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King

Chapter 29. Magic Night 1

1. 얼카인드는 전락자의 탐색에 인원을 분배한다. 그로 얻어낸 정보는 모두 리벨리온과 공유한다.

2. 리벨리온은 발견된 전락자를 리벨리온의 테임드 몬스터로 복속시키는 조건으로 얼카인드에 협조한다.

3. 양측 길드는 인간, 엘프, 몬스터와 대립하게 되는 모든 상황에서 한 쪽의 요청이 있을 경우 지원한다.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면 몇 가지 조항이 더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대충 이 정도였다.

“얼카인드는 지금까지처럼 전락자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인간이나 엘프와의 충돌은 피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우리가, 내가 전락자를 거둔다. 동맹 형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니지? 더구나 너희 길드의 궁극적인 목적을 보다 부드러운 방법으로 이룰 수 있고.”

“······뭘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너는 결국 전락자를 구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단지 우수한 전력을 원하는 거야?”

“내가 뭘 생각하는지 보다는 이 동맹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너와 네 길드가 이룰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

여동생은 볼을 부풀리고 한참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나는 납득했어. 하지만 그 전에 우리 길드 멤버들에게 물어봐야 해. 당신들의 방식에 협조할 수 있겠느냐고. 전락자를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이 보호하는 것에 불만이 없느냐고.”

“불만이 있으면?”

“그들을 내보내야지.”

생각지 못한 대답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러나 여동생은 한번 마음을 굳히고 나자 기이할 정도로 단호했다.

“내부의 의견이 나뉘면 나중에 힘들어져. 길드 규모가 조금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괜찮지?”

“그래.”

“그래, 그럼 다녀올게. 기다려.”

“다녀와라.”

여동생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너······.”

“왜?”

“아니, 역시 아무것도 아냐.”

녀석의 동작과 말 하나하나가 날 철렁이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여동생은 작게 웃으며 돌아섰다.

그렇게 우선 여동생이 이끄는 얼카인드의 무리가 돌아가고, 성에는 날 포함한 리벨리온의 인원들만이 남았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마음에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이찬유가 물어왔다.

“얘기는 잘 된 것 같은데 왜 그래? 저쪽도 제대로 납득했잖아.”

“아니, 동맹 자체엔 문제가 없어. 단지······.”

양쪽의 목적을 이루기에 합당한 동맹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한편으로 여동생에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리벨리온과 동맹 관계가 된다는 것은 결국 언젠가 우리와 같은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 이래서야 내가 여동생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이 거의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처음 생각대로 멀리에서 지켜보기만 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그만 처음 생각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이찬유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저쪽이 더 위험해질 뻔한 상황에서 붙들어준 거잖아? 백 번 절해 감사를 표해도 모자라지. ······그래서.”

그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어왔다.

“그 여자애가 마음에 들었지?”

“······.”

대체 뭔 소린지 몰라 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찬유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마음은 알아. 풋풋하고, 예쁘고, 몸매도 좋지. 허구한 날 해골바가지, 시체, 늑대 대가리만 마주하다가 그런 애랑 만났으니······.”

“그런 거 아닌데.”

“정색할 필요 없어. 난 대장한테 큰 은혜를 입은 몸이잖아! 대장이 얼마나 힘들고 퍽퍽한 삶을 살아왔는지는 잘 알지. 사랑은 분명 대장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쓸데없이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이찬유의 머리통을 쥐어박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에 커다랗게 낸 창문 너머, 성벽에 기대어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카인과 눈이 맞았다.

[계속해라. 실로 오랜만에 보는 따스한 대화에 조금 행복을 느끼던 참이었는데.]

“네 말은 하나하나 너무 무거워.”

“뀨이.”

솔라스와 함께 그 자리에서 기지개를 켰다.

처음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저 막연한 예상을 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카인이라는 든든한 동료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동생의 길드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갖추는 성과를 낳게 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엘라카트라에게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셈이 되었다. 앞으로의 행보에 놈들의 견제가 없으리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그러니 더욱 강해져야 한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래도 오늘은.

