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일천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후기지수들을 불러들였다.

“우선 무사히 돌아왔다니 다행이구나.”

“면목 없습니다, 아버님.”

웬 폭탄을 끌고 온 셈인 남궁호는 머리를 푹 숙이고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다른 후기지수들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허… 형님이 제대로 손도 못쓰고 패하셨다고?”

“그렇습니다.”

전에 유리우스에게 떡이 되도록 얻어맞은 남궁황은 지금 정도연합을 이끌고 있는 남궁일천의 형이었던 것이다.

‘형님께서는 실력은 확실하지만 다소 성급하고 격정적인 면이 있으시지. 그래도 젊은 아이들의 말이니 한번 걸러서 들으셨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의 얼굴이 놀라움과 걱정으로 물들더니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연다.

“후… 상대가 그 정도의 고수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네 성급한 행동으로 세가의 명성에 누를 끼치게 되었구나.”

“소자에게 벌을 내려주십시오.”

남궁호는 아예 머리가 바닥에 닿을 기세로 허리를 굽혔다.

근래 남궁세가는 오대세가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가장 큰 성세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고수인 남궁황이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색목인에게 패한 것이 알려진다면 그 명성에 큰 흠집이 날 것이다.

‘하지만 골치 아프게 되었군. 이 아이들의 말을 들어 보니 이건 이쪽에서 먼저 시비를 건 탓이 큰데.’

공명정대한 성품의 남궁일천으로서는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 터진 것이다.

‘이대로 놔두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이쪽에 잘못이 있는데 명예를 회복하겠답시고 그것을 물고 늘어질 수도 없으니.’

하지만 그는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꼭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단 유리우스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일단 그 색목인 대협에 대해 여기까지 오면서 느낀 점이나 알아낸 사실을 말해 보거라.”

* * *

잠시 뒤.

후기지수들에 이어서 두 번째로 불려온 사람은 바로 괴개라고 불리는 구천걸이었다. 배분도 높거니와 괴팍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기에 남궁일천의 어조는 조심스러웠다.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흥! 빈말은 집어치우고 이 늙은이는 왜 불렀나?”

구천걸은 매우 기분이 안 좋은 듯 삐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기야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

남궁일천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면서 후기지수들에게 들었던 믿기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아이들에게 들어보니 그 색목인과 신법대결을 하셔서 패했다고 하시는데, 사실입니까?”

“이미 알면서 왜 물어보나? 자네가 보고받은 바와 똑같네.”

남궁일천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사실 확인을 위해 물어볼 것은 물어봐야 했다.

“제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그 내기의 결과로 수하로 들어가셨다고…….”

그 말이 나온 순간 구천걸은 표정이 완전히 구겨졌다.

“자네… 날 놀리려고 불렀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워낙 믿기지 않는 일이라서 말입니다. 허허…….”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남궁일천을 보면서 구천걸은 혀를 찼다.

“쯧! 그럼 이제 가도 되겠구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남궁일천이 황급히 제지하자 구천걸은 귀찮다는 듯이 뒤를 돌아봤다.

“아, 왜!”

“그 색목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선배가 순순히 따라온 것을 보니 악인은 아니겠지요?”

“나도 몰라!”

쿵!

더 이상 대답하기도 귀찮은지 구천걸은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아!”

그대로 나가려고 하던 그는 곧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돌렸다.

“충고해 두는데, 체면 차린답시고 쓸데없는 짓은 가능한 하지 말게. 나처럼 개망신만 당할 테니.”

남궁일천은 뜨끔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 일 없다면 그거로 됐고.”

쿵!

문이 닫히자마자 구천걸은 히죽 웃었다.

“난 분명히 경고했는데 세가의 명예를 하늘같이 생각하는 저놈이 그걸 들을 리가 없지. 조만간 좋은 구경거리가 생기겠어.”

