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우스가 세운 계획의 전모는 이러했다.

“일단 황제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 다음에는 마교의 인물들을 정리해야 하네.”

그는 마교와 여상을 같이 상대하는 것보다는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했다.

‘가장 큰 변수는 그 2호라는 존재인데…….’

다른 고수들이야 아무리 덤벼봐야 현 시점에서 그의 적수가 되기는 힘들었다.

2호는 마교에서 보낸 신기의 힘을 사용하는 비밀병기!

사방신기를 모으고 있는 유리우스로서는 가장 먼저 제압해야 할 상대였다.

“2호라고 했나? 어쨌든 그대와 같이 왔으니 그게 어떤 존재인지는 알 것 아닌가?”

“송구합니다. 하지만 저도 같이 온 2호가 누군지는 모릅니다.”

“모른다고?”

궁적영의 대답에 유리우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른다면 대체 어떻게 데리고 온 것인가?

“기밀이니까요… 그자는 제가 데리고 온 고수들 사이에 섞여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체는 저한테도 밝힐 수 없다더군요.”

현재 마교는 황궁에 궁적영 외에 스무 명의 정예고수를 파견했다. 그들 중에 2호가 있다는 것이다.

“2호도 문제지만 그 스무 명 또한 만만한 자들은 아닙니다.”

[백검마회]

총 백 명의 검수들로 구성된 마교 최고의 무력단체였다. 개개인이 초인 직전의 고수들인 만큼 이들이 활동할 일은 많지 않았다. 이들 중 스무 명을 따로 파견한 것만 봐도 마교에서 황궁의 장악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주군이라도 그들과 2호를 같이 상대하시는 것은…….”

“간단하군.”

“네?”

거기까지 들은 유리우스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명령했다.

“2호의 비밀이야 어쨌건 자네가 그자들의 지휘를 맡고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럼 그자들을 내 처소로 보내주게.”

“……!?”

* * *

사아악!

유리우스의 검이 반원형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푸른 궤적이 허공에 그려지더니 전방을 휩쓸어 갔다.

“…….”

마교의 고수들의 대응은 빨랐다. 그들은 삼삼오오 뭉치더니 서로의 검을 교차시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카카캉!

쇠를 깎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그들은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은 상황.

‘이거 봐라?’

유리우스는 그 모습을 보더니 제법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스무 명이 뭉쳤다고 하나 그의 검격을 별다른 상처 없이 막아낸 것은 충분히 칭찬해 줄 만했다.

‘방어는 제법인데, 공격은?’

그들은 아직 신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궁적영의 말에 의하면 틀림없이 그들 중에 2호라는 자가 있을 텐데 말이다.

“…….”

“……!?”

하지만 그들은 조용히 검을 들어 유리우스를 압박하고 있을 뿐 별다른 큰 공격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나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었나? 왜 꼬리를 내리고 있지?”

“…….”

상대의 담담한 모습에 유리우스는 혀를 찼다.

‘도발도 먹히지 않는군. 어찌된 일이지?’

어쨌든 상대가 가만히 있다고 그도 검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

쉬이이익!

허공에 수십 개의 검영이 생겨났다. 그 검영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콰앙!

“커헉!”

“큭!”

이번에는 상당히 진심을 다한 일격이라 효과가 있었다. 그를 둘러싼 자들은 피를 토하며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입가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그들은 침착한 얼굴로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

“허어…….”

그 괴상한 행동에 유리우스는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야심한 밤에 그를 불러낸 자들이 왜 두텁게 포위만 하고 있는가.

‘그야 달려들었으면 벌써 끝나긴 했을 텐데…….’

그들이 아직까지 버틴 이유는 검진의 형태로 단단히 수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리우스는 그들이 공세로 전환하면 단번에 깨뜨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어도 의미가 없잖아. 날 묶어두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을 텐데?’

퍼뜩!

‘가만?’

유리우스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확실히 이들은 자신을 처리할 전력은 아니지만 벌써 몇 분간 그를 묶어두고 있었다. 만약 그것 자체가 이들의 목적이었다면?

‘아!’

그의 시선이 본궁 쪽으로 향했다. 추측이 맞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유리우스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포위하고 있는 놈들 쪽을 바라보았다.

