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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7 Nymph Sword

제77장 요정검

다모스 산 지하에 위치한 블랙 혼 길드의 거처 블랙 타운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제일 왼쪽 끝에 있는 건물부터 차근차근 수색을 시작했다.

“오··· 코델리아, 이 냄비 좀 봐. 손잡이의 그립감이 엄청 좋은데다가 용량도 딱 좋아. 와, 이 프라이팬도 쩌는데?”

주방으로 보이는 방 안에는 가재도구가 여럿 남아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실로 명품이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조금 닦기만 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다들 멀쩡하다는 사실이었다.

“캬··· 진짜 쩐다. 이 유적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0년은 되었을 텐데 어쩜 이렇게 멀쩡하지. 재질이 뭘까? 여기에 팬케이크 구우면 더 맛있을 거 같지 않아?”

잔뜩 흥분해서 재잘재잘 떠들던 유더는 어느 순간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짜게 식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코델리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왜, 왜?”

“아냐, 유더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줄게.”

그리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코델리아는 정말 따뜻한 눈으로 유더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기.”

“어.”

“차라리 욕을 해줄래?”

“진짜루?”

“아, 아니. 그냥 따뜻한 시선만 받을게.”

흠흠 헛기침을 토한 유더는 슬쩍 들고 있던 프라이팬과 냄비만 챙긴 뒤 다른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코델리아야.”

“어, 유더야.”

“5번 검은 어때? 안 무거워?”

“응, 생각보다 훨씬 가벼워.”

오른팔에 낀 얼티메이트 파이브 그랜드 오더를 휙휙 휘두른 코델리아는 새삼 생각났다는 듯 유더에게 물었다.

“나머지 얼티메이트 시리즈는 소재가 좀 불명확하지?”

“어, 그래도 열쇠검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거야. 음··· 말 나온 김에 한 번 해볼까?”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열쇠검을 뽑아든 유더는 마력을 주입해 봉인을 해제한 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얼티메이트 시리즈 즉, 자신의 몸에 열쇠검을 가져다 대었다.

“오, 반응이 있어.”

열쇠검의 손잡이 부분에 달린 보석이 빛을 발하자 화색이 된 코델리아는 단숨에 유더와의 거리를 좁혔다.

“보석 색이 각각의 얼티메이트 시리즈를 상징하는 거지?”

“어, 무지개색인데 딱히 큰 의미는 없고, 그냥 식별용 같아.”

유더가 열쇠검을 옆으로 눕혀서 들자 보석에서부터 방출된 빛이 일곱 개의 보석을 형성했다.

“1번검이랑 5번검이 붙어있지?”

“어, 빨간색이랑 파란색.”

얼티메이트 원 신검합일 소드 오리진과 얼티메이트 파이브 방패검 그랜드 오더.

손가락을 꼽아가며 무지개 색을 확인한 코델리아는 나머지 보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란색이랑 초록색이니까··· 3번검이랑 4번검은 우릴 기준으로 남쪽에 있다는 거지?”

얼티메이트 쓰리 용살검 아스카론과 얼티메이트 포 폭령검 매직 블라스터.

비교적 색이 뚜렷한 둘과 달리 나머지 보석들 2번검과 6번검, 7번검을 상징하는 것들은 무척 빛이 약하고 흐릿했다.

“북쪽에 있기는 한데··· 너무 멀어서 위치를 완벽히 알 수는 없다는 건가?”

“하긴, 원작에서도 보통은 제국 쪽에서 발견되었으니까. 얼티메이트 식스는 검신이 쓰던가?”

“어, 검신네 가문의 가보니까.”

제국제일검.

검의 신이라 불리는 대륙 최강의 검사.

‘카마엘이랑 둘 중에 누가 더 센지는 불명확하지만.’

양지의 최강자가 검신이라면 카마엘은 음지의 최강자였다.

“나는 카마엘이 더 셀 거 같아.”