“오늘은 마실까.”

이찬유가 경악했다.

“대장하고 가장 안 어울리는 말 같은데.”

“나는 몰라도, 카인에게는 휴식이 필요해. 그러니 오늘 하루만 쉬자는 거야.”

[술이라. 지금 나의 몸을 취하게 만들려면 와인 한 병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카인이 그렇게 대꾸하며 피식 웃었다. 거대 오우거의 웃음이 실로 살벌했다.

“취할 때까지 먹여주지, 기대해. 대신 내일부터는 좀 힘들어질 거야.”

[약속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라는 건가. 각오하겠다.]

그가 엄숙한 어투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드니 어느덧 맑은 달이 밤하늘에 떠 있었다. 술에 취하기 딱 좋은 밤이었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라카트라, 전락자, 인간, 카오스 소울, 던전. 우리에게 얽힌 문제는 많았지만 해결책은 단 한 가지였다. 바로 강해지는 것.

그중에서도 내 최우선적인 목적은 내 휘하에 속한 이들을 상위 체계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성장하기 위해서는 강한 적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많이 알려진 던전은 대형 길드의 독점 하에 놓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새로운 던전을 찾아 나서자니 서울은커녕 국가를 넘어야 할 판.

“가는 곳마다 우리 족적을 남기고 다니는 건 좀 그렇지?”

“막 인간 사회에 복귀했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힘들지.”

[미안하다. 내 덩치가 발목을 잡는군.]

“아니, 네 잘못이 아냐. 처음 계획과는 달리 제법 요란하게 활동을 한 내 탓이지.”

“그래. 카인 네 덩치는 더할 나위 없는 강점이야.”

“뀨우.”

그렇기에 남는 방법은 하나였다. 나는 이찬유와 카인을 돌아보며 잠시 생각했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이찬유, 성채를 지킬 몬스터 몇 마리만 남겨둬.”

“설마 우릴 데려가려고?”

처음엔 싫은 건가 했지만 이찬유의 눈빛은 맹렬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여태까지 이찬유를 내게 동행시킨 적이 없었다. 그는 여태까지는 일부러 그것에 대한 언급을 피하며 나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역시

궁금한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난 쓴웃음을 지으며 문의 크기를 보다 키웠다. 그리고 우리를 망연히 내려다보고 있던 카인에게 손짓했다.

“가자, 카인. 강해져야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따라가지. 어디까지고.]

“오셨군요, 페이트 님.”

비는 설령 내 뒤에 백만 대군이 서 있다 한들 동요하는 일 없이 언제나처럼 인사하겠지. 나는 그의 인사를 받아 넘겼다. 내 뒤에 서 있던 카인과 이찬유는 본능적으로 힘의 차이를 알아봤는지 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엔 지구의 던전을 찾아볼까 했지만 조금 사정이 있어서, 이쪽으로 부하들을 데려오게 됐어요.”

“좋은 타이밍입니다, 페이트 님. 안 그래도 시일이 가까워져오고 있었으니까요.”

“시일이라니?”

비가 언제나처럼 웃으며 내게 말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지하에도 페이트 님께서 신경 쓰여야 할 것이 있다고.”

“엘?”

“그녀보다는 덜 중요한 것입니다만.”

웃음이 쓴웃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들은 성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참으로 곤란하지요. 여태까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공간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괜찮았지만······.”

“혹시 그건 엘이 밖에 나와 있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

성벽 위, 바람에 펄럭이는 드레스 차림으로 선 엘이 보였다. 그녀는 줄곧 나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뿐 만인가? 진마의 탑을 정복한 이후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에이도 지금은 엘의 지척에 서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엘은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혹시 그 시기라는 건 ‘마의 밤’을 말하는 거······업니까?”

[마의 밤이라니, 혹시······?]

내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찬유가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그러자 카인마저 덩달아 반응했다. 더 놀라운 것은 비의 반응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잘 알고 있군요, 두 분. 하지만 여태까지 겪어온 것을 생각하면 큰 일이 날 겁니다.”

