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King

Chapter 32. Growing Guild 4

이전 검은 궁전을 정복했을 때에는 별다른 알림창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던전의 보스가 죽자마자 내 눈앞으로 알림창이 나타났으며, 내가 반응을 보이기 전 던전이 통째로 일그러지며 무너져 내렸다.

어째서 다른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그때의 나는 상위 개체도 아니었을 뿐더러 성의 봉인도 풀지 못했다. 그저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투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성주의 입장에 있다. 그리고 던전은 본디 지하에 속해 있던 것으로, 내가, 우리 일행이 보스를 꺾고 나자 마치 마의 밤을 이겨낸 그때와 같이 자연스럽게 지하의 성채에 복속되었다는 얘기다.

사정을 알고 보면 실로 간단했다. 비록 겪기 전까지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허공에 떠오른 검은 음영 속으로 던전을 구성하는 마나가 빨려 들어갔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하로, 그것도 내 성채로 통하는 통로는 나밖에 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던전을 내달리며 여동생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물론 내가 해줄 말은 정해져 있었다.

“나라고 알 것 같냐!”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만약 비가 내게 미리 이런 사실들을 알려주었더라면 절대 그녀와 함께 던전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

‘제기랄, 또다시 그에게 의존하려고 하고 있네.’

속으로 혀를 찼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 또 내게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만 자신이 한심했다.

스스로 말하기도 뭐하지만 난 대융합이니 던전이니 하는 것들과 제법 깊게 연관된 모양이다. 언제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미리 알고 피한다, 같은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기 보다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나으리

라.

바깥으로 빠져나와 간신히 우리 일행을 대상으로 은신 마법을 발휘했을 때 던전이 완전히 소멸했다. 붕괴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곳에 던전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던전 ‘슬라임 케이브’를 지하 영역으로 완전히 흡수하였습니다.]

[레벨 업!]

[신마력이 1 올랐습니다.]

[혼마력이 2 올랐습니다.]

오직 내게만 떠오른 알림창 하나. 나는 그것을 조용히 닫으며, 설령 내 수준에 맞지 않는다 해도 던전을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경험치와 스테이터스가 상승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로 몸 안에 차오르는 힘이 그것을 증명했다.

주위에 누구도 없었다면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 너무 좋지 않은가.

지구에 새로이 나타난 던전을 정복하는 것으로 던전 자체는 지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지하의 내 영역에 새로운 힘이 되어주며, 이찬유를 비롯한 일행은 성장이 가능하고 나 역시 던전을 흡수한 대가로 힘을 얻는다.

아깐 그저 당황할 뿐이었지만,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이야말로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반격의 깃발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일행이 모두 던전의 소멸을 보며 얼음처럼 굳어있던 가운데 여동생이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한다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아? 지금 던전이 사라졌다고. 대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지구를 위협하던 가장 치명적인 요인이 깨끗이 소멸했단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어?”

여동생은 다른 여러 감정보다도 당황에 가득 차 외쳤다. 얼카인드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것만 봐서 여전히 치기어린 꼬맹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제법 논리적인 생각도 할 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고 말았다.

“왜 웃는 거야!”

“네가 지나치게 흥분을 하니 오히려 더 침착해진 거야.”

말과 함께 추가로 마법을 구사해 우리를 주위에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한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주위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방심은 허락되지 않는다.

“여기서 당황하고 서 있어봤자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어째서 던전이 소멸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니고. 그렇지?”

“그건, 그렇지만······.”

여동생이 할 말을 잃었다. 난 빠르게 뒤를 이어 말했다.

“더구나 던전이 소멸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우리 행동이 변하지는 않잖아?”

“그것도 그래.”

“그러면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자. 알겠지?”

“그래······ 으음.”

여동생이 순순히 납득하는 듯하면서도 날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아니 그냥. 너, 가끔씩 꼭······.”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또 무슨 실수를 했단 말인가. 그러나 다행히도 여동생이 말을 잇기 전 한지아가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시연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이게 길드 마스터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어.”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여고생 둘을 놔두고 고개를 돌리니 이찬유가 내게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고 있었다. 대충 그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었기에, 그 손가락을 꺾어놓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우선은 참기로 했다.

