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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1 Long live the Sun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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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는 눈을 떴다.

일단 머리가 멍했다.

꿈도 꾸지 않고 그냥 푹 잔 느낌이었다.

“아.”

멍한 목소리를 흘린 유더는 그대로 눈을 깜박였다.

흐릿하던 시야에 비치던 것들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생명의 신전.

그리고 유더는 깨달았다.

‘배가 고프다.’

그것도 열렬히, 무척이나.

한 번 인식하고 나니 다른 생각은 아무 것도 들지 않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위장이 아니, 전신 세포 모두가 영양분을 요구하는 기분이었다.

‘배가 고파.’

너무 고파.

눈앞에 있는 건 뭐든 잡아먹을 것 같아.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더야?”

달콤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유더는 고개를 돌렸다. 흘러내린 붉고 긴 머리칼과 자신을 내려다보는 코델리아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코델···리아?”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짠 유더의 모습에 환히 웃고 있던 코델리아의 얼굴이 단숨에 울상이 되었다.

“아파? 어디 안 좋아? 란디우스님!”

크게 소리친 코델리아는 그대로 돌아서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유더가 반사적으로 코델리아의 손목을 낚아채듯 붙잡았기 때문이다.

“악! 유더야?”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일어나려던 기세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은 코델리아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유더가 쥔 손목이 부서질 것 같아서였다.

“아파! 아파!”

“헉?”

코델리아의 고통섞인 비명에 유더가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아주 잠깐 붙잡은 것이었는데도 코델리아의 손목에 손 모양으로 피멍이 들어 있었다.

“야! 미쳤어?!”

일단 타박부터 한 코델리아였지만 잠깐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유더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이 퀭해!’

눈만이 아니었다. 환골탈태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좋았던 피부가 더욱 좋아졌지만, 어째 엄청 힘들고 피곤해보였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커졌기 때문이다.”

불현 듯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코델리아가 흠칫하며 돌아섰다.

란디우스는 그런 코델리아를 지나 유더 앞에 서더니 그대로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소녀여, 아까 준비해두라고 했던 것은 어찌되었나.”

“다 됐어요. 가져올게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코델리아가 도도도 달려가자 유더의 시선이 절로 코델리아의 뒷모습을 좇았다.

란디우스는 그런 유더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허기져서 제정신이 아닐 터인데··· 이것이 사랑의 힘인가.’

오해 아닌 오해였지만 어찌되었든 만족한 란디우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자야. 일단 나는 알아보겠느냐?”

“스···승님?”

“그래, 나다.”

코델리아의 뒷모습을 좇던 유더의 시선이 란디우스에게 향했다.

란디우스는 코델리아도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넌 지금 엄청나게 허기진 상태이다. 처음 말한대로 커졌기 때문이지.”

“커졌···다고요?”

“그래. 키가 많이 커졌고, 덕분에 덩치도 더 좋아졌지. 환골탈태 자체가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데 여기에 키까지 자랐으니··· 몸이 밥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당연하다.”

“아! 그래서!”

이어진 감탄은 코델리아의 것이었다.

다시 쪼르르 달려와 란디우스 옆에 앉은 코델리아는 커다란 통을 들고 있었는데, 안에는 정체불명의 눅눅한 회색 액체가 들어있었다.

“일어나거라. 그리고 이걸 마시거라.”

란디우스의 명령에 천천히 몸을 일으킨 유더는 미심쩍은 얼굴로 코델리아에게서 통을 넘겨받았다.

“마시···라고요?”

“그래, 네게 부족한 영양을 단번에 채워줄 것이다.”

란디우스가 씩 웃자 코델리아가 어색하게 웃었고, 유더는 다시 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회색액체.

무언가를 아니, 잡다한 여러 가지를 갈아 만든 것 같은 정체불명의 음식물.

‘프···로틴 같은 건가?’

그 헬스 할 때 마시는.

