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King

Chapter 17. Garden of Delight 2 [End of volume 2]

전락자란 ‘대통합’, 그러니까 헤이터와 지구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대통합이 일어나는 그때 그 순간 헤이터에 있는 파트너가 목숨을 잃었다면, 그 사람은 인간의 몸을 잃고 몬스터의 몸에서 눈을 떠. 전락자가 된다는 얘기지.”

나 역시 그와 같은 과정을 겪었다. 여기까지는 나도 일반적인 전락자들과 동일한 모양이었다.

“어째서?”

“모르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으며 알고 있는 이도 없다. 전락자 본인들도, 물론 인간들도.

그렇기에 대통합이 일어난 직후 지구에는 엄청난 혼란이 닥쳐왔다. 나처럼 던전에서 눈을 뜨거나 몬스터 무리 한가운데에서 눈을 뜬 전락자들은 대부분 이성을 잃고 날뛰거나 죽거나, 인간 사회로 복귀하려다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한때 그들과 같은 인간이었음을 깨달았어. 우리는 몬스터가 아닌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니까. 하지만 곧 그들은 그 사실에 개의치 않게 되었어.”

“보상 때문에?”

“그래, 보상 때문에. 그것도 이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보상이지.”

막대한 경험치와 돈. 사람들은 전락자를 특별한 몬스터 취급하며 도륙했다.

한때 인간이었건 말건, 그것은 이미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겉모습이 다르다는 것은 아주 좋은 핑계가 되었다.

인간은 그렇게 전락자를 사냥했고, 강해졌다. 그리고 더욱 많은 전락자를 사냥했다.

“미쳐버린 세상에서는 모두 자기를 지키는 게 최우선이었어. 겉보기에 흉악해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몬스터에 비하면 사냥하기 쉬운, 심지어 보상까지 훌륭한 전락자는……인간들에게는 좋은 ‘먹이’였지.”

사회는 새로운 질서를 맞이했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수많은 갈등과 폭발과 조정과 파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몬스터와 던전으로 뒤덮인 새로운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법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무수한 사업이, 공장이, 노동자가 쓸모없어졌고 폐기처분되었어. 전투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가 살아가기 위해선 이제 밭이라도 갈아야 해. 그나마도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몬스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지.”

“전락자는…….”

“전락자는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어. 우리는……인간 사회에 조금이라도 섞이지 못하게 차단해야 하는 악이 되었지.”

악.

차단하고 배제해야 할 대상.

“처음부터 강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가 개편되었어. 많은 길드가 생겨났지.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강해지고,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어. 그것들은 일종의 기업이나 다름이 없어.”

“정부는?”

“존속하고 있어. 대장도 알겠지만, 그 빌어먹을 파트너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권력이나 금력에 가까운 이들일수록 더 훌륭했으니까. 사회구조가 변했다 뿐이지 윗대가리는 거의 변함이 없어. 아니, 그래. 단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지. 주로 세금이나 행동의 제약에

대해서 말이야.”

보다 가벼워진 사람의 목숨. 보다 조종하기 쉬워진 인간의 의지.

지금이라면 그 남매가 제대로 된 방어구 하나 없이 던전으로 내몰렸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야 했을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옥이 따로 없군…….”

“우리에게는 더욱 더, 말이지.”

뒤바뀐 사회에는 새로운 형식의 재화가 등장했다. 골드, 아티팩트.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얻기 가장 좋은 장소……던전.

“던전은 각종 유력 길드의 소유물과도 비슷한 것이 되었지. 그들은 던전을 관리하고 골드를 수거하며, 좋은 아티팩트를 독점하고자 해. 경쟁자들과의 무력 차를 벌리고, 군림하며……지배하지. 내 생각에 그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어. 인간과의 전쟁이 되었든, 몬

스터와의 전쟁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그 중요한 재화라는 골드의 쓰임새는?”

