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King

Chapter 24. Qualifying 3

심장으로부터 짙고 순수한 진마의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내게 날아드는 마나의 공격이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미약하게 돋아난 날개를 펄럭이며 그것에 포식의 힘을 담아, 이 공간에 가득 찬 진마의 마나를 전부 빨아들였다. 대자연에 가득 찬 마나와 다르게 진마의 마나는 아무 곳에나 널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나를 진마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정확히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은 이 마나는!

[마력이 217 올랐습니다.]

원래 내가 품고 있던 마나를 전부 내버리고 심장으로부터 내 격에 맞는 새로운 마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마력 수치를 기준으로 대략 500 가까이가 소실되었었다. 양을 희생한 대신 질을 높였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 공간에 가득했던 마나를 전부 빨아들인 덕분에 그 절반 가까이는 회복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해야겠지. 사실을 말하자면 같은 양의 마나로 더욱 위력적인 결과를 낼 수 있게 되었으니 엄청난 이득이다.

[진마의 탑 6층을 정복하였습니다.]

[성의 봉인을 풀기 위한 자격 중 하나를 습득하였습니다.]

난 더 이상 농밀한 마나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게 된, 그저 내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되어버리고 만 진마의 탑을 둘러보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내가 진마의 탑에 올 일도 없는 건가?”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한 순간 내 옆에 모습을 드러낸 에이가 단언했다. 내가 그 뜻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 내 어깨 너머로 희미하게 일렁이는 검은 빛의 날개를 보며 더욱 강한 어조로 말했다.

“페이트는 자격을 얻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아직 자격을 얻었을 뿐이다.”

“아직 진마가 아니라는 거잖아. 알아.”

난 가볍게 대꾸하고는 마나를 컨트롤해 진마의 날개를 몸속으로 되돌렸다. 날개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몸속을 흐르는 마나와 합류하여 내 몸을 순환했다.

이것은 딱히 날개를 얻고 싶다고 생각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팔과 다리가 달려있듯, 호랑이에게 꼬리가 달려있듯 진마의 마나를 다루는 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디까지나 그 본질은 마나에 있기에 내 마음대로 거두고 꺼낼 수 있다는 것.

“날개는 우리의 마력 방출량을 조절하고, 외부의 마력을 자신의 영향권에 두기 위해 발달한 도구다. 당연히 날개를 거두고 있으면 전력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날개를 내어두고 있으면 진마라는 사실이 들키겠지. 이미 비에게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어. 진마는 다른 존재들에게 그리 환영받는 이들은 아니지?”

“페이트는 아직 진마의 끄트머리에조차 이르지 못했지만 말이다.”

“…….”

이곳에서 할 일은 마쳤으니 얼른 돌아가 남은 과정을 수행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만 같았다. 난 피식 웃으며 진마의 탑을 나왔다.

그렇게 나오고 나서야 아직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의 의미를 물어보는 것을 까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낙의 정원이었다. 어차피 진마의 탑을 전부 돌파한 상황. 이왕 이렇게 된 것 낙의 정원의 다섯 번째 게임까지 모두 마치고, 만전의 상태로 던전에 도전하는 것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엘은 첫 번째 게임 이래 늘 그래왔듯 테이블에 나른한 모습으로 기대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든 그녀의 눈이 한순간 크게 뜨였다.

“바뀌었구나.”

난 그녀의 감흥어린 목소리를 듣고 내 전신을 둘러보고서야 마나의 변화가 내 육체보다도 내 혼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부 빛과 머리카락을 비롯해 형상화된 내 혼을 이루는 세세한 부분 모두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육신에 혼을 붙잡아두는 것은 결국 마나가 아니던가. 육신은 마나를 생산하고 다루지만 혼은 그 마나와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마나가 변하면 혼에도 변화가 생긴다. 늦게 깨달은 내가 바보였다.

“게임을 끝내려고 왔어.”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여유어린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다섯 번째 게임에선 아직 제대로 버텨낸 적이 없잖아. 그런데 고집만 부려서는 영원히 이곳에 붙잡혀 있게 될 걸.”