우리는 던전 탐사를 이어나갔다. 얼카인드가 제공하는 최적의 루트를 통해 차례로 던전을 부숴버리기를 반복했다.

단층 던전은 그대로 돌파해 보스까지 격파하고, 설령 복층 던전일지라도 그대로 돌파해 보스까지 격파한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던전은 여동생과 한지아, 이찬유와 미레이나가 맞서기에 적당한 수준을 지니고 있었기에 경험치의 수급에는 어려운 점이 없었다.

처음 던전을 격파한 이래 우리는 은밀히 숨어 다닐 것을 결의했다. 한두 개도 아니고, 우리가 던전을 차례대로 소멸시키는 과정에서 그것을 알아차린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주의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엘

프였다.

엘라카트라가 아닌 인간이라면 결코 우리를 잡아낼 수 없다. 설령 엘라카트라에게 들킨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위장을 한 상태이므로, 준비는 만전이었다.

“엘프?”

“그래.”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여섯 개째의 던전을 소멸시킨 후, 위장을 갑갑해하며 내게 따지려드는 여동생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엘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드워프의 출몰 당시 나와 같은 현장에 있었던 한지아는 엘프들의 이질적인 기운에 대해 이미 느끼는 바가 있었던지 순순히 내게 따랐지만 여동생은 참지 못하고 내게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우리가 클리어한 던전만 소멸하고 있으니 일단 숨어서 행동하자는 의견에는 공감해. 하지만 어째서 발각될 경우 엘프가 우리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던전은 인류에게 있어 위협이잖아?”

“그래.”

“그 위협을 우리가 없애고 있기 때문이겠지.”

“······.”

물론 실제로는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엘라카트라의 수뇌부, 그 우두머리에 이르러서는 던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쩌면 지하의 마족들이 간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내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행동을 들키게 될 경우, 자연스럽게 내가 지하와 관련된 인물일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설마 그 우두머리 본인이라는 자가 직접 날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엘라카트라 중에 나보다 강한 이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니 우선 들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아직 조우하지도 않은 위협에 굴복해 던전 흡수를 멈출 수도 없다.

이 일들을 여동생에게 설명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앞뒤 다 떼어버리고 단순한 주장만으로 여동생을 설득했다.

“너도 여태 그들의 행동을 지켜봐왔으면 알 텐데. 그들이 결코 인간의 편이 아니라는 걸.”

“그야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시연아, 내가 말했잖아. 그때 엘프들 모습은 정말 이상했어. 드워프가 지상에서 숨을 쉬는 것도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어.”

“이제 친구가 아닌 척하는 건 완전히 포기했군.”

여동생과 한지아가 앗, 하고 늦어도 한참은 늦은 반성을 하는 가운데 내가 조용히 말했다.

“엘프는 동족 외의 모든 생명체를 증오해. 전락자, 몬스터, 드워프를 대하는 놈들의 태도는 언제나 일관되게 같았지. 그런데 그것이 인간에게만 다를까?”

“다른 거······ 아냐?”

“같아. 단지 감추고 있을 뿐이야.”

“어째서? 인간이 무서워서?”

방향성은 옳았지만 답이 틀렸다. 난 피식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서 위협적이기 때문이야. 따라서 어떤 수단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우위를 확보하기 전에는 인간들에 대한 적의를 감추고 있는 거지.”

“······꼭 인간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아.”

“아마도.”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엘프와 적대한다는 것의 무게를 실감한 것일까, 여동생과 한지아의 말이 유난히 줄어들었다. 그것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인간과 적대하고 싶지 않은 엘프 미레이나가 그녀들에게 활기차게 말을 걸었다.

설령 종족이 다르다고는 해도 어여쁜 여자 셋이 뭉쳐있는 모습은 보기가 좋다. 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이찬유를 이제 막 도착한 던전 입구로 차버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다음 던전은 더 빠르게 끝내자고.”

2주일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서울은 물론이고 한국 내의 위협적인 던전 대부분을 정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 레벨은 10이 올라 40레벨이 되었고, 이찬유와 미레이나도 슬슬 상위 개체로의 진입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수준까지는 이르렀다.