그리고 그도 유리우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기도 했다. 무언가 떠오를 것 같은데 감이 잡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 색목인… 아니 젠장! 주군의 이름이 유리우스라고 했나? 분명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긴 한데 말이야…….’

구천걸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처소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제갈세가의 처소에 있던 유리우스에게 뜻밖의 손님이 방문했다.

제갈운현과 차를 마시고 있던 유리우스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날 찾아왔다고 했나?”

방문자의 정체는 바로 한 무리의 고수들을 이끌고 방문한 남궁일천이었다.

“그렇습니다. 듣자 하니 본 세가의 식솔들이 대협에게 폐를 끼쳤다고 하더군요. 사과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건 이제 신경 쓰지 않네. 나도 대뜸 손을 쓴 것은 미안하니.”

유리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에는 재수가 없다고 여겼지만 괜찮은 수하도 얻었고 결과가 상당히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남궁일천은 그냥 묻어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강호에서 은원은 확실히 해야지요. 본 세가를 대표해서 사죄드립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사과는 받겠는데…….”

고개를 살짝 숙이는 그를 보면서 유리우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성격이 좋은 건가? 아니면 따로 속셈이 있겠군.’

그동안 이 동대륙에서 만난 자들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구천걸이나 남궁황같이 뛰어난 고수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컸기에 서대륙으로 치면 초인씩이나 되는 남궁일천이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상당히 낯설었던 것이다.

“하하! 이 친구가 원래 성격이 좋은 편입니다. 주군께 범한 무례가 어지간히 마음에 걸린 모양이지요.”

제갈운현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둘의 교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일천은 은근한 눈빛으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운현, 우리의 우정을 봐서라도 이번 일을 말리지는 말아주게.]

[나는 말릴 생각이 없다네. 마음대로 해도 돼.]

제갈운현이 안심하라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짓자 남궁일천은 그제야 두 번째 용건을 꺼냈다.

“실은 사죄 외에도 대협에게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어서 왔습니다.”

“그게 뭔가?”

그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아서 유리우스에게 포권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일천이 비무를 청합니다.”

“비무?”

낯선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리우스를 보고 제갈운현이 설명을 해주었다.

“서대륙으로 치면 대련을 의미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비무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요. 안 그런가?”

남궁일천도 맞장구를 쳤다.

“물론 친선 비무입니다. 서대륙에서 오셨다고 하던데 오래전부터 그곳의 검법을 견식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려울 것은 없지.”

유리우스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본 바로 남궁일천의 사과 자체는 틀림없이 진심이었다. 이번 비무도 왜 요청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에게 딱히 악감정을 가진 것은 아닐 터.

그가 비무를 받아들이자 남궁일천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래 제갈운현이 뜯어말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그는 흔쾌히 비무에 동의한 것이다.

“그럼 주군 측의 참관인은 내가 맡도록 하겠네.”

“이쪽은 세가의 고수들이 참관인이 되기로 하지.”

양측의 동의가 이루어지고 두 사람은 정도연합이 주둔하고 있던 마을 중앙의 공터에 모였다.

유리우스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정도연합의 고수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삼삼오오 공터로 몰려들었다.

웅성웅성.

“저자가 그 소문의 색목인 고수인가? 듣자 하니 제갈세가를 휘하에 두고 있다던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군.”

“남궁세가 측에서는 무려 남궁일천 대협이 나서신다던데?”

“그럼 결과는 당연히 남궁세가의 승리겠지. 저 색목인이 잘 몰라서 비무를 받아들인 모양이야.”

모인 무림인들은 유리우스에 대한 소문도 들었으나 대부분 남궁일천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사실 구천걸은 무림에서 신법의 제일고수로 유명하지만 무공으로만 따지면 사대고수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는 편이었다.

거기다 남궁일천은 사대고수 중에서도 무림맹주인 백학검선을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고수이기에 어쩌면 이런 추측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하네.”

스륵.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뽑은 남궁일천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상대도 만만치 않겠지만 최대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가 유리우스에게 별 악감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무를 청하러 온 것은 바로 세가의 명예 때문이었다.

