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Maker

Chapter 22 Goblin Wind # 2

&

화마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열기가 하늘을 뒤덮었고, 크게 일어난 불꽃은 그 높이만 수 미터에 달할 것 같았다.

“마드가님!”

“도망쳐야 합니다!”

성난뿔소 부족의 전사들이 저마다 외치며 우왕좌왕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불꽃의 노도가 마치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고운눈바람 놈들! 제대로 미쳤구나!”

이런 곳에서 화공이라니.

같이 죽기라도 할 셈이란 말인가?!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미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이었다. 마드가는 다급히 명령했다.

“퇴각해라! 전장을 이탈한다!”

마드가가 명령하니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었다. 성난뿔소 부족의 전사들은 산불을 피하는 짐승들처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고, 마드가 역시 주술로 각력을 강화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꽃이 그런 성난뿔소 부족의 전사들을 바짝 뒤쫓았다.

“바람이?!”

거칠게 부는 바람.

방금까지 남에서 북으로 불던 그것들이 성난뿔소 부족의 도주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연 불길 역시 바람을 따르기 시작했고 말이다.

“으아아아아아!”

두 팔을 높이 든 코델리아가 기합이라기보다는 죽어가는 소리를 냈고, 왼팔에 자리한 황금빛 문양이 선명한 빛을 발했다.

“힘드러! 힘드러 죽게써어!”

무풍지대에서 돌개바람을 조종할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드넓은 들판에서 광범위하게 번진 불꽃을 조종해야 했으니, 다뤄야 할 바람의 양이 훨씬 더 막대했기 때문이다.

“으그읏!”

코델리아의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유더는 급히 마나 포션을 따 코델리아의 입에 물렸다.

“흐끅, 흑.”

“힘내! 잘못하면 다 죽는 거야!”

“므긋! 믑!”

마나 포션을 삼키느라 욕지거리를 내뱉지 못 한 코델리아였지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더의 말마따나 불길을 다스리지 못 하면 정말 다 같이 죽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코델리아는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 코델리아를 돕는 손길들이 있었다.

“고운눈바람 부족의 주술사들!”

성벽 쪽을 바라보며 유더가 외쳤다.

위대한폭풍이 이름 그대로 바람의 야생신이듯, 고운눈바람 역시 바람을 부리는 야생신이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주술사 둘이 성벽 위에서 무어라 주문을 외우자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코델리아와 같은 방향으로 바람을 조종하니, 불길을 조종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역시! 생각대로!”

고운눈바람 부족의 조력을 예상하고 있던 유더는 환호성을 질렀고, 코델리아는 나중에 꼭 유더 등짝을 때리겠다 마음먹으며 다시 한 번 힘을 발했다.

“가라아!”

통제된 불길이 화마가 되어 성난뿔소 부족을 덮쳤다.

워낙 광범위한 불꽃이다보니 도망치지 못 하고 화마에 휩쓸리는 자들이 속출했고, 독한 연기 역시 전사들의 발을 느리게 만들었다.

“으아아!”

“마드가님!”

제아무리 강력한 성난뿔소 부족의 전사들이라 할지라도 불꽃을 어찌하지는 못 했다.

아우성치는 전사들 사이에서 마드가는 노성을 토하더니 해골 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렸다.

“쏟아져라! 내리쳐라! 폭우여! 하늘의 눈물이여!”

중급 마인이기 이전에 성난뿔소 부족의 강력한 주술사인 마드가였다.

막대한 마력을 거의 탕진하다시피 쏟아부으니 바로 하늘에서 반응이 돌아왔다.

쏴아아아!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들판 전체를 뒤덮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화마를 집중 타격하기에는 충분했다.

불길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잦아든 것은 아니었다.

단번에 엄청난 마력을 소모한 마드가가 힘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퇴각해라! 퇴각!”

짧은 시간이었지만 화마에 당한 피해가 컸다.

