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Maker

Chapter 51 Long live the Sun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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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전기1편의 양대 주인공인 카마엘과 란디우스는 서로 대비되는 면이 많았다.

똑같이 잘생겼지만 한쪽은 여인으로 착각할 만치 아름다운, 선이 곱고 가는 미인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남자답고 호쾌한, 선이 굵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소위 말하는 쾌남형 얼굴이었다.

덩치 역시 달라서 카마엘은 보통보다 조금 작은 키에 몸이 가는 반면 란디우스는 1편 시점에서도 이미 190cm가 넘는 장신에 근육 또한 우람한 거인이었다.

‘성격도 달랐지.’

카마엘은 냉정, 침착, 이성이란 단어로 정의가 가능한 현실주의자였고, 란디우스는 열혈, 희망, 용기로 똘똘 뭉친 전통파 용사였다.

‘얼음과 불의 노래.’

극한의 힘을 부리는 카마엘과 극양의 힘을 부리는 란디우스.

그런 둘을 대표하는 무공인 설화십이검과 구극태양신공.

‘태양의 전사.’

란디우스는 이명 그대로의 존재였다.

데몬프린스의 절대적인 힘 앞에 카마엘과 레나는 물론이고 파라곤 왕국의 모든 생존자들이 절망과 공포에 빠졌을 때, 오직 그만이 유일하게 절망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태양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솟구쳐 올라 세상을 밝히는 태양과 같이.

모두의 마음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내고 다시 한 번 싸울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은 남자.

‘구극태양신공은 란디우스와 같아.’

끝없는 생명력.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힘.

잔재주 없이 언제나 전력을 다해 눈앞의 적을 파하는 남자의 무공.

“제자야, 구극태양신공에 대해 알고 있느냐?”

란디우스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린 유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야기만··· 조금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구극태양신공의 특징을 아느냐?”

란디우스가 재차 묻자 코델리아가 눈을 빛냈다.

‘체력 뻥튀기! 스테미너 엄청 높아져! 회복 속도도 빠르고! 공격 자체가 단순하지만 한 방의 위력이 강해! 다른 건 몰라도 한 방 딜뽕은 다섯 주인공 중에 란디우스가 최고지! 주먹에 모아 지르는 그 한 방의 맛!’

구극태양신공을 게임적으로 해석하면 코델리아의 말대로일 터였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는 말할 수는 없었던 터라 유더는 예쁘게 포장된 말을 꺼냈다.

“태양과 같은··· 강인한 생명력을 기반으로 한 무공이라 들었습니다.”

“그래, 바로 그렇다. 구극태양신공은 너를 태양으로 만들어줄 터이니, 대성한다면 언제 어느때고 지치지 않는 무한한 생명의 힘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맞아, 맞아! 체력 쩔어!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지치지 않아! 에너자이저야! 캡틴 아메리카처럼 하루종일도 할 수 있어! 아니, 몇날 며칠도 할 수 있을걸? 캡틴 세일룬이 되는 거야!’

코델리아가 다시 눈을 반짝반짝 빛내자 유더는 입술을 깨물어 겨우 웃음을 참았다.

란디우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기존의 구극태양신공에 구천구문의 구결을 더하여 새로운 구극태양신공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자야, 네게는 기존의 구극태양신공을 전수해줄 것이다.”

유더의 구천구문은 란디우스 자신의 것과는 달랐으니까.

‘질풍이십사보.’

구천구문과 함께 변화한 유더의 보법.

천하삼십육보를 유더에게 배운 란디우스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유더의 구천구문은 천하삼십육보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무공과 어울려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란디우스 자신은 할 수 없지만, 천무지체를 타고난 유더는 할 수 있는 것.

보다 완벽한 구천구문을 익힌 유더만이 해낼 수 있는 일.

“정말 그리한다면, 나의 새로운 구극태양신공과 비교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를 통해 나의 구천구문 또한 발전시킬 수 있을 거다. 물론 너의 구천구문 역시 말이다.”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야기할 틈이 없어서 그렇지 어서 빨리 구천구문에 대해 문을 열 때마다 마주한 선녀와, 이번에 오문을 새로 열며 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유더였다.