“이놈들이?”

콰앙!

“컥!”

“……!?”

마교의 고수들의 눈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유리우스가 공격을 하는 동작도 보지 못했는데 느닷없이 선두의 세 명이 걸레 조각처럼 찢기더니 튕겨져 나갔다.

‘검을 휘두르지도 않고 어떻게?’

척!

유리우스는 그들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해주려는 듯 검을 앞으로 내밀더니 차갑게 일갈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빨리 지나가지!”

* * *

“그럼 내일 중으로 그 황태자에게 접촉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그대 같은 충신이 아직 남아 있어서 다행이로군.”

“송구하옵니다.”

한편 궁적영은 황제의 침소를 나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휴! 외세를 끌어들이자는 생각이라 자칫 폐하께서 진노하실까 봐 염려되었는데 그런 것은 없어서 다행이야.’

이어서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주군은 어떤 마법을 부리셨기에 황제 폐하께서 저리 순순히 동맹을 수긍하도록 만드셨을까?’

그녀가 알 리 없었지만 그 이유는 바로 어젯밤 유리우스의 방문이었다. 스킬 ‘황제의 위엄’은 매력을 올려주기에 상대의 호감을 높일 수 있었다.

주유겸의 눈에는 유리우스가 그를 해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정말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어젯밤에 그의 목숨이 달아났을 것이다.

‘어쨌거나 다행이야. 이것으로 여상 그 역적 놈을 몰아낼 수 있을 테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녀의 감각에 익숙한 기척이 잡혔다.

“어?”

저벅저벅.

복도 저편에서 은은한 마기를 풍기는 인물이 걸어오고 있었다.

“금 회주가 아닌가?”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부교주를 뵙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그 남자의 이름은 금종오. 마교 제일의 무력단체인 백검마회의 회주를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에 부교주인 그녀를 보좌하기 위해 따라왔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밤 그에게 다른 명령을 내린 상태.

“자네가 여기 왜 있는 건가? 서대륙의 황태자를 포획해오라고 내가 명령을 내렸을 텐데?”

씨익.

공손히 고개를 숙였던 금종오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무슨?”

그녀는 금종오의 태도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여전히 실실 웃은 채로 검에 손을 가져다댔다.

“바로 배신자를 색출하는 일이지!”

“……!?”

채채챙!

콰앙!

순간 강렬한 폭음이 터지며 궁적영은 밖으로 몸을 날렸다. 금종오와 검을 맞부딪힌 기세를 살려 밖으로 나온 것이다.

‘들켰다. 하지만 대체 언제부터?’

“교주께서는 진즉에 네가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을 알고 계셨지! 그래서 나를 보낸 것이다.”

“크…….”

그녀는 검을 빼든 채로 신음했다. 이번에 임무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 수상했는데, 교주는 처음부터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동안 실컷 이용해 먹고 이제 황궁으로 보내 뒤처리를 하려는 속셈. 과연 마교는 호락호락한 집단이 아니었다.

슥!

스륵!

그녀와 대치하고 있는 금종오의 뒤로 수십 명의 고수가 등장했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백검마회의 정예였다. 유리우스에게 보낸 것은 따로 준비한 미끼였을 뿐이다.

“흥!"

하지만 궁적영은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백검마회를 거느렸다 해도 네놈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백검마회의 회주인 금종오의 서열은 5위! 하지만 그녀는 마교에서 서열 2위인 부교주였다. 서로의 격차는 명백하다.

“크크… 그야 그러시겠지.”

하지만 금종오는 도리어 한층 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이놈이 무얼 믿고?’

궁적영의 머릿속에 한 줄기 의문이 스쳐지나갔지만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주군에게 합류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화륵!

사아아아!

그녀의 검에서는 불길이! 손에서는 냉기가 차올랐다.

꽈앙!

그녀는 두 기운을 충돌시켜 강렬한 파괴력을 발생시켰다. 큰 공격으로 빈틈을 만든 뒤 단번에 탈출하려는 속셈이다.

콰아아!

그녀의 검에서 뿜어진 막대한 기운이 금종오에게 쏘아졌다.