더욱이 마드가 자신도 마력을 탕진하고 말았으니, 일단은 물러나 재정비를 해야만 했다.

“퇴각한다!”

“물러나라!”

성난뿔소 부족의 전사들 가운데 몇이 깃발을 들고 전사들을 인도했고, 불꽃과 연기, 폭우로 엉망진창이 된 전사들은 서둘러 분지를 떠났다.

그렇게 십여 분.

비가 그쳤고, 불꽃 역시 사그라졌다. 성난뿔소 부족의 전사들은 도망쳤고 말이다.

“좋아, 계획대로.”

유더는 활짝 웃었고, 코델리아는 철푸덕 바닥에 쓰러졌다.

“허억··· 헉······.”

정말정말 힘들었다. 일어설 힘이 없을 지경이었다.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능숙한 솜씨로 등에 업은 뒤 말했다.

“수고했어요, 골드님. 역시 골드님이세요. 전 실버라 행복해요.”

바람부림의 가호는 황금 문양에만 있는 것이었으니까.

코델리아는 이 와중에도 얄밉게 구는 유더의 목을 나름 열심히 졸랐고, 유더는 켁켁 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당연히 고운눈바람의 성벽이었다.

&

“대체 무슨 짓이냐! 다 같이 죽자는 것이냐?!”

성벽에 다가가자마자 성문이 열린 것은 좋았지만 그 다음은 아니었다.

코델리아를 도와 바람을 부린 주술사 가운데 하나가 노성을 토했기 때문이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불길이 분지 쪽으로 번졌다면 성벽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이 불타 죽었을 터이니까.

“그만해라, 고운눈. 무모한 행동이긴 했지만 덕분에 놈들이 물러가지 않았느냐.”

“하지만 형님!”

“네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은 미뤄두자꾸나. 더 급한 일들이 있으니.”

머리에 푸른 깃털을 꽂은 검은 머리칼의 주술사가 다독이듯 말하자 붉은 깃털을 꽂은 푸른 머리 주술사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나마 입을 다물었다.

푸른 깃털의 주술사가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다. 위대한폭풍의 전사들아. 나는 고운눈바람님을 모시는 맑은눈이고, 이쪽은 내 동생인 고운눈이다.”

야만족의 언어를 모르는 코델리아였지만 대강 어떤 말을 하는지는 감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자기 소개하는 거지?’

‘어.’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미숙한 야만족 언어로나마 화답했다.

“반갑다. 난 유더. 이쪽은 코델리아. 우리 고운눈바람님을 돕기 위해 왔다. 위대한폭풍님, 거친눈사태님, 우릴 보내셨다.”

야생의 땅에 살아가는 각각의 부족들은 저마다 혈통이 조금씩 달랐는데, 윈터 엘프의 피를 이은 위대한폭풍 부족과 달리 고운눈바람의 부족들은 고대 드워프의 혈통을 잇고 있었다.

때문에 다소 작은 키와 다부진 체격을 가진 이들이 많았는데, 주술사인 맑은눈과 고운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 과연. 고운눈바람님께서 그대들을 보고자 하신다. 따라오라.”

애당초 코델리아가 위대한폭풍의 힘을 쓰는 것을 목격한 맑은눈이었다. 여기에 고운눈바람의 언질까지 있었으니 척 봐도 세일룬 왕국 출신이 분명한 유더와 코델리아였지만 딱히 경계하거나 의심하지는 않았다.

“알겠다. 따라가겠다.”

바로 답한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적당히 뜻을 전한 뒤 맑은눈의 뒤를 따랐다.

‘작은 마을이구나.’

불퉁한 표정을 짓는 고운눈의 시선을 피해 주변을 둘러보니 대강의 마을 크기와 인구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구는 300에서 400명 정도?’

호수가 있는 분지 내부도 대부분 농작지였지 막상 사람이 사는 영역은 그리 넓지 않았다.