나는 전용상점에서 골드를 소모한다. 하지만 나는 전용상점이니 진마의 탑이니 하는 것이 일반인은 물론이고 다른 전락자에게도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라는 것을 이제 와서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골드를 탐한다. 단지 몬스터를 죽이면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그럴 리가. 그들에게도 분명 골드의 소모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매장. 나는 이전 조우한 인간에게서 분명 그것을 들었다. ‘아티팩트’를 구할 수 있는 경매장의 존재에 대해. 경매장의 물건에의 입찰은 분명 골드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닐 터였다. 경매장 하나로 끝이 날 리가 없었다.

“경매장. 수련장. ‘원주민’이 운영하는 상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재화. 그 모두에 골드가 필요하지. 이제 원이니 달러니 엔이니 위안이니 하는 기존 화폐의 가치는 한없이 하락하고 있어. 모두가 지금 가장 힘 있는 화폐, 골드를 원해.”

원주민. 나는 문득 비와 에이를 떠올렸다.

이찬유 역시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채고 재깍 입을 열었다.

“원주민. 그들은 어쩌면 우리 전락자와 대척점에 있는 존재들이지.”

그가 말했다.

“지구에 파트너가 없었음에도, 대통합 이후 멀쩡한 모습으로 지구에 나타난 헤이터의 주민들. 헤이터의 파트너가 없이 대통합 이후로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과 비슷하지?”

“그들은 강하지?”

“응, 강해. 지금 지구에서 제일 강한 자들보다도.”

“그렇기에 그들은 사냥당하지 않는구나. 전락자처럼.”

“그리고 생긴 것도 다들 멋지고 예쁘다고. 우리와는 달리. 마치 누군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처럼 정반대지?”

우리는 말을 마치고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끔찍한 악령과 늑대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이기에 비로소, 겉모습이란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웃을 수 있었다. 만 가지 감정을 한 가지 표정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이찬유의 말이 이어졌다. 그는 좀 더 원주민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인류에게 도움을 주고자 해. 뒤바뀐 사회에 적응을 하게 도와주고, 그들 스스로도 인류와 함께 살아가고자 하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것 같아.”

“그들이 전락자에 대해 품는 입장은?”

“몬스터.”

실로 간단한 결론이었다.

“인간들이 전락자를 거리낌 없이 사냥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해. 어느 정도 인간을 초월한, 인류에게 필요한 재화를 확보하고 있는 원주민들. 그런 그들이 전락자를 몬스터 취급하기 때문이지. 바로 이 부분을 짚어오다니 대장도 똑똑하구나.”

“그들에 대해서는 지금 판단을 내리기 힘들겠어. ……우선은 피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정도가 최선일까.”

마인의 증명 역시 이들 원주민에 의해 유통되는 것이라고 한다. 어째서 인간과 전락자 사이에 골을 만들려고 하는지, 내게 가능한 것은 불확실한 추측 뿐.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나는 그들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유보했다.

위험한, 가까이 하면 안 될, 적. 이 정도면 지금 당장은 충분하리라.

나는 그 외에 다른 일에 대해서도 물었다. 정확히 지구가 얼마나 변했는지. 바깥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던전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 모두를 철저히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아까 얘기한 아레나, 그게 우리 전락자에게 우호적인 ‘원주민’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본선 진출을 거둔 자에게 마인의 증명을 막을 수 있는 아이템을 준다고 했었지.”

한쪽은 전락자를 알아볼 수 있는 아티팩트를 뿌리고, 한쪽은 전락자의 정체를 숨길 수 있는 아티팩트를 준다.

비록 그것의 수여 방식에 있어서 불균형하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어쨌든 입장 상 그들이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원주민도 두 패로 갈려 있다는 것이다.

그중 비와 에이는 아마도 전락자의 편이겠지. 정확히는 전락자인 나의 편.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내게 스스로를 감출 수 있는 방도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은 것일까.

지금이라도 가서 따진다면, 비는 내게 그것을 상품으로서 내놓을까?

어쩐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내가 죽길 바라서가 아니라, 내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비가 됐든 에이가 됐든, 나를 대체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내가 나의 협력자들에 대한 생각에 골치 아파하고 있을 때 이찬유가 아티팩트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물론 겉모습까지 바꿀 수 있는 건 아냐. 그래서 나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자들에게나 효과가 있지.”