98개째의 던전을 격파하고 나자, 여동생과 한지아는 놀랍게도 클래스 체인지를 겪었다. 전락자와 몬스터에게 있어서의 진화, 엘프에게 있어서의 ‘천명’, ‘신명’과 같은 인간만의 변화다.

진화와 이름만 다를 뿐 존재의 구성 요소가 모두 현격히 업그레이드되며, 기존의 능력은 강화되고 없던 능력이 생겨나는 둥 실제 일어나는 일은 비슷비슷했다.

나는 여태 진화를 많이 보아왔기에 둘의 능력이 증가하는 것을 보고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본인들은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었다.

“더 이상은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그러게. 처음 클래스는 산적하고 견습 용병이었는데, 그치?”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을 연속해서 격파한 적은 없었어. 어쩌면 그것 덕분일까.”

둘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미 과거에 세 번 정도 클래스 체인지를 겪은 모양이었다. 이번 클래스 체인지로 신체적으로도 보다 성장하여 키와 몸매가 발달하는 것을 보며, 여동생이 나이를 숨기고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물론 자세히

보고 있으면 변태 취급을 당할 것이 뻔했기에 곧 시선을 돌렸지만.

“고마워, 페이트. 네가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야.”

“고, 고맙습니다.”

“우리도 도움을 받은 건 마찬가지야.”

서울 내에서는 몰라도 한국 전역에 이르는 던전의 정보를 망라하고 가장 빠른 루트를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는 이들 중에는 얼카인드밖에 없다. 전락자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만들어진 길드 내의 정보망과 멤버들의 단결력이 우리에게까지 도움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 내에는 우리가 건드려볼 만한 던전이 없어.”

“한국 너머까지는 정보망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사실 저희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한지아의 솔직한 발언에 여동생이 책망하듯 그녀를 마구 때렸다. 난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너희가 어떤 마음으로 길드를 만들어왔을지 이해는 충분히 했다.”

“그걸 알면 앞으로 우리 연락에는 바로 대응해줘.”

여동생의 말을 듣고 생각이 났다.

“이찬유.”

“여기.”

이찬유가 내게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그와 내가 나누어 가지고 있는 통신 기능 첨부 아티팩트였다. 그것을 여동생에게 내밀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앞으론 그걸로 연락해. 메시지의 교환 정도라면 가능하니까.”

“정말?”

여동생이 곧장 아티팩트를 착용하고는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대꾸하자 어안이 벙벙해지는 모습이 귀여웠다.

“정말이잖아.”

“시연아, 잘 됐······으붑.”

여동생이 아티팩트를 갈무리하고 한지아를 두들겨 패는 모습을 확인한 후 돌아섰다.

“우선 해산할까. 만약 다음이 있다면 그때 다시 부탁하지.”

“나야말로······ 그, 전락자 건도 있으니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연락할게.”

“용무가 있을 때만 해도 충분해. 너희도 바쁠 테니까.”

여동생이 내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 목소리도 모습도 전부 달라졌을 터인데 벌써부터 의심을 받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냉정하게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여동생은 섭섭해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그러면 우리는 이만.”

“아······ 알았어.”

“대장, 이제 어떻게 할 건데?”

“페이트, 나는 우선 자고 싶어!”

아직 한국에도 던전이 조금 남아있기는 할 테지만 그중 절대다수가 원 플래그와 같은 대형 길드의 영역권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곳이다. 그들이 두려운 것은 전혀 아니지만,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드느니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셈이었다.

“던전이 나타난 건 우리나라만이 아니니까. ······슬슬 외국에도 시선을 돌려볼까.”

“나 잠은 언제 자는데!?”

“상태이상 내성을 얻을 때까지 힘내.”

“응, 알았어! ······그거 못 잔단 얘기 아냐!?”

비의 말에 따르면, 마의 밤이 오기까지 남은 기간은 앞으로 한 달하고도 반. 그 안에 과연 얼마나 많은 던전을 무너트리고, 흡수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울상을 짓는 미레이나와 여고생들에게 미련이 남은 이찬유를 질질 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Chapter 32. 길드 성장 4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