‘다들 지쳐있어.’

며칠간 이어진 싸움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개입이 없었다면 오늘밤 성난뿔소 부족이 이 마을을 짓밟았을 터였다.

“이쪽이다.”

맑은눈은 유더와 코델리아를 호수 앞에 세워진 사원 안으로 인도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사원이었는데, 유더와 코델리아의 감각으로는 조금 큰 오두막 정도였지만 그래도 분지 내에서는 가장 커다란 건물이었다.

“고운눈바람님, 위대한폭풍의 전사들을 데려왔습니다.”

말끔하게 지워진 사원 안쪽에는 발이 쳐져 있었는데, 그 너머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맑은눈이 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자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했어요. 들여보내세요.”

듣는 이의 마음을 다독이는 단아한 목소리였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괜시리 마른침을 한 번 삼킨 뒤 맑은눈의 손길을 따라 발 너머로 들어섰다.

“고운눈바람님을 뵙습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함께 말하며 예를 표하자 자리에 앉아있던 소녀가 맑은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 고운눈바람이에요.”

하얀 머리칼과 커다란 날개를 가진 소녀의 모습은 이야기 속의 천사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하얀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조력에 감사해요. 위대한폭풍 오라버니께서 보내신 분들인가요?”

야생신답게 언어를 초월한 대화가 가능한 고운눈바람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짧게 요약하여 전달했고, 고운눈바람의 얼굴에 시름이 번졌다.

“산을 통으로 무너트렸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아무리 악마의 무리들이라지만 정말 잔악무도하군요.”

고운눈바람의 말에 양심이라도 찔렸는지 헛기침을 한 코델리아였지만 유더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거친눈사태님께서는 고운눈바람님 역시 공격당하실 것을 우려해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악마의 무리들이 성난뿔소 부족을 장악하였으니, 이에 맞설 동부 연맹을 구축해야만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저도 놈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주먹을 꼭 쥔 고운눈바람은 몸을 앞으로 살짝 내밀며 말을 이었다.

“악마의 무리들이 용맥에 해코지를 했어요. 사악한 힘으로 용맥을 공격한 탓에 저 역시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고요.”

고운눈바람의 얼굴에 병색이 완연한 이유였다.

마드가는 용맥을 공격해 고운눈바람의 상태를 악화시킨 뒤 야생신에게 의존하지 못 하는 부족들을 주술적 싸움이 아닌, 원시의 싸움으로 밀어붙여 정복한다는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용맥이 없으면 야생의 땅은 생명을 잃어요. 때문에 야생신들이나 부족들 간의 다툼이 있어도 용맥에 해코지를 하는 자는 없었어요.”

거친눈사태와 고운눈바람이 너무나 쉽게 용맥에 타격을 받은 이유 중에 하나였다.

애당초 용맥이 공격당한다는 발상 자체가 사라진지 오래인 야생의 땅이었으니 말이다.

“사악하고 강대한 힘을 가진 물건으로 용맥을 압박하고 있어요.”

고운눈바람은 야생신 가운데서도 제법 강한 축에 드는 존재였다.

하지만 용맥에 타격을 받아 힘이 억눌리니 지금은 작고 약한 소녀에 불과했다.

‘이 흐름대로 가면 용맥을 막고 있는 물건을 제거하라는 퀘스트가 나오겠지?’

코델리아의 추측은 꽤 타당했지만 고운눈바람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부족의 전사들이 이미 몇 번 시도를 했지만 적들의 수비가 단단해요. 용맥을 압박하는 장소에 아예 본진을 꾸렸으니 정면돌파는 무리에요.”

잠입하는 것도 애매했다. 어찌어찌 용맥을 해방시킨다 해도 빠져나오는 것이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코델리아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지만 유더는 고운눈바람만을 바라보았다.

애당초 차선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푸른 달의 정수가 필요해요.”