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2m를 확실히 넘기는 것처럼 보이는, 전신에 굵은 털이 돋아난 늑대인간의 모습을.

“인간의 모습이라.”

“……미안, 적어도 당분간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아니, 네게 변하라는 것이 아냐.”

나는 단지 내가 앞으로 진화해나갈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고블린, 홉고블린을 거쳐 버그베어로. 과연 앞으로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을지도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스스로의 몸을 돌아보았다. 시커먼, 두꺼운 피부. 장대한 기골. 인간과는 동떨어진 추악한 몰골. 길쭉한 귀.

인간과 비슷한 형태? 솔직히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던 중 나는 하나의 의문을 떠올렸다.

“확실히……엘프나 드워프, 그리고 마족과 같은 인간 외의 종족과 파트너였던 이들도 있었지.”

“아, 그들. 있었지.”

“지금 얘기에서는 완전히 빠진 것 같은데. 인간과 전락자, 원주민의 얘기만 나왔잖아.”

“그야 그럴밖에.”

이찬유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말했다.

“그들은 사라졌거든. 흔적도 없이.”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이찬유는 길었던 말을 마치고는 인벤토리에 두었던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시더니 내게도 권했다.

나는 그것을 거절하고 생각했다. 이찬유가 말해준 지금의 사회에 대해,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그리고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강해지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쓰게 웃었다. 아니, 그 전에 잠시.

“좋아, 확실히 두 가지 정보 모두 받았다. 전락자임을 감추는 그 아티팩트는 혹시 한 사람이 두 개를 얻는 것도 가능해?”

“……내게도 두 개가 있어. 하나 줄까? 지금 대장의 외모로는 전락자 취급에서 몬스터 취급으로 변할 뿐이긴 한데.”

“일단 받아둘까.”

이찬유는 품에서 작게 빛나는 뭔가를 꺼내 내게 던졌고, 나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받아냈다.

그것은 굳은 피가 묻어 있는 작은 배지였다.

[생의 증명(350/1,985) 희귀도 레어. 이것을 소지할 경우 배신자들의 마법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

필시 나 이전에 이것을 지니고 있었던 이가 있겠지. 그러나 나는 딱히 그것에 대한 말없이 배지를 품에 집어넣었다. 이찬유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마워.”

“대장이 내게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그래, 그리고 날 대장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있어.”

“얼마든지.”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곧 솔직하게 내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주 조금만.

“까놓고 말하면, 나는 굉장히 빠르게 강해지고 있어.”

“지금도 이미 강한데?”

“그래봤자 중급 몬스터지. 하지만, 앞으로는 아니게 될 거란 얘기야.”

“…….”

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한 것이겠지.

“이찬유, 나도 동료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이야. 단, 그건 내 발목을 붙잡지 않을 경우에나 해당되는 거지. 너는 어떻지? 너는 강해질 자신이 있어?”

“지금 진화를 말하는 거지?”

“그래.”

이찬유는 고민했다. 그러나 곧, 힘 있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진화, 가능하다고는 들었어. 어차피 내가 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고……해주지. 반드시 살아남고 말겠어.”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자.”

나는 검을 뽑았다. 움찔하는 이찬유를 일별하며 나는 안전한 초입을 벗어나 안으로, 안으로 돌진했다.

“잠깐만, 나도. 나도 지금 간다고!”

3층에서 내가 잡아야 할 일반 몬스터는 무려 10만 마리에 달한다. 침입자도 처리하고, 동료와 해야 할 얘기도 마쳤으면, 이젠 숨 쉴 시간도 아껴가며 사냥을 해야 했다!

그로부터 시계바퀴가 다섯 바퀴 반 회전했을 때 나는 드디어 레벨 70이 되었다.

[레벨 업!]

[낙의 정원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련이 날 찾아왔다.

Chapter 17. 낙의 정원 2 [2권 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