“어서 마셔라. 어서.”

란디우스의 재촉에 유더는 다시 코델리아를 돌아보았지만, 코델리아는 어쩐 일인지 슥하고 시선을 피했다.

‘뭔데, 내용물이 뭔데 그래?’

‘코델리아는 아무 것도 몰라요.’

다시 불안한 마음이 든 유더였지만 란디우스의 명령도 있었고, 일단 배가 너무 고팠다.

속는 셈 치고 두 손으로 잡아야 할 정도로 큰 통을 단번에 들어 내용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저도 모르게 따라서 꿀꺽 침을 삼킨 코델리아는 불안한 얼굴로 유더를 보았고, 란디우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영양이 팍팍 채워지는 것이 느껴지지?”

유더는 대답하는 대신 계속 마시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꿀꺽꿀꺽.

마침내 내용물을 싹 비운 유더는 통을 내리자마자 숨을 토했다.

“커헉.”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어쩐지 모르게 모순적인 표정.

“괜찮아?”

코델리아가 작게 묻자 유더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끔찍한 맛인데, 배가 너무 고프다보니 한 번도 쉬지 않고 다 마시고 말았다.

더욱이 미치겠는 건 이거라도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었다.

“약발이 드는구나. 소녀여, 더 가져오거라.”

“으··· 네.”

다시 코델리아가 어딘가로 도도도 달려가자 란디우스가 설명을 이었다.

“내가 운동할 때 먹는 특제 식품이다. 소녀에게 제조법을 알려주었으니, 너도 종종 마시도록 하거라.”

“음··· 예.”

역시 그런 쪽이었나.

유더가 새삼 식은땀을 흘릴 때였다.

“여기.”

코델리아가 두 번째 통을 내밀었고, 유더는 다시 꿀꺽꿀꺽 회색 액체를 삼켰다.

“커허······.”

이번에도 깨끗이 통을 비운 유더는 이제야 살겠다는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두 통 합쳐 거의 4리터 가까이를 마신 기분이었다.

“지나친 생명력의 손실은 근손실로 이어지지. 영양을 섭취했으니 이따 자기 전에 잊지 말고 단련을 하도록 하거라.”

란디우스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동자를 굴렸고, 유더는 은근슬쩍 대답을 회피했지만 란디우스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흔들림 없는 눈으로 유더를 바라보니, 유더도 결국 그리하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제자야, 환골탈태를 축하한다.”

란디우스의 말에 유더는 새삼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환골탈태.

문자 그대로 뼈를 바꾸고 껍질을 벗는 행위.

육체의 재구성.

‘진짜야.’

몸이 달라졌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앉아있었지만 스스로의 키가 자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갑자기 자라며 근육이 붙는 통에 다소 엉망이었던 몸의 균형도 완벽하게 새로 잡힌 상태였고, 근육 또한 보다 아름답게, 그리고 기능적으로 재배치가 되었다.

“변한 것은 외양만이 아니다.”

유더는 동의했다.

기의 순환로가 새로이 정립되었다.

구음절맥으로 인해 막혀 있던 혈맥들이 깨끗해진 수준을 넘어 전신 기혈이 아예 새로 깔린 기분이었다.

보다 빠르게.

보다 원활하게.

구천구문의 기운을 가볍게 일순회 시킨 유더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중단전.’

명치에 위치한 두 번째 단전.

지금까지 구천구문의 기운은 늘 하단전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새로이 중단전이 개척되었다.

자동차로 따지면 엔진이 두 개가 된 셈이었다.

“스스로의 변화를 체감하는 것 같구나.”

흐뭇하게 웃은 란디우스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코델리아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진짜. 옷 좀 입히지.’

담요로 하체를 가리고 있기는 했지만, 허리 위로는 여전히 발가벗은 상태인 유더였다.

티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한 우윳빛 피부와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각 잡힌,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과하진 않은 근육들.

