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Master

Channel Master - 283tune

체스 대회가 열리는 날 대회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기자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구글의 이사 레이 커즈와일을 비롯하여 인공지능에 한 발 걸치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이곳에 나와 있었다.

그들 모두 한수가 울티 원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따낸 적 있는 이형주 9단이 방송국 리포터하고 인터뷰를 진행 중에 있었다.

“이형주 9단님! 알파고를 상대로 1승 4패를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나셨네요. 그리고 3년이 지나서 현재까지 체스나 바둑에서 어떤 누구도 인공지능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는데요.”

“하하,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그러고 보니······ 그 당시 이형주 9단이 했던 말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데요. 기억하고 계신가요?”

이형주 9단이 그 말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때 이형주 9단이 최초로 알파고를 꺾었을 때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간이 이긴 것이 아니다. 내가 이긴 것이다.’

그 후 이형주 9단은 1승 4패로 알파고와의 대국을 마무리했고 더 이상 인간은 인공지능을 상대로 이기지 못했다.

알파고를 상대로 1승밖에 거두지 못한 이형주 9단을 실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던 커제 9단은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아냈다.

그 이후 2년 만에 잡힌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었다.

“되게 쑥스럽군요.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긴 했죠?”

자신감 넘치는 그 말에 리포터가 보조개를 띄웠다.

이형주 9단은 원래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사내였다.

그녀가 이형주 9단을 보며 물었다.

“이형주 9단께서는 오늘 경기를 어떻게 예상하고 계세요? 오늘부터 하루에 한 경기씩 총 오 일 동안 대국이 예정되어 있는데요.”

“음, 체스는 바둑에 비해 그 수가 더 한정되어 있죠. 그래서 바둑보다 더 빨리 인공지능에 정복당하기도 했고요. 인간의 체스 실력은 도돌이표인데 비해 인공지능은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걸 감안하고 생각해 보면······ 흐음, 아무래도 울티 원이 압승을 거둘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이형주 9단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강한수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슈퍼스타였다.

이형주 9단 입장에서는 그들을 안티로 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평소 패기 넘치는 그인데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가라앉은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렇지만 이형주 9단의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울티 원의 우세를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으로 이형주 9단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강한수 씨가 도착할 텐데요. 어떤 식으로 그가 인공지능 울티 원을 상대할지 기대가 무척 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리포터가 이형주 9단과 재차 인사를 나눴을 때였다.

호텔 앞이 시끌벅적해졌다. 그녀도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멀리 화려한 슈퍼카가 H호텔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강한수가 분명했다.

국내 언론사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도 한수를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이 모습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만수르 역시 아랍아부다비에서 그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왕자님.”

만수르 곁에 서있던 중년의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만수르가 웃으며 물었다.

“오늘 한스와 울티 원의 대결이 있지 않던가. 누가 이길 거 같냐는 말이네.”

“글쎄요. 음, 제 생각에는······ 그래도 울티 원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나?”

“아무래도 2016년 이후로 인간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이긴 적이 전혀 없으니까요. 실제로 요즘에는 인공지능끼리 대결을 붙이는 대회를 여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그렇군. 하긴 그럴 수 있지.”

“근데 말이야. 왠지 모르게 한스가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내 촉이 잘못된 것일까?”

“아무래도 친구 분이시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게 아니야. 진짜 한스가 이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 비단 이번만이 아니야. 그는 정말 특별하거든. 그래서 더 곁에 두고 싶은 거긴 하지만.”

만수르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빨리 경기가 시작되고 한수가 울티 원을 꺾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 * *

한수는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속에 경기장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몇몇 한수 팬들이 한수를 향해 소리를 높였다.

“한수 형! 힘내요!”

“한수 형, 꼭 이겨줘요!”

마치 시장 북새통을 보는 것처럼 H호텔 앞은 시끌벅적거렸다.

경찰들이 안전을 위해 경계선을 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 한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한수가 경기장에 들어섰다.

맞은편에는 구글에서 고용한 체스 플레이어가 앉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구글의 이사 레이 커즈와일이 간단히 룰을 설명했다.

총 닷새 동안 그들은 다섯 경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3판을 먼저 이기는 사람 혹은 인공지능이 승자였다.

승자가 결정이 되어도 여전히 경기는 계속 치러질 예정이었다.

만약 한수가 5경기 모두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200만 달러를 벌 수 있는 것이었다.

세계 체스 선수권 대회에서 번 상금이 200만 달러이니까 그는 열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4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셈이었다.

