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져 있는 정글은 마치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품고 있다던 전설의 숲 같았다.

인공 태양이 떠 있던 장소 아래로 생명체였을지도 모르는 거대한 뼈탑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아직도 많은 해파리 괴물들의 시체가 남아 있었다.

흉측하게 익어버려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나, 갓을 쓴 듯한 머리에 붙어 있던 여섯 개의 검은 눈은 여전히 남아 반짝였다.

끝없이 펼쳐진 정글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유선 드론의 시야를 가렸다. 곧 적외선 시야 말고는 주위의 어떤 것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늘에서 뭉친 거대한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곧 정글 전체에 강력한 스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파리 괴물들의 시체들이 물에 쓸려 밀려나고, 거대한 짐승의 갈비뼈처럼 솟아 있는 백골들에 닿아 시원하게 튀어 올랐다.

“타이런트. 상대는 최소 세 곳 이상에 이런 덫을 깔아 두었다. 이것은 보물섬에서 얻은 정보와도 일치하는 듯한데, 용신들의 챔피언은 적은 숫자가 아닌 게 분명하고 이 차원 거주민들은 일부 초보 챔피언들을 사로잡을 계획으로 보인다. 동의하나?”

쏟아지는 비를 스크린에서 바라보며 함장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함장님. 동의합니다.]

“게다가 적들은 오우거 유물을 여러 상인 길드 장물 경매장에 풀었다. 이건 분명 일종의 맞춤형 덫이야. 휘르미나이데의 정보까지 알고 있다니. 꽤나 깊은 암중 세계의 문을 우리가 두드린 것 같군. 만신전이 분명하겠지.”

[어느 쪽이 되었든 함장님. 우리를 지켜보는 눈들이 있다면 이 기회에 확실하게 경고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타이런트의 말이 옳다.

할 일이 많은데 누구든지 발목을 잡았다간 손 부러지는 것으로 끝날 리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줘야 마땅했다. 더군다나 아르덴이 저질렀던 망발이 고작 며칠도 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그 때부터 진행된 작업의 일환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좋아. 행성 유리화 작전을 실시하기 전에, 적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 이 덫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알았으면 좋겠군. 전투 안드로이드 1개 중대를 정찰대로 파견하도록.”

타이런트가 말했다.

[함장님. 직접 들어가시기에는 위험합니다. 안드로이드와 동기화 하시는 편이 전술적으로 안전합니다. 별도의 전자기전 적도 없고, 나타난다 해도 메인 프레임에서 통제 가능합니다.]

만약에 로봇으로 전투를 해야 한다면 왜 사람이 안드로이드를 만들겠는가?

UN에서 '인류의 적'에 대한 핵무기 무제한 사용 결의 통과와 함께 해제된 결의안이 바로 '킬러 로봇 결의안'이었다. 에일리언에 대해 인류는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투쟁을 하기로 결의했다.

애초에 쓸만한 로봇들은 사람형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계 몸을 갖추고 핵전지로 동력을 받는 로봇이 어째서 불안정한 이족 보행의 형태를 취해야 할까?

문제는 바로 이 동기화였다. 처음 안드로이드 기술이 개발되었던 목적도 군인들의 손실을 없애기 위해 완전 동기화를 갖춘 로봇 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좋아. 그전에, 루나, 포. 너희들은 이제 자유 시간을 가져도 좋다. 아니, 명령이니 쉬도록.”

루나는 강화 인간이 아니다. 어제 아침부터 한 시간도 자지 못하고 함장과 함께 강행군을 했다. 게다가 첫 전투를 겪고 나니 피로가 많이 쌓였을 터. 자 두는 편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함장님.”

격리실에 올라간 루나가 헬맷을 벗어 머리를 풀면서 인사했다. 아직 경례할 줄을 모르는 햇병아리 신입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당장은 옆에서 모신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시녀였지 군인은 아니었다. 아마 타이런트에 탑재되어 있는 가상현실 모듈 안에서 철저하게 굴러야 할 것이다. 루나가 먼저 격리실 문을 열고 나갔다.

“함장님! 나 무기 업그레이드 할래요!”

포는 팔짝팔짝 뛰더니 빛에 휘감겨 함장 옆으로 순간 이동했다. 함장이 머리를 쓰다듬고는 워해머를 꺼내어 주었다. 포가 그것을 받더니 헤헤 웃고는 다시 순간이동으로 타이런트로 사라졌다. 타이런트에 있는 대규모 무기 제조실에서 워해머를 업그레이드할 생각이었다.

둘 다 사라지자 함장은 다시 억압관리실로 돌아왔다. 억압관리실 주위에 보안 로봇이 구형 바퀴를 몸에 매달고 나타났다. 빅 베어를 작게 축소하고 몸에 전자기 게틀링 건을 단 모양새였다.