‘당연히 피하겠지?’

그에게 그 정도 능력은 있었다. 그 사이 재빨리 빠져나갈 심산이었다.

“흥!”

그러나 놀랍게도 금종오는 가만히 서 있는 자세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퍼엉!

“……!?”

궁적영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전력을 다해 펼친 일격은 금종오의 몸에 닿기 직전에 무언가에 막힌 듯 튕겨져 나갔다.

‘내 일격을 한 손을 들어서 막았다고?’

그녀는 그제야 출발할 때부터 품은 의문이 풀렸다.

“네놈이 2호였구나!”

“이제 알았나? 크하하하!”

금종오는 광소를 터뜨리더니 검을 뽑아 들고 그녀에게 쇄도해 들어왔다.

챙!

채채챙!

둘은 모두 검도의 고수! 순식간에 수십 합이 지나갔다. 그리고 공방에서 우세를 점한 것은…….

촤아악!

“큭!”

궁적영은 몸 곳곳에 핏자국을 남긴 채로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검을 휘두른 손이 얼얼했다. 그녀가 확연히 밀리고 있는 것이다.

‘실력은 별다를 것 없는데 검격이 엄청나게 무거워졌어. 검을 맞부딪히는 것도 힘들다.’

금종오의 검은 휘두를 때마다 강한 압력을 동반한 채로 그녀의 움직임을 묶었다. 위력도 몇 배나 증가해서 그녀는 연신 뒤로 밀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큰일이야! 주군께 어서 이놈의 정체를 알려야 하는데.’

“아까 전은 기세등등하시더니 설마 벌써 힘이 다 떨어지셨나?”

금종오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검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

그의 검은 흡사 소용돌이가 둘러싼 듯 강렬한 바람을 휘감고 있었다.

치지직! 칙!

거기에 소용돌이 중심부에는 번개가 일어 스파크까지 튀고 있다.

‘저것은?’

그것을 목도한 순간. 궁적영은 사방신기의 전설이 생각났다. 그 중에 저런 능력을 지녔다고 말해지는 것은!

‘청룡의 신기!’

사신수 중 청룡이 관장하는 영역은 바람과 번개!

그 말처럼 아까 금종오는 몸에서 강렬한 풍압을 발해 그녀의 공격을 튕겨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 압력으로 그녀를 짓누르고 있던 것이다.

“그럼 죽어라!”

금종오의 검이 폭풍을 동반한 채로 휘둘러졌다.

콰콰콰콰!

땅거죽이 뒤집히고 길게 쪼개졌다. 그리고 그 목표였던 궁적영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크윽!”

촤아아악!

그녀는 몸을 날려 간신히 몸이 쪼개지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등이 깊게 베여 피가 쏟아지고 있다. 전투를 지속하기는 어려운 상황!

그녀의 얼굴이 암담하게 변했다.

‘내가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이미 많은 피를 흘린 탓에 눈앞도 가물가물하고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그녀의 귀에 괴소가 들려왔다.

“크흐흐… 아무래도 이것으로 끝인 모양이군. 교주께서는 네 수급을 가지고 오면 나를 부교주로 올려주신다고 하셨다.”

금종오는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그녀의 목을 베어버릴 심산이다.

쉬이이익!

“큭!”

그의 검이 높이 들린 순간 죽음을 예감한 궁적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콰아앙!

“……!?”

“이건?”

그녀는 급히 눈을 떴다. 예상했던 고통은 없고 도리어 금종오만 뒤로 날아가 담벼락에 처박혀 있었다.

“누구냐!”

금종오는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폈다. 그는 분명 공격을 받았지만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헛!”

그는 어느 순간 그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그는 씩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누구긴 누구야, 댁들이 찾던 사람이지.”

“……!?”

“주군이시군요.”

궁적영은 반가운 탄성을 냈다. 어느새 유리우스가 본궁에 들어와 있던 것이다. 다소 귀찮은 무리들이 있었지만 그가 마음먹으면 금방 정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크…….”

금종오는 유리우스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급히 거리를 벌려 물러났다.

‘고수구나! 그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그의 본신 능력은 반박귀진을 꿰뚫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속에 지닌 신기가 경고를 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