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tain wakes up 100,000 year later

25. Arden's Inside the Head 2

베링 해의 바다는 극한이라는 단어로만 수식할 수 있었다. 알래스카와 마더 러시아의 숨결이 맞닿는 삭풍의 바다. 그러나 이 바다는 훌륭한 킹크랩을 품고 있으며, 선원들의 품에 쏟아지는 돈다발을 꽂아 주는 땅이었다.

십 미터가 넘는 파도가 치고, 출렁이던 파도는 배 위에 오르면 얼어붙었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시베리아 고기압과 알류산 한랭 저기압이 맞물리면서 구름이 원형으로 회오리 쳤다. 멀리서 보면 폭풍이 치는 것만 같다.

“날씨가 안 좋아집니다! 선장! 벌써 30시간 쨉니다. 슬슬 접어야겠는데요!”

어선 블링거는 혹한의 바다를 헤치며 조업 중이었다. 잠시도 쉬지 못한 채 30시간 째 조업 중이다. 아르덴은 입에서 단내가 나다 못해 정신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아르덴은 제발 이 선임이 선장의 마음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멈추기는 개뿔! 야! 얼음 내려온다!"

선장이 선장실에서 내지르는 소리에 아르덴의 억장이 무너졌다.

그의 눈에도 얼음이 떠내려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쿵! 하고 얼음들이 배의 선미에 부딪쳤다. 바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쏟아지는 얼음들이 많아진다는 얘기는 이제 곧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는 뜻이다.

배의 온도계가 아까 전에는 4도를 가리키다가 스르르 떨어져 25도를 가리켰다. 25도에 초속 10m에 바람이 불고, 최소 5m의 파도가 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배 위에서 게를 잡을 수 있는 걸까. 지난 한 달간 견뎠음에도 불구하고 혹한에 잠시 아르덴의 정신이 아득했다.

날이 추워지자 배 주위로 얼음들이 달라붙어 얼기 시작했고, 배 위로 치는 파도도 올라오는 즉시 얼어 하얗게 덮이기 시작했다.

“아르덴! 빨리 가서 장대랑 도끼 들고 얼음 깨! 배가 얼고 있잖아!”

“예!”

선장이 2층 선장실을 벌컥 열고 나오며 손도끼를 아르덴에게 던졌다. 이층에서 던지는 손도끼를 받는 일은 이제 익숙해졌다. 손도끼를 받고 장대를 꺼냈다. 배에 들러붙는 얼음들은 장대로 쳐서 밀어내고, 닻에 달린 사슬과 선박 구석구석에서 어는 두터운 고드름들은 도끼로 쳐서 꺾는다.

떨어진 것들은 발로 차고 손으로 그러모아 배 밖으로 던진다. 숨이 찬다. 마스크 밖으로 흰 입김이 샌다.

방금 부순 자리에 또 파도가 치고, 또 얼고, 또 때려 부수고, 또 파도가 치는 일을 겪으며 아르덴은 땀을 뻘뻘 흘렸다. 어차피 다시 언다며 얼음을 깨지 않았다간, 결국 얼음 때문에 무거워 가라앉고 말 것이다. 그런 일이었다.

“선장님! 이거 심상치 않은데요, 풍속이 초속 10m에요, 조금 있으면 30m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접는게···.”

선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니가 물량 맞출 거야!”

최근 시세는 레드 킹크랩이 평소보다 더욱 비쌌다. 선장이 눈을 부라리는 모습에 선임은 몸을 움츠렸다. 시뻘겋게 모세 혈관이 돋아 있는 눈빛이 무시무시하다.

빚에 쫓기는 선장은 이번에는 납품 계약을 맞추지 못했다간 끝장이었다. 한 탕을 위해 평소보다 더욱 잔혹하게, 더욱 끔찍하게 선원들을 굴리고 있었다. 신참 아르덴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자아, 통발 건집니다! 아르덴! 도끼질은 잠깐 멈추고 도와라!”

두르르르르르! 도르래가 감기면서 차갑게 파도치는 바다에서 통발을 건져 올렸다. 통발 안에는 게가 산더미처럼 들어 있었다. 월척이다! 이 시즌에 이렇게 벌 수만 있으면 떼 부자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아르덴이 희희낙락하며 달려갔다.

통발 안에는 킹크랩이 가득했다. 아르덴이 그것들을 간신이 털어내어 정리하고 새로운 통발을 달아 기계를 돌렸다. 통발이 드르륵 떨어지며 쇠사슬과 함께 바닷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으아아악!"

그 순간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끊기더니 그 때 쇠사슬 일부가 아르덴의 허리를 후려치고는 바다로 끌고 들어갔다.

“어, 어?”

으악! 하는 소리도 미쳐 내지 못하고 아르덴이 물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차가운 물에 닿자 피부가 찢어진 것만 같았다. 다행히 허리를 끌었던 쇠사슬이 자연스레 풀렸으나, 뭉텅이로 살갗이 베어져 붉은 피가 철철 흘렀다.

‘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웃기게도 이 순간 떠오른 것이 상어 떼의 이미지였다. 펄럭이는 흰 파도 앞에 붉은 튜브가 하나 떨어졌다.