[신경계통 접속을 승인하십니까? 안드로이드 중대장과의 동기화에서 고통 감도는 50%가 기준입니다. 낮추거나 높일까요, 함장님?]

“환경을 조금 더 자세히 파악하고 싶군. 감도를 90%로 높이게.”

[알겠습니다. 신경막 접속 중. 동기화 할 안드로이드가 결정되면 즉시 안구 시신경이 안드로이드의 것으로 전환됩니다. 함장님. 안드로이드를 소환해 주십시오.]

함장이 포탈을 열자 빅 베어에 탄 안드로이드 한 개 중대가 기마 전사처럼 뛰쳐나왔다.

언제나 그렇듯 빅 베어가 포탈에서 뛰어나오는 모습은 호쾌하기 짝이 없다. 60톤이 넘는 차체에 개당 200kg이 넘는 안드로이드가 서른 기가 실려 있다.

빅 베어가 서 있을 자리가 없었으므로, 66톤짜리 당구공처럼 날아든 빅 베어들이 억압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기력을 발판 삼아 차례차례 포탈 안쪽으로 휙휙 검은 곰처럼 뛰어들어 갔다. 마지막 한 대만 남아 함장의 동기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편제에서는 빅 베어 다섯에 안드로이드 백오십 기가 중대로 취급된다. 한 개의 빅 베어와 거기에 탄 안드로이드 서른 기를 한 소대로 취급하는 것이다.

중대장 안드로이드는 본래 저지능 AI가 관리하지만, 필요에 따라, 예컨대 전자전 위협이 적거나 대비가 잘 갖춰진 탐색 임무에서는 실 운용자가 동기화를 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포탈을 통해 메트로폴리스의 메인 프레임과 타이런트가 전자전을 운용할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모두 자폭시켜야 했지만. ‘아마 그럴 위험은 없겠지···’하고 함장은 판단했다.

묵직한 빅 베어의 상판을 열고 안드로이드 중대장이 몸을 내밀며 함장에게 경례했다. 비록 타이런트에 가까운 고지능 AI는 아니지만, 안드로이드도 지능이 있었다.

함장은 안드로이드의 경례를 받아주고는 준비된 자리에 워 슈츠를 입은 채로 누웠다. 원래라면 뇌파 복제용 링이 있어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대체 가능한 워슈츠가 있었기에 없어도 괜찮았다.

의자가 부드럽게 젖혀지더니 함장의 몸을 받혔다. 자리에 누운 함장의 바이저 내부에 여러 줄의 문자들이 떠오르며 사라졌다. 다양한 형태의 경고, 즉 정보였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미 숙지하고 있었고, 더 자세한 개념은 타이런트가 요약 정리해 줄 것이다. 이렇게.

[함장님, 잠시 따가울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모르핀 극소량 투입합니다.]

곧 시신경이 부드럽게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더니 온 몸에 유쾌한 간지러움과 웃음이 나오고는 안드로이드 중대장의 육체에 함장이 동기화했다. 원래는 조금 더 끔찍한 기분이 들지만, 적절한 약물로 처치하여 이 정도의 기분에 그칠 뿐이다.

시야가 빅 베어 위로 이동했다.

안드로이드 중대장은 다른 것과는 달리 50kg이 더 나가는 중대형 사이즈에, 방어와 탐색에 유리한 몸을 갖고 있었다. 함장이 새로운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팔 다리 모두 잘 반응했고, 시야도 괜찮았다. 바이저 대신에 눈에 직접 정보가 들어오는 것도 익숙했다. 빅 베어의 상판을 탕탕 내리쳤다. 감도도 괜찮았고, 실제로 정말 오랜만에 맨 피부로 싸움에 참여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땀도 피도 흘리지 않는 기계 몸이었지만··· 아, 유압 실리더 액은 흘린다.

“자, 가자, 멍멍아!”

곧 함장의 뇌파를 읽은 빅 베어가 우르릉 떨면서 전자기장을 밟고 포탈 안으로 뛰어 들었다. 흰 포탈 안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듯 하더니 어느새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거세게 내리는 비.

그리고 빗속에서조차 지독하게 치솟는 흰 수증기.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방사선의 아릿함까지······.

머리 위로는 긴 선을 매달고 날고 있는 드론이 강력한 서치라이트를 아래로 흩뿌리며 정보를 흡수하고 있었다. 빅 베어는 거세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날고 있는 유선 드론의 조명등 아래로 맹렬하게 떨어진다.

함장은 상판 창을 닫지 않고 빅 베어의 위에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지만 차가운 비와, 거친 바람의 기분 좋은 상쾌함이 피부를 스치고 날아간다. 아무튼 이 세계에 오고 나서는 도무지 워슈츠에서 내려본 일이 적어서 오히려 안드로이드의 피부가 훨씬 더 실감이 난다.

