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Heavenly Demon

187. The Battle of the Living and the Dead (1)

굉음이 전장을 휩쓸었다.

동시에 화염이 치솟았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적아를 가리지 않고 자리에 모인 모든 무림인을 불태웠다.

“으아아악!”

“내 팔이, 내 팔이 불타고 있다!”

“물, 물!”

“등에 불이 붙었어!”

“바닥을 굴러서 불을 꺼!”

마인들과 무림맹 무인들이 동시에 칼을 휘두르는 것을 멈췄다. 그러곤 사방에서 일어난 불들을 바라봤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불꽃이…….”

“화탄이라도 터진 건가!”

그 말대로였다. 좌도결은 운성이 맹주전에 들어서는 순간, 마인들이 꽤 깊숙이 들어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진법을 발동시키는 동시에 매설해 두었던 화탄을 폭발시켰다.

물론 이 화탄은 무림맹을 창립할 당시 매설해 두었던 것으로,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평범한 화탄이 아니었다.

그 옛날 상고시대의 전설적인 화탄 제조자, 폭마(爆魔)가 만들었다는 진천뢰(振天雷)였다.

벼락이 쏟아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이 화탄은 근래에 이르러서도 그 파괴력을 재현해 내지 못한 위력적인 병기였다.

그런 것이 수백 개가 일제히 터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적아를 가리지 않고!

아비규환의 상황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상관척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가장 큰 굉음이 들려왔던 곳이었다.

‘교주님!’

콰아아앙-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소리처럼, 색 역시 진천뢰의 것과는 다른 화염.

화르르륵-

묵색과 회색 화염이 하늘을 관통하는 기둥처럼 높이 솟아올랐다.

진천뢰를 일제히 폭발시키는, 동시에 기관과 진법을 발동시키는 장치는 바로 좌도결이 몸을 기대고 있는 의자 팔걸이 아래 있었다.

그곳에 손가락을 대고 있다가 마교의 교주가 들어오는 순간, 단추를 눌러 장치를 발동시킨 것이다.

그렇게 모든 장치가 발동된 순간, 좌도결은 몸을 움직였다.

천마신교 교주를 죽이기 위해서?

아니다.

기관장치가 발동된 순간, 가장 먼저 무너져 내리는 것은 맹주전 건물. 그는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에 깔려 천마신교 교주와 함께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 도주였다.

콰직-

좌도결은 몸을 날려 등으로 건물 벽을 부수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신형을 계속해서 이동시켰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무너져 내리는 맹주전 건물이 보였다.

그것을 보며 좌도결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후후훗.”

건물이 무너지는 동시에, 안에 설치된 수백 발의 화살이 천마신교 교주의 몸에 틀어박혔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천마신교 교주를 죽일 수 있으리라. 아무리 입신경의 고수라 하더라도 당황하면 상처를 입고 죽는 법이다.

운이 나쁘면?

운이 나쁘면 상처를 입히는 정도에서 그칠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 후의 계획도 이미 다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이 데구루루 움직였다.

전장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진법이 발동하고 기관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의 의도대로라면 철저히 계획해 적아를 가려낸 후 적들만을 함정 속에 빠뜨려야 하는 진법이다.

하나 좌도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적아를, 무림맹과 마교를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함정 속에 집어넣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정마를 충돌시켜 양쪽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지, 진짜 협객들이 외치는 것처럼 정파 정기의 수호가 아니었으니까.

‘정기의 수호라니, 참으로 웃기는 소리지.’

좌도결은 난장판이 된 상황을 살피며 협객들을 싸잡아 조롱했다.

그러다가 품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좌도결이 꺼낸 것은 색이 온통 검은, 작은 피리였다.

조고흑효(操蠱黑嚆)라 불리는 이것은 무신고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피리였다.

좌도결은 자신이 내릴 명령을 심상 가득 담은 후, 조고흑효에 힘차게 숨을 불어넣었다.

삐이이이익!

인간은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전장에 널리 퍼져 나갔다. 곧 무신고가 이 소리를 듣고 좌도결의 곁에 오게 될 터.

좌도결이 입꼬리를 쓱 끌어올렸다.

‘아무리 신교 교주라 하더라도 두 구의 무신고를 당해 내지를 못할 것이다.’

거기다 지금 좌도결이 부른 두 구의 무신고는 전보다 훨씬 개량된 바.

살아생전의 힘을 8할가량 끌어올린 무신고였다. 그렇기에 좌도결은 천마의 죽음을 자신만만하게 예고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콰왕-

화탄이 터져 나갈 때보다 더 큰 화염이 맹주전을 뒤덮었다.

맹주전을 휘감은 화염은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으며 거대한 불꽃 기둥이 되었다.

무너져 내리던 건물 잔해들이 그 폭발에 밀려 허공으로 딸려 올라갔다.

마치 거대한 용권풍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허공으로 건물 잔해가 딸려 올라가면서 하늘이 불꽃 색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화르르륵-

콰콰과과광-

딸려 올라간 건물의 잔해들이 화염에 뒤엉킨 채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화염 기둥 사이에서 사람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좌도결.”

그 모습이 꼭 잔뜩 분노한 맹수와 같아 좌도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화염 속에서 걸어 나온 운성은 상황을 살폈다. 진동의 세기나 폭음의 크기로 미루어 짐작할 때, 전장 전체를 뒤덮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운성의 예측대로, 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전장의 모든 것이 대부분 무너져 내렸고, 적아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불에 타서 뒹굴고 있다.

진법이 보여 주는 환각에 빠져 있는 이들도 있었고, 기관 장치에 당해 쓰러진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꼴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초절정에 오른 고수들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운성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 단순히 좌도결이 운성에게 원수이기 때문에 느끼는 분노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깊은 분노.