명색이 가주의 형인 남궁황이 손도 못 써보고 패했다는 소문이 알려지면 세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무림에서 명예라는 것은 참으로 민감한 부분으로 유리우스가 나이가 있거나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라면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강호의 소문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닌 것이다.

무명의 유리우스에게 남궁세가 전체가 아래로 평가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세가의 제일고수인 남궁일천이 이번 비무에서 유리우스를 꺾을 필요가 있었다.

‘운현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이번 비무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남궁일천은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아마 제갈운현은 친구인 자신을 봐서라도 적당한 선에서 비무를 마칠 것이라고 믿고 동의한 거겠지만 가주로서의 책임이 있는 이상 그는 최선을 다해 유리우스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

“쯧! 일천 그 친구는 대강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오히려 내가 자네한테 미안하지.”

제갈운현은 혀를 차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것을 끊임없이 참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기로 할까?”

유리우스가 검을 뽑아서 남궁일천을 겨눔과 동시에 비무가 시작되었다.

“합!”

남궁일천은 전력을 다해 유리우스를 상대할 생각이었기에 첫 수부터 비기를 꺼내 들었다.

파지직!

그의 검이 푸르게 빛나며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에게 뇌룡이란 별호가 붙은 이유였다.

누아다의 파괴는 새하얀 벼락의 형태를 지녔을 뿐이지, 번개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남궁일천의 비기는 실제 검에 주입된 진기를 푸른 전류의 형태로 바꿀 수 있다.

쿠르릉!

푸른 벼락으로 변한 남궁일천이 유리우스에게 가차 없이 검을 내리쳤다. 둘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린다.

카캉!

“이런!”

“물러나라!”

설마 남궁일천이 처음부터 저렇게 무서운 공격을 할 줄은 몰랐기에 모여든 무림인들은 여파를 피하기 위해 분분히 물러났다. 물러나는 그들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그 색목인은 이제 뼈도 못 추리겠는데?’

하지만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콰앙!

“헛!”

“이럴 수가…….”

격돌에서 튕겨진 것은 오히려 남궁일천이었던 것이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몇 걸음 물러났다.

“큭!”

그도 노련한 고수답게 금방 다시 자세를 잡는다. 설마 새파란 젊은이인 유리우스에게 이렇게 맥없이 격퇴당할 줄은 몰랐기에 그의 얼굴은 한층 심각해졌다.

유리우스는 제자리에서 검을 한번 휘두르는 것으로 그의 공격을 막고 이어지는 공격으로 그를 쳐낸 것이다.

남궁일천은 굳은 표정으로 다시 유리우스에게 뛰어든다.

‘내가 잘못 생각했군.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콰아아아!

이번에는 수십 줄기로 갈라진 벼락이 유리우스의 전신을 노려왔다.

그 벼락 한 줄기, 한 줄기에 담긴 위력은 실로 놀라워 근처의 나무나 땅에 스치기만 해도 그 부분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구경꾼들은 처음에는 몇 발자국 물러났을 뿐이지만 격돌의 여파가 점점 커지면서 곧 멀찍이 거리를 벌려야 했다.

그러나 이런 가공할 공격을 퍼붓고 있는 남궁일천의 안색은 별로 좋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대부분 그들의 움직임을 식별하지도 못했지만 유리우스가 그 공격에 맞서는 것을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허어…….”

“저 젊은 색목인이 남궁 대협을 저 정도로 애먹게 하다니.”

남궁일천이 벼락이라면 유리우스는 철벽이었다. 그는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오는 번개를 모두 정면으로 쳐낸다.

구경꾼들은 잘 몰랐지만 그로 인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남궁일천의 안색은 점차 어둡게 변하고 있었다.

얼핏 팽팽하게 보이는 승부였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움직임은 뚝 멈췄다.

챙!