“후.”

난 피식 웃었다. 아무 말 없이 테이블에 손을 얹고, 그녀에게 게임의 선언을 재촉했다.

“좋아.”

그녀는 내 태도에 단단히 열 받았는지 얼굴 가득하던 흐뭇한 미소를 지우고는 볼을 두툼하게 부풀리며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손의 움직임을 따라 테이블이 점차로 넓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테이블 위에 점차로 과거 내가 스스로 만든 성과 성벽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게임을 시작하자.”

낙의 정원, 그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게임. 모형으로나마 훌륭히 건조되어 있는 성과 성벽에 모자란 점을 채우는 외장 공사다.

작달막한 모형을 이어 붙여 나는 만들고 붙이며, 그녀는 그것을 무너트린다. 그녀의 방해를 이겨내고 시간 내에 무사히 외장 공사를 끝마치면 내 승리, 그녀의 방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내 패배다.

“못 버티겠지?”

벌써 수천 골드를 이번 게임에 투자했다. 다섯 번째 게임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본 실력의 일부를 내기 시작했고, 그녀의 매혹의 힘은 그동안 철저히 단련되었다고 믿은 내게도 치명적인 위력을 갖추고 있었다.

“자, 여기야. 또 하나가 무너졌는걸.”

엘은 노출도가 심한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그 사실을 자각하고 일부러 느슨한 행동으로 노출도를 높인다. 마력이라고도 생명의 기운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힘을 내뿜어 나를 적극적으로 유혹한다.

“후, 역시 아직은 무리구나. 조금 기대했는데, 실망이야.”

실로 한심한 일이지만, 시선을 빼앗기고 있으면 금방 져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실례되는 일이었다. 그녀의 미모에 무례를 범하는 일이었다.

여태까지는 그랬다. 최상급 3레벨의 상태이상 내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고블린으로 눈을 뜨고부터 지금까지 잠을 자지 않고 버텨온 세월이 억울하게도.

그것은 의지로 어떻게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누구나가 지니고 있는 본능, 혼의 기저에 억눌러 담은 본능을 자극하여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상태이상 내성뿐만이 아닌 다른 어떤 스킬로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번 바

깥으로 나오면, 내게 기다리는 것은 패배뿐이었다.

상태이상 내성이 허울 좋은 가짜라는 것을 나는 다섯 번째 게임을 진행하며 깨달았다. 스킬로는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의 힘이 분명 그녀에게는 존재했다.

‘후우. 이제야 대충 알겠군.’

그러나 진마의 마나를 얻은 순간 나는 그 끄트머리를 붙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모든 것을, 혼을 채우고 있던 한 톨의 마나까지 남김없이 비워내고 새로이 만들어내 채우는 과정 속에서 내 힘을 보다 세밀히 느낄 수 있었다.

‘힘.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가장 강력한 힘.’

너무나 뻔한 얘기일지 모른다. 그녀의 힘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스킬의 영역을 벗어난 힘이 필요했다. 내게는 그것이 바로 포식이었다.

먹어치우는 대상은 그녀의 능력 자체가 아니다. 그녀에 비해 턱없이 격이 떨어지는 내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녀의 능력을 이루는 부분 중에서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것들만 골라서 먹어치운다.

‘찾았다.’

이전엔 불가능했다. 지금은 가능했다.

“……읏.”

게임 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그것은 내가 그녀의 힘의 균형을 무너트리는데 성공했다는 얘기였다. 이를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못내 유쾌했다.

외장공사는 성의 창문, 지붕, 성벽, 그리고 성문에 동시에 이루어진다. 나는 마나로 장난감처럼 쌓인 블록을 조종하여, 수십 번의 실패를 겪으며 내가 구상한 최적의 루트로 그것들을 움직였다.

“아직……아냐. 부족해.”

“충분해.”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은 반칙이다. 크게 휘둘러지는 그녀의 손을 피해 다른 곳의 공사를 마감하며 나는 씩 웃었다.

