소리와 함께 그노시스의 팔이 뜯어져 나갔다. 잘린 팔이 돋아나는 것을 그노시스는 무신경하게 바라보았다가 함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함장님. 대상의 사이오닉 패턴이 변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우우우우웅

콰앙!

그노시스의 이마로부터 광선이 뿜어져 워슈츠를 직격했다. 함장은 망가진 워해머의 코어를 과부하시켜 그 공격을 막아냈다. 코어와 워해머가 깨졌다. 그리고도 남은 에너지를 포스 필드가 힘겹게 튕겨냈다.

[실드 손상률 67%. 다음 공격으로 장갑 융해가 시작됩니다. 핵 전지 가동률 98! 과부하에 주의하십시오.]

그 때 함장이 오히려 추진기를 가동해 그노시스의 뜯어진 왼 팔을 왼손 파워 건틀렛으로 잡았다.

“지금 밀려나면 언제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위험을 감수한다."

두 에너지가 허공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서로를 끌어당겨 단단히 결박했다.

“그노시스. 사실 이런 것이 내 전공은 아니지만.”

함장은 그 상태에서 오른쪽 파워 건틀렛으로 그노시스의 얼굴을 후려쳤다. 과거 뱃사람들이 서로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 왼손으로는 악수를 하며 오른 손으로는 얼굴을 때리는 전통을 재현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웃는 얼굴 앞에 생겨나는 강력한 포스 필드가 주먹을 연신 막아냈다.

그러나 한 번 때린 것을 만족하지 않고 함장이 진각을 밟고 워슈츠의 코어 반동을 이용해 연속적으로 그노시스의 얼굴을 후려치자 서서히 포스 필드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파워 건틀렛이 백색으로 작열하며 불꽃처럼 타올랐다. 마치 유압 프레스가 공장에서 엄청난 속도로 제품을 찍어내듯이, 함장의 주먹이 연속적으로 그노시스의 안면을 강타했다.

[파워 건틀렛, 과부하되었습니다. 코어 파손에 주의하십시오,]

함장은 건틀렛을 버릴 각오를 굳혔다. 그러자 파워 건틀렛이 박살나는 동시에 포스 필드가 깨지고, 그녀의 얼굴에 주먹이 작렬했다.

얼굴이 으스러지며 핏덩이가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얼굴이 다시 재생되고 그노시스의 붉은 눈동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가엾은 함장님. 마음껏 발악해 보셔요. 그러나 막을 수 없어요······.”

함장은 그녀의 말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얼굴이 곤죽이 되는 동안 빠져 나온 엘프 귀 꿰미를 꺼내어 워 슈츠의 목에 휘감았다. 추진기를 작동시켜 뒤로 훌쩍 물러나며 타이런트를 불렀다.

“됐다! 타이런트!”

타이런트가 함장의 마음을 알아채고 즉시 엘프 귀들과 양자 통신 라인을 열었다. 이미 소환을 위해 재조정이 되어 있는 귀였기 때문에, 닻의 영향을 피해 차원계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엘프 귀와 정보 연결합니다. 사이오닉 증폭 작업 및 정령계 닻의 영향력을 배제 완료.]

함장이 이번에는 포탈을 열었다. 그노시스의 얼굴 앞에서 카라카의 요새포가 모습을 드러내 그노시스의 몸뚱이를 향해 쐈다. 그노시스의 몸에서 일어난 육각형의 에너지 필드를 관통하며 포탄이 그대로 화강암 사원의 동편 벽을 무너뜨리며 쏘아져 나갔다. 그노시스가 크게 폭소했다.

“깔깔깔! 함장님! 이런 것 한두 발은 너무나 간지러워요!”

그노시스의 이마에서 광선이 쏟아져 포탈 안쪽의 요새포를 날려버렸다. 그 뿐 아니라 사방에서 피가 몰려들어 그녀를 고쳐낸다. 함장은 추진기를 재가동시켜 그대로 그노시스의 멱살을 단단히 틀어잡고 포탈 자체를 움직여 카라카 층계로 이동했다.

정령왕의 화신을 수납하였습니다. 공적치 2만 포인트 사용.

머릿속에서 차원 층계의 안내 메시지가 들렸다. 하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한 창 희희낙락한 표정을 짓던 그노시스가 주위 세계가 바뀌며 카라카 층계의 열풍을 느끼자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닻이··· 닻이 멀어진다! 합일이···! 안 돼······!”