“마의 밤이 뭐길래요?”

“‘마’가 최초로 태동한 밤. 모든 마가 충돌하는 밤. 지하가 숭앙하는 절대적인 하나의 룰입니다.”

비의 못 알아먹을 말을 이찬유가 해석해주었다.

“서바이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언제 한 번 말해준 적 있잖아? 지하의 전장. 조금 더 공격적인, 조금 다른 몬스터들을 맞이해 미친 듯이 싸우는 곳이야. 그중에서도 마의 밤이라는 때가 오면······.”

[경험치의 효율이 상승한다.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싸우는 숭고한 의식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마침 지금이 그 시기였지.]

카인이 그렇게 말하며 발을 내딛었다. 그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잘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그곳에서는 강해질 수 없었어.]

“하긴, 나도 마찬가지였지. 어찌 보면 좋은 기회야.”

카인과 이찬유는 의기투합을 하며 둘이서 전의를 다졌다. 둘의 대화 속에서 나 역시 대략적이나마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어쨌든 마의 밤인지 뭔지가 오면 마족들이 이 성으로 몰려온다는 것 맞죠?”

“부나방 같은 것들이지만, 성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저희들에게는 성가신 상대이지요. 저희 몸은 몰라도, 성을 완전히 지키기란 힘들어지니까요.”

비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셋은 방어에 주력하겠습니다. 실로 송구하지만, 페이트 님. 요격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비나 엘처럼 강한 상대가 오는 건 아니겠죠? 아직 거기까지는 자신이 없는데요.”

“걱정 마시길. 그처럼 강한 이는 이제 이 지하에는 거의 남지 않았으니까요.”

비의 어조가 못내 씁쓸했다. 그러다 말고 이크, 어깨를 움츠리며 내게 말했다.

“이 이상 페이트 님을 붙잡고 있다간 나중에 엘에게 단단히 혼나겠군요. 페이트 님,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가볍게 포옹이라도 하고 오시지요.”

“그 말 그대로 전해주고 올게요.”

“앗, 페이트 님!”

비를 당황시키는 데에 성공한 나는 씩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찬유가 그제야 엘을 인식하곤 나를 멍한 얼굴로 보며 말했다.

“대장, 양다리?”

“양다리는커녕 외다리도 걸쳐 본 기억이 없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점차 검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곧 마의 밤이 덮쳐올 테고, 그렇게 되면 대량의 마물, 마족과 전투를······ 어째 제법 익숙하다.

그러고 보면 던전의 대량발생도, 신인의 전장에서의 유티누스의 바람도 이 마의 밤이라는 것과 상당히 닮아있지 않은가.

우연? 그럴 리가 없지. 처음부터 연관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 셋의 기원이 같거나.

엘라카트라, 배신자. 어쩌면 엘라카트라는, 혹은 그 수장은 과거 지하와 깊은 연관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점점 나와 비, 과거에 얽힌 일들이 현실로 모습을 바꾸어 덮쳐오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달가웠다. 내가 점점 강해진다는 증거인 것만 같았다.

어쨌든 직접 이것을 겪어보면 확실해질 것이다. 유티누스의 바람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장.”

“왜?”

“저기 저 엘프는 뭐야?”

“아.”

난 고개를 돌렸다. 여태까지 엘에게만 신경이 향하고 있었지만 그와 조금 다른 방향에 활을 들고 선 채인 엘프, 미레이나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신을 이제야 인식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

은 얼굴이었다.

그것을 본 이찬유가 깨달았다는 얼굴로 외쳤다.

“양다리도 아니고 세 명!?”

“너, 연애 관련 얘기로는 내 생각보다 귀찮게 달라붙는구나······?”

난 조금 생각했지만, 곧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너랑 똑같아, 내 부하야.”

“대장은······ 연애 쪽으로는 완전히 꽝이구나······.”

어째 어딜 가나 하는 일은 똑같지 않은가, 하고 쓰게 웃으며 나는 성벽 위에 올랐다.

곧 마의 밤이 닥쳐온다.

Chapter 29. 마의 밤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