그리고

‘아 진짜!’

얼른 도리질을 친 코델리아는 유더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과거 회상이 시작된 후였다.

환골탈태를 마친 직후의 유더.

유더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뻐 부끄러워할 틈도 없었던

‘으아아! 이 음란마귀! 빨리 사라져라! 사라져라!’

그리고 사실 제대로 보지도 못 했다. 그러니 이건 다 망상에 불과했다.

코델리아가 혼자서 자신의 기억과 싸우는 사이, 유더는 고개를 들어 란디우스를 마주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아니다, 넌 내 제자이지 않더냐. 스승이 제자를 보살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감사라면 나보다는 소녀에게 하도록 하거라. 소녀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내가 나섰다 해도 넌 의식을 회복하지 못 했을 터이니.”

껄껄껄 웃은 란디우스는 그대로 코델리아의 등을 손바닥으로 탁 쳤고,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꺅 소리를 낸 뒤 고개를 들었다.

“코델리아.”

“으응, 유더야.”

정말이지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얼굴을 마주하기가 좀 부끄러웠다.

이번에는 유더의 나신 같은 게 떠올라서가 아니었다.

‘살짝 어른이 된 것 같아.’

환골탈태의 과정에서 키가 훌쩍 자라 이제는 180 초반쯤 되는 유더의 키였다.

그런데 단순히 키만 자란 것이 아니라 골격 자체가 보다 남자다워진 느낌이었다. 어깨도 넓어졌고 말이다.

‘얼굴도.’

막연한 표현이었지만 어른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소년이라 부를 수 없는, 저도 모르게 오빠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코델리아?”

“네? 어. 응. 흠흠.”

헛기침을 토해 스스로를 진정시킨 코델리아는 당황을 감추기 위해 뻐기는 투로 말했다.

“아무튼 스승님 말대로야. 많이많이 감사해. 알았지?”

“예, 마님. 그리하겠습니다.”

유더가 평소처럼 답하자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변한 모습 때문에 살짝 위화감이 느껴졌었는데, 이러나저러나 유더라는 사실을 확인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꽁냥거리는 모습이 귀엽고 훈훈하구나.”

란디우스의 말에 유더가 쓰게 웃었다.

문득 거친눈사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툭하면 꽁냥거리냐고 툴툴 거리던 아기곰. 지금은 잘 살고 있으려나.

“아무튼 제자야. 한 가지 묻고 싶구나. 몇 문을 연 것이냐. 이문? 아니지. 환골탈태도 했으니··· 삼문?”

“어······.”

“개의치 않고 말해 보거라.”

“오문이요.”

“응?”

“오문···입니다.”

“응?”

“오문이요.”

유더가 세 번이나 답했음에도 불구하고 란디우스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는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문?”

“예.”

“진짜로 오문?”

“네.”

“일이삼사오의 오문?”

“네, 그 오문.”

유더의 대답에 란디우스는 다시 멍한 얼굴이 되었고, 코델리아는 처음 보는 란디우스의 모습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씩 웃으며 잘난척하듯 어깨를 으쓱였다.

‘흥흥흥, 우리 집 유더라니까요?’

다른 집 애들이랑은 달라요, 달라.

코델리아가 턱을 치켜들며 흥흥거리는 동안 란디우스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렸다.

오문.

제오문.

다섯 번째 문.

마침내 인지한 란디우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씨발.”

마지막 욕지거리는 잘못 들은 것일까.

유더와 코델리아가 흠칫하든 말든 란디우스는 다시 웃었고, 다시 욕지거리를 토했다.

“더러운 세상.”

“스, 스승님?”

“아니다. 잠시, 잠시 천무지체의 더러움 아니, 대단함에 대해 생각했다. 구천구문을 배운지 얼마나 되었다고 오문이라니. 음, 그래도 좋은 거겠지. 아무렴. 제자의 성취가 빠르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큰 복이겠는가.”

