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 용이 충성을 바치시겠다고 했나?”

처음으로 함장이 흥미를 품었다.

실베스테르는 그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고, 은색 귀걸이가 찰랑거릴 정도로 만연한 웃음이었다.

‘계획대로다. 챔피언이라 하더라도 인간일 터, 메타 스펠을 사용하면 단숨에 척살할 수 있을 것이다.’

은룡군주 실베스테르는 군주(Lord) 칭호를 받은 드래곤으로써 그녀는 대수정의 메타 스펠에 접근할 권한을 갖고 있는 존재였다.

‘메타 스펠: 필멸자 살해(mortal killing)’를 이용하면 단숨에 죽여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설마 저 챔피언이 자기 운명을 그렇게나 모를 수는 없을 터인데. 놈도 이런 대마법을 실행하는 자가 아닌가?’

살짝 의심하면서도 그녀는 속마음을 다시 고쳐 먹었다.

‘그러나 자존심을 굽히느니 도박에 던지는 것이 훨씬 낫다! 이대로만 조금 더 도발하면 저 오만방자한 챔피언은 제 힘을 과신하고 내게 도전해올 것이다.’

“설마 겁이 나느냐? 하긴 당연하겠지! 나는 용들 중에서도 장엄한 로드(Lord) 드래곤이다! 일개 챔피언 따위가 감히 마주 보면서 고개를 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라. 나의 광대함과 자비에 따라 너를 용서해 줄 수도 있으련···.”

함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 이쯤 되니 궁금해지는군. 타이런트. 저들의 저런 태도는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문화사회학적인 분석 레포트를 원하십니까, 함장님?]

“아니. 그보다는 전투병기로써 과도한 자부심 레벨을 설정해둔 것이 궁금하군. 어째서 자의식을 저렇게 과다하게 투입했을까? 로드 급이라면 제네시스(Genesis), 에인션트(Ancient), 로드(Lord), 제네럴(General)에 이르는 4계급 중 고작 밑에서 두 번째가 아닌가?”

함장은 그녀가 뭐라고 떠들지 간에 내버려 두고 타이런트와 대화했다.

타이런트의 음성을 들을 일이 없는 은룡군주가 무시를 당한 것에 이마에 힘줄이 돋고 책상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말이 밑에서 두 번째이지, 용들의 계급이라는 것은 필멸자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천상의 권능이었고, 우러름과 존경과 경외를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권위였다.

한 행성에 제네럴 급 드래곤이 찾아가면 챔피언들의 대장이 나서서서 영접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천상의 기사단이 찾아가면 한 행성계가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어찌 이처럼 오만 방자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그녀의 손아귀 힘을 견디지 못한 책상에 금이 쩍쩍 가면서 갈라지고 나무들이 깨어져 일어났다. 함장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벽을 해제해라. 짐승에게 교육이 필요하겠군.”

이 모독적인 발언에 은룡 군주가 속이 뒤집어 졌으나 간신히 견뎌냈다.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함장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참자! 거리 안으로만 들어오면 단숨에 메타 스펠을 발현하여 목숨을 끊어 버릴 것이다!’

함장이 마법 벽을 해체하고 안으로 들어서, 용을 마주 보았다. 함장이 은룡 군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간이 좁은가? 조금 더 큰 공간을 필요로 하는가?”

“충분하다! 지엄한 존재인 용의 권능을 보아라! 메타 스펠: 필멸자 살해(mortal killing)!”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용이 온 몸에서 마력의 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의 주위를 휘감던 마법이 언령이 되어 날아가 함장의 몸을 칭칭 감고는 회전했다.

‘되었다! 발동을 막아 두는 마법의 금제들이 있을까 걱정했거늘, 기우였구나! 이 주문이 발현되었으니 저놈은 죽는···.’

은룡 군주의 생각이 멈춘 것은, 그 마법이 빙글빙글 돌다가 부드럽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절대로, 필멸자라면, 아니 대수정에 등록되어 있는 관리 대상 필멸자라면 이 마법을 피해 나갈 수가 없었다.

발동, 그 자체를 막지 않는 한 이 마법을 방어할 주문은 없다.

이처럼 필멸자를 대량으로 학살할 수 있는 마법이야말로 용과 신들의 권능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걸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낼 수 있단 말인가?

“이, 이런 일은··· 지난.. 수만 년간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은룡군주가 부르짖었다.

“뭘 기대하는가 했더니, 고작 죽음의 신이 알파제타에 뿌려대던 코드(Code)였나? 자, 발톱 들어라. 안 그럼 죽는다.”

