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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9 Southern Family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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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해봐.”

유더의 말에 스칼렛은 약간은 마뜩찮은 표정이 되더니 창문 가까이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 누군가가 남부7가문을 털고 있어.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확실한 정보야. 벌써 일곱 가문 중에서 네 가문이 털렸고.”

“뭘 털었는지도 알아?”

코델리아가 가까이 다가서며 묻자 스칼렛은 바로 답하는 대신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맞춰봐.”

“카를로스의 유산이겠지. 남부7가문이 하나씩 나눠받은 카를로스의 증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더의 답이 나오자 스칼렛은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턱짓하며 물었다.

“이유는?”

“도둑이 들었는데 쉬쉬하고 있다는 건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야. 하나는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지면 안 되는··· 그러니까 뭐 예를 들자면 집에서 마약이나 장물이 나왔다거나 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무척이나 곤란해지는 물건이지.”

물론 이것만으로 카를로스의 증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코델리아처럼 ‘그냥 감이 그래’라며 넘어갈 수도 없었고 말이다.

“여기에 두 가지 단서를 더 붙일 수 있어. 하나는 남부7가문이 연속해서 털리고 있다는 점이야. 물론 남부7가문을 모두 턴다 같은 상징성 있는 미션을 문제의 도둑이 홀로 수행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냥 단순하게 남부7가문이 모두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털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그리고 마지막 단서는 스칼렛 너야.”

“나?”

“어, 네가 큰일이라고 말한 것 자체가 단서라 이거지.”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갸웃갸웃 했지만 유더와 스칼렛의 시선이 닿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척을 했다.

때문에 유더는 순간 터져 나온 웃음을 간신히 억누른 뒤 마저 설명을 이었다.

“남부에서 승부를 하자고 했으니 너도 남부7가문을 타깃으로 생각했겠지? 그 중에서도 로그 마스터의 승부를 가릴 정도의 물건이라면 역시 단순한 현금성 자산보다는 상징성 있는 물건이 좋겠지. 카를로스의 증표처럼 말이야.”

그런데 그걸 한 발 앞서 털고 있는 놈이 있다.

더욱이 일곱 개 중에 무려 네 개를 이미 선점했다.

코델리아 이상으로 이번 승부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스칼렛 입장에서는 정말 큰일이 난 셈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단서를 전부 종합하면 남부7가문들이 각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카를로스의 증표를 털고 다니는 놈이 있다는 결론이 나와.”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근거가 빈약했지만 전부 모으면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스칼렛.’

스칼렛의 성격과 행동양식까지 고려한다면 카를로스의 증표 외에는 아예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내 말이 맞지?”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잔뜩 신난 얼굴로 스칼렛을 돌아보았고, 스칼렛은 인상을 구기며 답했다.

“제길, 맞아.”

“역시 우리 유더. 우리 유더 대단하지?”

코델리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좋아하자 더더욱 인상을 구긴 스칼렛은 그녀의 뺨을 아프게 꼬집었다.

“아야! 아프하! 아프하!”

“네 뺨이 쫀득쫀득한 게 잘못이야.”

아무 말이나 내뱉은 스칼렛은 코델리아가 반격하기 전에 손을 놓은 뒤 다시 유더를 돌아보며 말했다.

“블랙망토 말이 맞아.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카를로스의 증표들을 수집하고 있어. 예고장조차 없이 말이야.”

‘애당초 예고장을 보내는 게 비정상이다만.’

하지만 말하면 화낼게 분명하기에 속으로만 삼킨 유더는 턱을 만지며 물었다.

“범인에 대한 단서는 없고?”

“아직까지는 전혀. 다만 수법이 꽤나 거친 놈이야. 침투 자체는 은밀하게 하지만 일단 저택에 들어가고 난 다음부터는 과격해진다고 할까? 거기다 사람을 죽이는데도 거리낌이 없어. 제대로 된 도둑이 아니라 이거지.”

“제대로 된 도둑?”

코델리아가 묻자 스칼렛은 괴로운 얼굴이 되더니 다시 그녀의 뺨을 꼬집으며 말했다.

“대도가 훔치는 건 물건이지 사람의 목숨 같은 것이 아니야.”

“로그 마스터의 말이네. 초대의.”

“그래, 네가 아니라 핑크폭탄이 알아줬다면 더 좋았을 말이지.”

유더의 대답에 재차 한숨을 내쉰 스칼렛은 아까부터 계속 꼬집히느라 빨개진 뺨을 감싼 채 우우거리는 코델리아에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보니 승부를 하기가 좀 난처해.”