유더의 눈빛을 읽은 코델리아가 대뜸 말하자 유더는 기대에 찬 눈으로 코델리아를 보았다.

동물적인 직감을 가진 코델리아의 의견이라면 들어볼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카마엘은 우리 편이니까.”

란디우스는 유더의 스승이고, 카마엘은 그런 란디우스의 절친이니까.

더욱이 코델리아 자신은 세일룬 왕국 사람인데 검신은 제국 사람이니까.

참으로 코델리아다운 이유에 유더는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흥, 이유가 또 있거든?”

“뭔데?”

“어차피 나중 가서 사대검사에 드는 건 카마엘이니까.”

“아니, 그거야 검신이 7대 재앙 막다가 전사하니까 그런 거고.”

“아무튼 마지막까지 남은 건 카마엘이잖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냐,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지.”

코델리아가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치자 유더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기요, 코델리아 양. 지금 아무말대잔치 하고 있는 거 본인도 알고 계시죠?”

유더의 지적에 코델리아는 금방 얼굴을 붉혔다.

뻔뻔함의 화신과도 같은 유더와는 달리 부끄러움이 많은 그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좋은 거지만.’

작게 웃은 유더는 본격적으로 민망해하는 코델리아를 위해 다시 화제를 전환했다.

“아무튼 아스카론이랑 매직 블라스터를 확보하는데 주력하자.”

“응, 말레키스랑 싸우는 게 우선이니까.”

사실 드래곤과 상극인 용살검 아스카론 외에는 딱히 모을 이유가 없는 얼티메이트 시리즈였지만, 이미 게임뇌가 돌아가기 시작한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전부 모은다’가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있으면 모아야지.’

거기에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한데?

“둘 다 남쪽에 있는 거지?”

“어, 용살검은 아예 보관까지 되어 있으니까 비교적 찾기 쉬울 거야.”

영원의 숲에 사는 하이 엘프들을 떠올린 유더는 매직 블라스터를 상징하는 초록색 보석을 들여다보며 턱을 어루만졌다.

“보석들 간의 거리를 생각하면··· 매직 블라스터는 남부7가문의 영역에 있는 거 같은데?”

“겸사겸사네.”

가는 길에 용살검도 먹고 폭령검도 먹고.

“흠··· 내친 김에 앞으로의 일정도 좀 이야기해볼까?”

“응? 동맹 후보들 하나씩 만나러 다니는 거 아니었어?”

“그럴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바뀌었어.”

그렇게 말하며 유더는 코델리아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가모르 칸의 황금 목걸이에 시선을 두었다.

“증거가 생겼으니까.”

“어? 어··· 아! 진짜 그러네?”

짝 소리가 나게 박수를 친 코델리아는 활짝 웃더니 주먹을 마구 흔들었다.

증거.

왕도에서의 싸움에서 유더와 코델리아는 란디우스의 조력을 요청할 수 없었다.

란디우스가 남부에 급한 볼일이 있다 한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란디우스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증거가 없으니까.’

호국공이 왕족들을 몰살하려고 한다.

세일룬 왕국에서라면 지나가는 개도 믿지 못 할 이야기였다.

때문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호국공이라는 적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일이 정말로 터지기 전까지는 외부의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말레키스도 본래라면 그랬겠지.’

오랜 옛날 남쪽 바다에 봉인된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가 다시 깨어나 남부를 초토화시키려 한다.

근거 없는 이야기였다.

이것만으로는 파라곤 왕국을 멸망시킨 대사교 마누엘라를 찾아 전세계를 방랑 중인 란디우스의 발을 붙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증거가 생겼다.

가모르 칸의 증언으로 말레키스의 실존과 음모를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바로 스승님과 합류하자. 전에 이야기하신 대로라면 카마엘이랑 레나도 스승님과 함께하고 있을 테니까.”

“와, 레나! 그럼 이번엔 1편 주인공들하고 같이 싸우는 거네?”

“아마도?”