‘저기, 그런데 유더야.’

바로 그때였다. 코델리아가 살짝 손을 들며 눈빛을 보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눈빛에 유더는 바로 응답했다.

“코델리아?”

“그, 하나만 물어봐도 돼?”

코델리아의 물음에 란디우스 역시 관심을 보였다.

“소녀여, 무엇 때문인가. 구극태양신공에 대한 궁금증인가?”

“아뇨, 그··· 생명의 구 때문에요.”

유더는 생명의 여신 에어리스의 신성기인 생명의 구를 취하였다.

덕분에 생명의 구 자체는 이제 그냥 보기 예쁜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 힘을 온전히 유더에게 흡수당한 탓에 말이다.

‘그런데 생명의 구에는 여러 특수 기능이 달려 있단 말이지.’

재생력이라든가, 왕성한 생명력 증폭이라든가.

‘그런 특성들도 유더에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제법 타당한 의문이었다.

코델리아가 떠올린 것들을 조심스럽게 소리내어 말하자 란디우스는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미간을 좁히다 눈을 감아보았다.

‘생명의 구.’

단순히 그 안에 담긴 생명력만이 흡수된 것이 아니라면.

여신의 축복 역시 함께하게 되었다면.

유더는 스스로를 관조하였다.

의식의 수면 아래로 깊이 내려가 자신의 영육을 살펴보았다.

어쩌면 이 또한 오문을 열게 되며 얻게 된 이능일지 몰랐다.

깊이, 더 깊이.

스스로의 영육을 관조하여 알 수 있는 것.

유더 자신이 새로이 손에 넣은 능력들.

“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한 유더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들더니 그대로 팔뚝에 상처를 내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란디우스와 코델리아는 놀라 소리치는 대신 눈을 부릅떴다.

얇게 베인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기 때문이다.

“재생력?”

“와, 티도 안 나.”

코델리아가 유더의 팔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했다.

정말 베인 흔적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랍구나. 생명의 여신의 축복이 고스란히 제자의 몸에 남았다니. 실로 여신의 보살핌··· 여신께서 내리신 기적이다. 감사하도록 하거라.”

거기까지 말한 란디우스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애당초 성기사 출신인 란디우스라 그런지 기도하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여신님. 정말 감사해요.”

코델리아도 따라서 기도를 올렸고, 유더 역시 분위기에 휩쓸려 눈을 감고 감사를 표했다.

“아무튼 잘 되었구나. 이제 재생력이 생겼으니 이전처럼 사정 봐주지 않고 막 굴려도 될 테니 말이다.”

란디우스가 껄껄껄 웃으며 말하자 유더는 눈을 껌벅였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요?’

사정 봐주지 않고 막 굴려도 된다고요?

아니, 그럼 이전에는, 그 미친 수련이 사정을 봐준 거였단 말인가?

“제자야, 지체할 시간이 없구나. 네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도, 또 네게 배워야 할 것도 많으니 서두르도록 하자꾸나.”

“자, 잠시만요. 스승님?”

“허허허, 재생력이 생기지 않았더냐. 딱 보니 체력도 넘쳐흐르는 것 같고. 재생력 덕분에 영양을 흡수하는 속도도 빨라진 것 같구나.”

“아니, 그럴 리가.”

재생력이랑 소화 속도가 빨라지는 게 무슨 연관이

‘있어?’

배가 고프지 않았다.

환골탈태 때문에 체력을 너무 소진한 터라 방금까지만 해도 온 몸에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란디우스가 준비한 4리터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액체의 영양을 모조리 다 흡수한 기분이었다.

시야도 또렷했고, 사지에도 힘이 넘쳤다.

“껄껄껄, 좋구나. 부상 위험도 없고 회복도 빠르고 먹자마자 바로 소화도 하고. 실로수련에 최적화된 육체일 지어니. 이제부터 쉬는 시간 없이 마구 굴려주도록 하마.”

홀로 기쁜 란디우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유더에게 수련복을 던져주었고, 유더는 황망한 얼굴로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도, 도와줘! 아니, 구해줘! 코델리아!’