함장이 마그네타를 꺼내자 은룡군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등에서 꺼내든 망치 안에 담긴 중성자별의 무시무시한 중력이 삽시간에 사방을 짓눌렀다.

쩌저저적

평범한 컨벤션 홀의 바닥이 먼저 금이 갔다.

마치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건물이 마그네타의 중력에 뒤흔들리는 동안, 함장은 뚜벅뚜벅 걸어와 마그네타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정말로 가볍게 내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은룡군주는 즉시 폴리모프를 풀고 죽을 힘을 다해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막아냈다.

발톱에 걸린 무수히 많은 마법들이 산산히 깨어지고 발톱과 함께 작살이 났다.

은룡 군주가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쳤고, 우르릉 소리를 내며 컨벤션 홀의 한쪽 입구를 때려부수고 떨어졌다.

“감히! 감히! 용에게 이런 모욕을 주다니! 비록 주문이 먹히지 않아도, 나는 용들의 군주다!”

“그래. 너는 용들의 군주고, 나는 대선조다.”

이러한 광경을 작은 드론이 면밀하게 촬영해, 모든 선내에 방송하고 있었다. 함장은 단순히 힘자랑을 하기 위해 이런 상황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힘자랑을 하는 것은 함대를 거느린 사람이 즐길 일이 아니었다.

함장은 자신이 용과 1:1로 싸울 수 있음을 드러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용이 필멸자를 죽이는 코드(code)로 자신을 죽일 수 없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정말로 용이랑··· 그것도 군주(Lord)급이랑 싸우고 계셔···!”

승무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모여들었다.

전시 중에는 해킹 우려 때문에 코로나(Corona : 동공으로 직접 쏴 주는)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땀내를 풍겨가며 달라붙어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알파 제타의 거주민들이며, 용신 신앙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는 이 장면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폐, 폐하도 역시 신이신가···.”

이 함대 안에는 물론이고 알파제타의 승무원 아카데미를 비롯해, 24개의 하이브에는 여전히 용신 신앙이 팽배했다.

함장은 몇 년 내로 이 가짜 신앙을 완전히 뿌리 뽑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런 상황을 연출했다.

“말도 안돼··· 정말 대선조이신건지도 몰라. 용들도 숭배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오늘 처음 들었어.”

젊은 여자가 친구에게 속삭였다.

상상해보라!

신들이 모시는 절대신!

그리고 그들의 ‘챔피언’이라 불리우는 천상의 존재가 일개 필멸자라고 조롱하는 존재에게 피가 떡이 되도록 얻어맞는 광경을 볼 평범한 소시민들을.

매일 그들은 사당 혹은 사원에 들려 함장에게 얻어맞고 있는 용의 군주에게 헌화하거나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렸었다.

또한 그들이 실제로 그런 기도를 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래, 어쩌면 실제로 들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마그네타에 얻어맞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저 가련한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은룡군주는 함장의 마그네타에 오른쪽 다리를 얻어맞고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동정표를 더 걱정해야겠군.’

함장이 피를 흘리는 은룡 군주를 보며 눈을 찡그리고 있을 때, 은룡 군주가 거세게 고함을 지르며 입을 벌었다.

“그마아아안! 용의 군주의 분노를 보아라!”

푸우우우우우우우우!

드디어 나왔다!

단숨에 콜로서스를 관통했고, 크라켄들을 쓸어버렸던 무시무시한 브레스!

함장은 등에 달린 이온 엔진을 조작해 단숨에 브레스를 피했다.

[공격 범위 및 리스크, 사용 시간과 범주에 대한 데이터 분석이 끝났습니다. 연산보조 진행 중.]

함장의 두뇌는 데이터 연산 보조를 받아, 그야말로 용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마법을 부리며 어떻게 움직일지를 모조리 계산하고 있었다.

브레스가 깊은 곳까지 꿰뚫고 시설들을 드러냈지만, 정면으로 맞지만 않으면 문제 없었다.

“분신을 만들고 술식을 사용해라. 저주를 걸고 폭발을 일으켜! 무력하게 당하지 마! 입으로 오만했다면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지 않겠나?

이래서야 내게 복속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분발해라! 네 동족을 살리고 싶으면 더 분발해!”

함장의 조롱, 혹은 독려에 은룡 군주가 눈을 부라렸다.

“메타 스펠!:다중 분신!”

온몸에서 9서클 마법이 회오리치면서 발현되었다. 수십 개의 환영이 나타나 주문을 사용하고 브레스를 뿜었다.

“메타 스펠: 혹한의 안개!”

새하얀 안개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그 공간 안에서 열을 뺏는 왜곡 브레스가 뿜어졌다.

그러나 냉기는 함장에게 어떤 데미지도 주지 못했고, 브레스는 그 사이를 가볍게 미끄러져 피했다.