덜덜 떨리는 팔로 어떻게 튜브를 붙잡았는지 모르겠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 보니 선임들이 기중기로 자신을 끌어다가 어선 바닥에 올려 둔 상태였다.

허리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어선바닥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으아! 한 창 바쁜데! 거기 너희 둘! 일단 아르덴부터 치료해라! 걔 죽으면 다 너네 탓이야!”

선장이 화를 펄펄 내는 동안 선임 둘이 아르덴을 어깻죽지부터 붙들고 의료실로 데려갔다.

“으어어어어!”

끌려가면서도 고통에 소리를 지르는 아르덴을 선임 둘이 의료실 침대에 눕혔다. 농담으로도 깨끗한 치료 환경은 아니었다.

선임이 보드카를 아르덴의 입에 머금어 주고는 말했다.

“내가 나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굉장히 아플 거야! 술이 더 필요하면 고개를 끄덕여!”

곧 그가 입에 재갈을 물린 후 옆구리에 소독약을 뿌렸다. 흰 거품이 일어나면서 아르덴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른 선임이 옷을 벗기고 뜨거운 수건을 가져다가 피가 나오는 옆구리를 훔쳐내자, 다른 선임이 상처 속을 헤집으며 바라보았다.

“이런 제기랄, 사슬이 부딪치면서 살이 크게 패인데다가 쇳조각이 꼈군. 이대로 가면 출혈 때문에 죽겠는데. 이봐, 아르덴! 정신 차려! 이 친구 정신 잃지 못하게 계속 말 걸고, 약 더 뿌리도록 해. 아르덴! 말을 멈추면 죽는 거야. 계속 말해야만 해! 내가 지금부터 쇳조각을 긁어 낼 테니 뭐든 말하게.”

“사···살려 주세요···.”

“그래, 아르덴! 잘하고 있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제일 중요해! 보드카 한 모금 더 마시게.”

목을 축이는 정도가 아니라 고통을 잊을 정도로 보드카를 목에 부어주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고통만 더 선명해질 뿐이다!

“한 번만 배를 타도 5만 달러야. 이 돈이면 자네 동생 등록금에다가 부모님 병원비까지 낼 수 있네. 어떻게든 살아야지! 우리가 치료하는 동안 무엇이든지 말해보게.”

“쿨럭···.뭘···.말해야 할지···”

“자네가 며칠 전까지 읽던 판타지 소설이라도 좋으니 말해보게. 뭐든 말이야!”

그렇게 허리춤을 꾹 누르며 약을 바르고 있는 얼굴을 아르덴이 흘낏 보았다. 흰 수염을 가진 선원.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하지만 허리춤에서 치솟는 고통에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비명이 쏟아졌다.

상처 안에 파고 든 조각들을 선임이 손가락을 꺼내며 윽박지르자 아르덴이 띄엄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크윽···. 제가 읽던 소설 속에서는 1만 6천년 전부터 전쟁이···.”

프란체스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의 쇳조각을 제거했다.

* * *

“함장님. 이와 비슷한 32561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작업 중입니다.”

함장과 닥터 프란체스코는 오각형 타일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실재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타인의 자아에 강제로 동기화하는 꿈 터미널에 진입한 상태였다.

닥터 프란체스코가 임의로 만들어낸 시나리오 속을 현실로 느끼며 시뮬레이션 하는 아르덴의 ‘자아’가 지금 '선원 아르덴'을 포함한 32562개의 시나리오 속에서 고통을 연속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당위를 제공한 후, 무엇이든지 얘기를 해야만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전이해를 주었습니다. <챔피언 아르덴>의 이야기는 그가 쉬는 시간에 읽었던 <아르덴 전기>라는 판타지 소설의 내용으로 재출력됩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선까지 뇌를 완벽하게 시뮬레이트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닥터 프란체스코의 눈빛은 냉정했다. 그리고 함장은 잠시 이 냉정한 눈빛이 그의 분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프란체스코의 역할은 심리 치유 및 전황 보조의 역할인데, 그를 포로 심문에 사용하는 것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함장은 지금으로선 다른 선택지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원래 에일리언을 상대로는 포로를 잡을 수가 없고, 잡는다 하여도 억압격리실에서 생체해부 실험을 할 뿐이다. 같은 인간을 잡아서는 강력한 자백제를 투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백제도 먹히지 않는 사이오닉 프로텍트가 걸린 뇌에게 정보를 빼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제 6단계의 꿈. ‘솜누스 인코그니투스’로 이끌어 무한한 삶을 살게 해주는 자백 프로세스는 명백히 불법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군요. 미안한 마음입니다. 프란체스코.”

불법이 아닐 수가 없다. 지금 아르덴은 3만 개가 넘는 방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꿈의 단계 중 궁극의 6단계인 <솜누스 인코그니투스>.

이 상태에서 겪는 이 모든 경험은 시간을 굉장히 길게 늘려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지만, 깨어나는 시점에서 꿈에서 겪은 모든 경험이 결합하게 되므로 아마 아르덴은 미쳐버리거나 뇌가 그대로 파열해버릴 지도 몰랐다.