적아를 가리지 않고 무림맹과 천마신교 무인들을 학살하는 꼴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무인들만 함정에 빠진 게 아니다.

무림맹에는 무인들만이 있는 게 아니다.

무림맹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몇몇 시녀들이 그러했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숙수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저들마저도 대피시키지 않았다고?’

운성은 불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곤 좌도결을 노려봤다.

“좌도결.”

목소리에 배어 나오는 살심을 숨길 수 없었다. 동시에 운성의 몸을 타고 막대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운성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는 협객(俠客)이 아니면 절대로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자기 자신은 협객으로서의 삶을 부정했지만, 은연중에 협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창존(槍尊) 녹유온이 오랜 세월 운성에게 협심을 강조한 덕분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운성은 협심과 더불어 마공 역시 가지고 있었다.

당장 좌도결을 찢어 죽이고 싶은 살심이 강하게 일었다.

운성은 그 본능에 몸을 맡기려 했다.

당장 저 빌어먹을 개자식의 팔다리를 움켜쥐고 몸을 잡아 찢으리라.

운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푹푹-

무엇인가가 달려와 운성의 양 어깨를 찔렀다. 운성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옷 위로 피가 슬쩍 배어 나왔다.

“과연!”

쾌재를 부르는 좌도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운성은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자신을 공격한 이들을 노려보았다.

어깨의 상처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린 덕분이었다.

피가 난다고는 하지만 어깨의 피부가 슬쩍 벗겨지며 생채기가 난 정도에 불과했다.

“무신고?”

중요한 것은 놈들의 정체였다. 운성이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자 좌도결이 제법이라는 듯 중얼거렸다.

“교주께서도 그것들을 아시오?”

그 물음은 마치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 운성은 손에 쥐고 있던 백야창을 휘둘렀다.

쾅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운성을 공격한 무신고 두 구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하나 그것은 고작해야 두 걸음.

동시에 운성의 두 눈이 순식간에 금빛으로 물들었다.

‘전에 봤던 녀석보다 강하다.’

그런 것이 두 구나 있었다.

동시에 두 구의 무신고가 운성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콰과과과과-

거대한 폭음과 함께 격풍이 운성을 덮치는 순간, 운성은 그것들을 마주쳐 가는 질풍이 되었다.

질풍과 격풍이 충돌했다.

세 개의 바람이 정신없이 얽혀 들었다. 사방으로 바람이 뻗어 나갔다.

쩌적-

그 바람에 땅이 갈라졌다.

쾅-

때론 건물이 반파되기도 했다.

그 속에서 운성은 적들의 무공을 계속해서 살폈다. 두 구의 무신고라면 운성이라고 하더라도 필승을 장담할 수 없는 바.

‘무공의 특징을 찾아 맥을 가르고 약점을 공략한다면 가능성이 없지 않지.’

그렇지 않아도 이놈들은 시체가 아닌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의외의 상황에 대처할 만한 기지가 없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터.

운성이 먼저 한 구의 무신고를 집중적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말총머리의 날렵한 인상이 눈에 들어온다. 놈의 손에 들려 있는 한 자루의 검이 야생마처럼 거칠게 달려들었다.

검이라기보다는 투박한 몽둥이를 들고 때리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말이로군.’

그 속에서 운성은 놈의 무공 근간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그것은 말이었다.

거칠게 질주하는 한 마리 야생마.

막아서는 모든 것을 앞발로 찍으며 질주해 적을 떨쳐 낸다.

자유로움의 상징이며 또한 구속되지 않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군.’

그런 무공을 익힌 이가 이렇게 구속되다니. 운성은 고개를 한 번 가볍게 흔들었다.

그사이, 말총 사내는 운성의 방어를 뚫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히이이잉-

말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등 뒤로 강기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강기가 말갈기처럼 마구잡이로 휘날렸다. 동시에 그의 검술, 아니 몽둥이질이 더욱 투박해졌다.

쿵-

운성의 발목이 땅을 파고 들어가며 묻혔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힘.

그런 운성의 뒤쪽에서 또 하나의 무신고가 노리고 들어왔다.

검과 겸(鎌)의 중간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 두 개의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무신고.

‘이건 당랑인가…….’

그 모습에서 운성은 어렵지 않게 당랑(螳螂)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당랑이 앞발을 휘두르는 것처럼 위협적이다. 저 겸검(鎌劍)에 걸려든다면 몸이 찢겨 나가리라.

“흡!”

운성이 몸을 비틀었다. 바닥을 파고들었던 발을 끌어올리며 진각(震脚)을 밟는다.

쾅-

바닥이 크게 출렁였다. 그 바람에 운성을 노리던 겸검 사내가 주춤하는 순간, 운성이 발에서부터 끌어올린 진력을 상반신으로 이동시켰다.

운성의 허리가 흔들리며 상반신에서 태풍의 형상을 한 거력이 쏘아진다.

쾅-

거친 바람이 말총머리 사내를 밀어냈다. 그 순간 생겨난 작은 틈. 그 틈으로 운성이 허공에 몸을 띄웠다.

아래쪽에서 두 무신고가 운성을 쫓아 허공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운성은 무신고들을 바라봤다가 좌도결에게 눈길을 주었다. 좌도결은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이 전장에서 당장 몸을 빼고 싶어 하는 듯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운성의 추측이지만, 정말로 놈이 몸을 빼기라도 한다면 귀찮아질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터.

‘무리하는 수밖에 없겠어.’

운성은 전신을 옥죄던 철환을 모두 푼 뒤, 팔다리를 휘둘렀다.

쾅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