뭔가 스스로에게 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란디우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오문을 열기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언제 어디서나 천재 소리를 듣던 그조차도 오문을 여는 데는 6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죽음을 불사한 엄청난 수련을 거듭한 끝에 말이다.

‘역시 천무지체. 사기야, 사기.’

‘다른 것도 더해진 결과거든?’

‘알아. 그래도 이왕 잡은 기회니까 계속 비난할래.’

유더가 이렇게나 빠르게 오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천무지체 덕분만이 아니었다.

야생의 땅에서의 격전으로 인한 빠른 레벨 업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니, 없는 기회조차 만들어 먹은 각종 영약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 좋다. 아무튼 오문이라니. 축하한다, 제자야.”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래, 오문이라니··· 허허, 허허허. 이거 계획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겠구나.”

“계획···이요?”

“그래, 나도 나름의 교육 계획이 있었으니 말이다.”

구천구문의 구결만 알려주고 떠났던 것은 다음에 만날 때까지 이문만 열어도 대단한 성과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더가 자그마치 오문을 열어버렸으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일단 네가 오문을 여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 같다. 나의 경우와 무엇이 달랐는지 말이다.”

란디우스는 천무지체가 아니었다. 때문에 문을 여는 과정과 그 결과 역시 유더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문을 열어 내가 얻은 것들에 대해서도 검토를 해보아야겠지.”

“이능··· 말씀이시죠?”

“그래, 물론 이능도 있다.”

처음 구천구문에 대해 알려줄 때 란디우스가 했던 말.

오문부터는 신비한 이능을 하나씩 얻을 수 있다.

‘어쩐지 알 것 같아.’

누가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마치 새가 자연스럽게 날갯짓을 해 날아오르는 것처럼 사용법을 알 것 같았다.

유더는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보았다.

‘왜?’

그리고 유더의 두 눈에서 진한 초록빛 안광이 일었다.

“오! 된다!”

유더가 말했고, 란디우스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으며, 눈을 몇 번 깜박인 코델리아는 이해했다. 유더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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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제대로 안 보였다고······.”

“시도를 한 것 자체가 괘씸해.”

“아니, 그것도 딱히 의도한 게······.”

“그래서 잘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흑흑.”

무릎을 꿇고 앉은 유더가 우는 시늉을 했지만 코델리아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

오문을 열게 됨에 따라 유더가 손에 넣은 투시능력.

소설이나 만화 같은 서브컬쳐에서는 옷만 투시하는 등 참으로 편의적으로 쓰이는 능력이었지만 역시 현실은 현실이었다.

‘정확히는··· 몸이 좀 투명하게 보인 느낌이었어.’

뼈와 장기, 근육들의 위치를 파악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투기의 움직임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계산할 수 있는 유더였지만 이 능력을 활용하면 적의 움직임을 보다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약점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래저래 굉장히 써먹을 구석이 많은 능력이었다.

더욱이 그것만이 아니었다.

“후후후, 제자야. 아직 네가 미숙해서 그렇지 좀 더 숙련되면 될 것이다.”

“네? 진짜요?”

유더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자 란디우스는 사나이의 미소를 지었고, 코델리아는 싸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흠흠흠.”

“흠흠.”

쌍으로 헛기침을 토한 유더와 란디우스는 상황을 수습하듯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튼 제자야, 투시능력을 쓰는 것을 보니 정말 오문을 열었구나.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 번 축하하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래, 분명 소녀의 도움이 컸을 터이니 소녀에게도 감사하거라.”

“네, 스승님. 옳은 말씀이십니다.”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아본 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고마워, 코델리아. 모두 네 덕분이야.”

“아, 네. 그러시군요.”

“아니, 정말로.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워.”

“흠흠, 알면 됐고. 응. 알면.”

흥흥거린 코델리아는 옆으로 슥 고개를 돌렸는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 보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화도 좀 풀린 것 같고.’

