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Master

Channel Master - 30 Coins

한수가 고른 퀘스트는 홍대에 가서 버스킹을 하며 백 명 이상의 청중을 끌어모으는 것이었다.

클럽 같은 곳에서 공연하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공연을 해서 백 명 이상을 긁어모아야 하는 일이다..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수는 자신감이 있었다.

일단 K-POP TV를 통해 적잖은 경험치를 쌓았다.

특히 K-POP TV에서 15퍼센트의 경험치를 쌓았을 때 한수는 특별한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호소력이었다.

그러면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감정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됐고 그들이 내뱉는 목소리에 담긴 표현력을 보다 더 폭넓게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50퍼센트의 경험치를 획득했을 때 한수는 보다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퀘스트를 선택해서 고를 수 있듯이 강화할 능력도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세 가지 중 하나였다.

첫 번째는 발성이었다.

두 번째는 보다 더 정확한 음정과 박자였고 세 번째는 음색이었다.

현재 얻을 수 있는 능력은 하나 뿐이지만 아마 K-POP TV에 대한 경험치가 100퍼센트 쌓이게 되면 세 가지 능력 모두 가질 수 있게 될 터였다. 그리고 세 가지 능력 가운데 한수가 고른 건 발성이었다.

그가 발성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발성에는 고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고음을 부를수록 노래를 잘 부른다고 간주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연 프로그램 역시 뒤로 가면 갈수록 누가 더 고음을 잘 부르나로 변질되기 일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의 기호를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 버스킹에서 한수는 폭발적인 고음과 청중들을 매혹시키는 호소력을 바탕으로 백 명 이상을 끌어모아볼 생각이었다.

이제 남은 건 어떤 노래를 부르냐 하는 것이었다.

한수는 세 곡에서 많으면 다섯 곡 정도를 부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선곡을 하려 하자 다들 너무 좋은 곡이라서 난감했다.

귀에 쏙쏙 꽂힐만한 노래로 열 곡까지 추렸지만 그 이상은 추릴 수가 없었다.

남은 열 곡 가운데 어떤 노래를 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이 계속해서 우우웅거렸다.

전화였다. 그리고 발신자는 서윤이었다.

그녀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한수는 새벽녘에 단톡방을 오고갔던 사진과 톡들을 떠올렸다.

뒤늦게 깬 그녀가 그 참상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이 틀림없었다.

한수는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통화는 연결됐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한수가 입을 떼려 할 때였다.

[······ 오빠.]

휴대폰을 통해 들리는 서윤이의 목소리는 하룻밤 사이에 피폐해져 있었다.

“괜찮아?”

[어제 어떻게 된 거예요?]

한수가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고민 끝에 그는 어제 일을 적당히 덮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히 서윤이가 애교를 부리던 걸 직접적으로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도 서윤이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모습 몇 장 정도였다.

“별 거 없었어. 술 내기 했던 건 기억나?”

[네, 기억나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너도 주사가 있긴 있더라. 먼저 취해서 내 어깨 붙잡고 계속 잠만 자더라고. 그러다가 어머님 오셔서 너 데려갔는데 생각 안 나?”

[기억이 흐릿해서요. ······ 혹시 제가 오빠한테 무슨 폐 끼친 거 있어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서윤 말에 한수는 어제 일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오빠, 오빠 그러면서 가까이 달라붙질 않나, 그런데 입술은 또 얼마나 도톰하던지.

자신도 모르게 서윤이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던 한수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대답했다.

“별 일 없었어. 걱정 안 해도 돼.”

[······ 진짜죠?]

“그렇대도.”

서윤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젯밤 술에 취해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는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한수가 제발 그 날 있었던 일을 다 까먹고 있길 바라며 전화했지만 오히려 정반대인 것 같았다.

한수는 그 날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보지.”

그 날 한수한테 했던 애교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자 서윤은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술만큼은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있었는데 그 자신감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말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서윤이네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

“일단 이거부터 마셔. 이제야 일어나고 참 잘하는 짓이다.”

“이게 뭔데?”

“대추차야. 술 깨는데 도움될 거야.”

“고마워요, 엄마. 역시 딸 생각하는 건 우리 엄마 뿐이라니까.”

서윤은 엄마가 타온 대추차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때였다.

서윤의 엄마가 서윤을 보며 물었다.

“네가 어깨 베고 자던 그 남자애, 신입생이라며?”

“어,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너보다 연하야?”

“오빠거든요. 아니, 그보다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아냐구요!”

“네가 깨기 전에 물어봤으니까 알지.”

“또. 또 뭐 물어봤는데요?”

“글쎄다. 휴대폰 번호 정도?”

“······ 그게 전부에요?”

“우리 딸하고 사귀는지 호감은 있는지 물어봤지.”

“엄마!”

결국 참지 못한 서윤이가 소리를 빽 질렀다.

본의 아니게 솔로로 지내고 있다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신입생이 생겼는데 초장부터 대판 꼬이게 생겨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다가가고 싶진 않았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호감마저 잃어버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서윤이 엄마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호감은 있대요?”

“글쎄다?”

그러는 동안 휴대폰이 쉴새없이 울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단톡방을 확인한 길벗반 선배들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를 연발하며 계속해서 성질을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 진짜 다들 죽······.

서윤은 차마 메시지를 전송하지 못했다.