솔직히 이전까지는 전력 차가 너무 나서 함께 싸운다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얼추 함께 싸우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우왕. 이거 완전 어벤져스 아님?”

코델리아가 마구 뛰는 가슴을 살짝 누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무척 신이 난 모양이었다.

“말레키스는 그 정도의 적이니까. 아무튼 그래서 바로 성십자 수호단의 본부를 찾아갈 생각이야.”

“카마엘한테 연락하려고?”

“어, 아까도 말했지만 스승님은 카마엘이랑 같이 계실 확률이 높으니까.”

남부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은 란디우스였지만, 정황상 카마엘, 레나까지 함께한다면 대사교 마누엘라와의 싸움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후, 좋아. 성십자 수호단에 들러서 카마엘의 행방을 알아낸 뒤에 레나랑 란디우스랑 합류한다. 응, 좋아. 마음에 들어.”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남부에 도착하면 남부7가문을 포섭할 준비도 해야 할 거야.”

말레키스와의 싸움은 평범한 보스 몹 레이드와는 달랐다.

놈과 맞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군대가 필요했다.

“어떻게 하려구?”

“다 생각이 있지요.”

스칼렛을 남부로 부른 건 다 생각이 있어서랍니다.

“그래서 그 생각이 뭔데?”

“흠, 좋아. 잠깐 이리 와봐.”

“또또 귓속말 한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린 코델리아였지만 얌전히 유더 곁에 다가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니까······.”

유더는 작게 속삭였고, 코델리아는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웃음을 흘렸다.

“흐흐흣 맘에 들어.”

와중에 카이사랑도 친해질 수 있을 것 같구.

코델리아가 만족했다는 사실에 만족한 유더는 가볍게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백작님, 마저 탐색을 하실까요?”

“네, 백작님.”

예쁘게 답한 코델리아는 앞장서서 탐색을 시작했다.

&

밤이 깊었다.

늦게까지 블랙 혼 길드의 거주지를 뒤진 유더와 코델리아는 제법 쓸 만한 물건들을 여럿 챙길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코델리아가 가장 좋아한 것은 원거리 무선 송수신기였다.

“스마트폰 같아.”

손바닥 크기의 단말기에는 커다란 화면과 몇 개인가 되는 버튼이 달려 있었는데, 엔디미온의 몰락에서 살아남은 하이 엘프들과 소드 시커를 떠난 고대 드워드들의 합작품이었다.

“유더야, 유더야. 얼른 나한테 카톡 보내봐.”

모닥불 옆에 쪼그리고 앉은 코델리아가 재촉하자 유더는 송수신기를 보며 고민했다.

정말 스마트폰이라도 되는지 터치로 문자 입력이 가능했는데, 블랙 혼 길드가 멸망하던 시점에는 이미 인간들의 국가도 여럿 있었기 때문인지 고대 드워프 문자나 하이 엘프 문자 외에도 인간들의 문자 역시 입력이 가능했다.

“얼른.”

코델리아가 재차 재촉하자 유더는 미간을 좁히며 고민했다.

여자에게 카톡이라니.

물론 업무상이라든가, 동료에게라면 여러 번 보내본 카톡이었지만, 코델리아에게 보낸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고민이 되었다.

‘아니, 근데 당장 얼굴 맞대고 있잖아.’

그런데 무슨 문자를 보내라는 거지?

결국 고민 끝에 유더가 보낸 것은 무척이나 단순한 문장이었다.

유더 : [안녕?]

이게 뭐라고 떨리는 것일까.

유더는 슬쩍 고개를 들어 코델리아를 살폈고, 코델리아는 오오오 감탄하더니 얼른 답장을 보냈다.

코델리아 : [응, 안녕 ㅋㅋ]

진짜 카톡 화면과는 전혀 다른, 마치 군용이라도 된 것처럼 까만 화면에 하얗고 딱딱한 글자들이 나열되었지만 ㅋㅋ 만으로 분위기가 둥글둥글해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고개만 들면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르는 코델리아가 보였고 말이다.