검이 부딪힌 반동을 이용해 훌쩍 거리를 벌린 남궁일천은 창백한 표정으로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구경꾼들은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

물러난 남궁일천은 한동안 복잡한 표정으로 유리우스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체념한 얼굴로 검을 집어넣었다.

스륵

“……!?”

구경꾼들이 놀랄 사이도 없이 다시 포권을 취한 그의 입에서는 믿기지 않는 소리가 나왔다.

“저의 패배입니다. 대협께서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의 솜씨도 훌륭했소.”

유리우스 또한 서대륙 식으로 검을 들어 기사의 예를 취해주었다.

웅성웅성.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남궁 대협이 패배를 인정하다니?”

“색목인이 잘 방어하긴 했어도 팽팽해 보이는 비무였는데?”

구경꾼들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남궁일천이 패배를 인정한 것은 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

하지만 남궁일천은 묵묵부답으로 발걸음을 돌려 처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른 남궁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듯 황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버님, 대체 이 결과는 어떻게 된 겁니까?”

“후우… 방금 전 대결이 어떻게 보였느냐?”

한숨을 길게 내쉰 남궁일천은 대답해 주지 않고 도리어 반문했다. 남궁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 일천한 실력으로는 두 분의 움직임을 볼 수조차 없었지만 막상막하로 보였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을 유지한 남궁일천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저자가 나를 죽일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네?”

그 충격적인 대답에 남궁호 또한 순간 말을 잃었다.

“허허… 운현, 그 친구도 참 짓궂어 주군의 명성을 알릴 발판으로 날 선택했다는 건가?”

남궁일천은 힘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 * *

한편 제갈운현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유리우스를 맞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군.”

“단순한 대련이라고 하던데, 날 속인 건가?”

유리우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방금 전 남궁일천의 공격은 대련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진지했다. 상대가 순순히 물러나줘서 망정이지 자칫하면 피를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갈운현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천 그 친구는 뒤끝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군의 실력을 확인하면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동대륙 고수들의 실력을 대충 가늠할 기회가 아니었습니까?”

“하기야 몇 번 기척을 내보내니 금방 패배를 인정하더군.”

그의 말이 일리 있다고 여겼는지 유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그는 방어만 하는 것같이 보였지만 이따금 남궁일천에게 공간절단을 펼치려고 기세만 살짝 드러냈다.

물론 실제 펼친 것이라면 그는 영문도 모르고 두 토막이 났을 테지만 위협용으로 한 것이기에 그는 정체 모를 섬뜩함만 느낀 채 계속 검을 휘두른 것이다.

하지만 그게 서너 번 반복되자 유리우스가 자신을 죽일 수 있는데도 공격을 포기한 것을 알아차리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제갈운현은 다른 생각도 있던 모양이다.

“그리고 제가 그 친구를 희생양으로 쓴 것은 차후의 행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차후의 행보?”

제갈운현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은 기본적으로 강자를 존중합니다. 이른바 강자지존이라고 하지요. 주군의 신분은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어도 앞으로 무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주군 본인이 강자로서 명성을 떨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호오…….”

앞으로 유리우스는 정도 연합에 포함되어서 유산을 찾으러 가야 한다. 그런데 그 무리 속에서 발언권을 얻으려면 그에 걸맞은 명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동대륙에서 무림인으로서 명성을 떨치라는 말인가?”

“맞습니다. 마교를 상대하려면 꼭 필요한 부분이지요. 물론원한을 맺으셔서는 곤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천 저 친구는 딱 안성맞춤이지요.”

유리우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친구에게 그래도 되는가?”

“그라면 이해할 겁니다. 그도 마교를 상대하려면 지금 전력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정도맹의 부맹주이자 사대고수 중 하나인 남궁일천은 그런 명성을 쌓기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성품이 공명정대하다는 것이 이번 비무가 이루어진 결정적 이유였던 것이다.

모든 사정을 이해한 유리우스는 그제야 빙긋 웃었다.

“무림이 그런 곳이라면 이곳에서 아예 세력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