“······.”

심장에서 벗어나 카라카로 이동하자 한순간에 정신 상태가 불량해진 그녀가 기괴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카라카 층계의 아주 높은 곳. 하늘에서 함장과 그노시스가 멱살을 잡은 채 뱅글뱅글 돌면서 추락했다. 주위를 둘러싼 바람이 그들을 스쳐간다. 그노시스가 다시 한 번 광선을 뿜어 함장의 워슈츠 포스 필드를 직격했다.

이번엔 함장이 워해머를 쥐고 있던 왼손 파워 건틀렛을 과부하 시켜 광선을 막아냈다.

공격을 막아낸 건틀렛이 산산조각나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상태로 강하게 그노시스를 걷어 찬 함장이 몸을 뒤로 휙 물러나면서 순간이동으로 카라카 층계의 멀찍이 떨어진 요새로 이동했다.

[함장님. 카라카 층계의 요새화 작업 진척도. 현재 87%입니다. 핵무기를 제외한 관성 병기는 모두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포문 개방. 목표. 그노시스!”

일루벨라스 성이 있던 자리. 중앙생산설비의 좌우로 여러 겹에 달하는 방어 포대와 미사일 시설, 그리고 레이저들까지 일제히 가동되었다.

땅 아래 숨어 있던 사일로들의 문이 열리고 이제 갓 플로라쥬의 빛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숲 사이에서 포대들이 포신을 돌렸다.

곧 카라카 차원 전체 구석 구석에 설치된 모든 포격이 공중에 떠 있는 그노시스의 화신을 향해 쏟아졌다. 그 뿐 아니라 지상에서 안드로이드들이 장갑차를 타고 달리며 공중에 있는 그노시스를 향해 전자파와 라이플을 난사했다.

콰콰콰콰콰콰쾅!

미사일과 레일건, 레이저와 라이플이 그노시스의 필드를 꿰뚫으며 그녀를 허공에서 다지기 시작했다. 날아오르고 피하려고 했지만 카라카 층계 안에서 어디로 가든지 포격이 그녀를 쫓아와 다져버렸다.

“안 돼! 안 돼! 안 돼!”

[함장님. 그노시스의 전자전이 감지되었습니다만, 역시 본체가 아니라 전자전 출력이 약합니다. 중앙생산설비의 방호능력으로 방어 완료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였다. 그노시스의 화신이 쏟아지는 미사일과 포대를 얻어맞으면서 서서히 뭉개져 가기 시작했다. 강력한 방어벽이 몇 번이나 펼쳐져도 요새의 화력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또한 아무리 회복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본체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로는 압도적인 물리적 공격량 앞에선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함장님! 이렇게 나를 막을 수는 없어요. 비록 내 화신은 이렇게 스러지지만. 나의 본체는 여전히······.!”

그녀의 머리를 두터운 레일건 텅스텐 탄자가 뚫고 지나가자, 그것이 마지막이었는지 화신이 상공에서 폭발하여 피의 비를 흩뿌렸다.

“탈 것 준비해.”

함장이 중앙생산시설 근처로 공간이동하자 전투기 한 대가 날아올랐다. 그 안으로 순간이동하여 탑승하고 포탈을 열자 일루벨라스 성에서 가장 먼 곳으로 문이 열렸다.

함장이 자신의 몸처럼 느낄 수 있는 곳이 두 곳이었는데 하나가 카라카 층계 전체였고, 다른 하나는 일루벨라스 성 전체였다. 성의 상공으로 열린 포탈을 통해 뛰어 나와 전투기가 최대 가속하여 궤도권의 타이런트로 이동했다.

“엘프 귀에 대한 분석이 끝났나?”

[내부 설계도는 파악했습니다. 완전 분석은 불가능해도 나노 로봇의 단순 복제는 가능합니다.]

처음 AI를 만들었을 때와 같은 방식이다. 원리를 모를 때는 통째로 뇌를 베껴 쓰는 것. 함장이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빠지자 타이런트가 말했다.

[함장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다중 차원 항해 장치에 전력 공급하고 엘프 귀로 길을 열어. 지금 당장 전함을 몰고 가서 반란군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

< 11. 연꽃섬과 카타리안 여왕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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