길벗반 전체 톡방이다. 여기엔 한수도 채팅 멤버에 포함되어 있다.

- 제가 그 날 많이 무리했나봐요. 신입생들을 꼼꼼이 챙겼어야 했는데 과책으로 무한한 책임을 느낍니다.

- 와, 이 마녀 완전 우디르급이네.

- 그러는 거 아니다. 아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다 캡처해놓을 걸.

- 윤 선배님 ^^ 자꾸 그러시면 안 되죠. 신입생들이 저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

- 저 눈웃음 되게 무섭네.

- ······ 난 잠수탐.

- 데프콘3 떴다! 다들 상시경계하고 긴장 늦추지 마라.

으드득-

이가 갈렸다.

그러나 여기서 폭발할 순 없었다.

한 번 망가진 이미지는 평생 가는 법.

그러나 저들은 똑똑히 알게 될 터였다.

여자가 한을 품게 되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된다는 것을.

그때였다.

서윤이가 화를 꾹꾹 억눌러 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뜻밖에도 한수였다.

정오 무렵 한수는 홍대입구역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 키에 늘씬한 체구, 거기에 훤칠한 외모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갈만큼 오늘 한수는 눈부셨다. 예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날 텔레비전을 얻고 난 뒤 여러 사람들의 능력을 얻고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그것이 고스란히 당당함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말 한번 걸어볼까?”

“에이, 여자친구 있겠지.”

“그래도.”

한수를 보고 길거리를 지나가던 여자들이 멈춰선 채 수군거렸다.

그러나 한수는 주변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어폰을 꽂은 채 있다가 버스킹할 때 부를 노래를 계속해서 고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용기를 낸 여자 한 명이 한수에게 다가오려 할 때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온 예쁘장한 여자가 한수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한수 오빠!”

한수에게 말을 걸려 했던 여자는 그녀를 보고 멈칫했다.

키가 살짝 아담하긴 했지만 평균키였고 엄청 예쁘장한데다가······.

그녀가 눈매를 흘겼다.

분명 키는 자신이 더 큰데 미드싸움에서 패배했다.

씻지 못할 굴욕감을 느끼며 그녀는 친구와 함께 재빠르게 전장을 이탈했다.

“어, 왔어?”

한수가 이어폰을 빼고 서윤을 바라봤다.

한수를 만나러 홍대에 나온 건 서윤이었다.

“오늘 안 바빠?”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만나자는 말에 부리나케 준비를 끝내고 달려오긴 했지만 정작 무슨 일인지 듣지 못한 서윤이었다.

한수가 웃으며 메모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 메모지에 적혀 있는 건 모두 열 곡의 선곡표였다.

“이건 뭐에요?”

“있다가 여기서 버스킹을 하려 하는데 네가 곡 좀 골라줬으면 좋을 거 같아서.”

“네? 버스킹요? 오빠, 노래 잘해요? 근데 갑자기 웬 버스킹요?”

장기자랑때 한수가 걸그룹 노래를 기똥차게 부른 건 알고 있다. 문제는 그건 장기자랑이었고 이건 버스킹이라는 게 달랐다.

게다가 한수가 건넨 선곡표에 적혀있는 노래는 발라드가 대부분이었다.

한수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나마 버스킹이 퀘스트 중에서 가장 쉬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한수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노래를 잘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 음, 버킷리스트 같은 거야.”

“버킷리스트요?”

버킷리스트는 2007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버킷 리스트」 이후 널리 쓰이게 됐는데 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노인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나 죽기 전에 반드시 해보고 싶은 일을 목록으로 짜둔 걸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한수가 얼마 안 있다가 죽을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에 서윤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오빠, 무슨 시한부 판정 받았어요?”

“응? 아니야. 그냥 예전부터 해보고 싶던 일 중 하나였어.”

예전에 이곳을 지나다가 버스킹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노래를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호소력이 있었다.

그가 노래를 끝내면 감동을 받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한수도 언젠가는 자신도 이곳에 서서 버스킹을 해보고 싶다고 마음먹게 됐다.

그러다가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됐다.

그야말로 다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심했다. 여러 퀘스트가 있지만 버스킹에 도전해보겠다고.

예전부터 그가 꿈꾸던 것 중 하나였으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서윤이가 한수를 보며 물었다.

“좋아요. 모두 몇 곡이나 부르려고요?”

“다섯 곡 정도?”

서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한수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상형에 제대로 부합하는 오빠인 건 맞다.

키 크고 공부 잘하고 훤칠하니 잘생겼고 술도 잘 마시고.

하지만 어쩌면 이 오빠는 조금 제정신이 아닌 걸지도 몰랐다.

갑자기 때 아닌 버스킹이라니. 보통 사람은 쉽게 생각지 않는 일이다.

한수가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모르는 이상 누구나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긴 했다.

그렇다보니 서윤이는 정말 심각하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버킷리스트를 만들어서 저렇게 하나씩 이루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찡했다.

‘열심히 도와줘야겠다.’

서윤은 열심히 각오를 다지며 선곡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선곡표를 본 순간 서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 노래를 잘해야만 버스킹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었는데······ 이 선곡표는 뭐야?’

한수가 건넸던 메모지에는 앵간한 아마추어는 소화하기 어려운 곡들로 선곡표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채널 마스터 - 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