카를로스의 증표 말고 다른 걸로 승부를 해도 되었지만, 상황 자체가 어수선하다보니 그래서는 모양이 살지 않았다.

이미 정체모를 도둑에게 관심이 쏠린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거 아니었어?”

“얼마 전까진 몰랐지만 슬슬 소문이 풀릴 거야. 연속해서 네 가문이나 털렸고··· 아까 말했듯이 놈은 피를 보는데 주저함이 없어. 덕분에 한 번 도둑질에 나설 때마다 피해자가 대량으로 발생 중이고.”

사람이 다치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었다.

이쯤 되면 소문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유더야, 어떡하지?]

스칼렛과의 승부도 승부였지만 그보다는 말레키스를 저지하는 쪽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일단 범인이 누구냐인데.’

영웅전기2에서는 남부7가문의 증표를 수집하는 자가 없었다.

그와 관련된 퀘스트가 전무했으니 말이다.

‘후보가 너무 많아.’

다른 무엇도 아닌 카를로스의 증표였다.

어쩌면 남부7가문 가운데 하나가 행동에 나선 것일지도 몰랐다.

“스칼렛, 오펀드 후작가는 아직 안 털린 거지?”

“아직은. 남은 두 가문은 카게하마 백작가랑 가오란 백작가고.”

스칼렛의 대답에 다시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코델리아, 둘 중에 하나를 골라봐.]

[카게하마랑 가오란 중에서 어딜 털 거냐고?]

[······남은 세 가문의 증표를 확보할지, 아니면 카이사네 증표를 지키면서 쳐들어온 놈을 방어할지 중에 고르라는 거였는데······ 공격이라 이거구나.]

하긴, 생각해보니 당연한 답변인가.

짐승녀에 폭탄마인 코델리아였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남은 두 가문을 털리기 전에 일단 털자.]

[응응, 그게 좋겠어. 드래곤볼이랑 똑같이 일곱 개를 다 모아야지만 쓸모가 있는 증표니까. 이쪽에서 하나나 두 개만 확보하고 있어도 충분히 해볼 만 할 거야.]

범인의 목적이 정말 남부7가문을 지휘할 수 있는 카를로스의 신물이라면 일곱 개의 증표를 모두 모으기 위해 이쪽과 접선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그래서, 물밑 대화는 그쯤하고 슬슬 나도 껴주지 않을래?”

무슨 수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니들 밀담하는 거 다 티 나거든?

스칼렛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코델리아는 일단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고개를 끄덕인 뒤 스칼렛에게 말했다.

“그 전에 한 명 더 데려올 사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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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갑자기 끌려온 카이사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 코델리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얼굴은 물론이고 귀랑 목까지 빨개진 그녀는 우물쭈물하다 말했다.

“그, 그러니까아.”

“어, 그러니까.”

“내가······.”

“네가?”

“피, 핑크폭탄이야.”

말했다. 말해버렸다.

이미 빨개져 있던 코델리아의 얼굴이 더더욱 빨개졌다.

가면도 없이 스스로를 핑크폭탄이라 소개하는 일이 이렇게나 힘들고 부끄러울 줄이야.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무슨 폭탄?”

“어?”

“아니, 무슨 폭탄이냐구.”

“피, 핑크폭탄.”

“핑크 뭐?”

“핑크폭탄.”

“핑탄?”

“핑크폭탄! 야!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응, 일부러 그러는 거야.”

“우씨!”

울상이 된 코델리아는 카이사에게 달려들었고, 카이사는 그런 코델리아를 와락 끌어안아 움직이지 못 하게 했다.

“워워, 진정해. 진정. 음, 이런 말을 나도 하게 될 줄이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기분인데?”

낄낄 웃은 카이사는 괴력에 눌려 꼼짝도 못 하는 코델리아의 머리 위에 자기 턱을 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소문의 핑크폭탄이 코델리아였다 이거네. 그럼 자연히 유더 너는······.”

“맞아, 내가 블랙망토야. 참고로 이름을 지은 건 내가 아니라 코델리아고.”

“과연. 핑크폭탄이 생각할 법한 이름이네.”

카이사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품안에 안겨 있던 코델리아는 다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피, 핑크폭탄은 내가 지은 거 아니거든? 유더가 지은 거거든?!”

먼저 시작한 건 유더거든?!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뻔뻔한 유더를 놀리는 것보다는 이렇게나 반응이 귀여운 코델리아를 놀리는 쪽이 몇 배는 더 즐거웠으니까.