영웅전기2의 거의 모든 것을 꿰고 있는 유더조차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고운눈바람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달맞이 언덕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 피는 달맞이꽃들의 이슬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달빛의 정수가 바로 푸른 달의 정수고요.”

듣기만 해도 비범한 힘을 가진 물건일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 환상의 달이 뜰 때마다 푸른 달의 정수는 모습을 드러내요. 달빛을 온전히 받기 위해서죠.”

하늘에 존재하는 두 달이 같은 크기로 보일 때를 이야기했다.

유더의 계산대로라면 바로 내일이었고 말이다.

“푸른 달의 정수는 그 존재만으로도 들판의 생명력을 북돋아 주는 성물이기에 동물들조차도 달맞이 언덕에는 접근하지 않아요. 혹시라도 푸른 달의 정수를 해할까 두려워서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았다.

“푸른 달의 정수로 힘을 회복하실 생각이시군요.”

“네, 푸른 달의 정수면 용맥 없이도 제 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 그 힘으로 용맥을 해치고 있는 사악한 물건을 제거하면 이번에는 푸른 달의 정수 없이도 전력을 발휘할 수 있겠죠.”

이미 성역과 부족이 공격당한 상황이었다. 자신들을 공격한 악마 추종자 무리를 용서할 마음이 없는 고운눈바람이었다.

“용맥에 대해 이리 소상히 알 정도면 놈들도 푸른 달의 정수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위대한폭풍의 전사들이여,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계속된 싸움으로 제 아이들은 많이 지치고 다쳐 이곳을 지키기도 급급한 상황이에요. 푸른 달의 정수를 그대들에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코델리아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푸른 달의 정수를 구해올게요.”

“정말 감사해요. 저의 가호가 두 분과 함께 할 거예요.”

고운눈바람이 생글생긋 웃으며 말하자 위대한폭풍의 문양 위로 장식처럼 색색의 문양들이 추가되었다.

힘이 억제되고 있는 고운눈바람인 터라 당장은 문양에 아무런 신비도 깃들지 않았지만, 고운눈바람이 힘을 회복하면 가호가 발동할 터였다.

“맑은눈이 자세한 사항들을 설명해 줄 거예요. 필요한 물건이 있으시면 뭐든 말씀하시고요.”

“뭐든이요?”

“네, 뭐든.”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즉답한 뒤 고운눈바람이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사원을 빠져나왔다.

“양심껏 털자.”

“푸른 달의 정수를 구하기 위해서니까.”

사실 이미 마나 포션은 물론이고 식량까지 거의 동이 난 두 사람이었다. 딱 재보급이 필요한 타이밍에 딱 좋은 이야기를 들은 셈이었다.

“이야기는 잘 나누었나?”

때마침 맑은눈이 다가와 물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말했다.

“무기고로 안내해 주세요.”

“물자 저장소. 안내 부탁.”

초롱초롱한 두 사람의 눈빛에 다소 찝찝한 기분이 든 맑은눈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고운눈바람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일단 본진으로 물러난 마드가는 용맥을 압박하고 있는 벨리알의 비보인 타락의 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푸른 달의 정수.’

본디 야생의 땅 출신의 주술사인 마드가였다.

하라겐을 만나기 전에는 푸른별빛이라 불리던 그녀는 환상의 달은 물론이고 푸른 달의 정수 역시 알고 있었다.

본래 계획은 고운눈바람을 생포한 뒤 여유롭게 푸른 달의 정수를 채취하는 것이었지만 한 바탕 일어난 큰 불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고운눈바람은 푸른 눈의 정수를 취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병력을 보낼 수는 없을 터였다. 당장 분지를 지킬 병력조차도 부족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마드가 자신도 그리 많은 병력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 거세게 고운눈바람의 분지를 압박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마드가는 다르게 생각했다.

‘불을 지른 자들.’

누구일까.

고운눈바람이 양동으로 내보낸 병력이었을까?