한수가 굳이 돈 욕심을 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돈이 필요로 하면 상금이 많이 걸린 각종 대회에 출전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레이 커즈와일의 말이 끝나고 첫 번째 경기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됐다.

울티 원은 한 수, 한 수를 둘 때마다 그 정보가 구글 본사로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 구글 본사에 있는 슈퍼컴퓨터 울티 원이 그 다음 수를 계속해서 계산하게 되고 최적의 수를 결정하게 된다.

인공지능이다 보니까 휴식이 필요 없고 또 수싸움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무척 짧다. 인간에 비해 월등한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십여 수가 넘어갈 무렵 울티 원은 좀처럼 수읽기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울티 원을 관리 중인 구글 엔지니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같은 인공지능을 상대로 한 대결에서나 종종 보이던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초시계는 쉴 새 없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체스에는 무르는 기술이 없다.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결국 울티 원이 다음 수를 뒀다.

경기를 중계 중이던 해설자들이 그 수에 낭패 어린 얼굴이 되었다.

울티 원이 둔 수는 최악의 수였다.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방금 수는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혹시 버그인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번 수 때문에 강한수 씨가 보다 더 앞서가게 될 거 같습니다.”

계속해서 경기가 이어졌고 치열한 접전 끝에 경기가 끝맺음 났다.

최종 승자는 강한수였다.

* * *

3년 만의 일이었다.

2016년 알파고를 상대로 이형주 9단이 극적인 승리를 거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날 전 세계가 한 모습이 되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꺾었다.」

단 한 줄의 헤드라인이 전 세계 모든 뉴스를 잠식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구글의 이사 레이 커즈와일은 방금 올라온 뉴스를 읽어 내려갔다.

중간에 울티 원이 둔 최악의 수.

그것 때문에 모든 게 꼬였다고 세계 랭킹 1위 칼센이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경기가 끝난 직후 본사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울티 원을 담당하고 있는 엔지니어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버그는 아니었다.

엔지니어 말에 따르면 울티 원은 당시 최고의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보기에 그것은 불완전한 판단이었다.

구글이 인공지능 개발에 열을 올리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개중 하나는 자율화가 된 자동차 때문이기도 했다.

더 이상 사람이 운전할 필요가 없는 인공지능이 알아서 운전하는 자율주행 자동차.

구글은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었고 실제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공지능은 가파르게 성장 중이었다.

하지만 그 흐름이 오늘 턱 막혀 버렸다.

인간은 환호했지만 인공지능과 그 인공지능과 연관이 있는 기업들은 울상이 되었다.

인간을 뛰어넘은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인공지능인데 오늘 그 불완전성을 스스로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수는 초가 흐를수록 그 주가가 상승하고 있었다.

그전에도 유명했지만 지금은 한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반짝 인기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현재 한수의 유명세는 전 세계를 뒤엎을 정도였다.

-그래, 역시 나는 자네가 이길 줄 알았네. 왠지 모르게 그런 직감이 왔었다네.

“감사합니다, 왕자님.”

-도대체 그 비결이 뭔가? 어떻게 하면 하는 것마다 다 잘할 수 있는 건가?

한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건 절대 밝힐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 뒤로도 만수르 왕자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뒤 한수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한수는 휴대폰을 내버려둔 채 서재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구형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체스」 채널을 완전히 확보했을 때 한수는 새로운 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앞선 수를 내다볼 수 있는 특별한 눈이었다.

그 덕분에 한수는 울티 원에 밀리지 않고 수읽기를 할 수 있었고 울티 원 못지않게 시간을 빠르게 써가며 체스를 둘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울티 원이 실수를 저질렀고 그 덕분에 한수는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한수는 오늘 울티 원을 상대하고 깨달은 게 있었다.

실제로 울티 원과 제대로 승부를 겨뤘으면 무승부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이다.

그가 레이 커즈와일한테 무승부가 났을 때에도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했던 건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채널 마스터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쨌든 아직 대결은 4번 더 남아 있었다.

인공지능은 완전무결하지 않았다.

불완전성은 남아 있었다.

반면에 채널 마스터의 능력은 완벽했다.

한수가 그래도 51 대 49의 확률로 우세를 생각하고 있는 건 채널 마스터를 믿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한수는 재차 H호텔로 향했다.

이번에는 김 실장이 운전하는 밴을 타고 이동했다.

그 덕분에 H호텔로 밴이 들어서는데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한수가 내리자 기자들이 득달같이 한수에게 달려들었다.

한수는 호텔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이 장면은 생방송으로 전 세계 곳곳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일이었다.

그랬다.

지금 세계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채널 마스터 -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