때문에 카이사는 킬킬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블랙망토는 코델리아 네가 지었다는 거네?”

“어?”

“네가 지은 거 아냐?”

“마, 맞아. 그, 그래두 그게······.”

허둥거리며 변명하려던 코델리아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어째 말하면 말할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아 진짜 너무 귀엽다. 막 깨물어주고 싶어.”

“응, 안 돼. 5초도 이미 지났고.”

알 수 없는 말을 한 유더는 카이사가 끌어안고 있던 코델리아를 단번에 당겨 빼냈다. 카이사만 있는 괴력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앗, 뺏겼다.”

“뺏은 게 아니라 되찾은 거지.”

뻔뻔히 말한 유더는 코델리아를 꼭 끌어안았고, 덕분에 얼굴이 더더더 빨개진 코델리아는 쥐구멍에 숨듯 유더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가쁜 숨을 토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스칼렛이 참담한 심정을 담아 말했다.

“개판이네.”

이게 지금 다 뭐하는 짓일까.

다른 누구도 아닌 로그 마스터의 정체를 밝히는 상황인데 왜 이런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일까.

로그마스터의 후예로서 피눈물을 삼킨 스칼렛은 모든 일의 원흉인 유더를 노려보았고, 유더는 언제나처럼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이쪽은······.”

“스칼렛. 로그 마스터의 후예야.”

초대 로그 마스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스칼렛이 당당히 스스로를 밝히자 카이사는 호하고 작게 감탄하더니 똑같이 씩 웃으며 말했다.

“카이사 오펀드. 신수 펜릴의 후예다.”

둘 다 미녀였지만 한쪽은 요염한 여우였고, 다른 한 쪽은 매서운 흑표범이었다.

‘흥미로운 조합이군.’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꿈의 콜라보인 셈인가.

잠깐이지만 게임뇌를 활성화시켰던 유더는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있는 코델리아의 등을 두드려준 뒤 스칼렛과 카이사에게 말했다.

“아무튼 계속하자면, 나와 코델리아에게는 로그 마스터 외에도 정체성이 한 가지 더 있어.”

“뭐? 부부사기단인거?”

카이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스칼렛은 순간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와, 딱이네. 딱. 부부사기단.”

“그치? 딱이지?”

카이사가 신나서 낄낄 웃자 유더는 참담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일단 죽이 잘 맞는 것 같아 다행이군.”

“나야 뭐 예쁜 애들은 다 좋아하니까. 아무튼 다른 정체성이 뭔데?”

카이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묻자 ‘예쁜 애들’이란 말에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렸던 스칼렛 역시 유더를 돌아보았다.

“스칼렛은 이미 알고 있는 거야.”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가진 또 다른 정체성들.

“나와 코델리아는 세일룬 왕국의 귀족인 동시에 로그 마스터이며··· 성십자 수호단의 단원이야. 나 같은 경우엔 란디우스 님의 제자이기도 하고.”

“잠깐, 철인 란디우스? 붉은 머리의 전사?”

깜작 놀란 카이사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성십자 수호단의 단원인 거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남부에도 성십자 수호단과 인연을 맺고 있는 귀족 가문이 꽤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란디우스의 제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철인 란디우스의?

“어, 철인 란디우스 그 분 맞아.”

“와, 세상에. 진짜 세상에. 와, 와, 와. 어쩐지 존나 세다 했어. 와, 란디우스 님의 제자! 철인 란디우스 님의!”

잔뜩 흥분한 카이사는 제자리에서 아예 방방 뛰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란디우스의 광팬인 그녀였기 때문이다.

“란디우스 님이 진짜 그렇게 크셔? 근육은 단단해? 아니, 단단하겠지. 맞아, 단단할 거야. 크고 아름다울 거라고.”

질문하다말고 반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든 카이사였다.

평소였다면 그대로 관찰했을 유더였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없었기에 그녀를 바로 다시 현실로 끄집어 내렸다.

“아무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승님 자랑이 아니야.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함이지.”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한차례 숨을 고른 뒤 코델리아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다시 대화에 참여하라는 신호였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유더 자신뿐만 아니라 코델리아에게도 중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 놈이 남부를 노리고 있어.”

유더는 천천히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말레키스의 수하이자 블랙핸드 용병단의 단장인 가모르 칸과의 조우.

놈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

“말레키스의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어. 성십자 수호단은 이미 놈에게 맞서기 위해 스승님을 비롯한 파라곤의 영웅들에게 도움을 청한 상태고.”