‘여기서 뭐라고 해야 하지?’

안녕이라 물으니 안녕이라 답했다.

그럼 이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한단 말인가.

어쩐지 모르게 대화를 리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유더는 결국 이번에도 짧은 문장을 보냈다.

유더 : [자니?]

코델리아 : [아니, 안 자 ㅋㅋ]

코델리아 : [어이없어 하는 토끼 이모티콘]

“어?”

토끼 이모티콘?

여기 이모티콘 같은 거 없잖아.

실제로 코델리아가 쓴 건 ‘어이없어 하는 토끼 이모티콘’이란 문장이었지, 진짜 이모티콘이 아니었다.

“코델리아?”

유더가 눈을 깜박이며 묻자 코델리아는 눈빛으로 답했다.

‘그냥 상상해! 상상하라구!’

“으응.”

코델리아가 바라니 맞춰줄 수밖에.

유더 : [경례하는 사자 이모티콘]

코델리아 : [ㅋㅋㅋ 유더 잘해.]

코델리아는 다시 꾹꾹꾹 화면을 눌러 문자들을 보냈는데, 대화의 절반 이상은 ㅋㅋㅋ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코델리아 : [오랜만에 카톡 하니까 좋당. 채팅방 생각도 나구?]

유더 : [그러게.]

코델리아 : [다들 잘 지내겠지?]

유더 : [잘 지내겠지.]

코델리아 : [응 ㅋㅋ]

코델리아 : [활짝 웃는 토끼 이모티콘]

거기까지였다.

코델리아는 모닥불 옆에 눕더니 슬쩍 유더를 살폈고, 이내 다시 화면을 꾹꾹 눌러 문장을 보냈다.

코델리아 : [잘 자, 유더야.]

유더 : [너도 잘 자.]

코델리아 : [뺨에 입맞춤하는 토끼 이모티콘.]

“그냥 진짜 해주면 안 돼?”

“어, 안 돼.”

어림없다는 듯 킥킥 웃으며 말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돌아누웠는데, 모닥불 때문인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귀가 무척이나 빨갰다.

“잘 자.”

자리에 누운 유더는 눈을 감았고,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유더는 고개를 들었다.

눈을 떴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을 마주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숲이었다.

곧게 뻗은 커다란 나무들이 좌우에 자리했고, 정면에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진 햇살을 받고 자란 싱그러운 녹색 잔디들이 펼쳐져 있었다.

낯선 이유는 당연했다.

생전 처음 보는 장소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익숙한 것은 이미 이런 공간을 유더가 몇 차례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구천구문.’

선녀와 마주할 수 있었던 온통 하얗거나 까만 공간.

그렇다면 이곳도 유더 자신의 심상 세계 같은 곳일까?

유더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맨발에 하얀 튜닉 하나만 걸친 상태였다.

맨살에 닿는 잔디의 감촉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그리고 유더는 볼 수 있었다.

잔디밭 한 가운데 서서 햇살을 쬐고 있는 여인을.

길게 길러 엉덩이에 닿는 옅은 황금빛 머리칼과 무척이나 긴 귀.

하얀 얼굴 사이에 자리한 신비한 초록 눈동자.

유더에게는 코델리아 다음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선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유더를 보았다.

이십대 중반에서 후반쯤 되었을까.

엘프 검사들이 즐겨 입는 녹색 전투복을 입은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는 대신 하얀 미소를 지었고, 유더는 그녀 앞에 섰다.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벨렌시아.”

요정검.

블랙 혼의 길드 마스터 에이트리가 궁극의 검에 대해 묻고자 찾아갔던 당대 최강의 검사.

그리고 유더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얼티메이트 원 소드 오리진의 첫 번째 주인.

“반가워요, 나의 후대.”

활짝 웃으며 말한 그녀는 유더에게 손을 내밀었다.

< 제77장 요정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