그리고 일부는 중력을 왜곡시켜 서로 부딪치게 만들었다.

하다못해 열 개가 넘는 브레스를 중력으로 비비꼬아 그대로 은룡군주의 몸통에 들이박게 만들었다.

“커어어억! ······죽, 죽여 버리겠다!”

은룡군주의 몸이 타오르더니, 아광속에 가까운 근거리 우주 항해마법을 사용했다.

이건 거의 자폭이나 마찬가지였다.

은룡군주는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더니, 빛에 가까운 속도로 함장에게 들이박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처음으로 일어난 유효타에 함장은 씩 웃었다. 마그네타와 용의 이마가 정면으로 마주쳐 빛나고 있었다.

“어, 어찌···! 인간이 어찌 이렇게 강할 수 있단 말이냐, 인간···. 고작 인간인 주제에···.”

은룡군주는 머리 박치기라는 단순 무식한 기술을 사용한 대가로, 비틀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 중얼거렸다.

[물론 함장님께서는 이 네오 아우크스부르크와 동력 연동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죠. 다른데는 몰라도 여기서는 무적이나 마찬가지에요.]

지름 20,000km의 거대 요새는 수만 개의 핵심 제네레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그 제네레이터는 모두 함장에게 집중하여 도무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헤아리기조차 불가능할 전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의 영지나 마찬가지!

이 안에서는 그 어떤 온갖 마법과 신묘한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함장을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으으으으.”

하지만 은룡군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출력 공유라는 기술이 없는 것이다. 깨진 머리통에서 흐르는 은색 피가 입 안으로 들어가 짭짤하다.

은룡군주는 자기도 모르게 혓바닥을 내밀어 흐르는 피를 핥았다.

그리고는 퍼뜩 놀랐다. 함장이 어느새 자기 앞에 다가와 심장 부분에 손을 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반물질 엔진이었지. 타이런트. 해킹해.”

[접촉을 유지하십시오. 해킹을 지속합니다.]

은룡들의 신체 구조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습득했고, 이들의 반물질 엔진에 대한 정보도 습득했다.

다시 말해 심장은 얼마든지 전자전으로 해킹할 수 있는 도구였다.

그 말인즉슨. 용은 한순간에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심장마비의 고통을 그대로 느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고통이었다.

“최후통첩을 내린다. 내 용 크라수스를 기사단의 군주로 선포하고 너는 부단장이 되어라.”

“······커어어어어억!”

[함장님, 심장마비 상황에서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출력을 낮추도록.”

간신히 숨을 몰아쉬는 은룡군주의 복부 위에 서서, 함장은 계속 그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단순한 마사지 한 번으로 이렇게 용이 마비될 수 있다니, 은룡군주는 당황과 분노로 눈물을 흘렸지만 이 순간을 피해갈 방도는 없었다.

“대··· 대선조시여···.”

오히려 죽음이 다가오자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용의 심장에 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는 대선조 밖에는 없었다.

“대답은?”

“그···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선조에게 충성하고······ 대선조님의 용에게··· 군주의 자리를 양도하겠습니다···.”

“구속력이 있는 마법으로 맹세해. 처음에 네가 내게 주고자 했던 그대로 말이다.”

“메타 스펠로··· 맹세··· 합니다.”

말을 다 마치자마자, 심장 마사지를 견디지 못한 용은 그대로 기절했다.

“방송 종료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함장님. 협상이 아니면 전후 배상 협상인 줄 알았는데 아예 통째로 사로잡으셨군요. 덕분에 선전선동에 있어서도 굉장한 이익이 되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말했다. 그는 AI 마그넷과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함장은 빙그레 웃었다.

“그거 잘 되었군요.”

함장은 타이런트에게 명령했다.

“은룡군주가 정신을 차리는 즉시 크라수스와 함께 돌아가서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게끔 해. 크라수스가 이 선물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군.”

[방구석 너드에서 장관이 되는 셈이니, 기뻐하지 않을까요?]

“글쎄, 앞으로는 할 일이 많아질 테니 꽤 힘들 거야. 물론 그도 이제 슬슬 어른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되었지.”

왠지 아들내미 하나를 낙하산으로 꽂아주는 듯한 기분이 드는 함장이었다.

“네오 아우크스부르크, 초장거리 워프를 준비해라. 이대로 알파제타로 돌아가 최소한의 정비를 마친 후. 곧바로 죽음의 신이 통치하는 문맥(門脈)으로 향한다.”

[예! 알겠습니다, 함장님!]

< 54. 무릎 꿇어라! (2) > 끝

ⓒ 티타펠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