검귀 카마엘과 성천사 레나.

유더의 말에 스칼렛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과연. 그래서 카를로스의 증표를 모으려 한 건가? 서로 싸우기 바쁜 남부7가문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맞아, 말레키스는 남부 전체가 단결해도 막기 힘든 강적이야 놈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남부7가문을 하나로 이끌 새로운 카를로스가 탄생해야만 해.”

카를로스의 신물을 가진 새로운 남부의 지배자가.

“음, 좋아. 대강 이해했어.”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인 카이사는 스칼렛처럼 팔짱을 끼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말한 걸 보면 남부를 지키기 위해 전면적으로 협조해 달라는 거겠지? 좋아, 협조하겠어. 오빠든 아버지든 내가 다 끌어들여서 오펀드 후작가의 힘 전부를 너희에게 보태줄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카를로스의 신물을 넘겨 달라?”

“이쪽도 남는 게 있어야 할 테니까. 당장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우리가 신물을 쥐고 지휘하려 하면 반발하는 놈들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싸움이 끝나고 나면 신물은 우리 오펀드 후작가가 차지하겠어. 카를로스 님의 신물은 우리 남부의 것이니까.”

요약하면 말레키스와의 싸움 이후 자신들이 남부의 지배자가 되는 걸 도우라는 것이었다.

‘과연, 바다의 늑대인가.’

먹어치울 수 있을 때 먹어치운다.

사나운 미소와 눈빛은 실로 늑대와 같았다.

“좋아, 어차피 나와 코델리아는 북부의 귀족이니까. 우리 영지도 중앙에 있고. 남부의 지배자가 된 오펀드 후작가와 거래하는 쪽이 훨씬 더 낫겠지.”

아무리 카를로스의 신물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비상시라면 모를까, 평시에까지 남부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더가 흔쾌히 수락하자 카이사는 다시 씩 웃었고, 스칼렛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희 둘 다 잊은 것 같아서 말하는데, 지금 남부7가문을 털고 있는 녀석이 있거든? 그것도 벌써 증표를 넷이나 모은.”

아직 다 모으지도 못 한 신물을 누구에게 주네마네 할 때가 아니란 소리였다.

“맞는 말이야. 그래서 카이사, 네 생각은 어때?”

“남은 셋 중에 아니, 우리집 빼면 둘이니까 둘 중에 누구부터 조질 거냐는 거지?”

방어보다는 공격을 택하는 건 짐승녀들의 공통점이었다.

카이사는 생각만으로 즐겁다는 듯 킬킬거리며 말했다.

“그럼 당연히 카게하마 백작가지. 거기부터 털자. 거기 놈들이 제일 재수가 없거든. 특히 차남 놈이.”

역시나 카이사답게 전술적인 이유와는 거리가 먼, 참으로 감정적이며 개인적인 이유였다.

때문에 스칼렛은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유더는 짧게나마 내적 갈등을 겪었다.

저걸 들어줄지 말지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유더야, 카이사 말대로 하자. 나도 어쩐지 카게하마 백작가부터 치고 싶어.]

마땅한 근거는 없었다.

그저 감.

어쩐지 모르게 먼저 치고 싶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코델리아의 감이었기에 유더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카게하마 백작가부터 털자.”

“얏호! 좋아! 바로 그거지!”

카이사가 신나서 방방 뛰자 스칼렛은 마뜩찮은 눈으로 유더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돼?”

“어, 코델리아도 카게하마 백작가부터 치고 싶대.”

“이유는?”

이미 시선은 유더가 아닌 코델리아에게 향한 스칼렛이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우물쭈물하다 답했다.

“그, 그냥?”

감이 그래.

감이.

코델리아의 대답에 스칼렛은 한숨을 푹 내쉬었고, 카이사는 더 크게 웃었다.

“크크큭, 역시 마음에 들어. 내 친구답다니까?”

이걸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동물 친구의 선언에 코델리아는 어설프게 웃었고, 유더는 다시 스칼렛을 돌아보았다.

“야, 스칼렛.”

“왜, 블랙망토.”

“털 준비 해놨지?”

카게하마 백작가에 대한 사전조사.

저택의 투시도와 경비 체계 등등.

“날로 드시겠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니까.”

유더의 뻔뻔한 대답에 스칼렛을 진짜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잠깐뿐이었다. 이내 어깨를 늘어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밤, 자정에 가까운 시간.

평소보다 무척이나 길게 이어질 ‘아르곤 항구의 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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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9장 남부7가문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