그녀의 매혹이 한순간 강하게 뿜어져 나왔지만, 육체를 통해서만 발휘되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발전한 포식의 기운이 나의 혼 전체를 감싸듯 피어올라 그녀의 기운 중 내가 손댈 수 있는 일부, 굳이 이름 붙이자면 ‘진마의 기운’을 먹어치웠다.

진마의 마나도 아니고 생명의 기운도 아니고, 죽음의 기운은 더더욱 아니지만 내가 다루는 기운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부분.

이전엔 그것을 따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니 진마와 관련된 기운일 것이고, 오직 포식으로만 그것을 먹어치우는 것이 가능하니 포식과 관련된 기운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녀가 힘을 전부 발휘하고 있다면 단순한 힘의 논리에서 밀려나 맥없이 패배했겠지만, 힘에 제한이 주어지는 게임이기에 이겨내는 것이 가능했다.

“이이이익……!”

그녀의 방해가 점차 늦어져갔다. 그와 반대로 외장 공사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성문이 완공되고, 성벽이 완공되고, 성의 창문과 타일이 전부 제자리를 찾았다. 그녀의 볼이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너무 빠르잖아!”

“진마의 마나를 얻었다는 걸 알았을 때 예상했어야지.”

겉으로 내보이는 것만큼 여유로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녀의 막강한 힘 중에서 진마의 기운을 골라내는 것도 힘들었고, 그것을 포식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온전한 기운이 아니기에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소모되어가는 혼의 힘을 완벽히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기운을 먹어치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힘을 주었다. 무력하게 당하고 살아온 나날의 반동으로, 내가 상대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나는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감지와 무술, 그 외에도 내 움직임에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기운을 운용했다. 그녀의 움직임을 읽어내며 스스로 정한 규칙에 묶여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마지막 하나, 본관에서 떨어져 나와 서쪽에 덩그러니 자리한 첨탑의 최상층을 마무리하려던 그때 그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낙의 정원 다섯 번째 게임에 승리하였습니다.]

[성의 봉인을 풀기 위한 자격 중 하나를 습득하셨습니다.]

그녀의 반칙으로 내 승리가 확정되었다. 납득할 수 없어 고개를 들던 그때 엘이 내 손을 놓고는 손을 휘저었다.

마지막 부품이 허공에서 두어 바퀴 회전하여 그 색과 빛을 바꾸더니 최상층으로 날아들어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절로 입 밖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엘이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의문을 무시하고서.

“네 승리야.”

“방금 그건?”

“아직은 몰라도 돼.”

이를 북북 가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와 나는 완성된 성을 바라보았다. 장난감이라지만, 그것은 제법 그럴듯했고 웅장했다. 더구나 세심한 손길로 완성된 실용품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소인국의 주민이었더라면 그 안에서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연 이 게임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어떠한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앞으로의 내게 끼치는 영향은 어떨 것인가. 어쩌면 성의 봉인을 풀 자격을 얻었다는 것과 저 장난감 성이 연관이 있을까.

모른다. 스스로 성을 마무리해버린 후 얼굴을 붉히고 있는 엘에게 물어봤자 답을 들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묻지 않았다. 이 녀석들의 비밀주의에도 나는 제법 익숙해진 후였다.

“이제 다 끝났잖아? 빨리 가버려.”

“그래.”

그러나 엘의 말대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의 인상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난 또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여자가 그런지는 몰라도, 엘은 정말 귀찮은 존재다!

난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스륵 주저앉았다. 여전히 험악한 인상으로 나를 째려보는 엘에게 난 조심스레 물었다.

“조금 시간이 남았는데 여기 잠시 머물러도 될까?”

“흥, 조금이라면. ……시간이 남아?”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다가 말았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진화를 하게 되면 신인의 전장에 못 가게 될 수 있어. 그곳에서의 일을 정리해야 하거든. 일행도 있으니 인사 정도는 해둬야지.”

“……나가.”

“뭐? 아니, 잠깐.”

“바보!”

순식간에 낙의 정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나는 영문을 몰라 신인의 전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그 순간까지 고민해야 했다.

Chapter 24. 자격 갖추기 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