빅 베어가 하늘에서 자유롭게 낙하하여 정글 위에 떨어지자 구형 바퀴가 정면으로 몰려들어 전자기력으로 물을 튕겨낸다. 그리고 곧이어 빅 베어가 물 위를 퉁퉁 튀어 정글의 억센 나무들을 때려 박으면서 나무들 사이에 미리 도착한 네 대의 빅 베어와 함께 섰다.

[물의 깊이···, 약 12m. 정말 무섭도록 내리는 비입니다, 함장님.]

“이 잠깐 동안에 그렇게나 많이 내렸단 말인가?”

과연 높이 솟아 있었던 거대한 동물 뼈처럼 보이던 기둥이 물에 잠겨 상반신만 살짝 내놓고 있었다. 물길이 빠른 속도로 휘몰아쳐 해파리 괴물들을 저 멀리 이끌고 가고 있었다.

“로터 드론 쏘아 올리고, 지역 정보를 분석해서 놈들의 거주지로 파악되는 장소를 찾도록.”

곧 빅 베어에 탑재되어 있는 로터 드론들이 떼를 이루어 하늘 높이 솟아올라, 비구름을 뚫고 대기권 위로 올라갔다.

[함장님. 이 행성의 대기권 너머에 기이한 물체가 잡힙니다.]

“기이한 물체?”

[영상 전달합니다.]

안드로이드 중대장의 눈에 하늘로 올라간 로터의 영상이 덧씌워진다. 그러나 저 멀리 구름을 뚫고 보이는 푸른 하늘은 그야말로 평범한 하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푸른 하늘이었다.

다만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지구의 것보다도 더 낫다는 점이 비현실적이었다.

과연 의아한 기분을 느낀 함장이 말했다.

“타이런트, 이것은 평범한 하늘이 아닌가?”

[화면 확대합니다.]

곧 타이런트가 화면을 확대하자, 평범한 푸른 하늘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엄청나게 많은 물결이 치고 있는 어떤 표면임이 드러났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마치 목성의 위성에서 목성을 직접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광경으로, 차원 전체에서 올려다보아도 그 거대함이 끝이 보이지 않아 행성 전체를 덮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터무니없게도, 저 멀리 하늘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수면이 있었다. 그 수면이 고요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파도치고 있었고 흰색 포말이 일어나고 있었다. 백파(白派)라고 불리는 거대한 흰 파도였다.

[함장님. 이곳에서 직접 관측되는 영상입니다만, 가시광선 이외의 탐지 장비로는 대상을 관측할 수가 없습니다. 전자기파, 중력파, 전파, 열 감지, 그 외의 어떤 장비로도 대상 존재를 감지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유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가시광선만으로 측정한 결과 저기 작은 흰 파도 하나의 지름이 최소 150만 km에 달합니다.]

“터무니없는 규모의 신기루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타이런트?”

척 봐서는 저게 파도인지도 모를 정도로 작은 파도. 마치 모니터의 픽셀만큼이나 작아서 평범한 하늘처럼 보이게 하는 그것이 하늘 안에 가득 차 있고, 그 픽셀 하나하나의 크기가 최소 150만 km가 넘는다니,

대체 저 천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단순 관측으로만 따지면 우주에 실존할 수 없는 규모의 존재일 터였다.

[차라리 신기루라면 비가시광선으로 감지될 것입니다. 열 측정으로도 그렇고요. 측정이 불가능한 규모에다가 모든 측정 장비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입니다.]

“놀랍군. 좋아. 이 차원계 거주민과 접촉하고 싶은데, 혹은 끌려 온 챔피언이라도 상관없으니. 거주 구역을 찾아보자. 그들이라면 저 하늘에 대한 정보도 갖고 있을 터.”

[탐색 작업 개시합니다.]

곧 무인 로터가 저 멀리서 거주지의 흔적처럼 보이는 산 중턱의 마을을 발견했다. 정글의 울창한 나무 사이에 사람들이나 살 법한 목재로 지어진 집들이 발견됐다.

산 중턱이라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평소에 잦은 스콜이 쏟아지는 지형이라 그런지 집들이 땅에서 최소 1m 이상을 높게 떠 있었다. 1층을 비우고 2층부터 집을 짓는 개념이었다.

“저거 설마 사람의 흔적일까? 이동하자고. 타이런트.”

빅 베어 다섯 기가 물을 해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센 폭풍우가 쏟아지기 때문에 어떤 시끄러운 소리도 벼락 소리에 묻힌다.

빅 베어가 평소라면 정글도를 가지고 잘라내야 할 법한 징그럽기 짝이 없는 나무줄기를 있는 그대로 뜯어내고 찢어버리면서 숲길을 돌파했다.

이럴 때면 함장은 참 기분이 좋았다. 상판을 열고 몸을 드러내어 두 팔을 높이 들었다. 거친 비바람이 빅 베어를 때리고 피부를 스쳤으나, 오히려 이 비의 차가움과 따가움이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 16. 정글 사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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