이미 아르덴의 뇌파는 200헤르츠가 넘도록 진동하고 있었다. 필멸자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뇌파 영역이었다. 프란체스코는 어깨를 으쓱하며 흰 가운에 들고 있는 패드(PAD)를 강하게 잡았다.

“별말씀을요 함장님. 말씀하신 대로 감마선 폭풍이 진짜 위협이라면,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감정을 보이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프로이트와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의 계보에서는 이처럼 해석자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관습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후대의 이론에 의해 해석자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을 정당하게 여기도록 발전하였으며, 상담실에서 그는 자주 자신의 감정을 함장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지금 프란체스코가 감정을 숨기는 것은 이 일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이 정도 세밀한 제스처만으로도 함장은 전모를 이해하리라는 세련된 태도였다.

“중요한 것은 진전이 있느냐는 얘기겠지요. 프란체스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러니까 저와 타이런트는 아르덴의 뇌 디렉토리 안에서 암호화 된 대용량 데이터를 파악하였습니다. 이 암호를 풀 수 있는 시간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간 이 데이터를 파손되지 않는 측면에서 잘게 자르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양자 정보를 다듬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세련된 고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지요. 다행히 타이런트의 메인 프레임이 과열되기 전에 이 일이 어느 정도 감당 가능했습니다.”

“그러면 꿈속에서 아르덴이 데이터 덩어리인 <아르덴 전기>를 스스로 해석해 준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 기억 데이터에 접근 가능한 영혼의 키가 없지만, 아르덴에게는 있습니다. 방금 죽기 직전에 내몰린 15448번 아르덴이 해석한 데이터명은 B11474711입니다. 그의 입으로 재진술하는 내용이 그가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부터 110년 전까지 겪었던 일들의 정보입니다. 그런 정보화 작업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아르덴의 꿈속에서 고통을 참으며 아르덴이 읊어대던 소설의 내용이 소설이 아니라 실제였다. 오히려 그 꿈속의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허구였다.

하지만 아르덴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꿈속 선임과 선장은 모두 프란체스코의 정신적 분신들이었다.

“프란체스코. 제 6단계의 꿈, ‘솜누스 인코그니투스’ 바닥의 악몽(惡夢)의 땅의 위험도는 어떻습니까. 평범한 인간도 사이오닉을 발현케 하는 영역인데, 챔피언이 일으키는 사이오닉 발현이 있을 터인데요.”

“안 그래도 그 부분을 함장님께 부탁드리려 했습니다.”

제 6의 꿈은 평범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이었다. 자아가 해체되어져 버리는 공간을 꿈으로 구현하려는 일은 인간의 자아가 도달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고 의심되어 왔으나, 고도의 뇌과학이 발전되면서 간신히 발견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이 때의 발견 덕분에 인류는 사이코프스키 입자를 통해 우주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던 것이다. 물론 사이코프스키 입자가 아이온(AION)을 만들 수는 없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지점은 인간이 경험해본 적 없는 악몽과 대면시키는 기괴한 사이오닉 힘을 갖고 있었다. 그의 공포와 온갖 악한 것들. 부의 감각이 기어오르는 영혼의 깊은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보십시오. 방금 보신 아르덴이 잡던 킹크랩이 사는 해저입니다.”

해저 깊은 곳을 프란체스코가 확대해서 보이자, 거기에는 게가 있어야 했는데 게 대신에 함장을 닮은 좀비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물속을 부비적거리며 기어 다니는 모습이 심히 보기에 끔찍했다.

“지금도 아르덴의 바깥에서는 게가 끌어올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통발에 달린 미끼의 피 냄새에 이끌린, 함장님 좀비··· 흠흠. 함장님을 닮은 좀비들이 통발에 걸려서 끌려 올라오게 된다면 이 자아는 꿈에서 깰 것입니다.”

슬쩍 보았는데 통발 안에서 게 대신에 함장 좀비가 나오게 된다면 모든 환상은 깨지고 이 아르덴의 조각은 현실로 돌아오리라. 물론 현실로 돌아온다고 해도 발견할 것은 몸이 없는 뇌뿐이었으나. 함장은 다시 물었다.

“이런 위험에 노출된 곳이 몇 개나 됩니까?”

“악몽과 맞닿은 12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아마 한두 자아가 악몽에 오염되게 되면 그 후로는 도미노처럼 자아들이 오염되는 시간 싸움이 될 것입니다. 해석이 마쳐질 것이냐, 아니면 아르덴의 자아가 완전 오염될 것인가의 초싸움입니다.”

“내 역할은 그렇다면···.”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스코가 부연설명했다.

“네. 다이브 하셔서 이 괴물들을 죽여주십시오. 아르덴의 6단계 꿈속으로 들어가는 까닭에 위험합니다만, 작업이 끝날 때 까지만 막아주신다면 분석은 성공할 겁니다.”

감마 폭발이 소환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8분.

함장은 꿈속까지 따라온 워해머, 마그네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좋아요. 그러면 일단 저 바다 속으로 들어갑시다."

< 25. 아르덴의 머릿속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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