후하고 안도의 숨을 토한 유더는 다시 란디우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여긴 어떻게 오시게 된 거죠?”

너무나 반가운 등장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너무 갑작스러운 란디우스의 등장이었으니 말이다.

유더의 물음에 란디우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레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설마 오문을 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일단 네가 매우 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만남을 서둘렀던 것이지.”

“와! 만나셨군요? 레나님은 건강하시죠?”

레나 이야기에 코델리아가 화색이 되어 묻자 란디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전히 아름답고 말이다.”

“헤헤헤.”

우리 레나가 좀 많이 예쁘죠.

코델리아가 환하게 웃자 란디우스 역시 호탕하게 웃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레나는 카마엘을 만나기 위해 남부로 내려갔다. 난 너희를 만나기 위해 북상했고. 정확한 위치는 이걸로 찾았지.”

란디우스가 허리춤에서 꺼낸 것은 작은 손거울이었는데, 유더와 코델리아는 바로 납득했다.

“레나님이 주신 물건이군요?”

“그래, 레나가 소녀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 선물에는 레나의 마력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전용 마법기가 있으면 위치를 추적할 수 있지.”

란디우스의 설명에 코델리아는 다시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레나가 추적기를 붙여둔 셈이었지만, 애당초 나쁜 의도도 아니었고, 덕분에 란디우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스승님, 이대로 저희와 함께하시는 건가요?”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도 퍼뜩 고개를 들어 란디우스를 보았다.

란디우스가 왕도에 함께 간다면 호국공이고 나발이고 걱정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란디우스의 대답은 부정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겠구나. 카마엘과 레나를 도우러 남부로 가야하니 말이다.”

유더의 상태를 봐주기 위해 잠시 북상했을 뿐, 바로 남부로 돌아가야 하는 란디우스였다.

‘남부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코델리아의 눈빛에 유더는 미간을 좁혔다. 원작에서도 명확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남부에서의 일로 란디우스가 죽는 걸까?’

이어진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란디우스는 단독으로 활동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카마엘과 함께하는 동안은 아닐 터였다.

‘더욱이 이제는 레나도 있으니까.’

레나의 생존과 그녀의 합류.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란디우스의 미래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자야, 그리고 소녀야. 갑자기 왜 말이 없는 것이냐.”

“아, 아뇨. 너무 아쉬워서요.”

“네, 저도.”

유더와 코델리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리자 란디우스가 인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무 그렇게 아쉬워하지 말거라. 떠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전수해주고 갈 터이니.”

“어떤 것들이요?”

유더보다 코델리아가 관심을 표하자 다시 껄껄 웃은 란디우스가 말했다.

“일단 칼날도 막을 수 있는 강철같은 근육을 키우는 방법이 있겠구나.”

란디우스의 말에 코델리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정말 좋은 능력이기는 했지만, 유더가 란디우스같은 몸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싫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겠지.”

거기까지 말한 란디우스는 돌연 숨을 깊이 삼키더니 자세를 바로했다. 유더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유더 바이엘, 나의 제자야.”

“예, 스승님.”

“너는 구천구문의 제오문을 열었다. 너의 몸은 강건해졌고, 타고난 막대한 한기로 인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니, 이제 나의 진정한 무공을 잇게 할 생각이다.”

란디우스의 말에 유더는 마른침을 삼켰다.

진정한 무공.

란디우스의 말 그대로였다.

구천구문은 선인의 신공이지 란디우스가 평생 이룩해온 그의 진신무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카마엘에게 들었다. 네가 음양지체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그러니 극한의 한기를 타고난 너라 해도 나의 진전을 이을 수 있을 것이다.”

코델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란디우스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태양의 전사 란디우스.

대륙 최강의 전사인 그의 진정한 근간.

“태양의 힘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구극태양신공.

란디우스의 전신에서 황금빛 투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 제51장 태양만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