주인 없이 떠돌다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의 눈빛이 저러할까.

순간 동정심이 마구 샘솟은 코델리아였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파이팅.’

죽지만 마.

무릎베개랑 귀 파기랑··· 아무튼 상냥하게 대해줄게.

우리 유더 파이팅?

‘야! 코델리아! 야!’

소리 없는 절규는 말 그대로 소리 없이 끝났다.

란디우스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유더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고, 담요는 흘러내렸으며, 코델리아는 손가락이 벌어진 손으로 얼른 얼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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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란디우스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유더를 정말이지 혹독하게 굴렸다.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모조리 수련 시간이었는데, 그 밥이라는 것도 제대로 된 밥이 아닌 회색 액체이다 보니 식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유더에게 있어 하루의 낙은 잠자는 시간 뿐이었다.

“흑흑. 코델리아. 흑흑.”

무릎베개를 한 채 PTSD 환자처럼 떠는 유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코델리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수련하는 건 첫날 잠깐 밖에 보지 못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유더가 겨우 사흘 만에 이렇게 망가진 걸 보면 정말 지옥 같은 수련인 모양이었다.

“우리 유더 잘 자요. 자야해요. 수면 시간 하루에 3시간 밖에 없잖아요. 이제 2시간 하고 53분 밖에 안 남았어요.”

“꺼흑.”

코델리아의 말에 다시 몸을 떤 유더는 눈을 꼭 감고 자기 위해 노력했고, 코델리아는 다시 그런 유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10분이나 지났을까.

완전히 깊이 잠든 유더의 머리 밑에서 살며시 다리를 뺀 코델리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더에게는 수면 시간이었지만, 코델리아 자신에게는 이제 새로운 일과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소녀여, 오늘도 가는 것인가.”

유더가 잠자는 공간인 작은 방을 나오자 입구 쪽에서 란디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극태양신공을 대성하면 정말 잘 필요도 없는지, 유더와의 수련이 끝나면 저렇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뿐, 딱히 자지도 않는 란디우스였다.

코델리아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그래도 슬슬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무리는 하지 말거라. 위험해지면 바로 신호를 보내고. 소녀가 강한 것은 나도 알지만, 실전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 말이다.”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예쁘게 답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수련실인 3층의 방을 나와 생명의 신전 깊은 곳으로 향했다.

유더가 란디우스와 수련하는 동안 코델리아가 하고 있는 일.

‘3층도 얼추 다 잡은 거 같네.’

코델리아는 생명의 신전에 자리하고 있는 마물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유더가 수련하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지 못 하겠어.’

유더가 강해지는 것은 좋았다.

빈 말이 아니라 정말로 기뻤다.

우리 집 유더였으니까.

왕도에서 싸울 적들이 만만치 않았으니까.

유더가 다치는 건 정말 싫었다.

강해져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들과 별개로.

‘나도 강해져야 해.’

경험치를 조금이라도 더 모아서 레벨 업을 해야 했다.

지금 가진 것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성장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니까.

정해진 틀 외에도 강해질 방법이 존재할 테니까.

유더는 성큼성큼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강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니 따라잡아야 했다.

코델리아 자신도 강해져야만 했다.

‘옆에 나란히 서고 싶어.’

아니, 그런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보다 본질적인 것.

전생부터 이어진, 현생에도 여전히 품고 있는 코델리아 자신의 마음.

‘강해질 거야.’

완벽한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가올 난관들을 해쳐나가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이유.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강한 소망.

‘남의 집 아웃복서가 아무리 우리 집 유더가 되었다 해도.’

지고 싶지 않으니까.

언젠가 꼭 이기고 싶으니까.

‘지지 않아.’

코델리아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번졌다.

주먹을 불끈 쥔 그녀는 정면을 주시하였고, 이내 그녀의 전신에서 성스러운 천사의 힘이 발산되었다.

빛의 날개가 펼쳐졌고, 머리 위에는 천사의 고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유더를 앞서기 위해, 유더에게 지지 않는 것을 넘어 승리하기 위해.

코델리아가 눈을 감았다.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힘을 발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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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1장 태양만세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