아닐 터였다.

불을 지를 타이밍은 그 전에도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들판을 불태운다는 것은 야생신이 그것도 고운눈바람처럼 착해빠진 야생신이 할 수 있는 짓거리가 아니었다.

‘자라쿨의 죽음.’

불길이 처음 일어난 방향은 남서쪽 거친눈사태의 산이 있는 방향과 일치했다.

단순한 우연일 수 있었지만 마드가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압박은 계속한다.’

내일 아침, 정비를 마치자마자 다시 본진을 나선다. 본대로 분지를 공격한다.

그리고 마드가 자신은 달맞이 언덕으로 향한다.

푸른 달의 정수를 취해 만의 하나라는 가능성조차 짓밟아 버린다.

마드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벨리알의 힘이 담긴 타락의 창 앞에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쥐었다.

&

“바로 출발하자.”

토끼 귀 머리띠에 깃털 장식을 추가하던 코델리아는 유더의 말에 눈을 깜박였다.

“미리 가 있자고?”

“아무도 점령하지 않은 공백지라면 미리 매복해 있는 쪽이 유리할 테니까.”

푸른 달의 정수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내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출발 자체를 내일 할 필요는 없었다.

“성난뿔소 부족은 지금 본진으로 퇴각한 상태야. 고운눈바람님 말씀처럼 놈들이 푸른 달의 정수를 노린다고 해도··· 우리보다는 출발이 늦을 거야. 지리상으로도 더 멀고.”

“놈들이 진짜로 올까?”

“온다고 가정해두는 편이 좋겠지.”

최악을 가정하고 움직이면 그만큼 안전해지기 마련이었다.

“으으··· 그럼 오늘도 노숙이네.”

모처럼 마을에 들어왔건만.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풀이 죽은 코델리아였지만 그렇다고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이왕 정한 거 빨리 가자. 빨리 가면 빨리 잠자리 만들 수 있을 거고, 그럼 일찍 잘 수 있을 테니까. 누구누구씨 때문에 무리해서 힘들어 죽겠어.”

“알아 모시지요, 공주님.”

유더는 새삼 코델리아의 상태를 점검한 뒤 맑은눈에게 바로 출발 의사를 전했다.

“지금 바로 말인가?”

“지금 바로다. 서두른다.”

유더의 확답에 잠시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올려다본 맑은눈이었지만 딱히 토를 달지는 않았다.

“고운코는 영리한 녀석이다. 달맞이 언덕까지 너희를 잘 데리고 갈 것이다. 고운눈바람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위대한폭풍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맑은눈에게 응답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고운코란 이름을 가진 커다란 숫사슴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날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달맞이 언덕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일단 감탄부터 토했다.

“굉장하네.”

“예뻐.”

하얀 눈으로 뒤덮인 언덕 위에 푸른 꽃들이 가득한 광경은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달빛과 별빛, 이를 반사하는 하얀 눈들.

밤중임에도 비교적 밝았기에 주변 일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유더는 생각 이상으로 넓은 달맞이 언덕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외길이라는 건데.’

달맞이 언덕은 말이 언덕이지 사실상 절벽이나 다름이 없었다.

30미터 남짓한 높이의, 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낮지만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높은 땅은 올라가는 길 한 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었다.

‘푸른 달의 정수가 나타날 때까지 길을 막고 버티다가 튀는 게 최선인가.’

그렇다면 길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유더가 이리저리 궁리를 하는 동안 코델리아는 달맞이 꽃 구경을 하다가 이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일단 자고 내일 생각··· 왜?”

가만히 서서 궁리하던 유더가 코델리아 자신을 정확히는 코델리아 자신이 판 구덩이에 열렬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으니까.

“과연.”

“과연 뭐?”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빙긋 웃더니 바짝 붙어 앉아 설명을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코델리아를 미소 짓게 하는 이야기였다.

&

< 제22장 고운눈바람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