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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1 Night At Argon Port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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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전투는 무척이나 빠르게 진행되었다.

양측의 전투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마테오와 블랙 드래곤의 성체 둘이 빠진 전장에서 란디우스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아니, 애당초 앞의 셋이 건재했어도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일륜의 힘을 하나로!”

란디우스가 움켜쥔 주먹을 높이 들자 그 끝에 태양의 힘이 집중되었다.

황금빛 오라가 강한 빛과 열을 발하니 정말로 작은 태양을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았다.

“하아!”

높이 뛰어오른 란디우스는 주먹에 집중되어 있던 태양을 손바닥으로 옮겼고, 이내 양 손을 크게 벌렸다. 그와 맞추어 거대해진 태양을 마물들의 한복판에 집어던졌다.

“키아아아아아!”

마물들의 비명은 길지 않았다. 태양이 폭발하며 무지막지한 빛과 열이 방출되었고, 반경 십여 미터 안에 자리하고 있던 마물들은 문자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하지만 란디우스는 만족하는 대신 재차 허공을 박찼다. 마물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함이었다.

“도와다오!”

마물들 사이에 뛰어든 란디우스가 손과 발을 놀리자 순식간에 마물 다섯 마리가 유명을 달리했다.

머리를 맞은 놈은 머리가 사라졌고, 가슴을 맞은 놈은 가슴이 사라졌다. 상식을 초월한 파괴력 앞에서는 모든 마물이 평등했다.

그랬기에, 란디우스가 재차 몸을 날린 순간 사이에 놓여 있던 마물들이 충격파만으로 나자빠지는 것을 보았기에 카이사와 스칼렛은 란디우스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 했다.

아니, 똑똑히 듣기는 했지만 몸이 바로 반응하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도와줘?’

누가 누구를?

카이사는 다시 눈을 껌벅였지만 스칼렛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란디우스가 도와달라 말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막아야 해! 우리도 싸워야 한다고!”

“어?”

“민간 피해!”

더 길게 설명할 새가 없었다. 스칼렛은 사복검을 꼬나 쥐고는 바로 돌진했고, 카이사는 몇 번 더 눈을 껌벅이더니 스칼렛이 그러했던 것처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란디우스는 강했다.

마물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있어도 저 무적의 철인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결국 다 쓰러트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항구의 민간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약했고, 보호가 필요했다.

“이런 잡것들이!”

마물들은 란디우스와 싸우는 대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시실리아가 방침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어라.’

란디우스에게 전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랬다가는 시간을 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압축시킬 따름이었다.

때문에 시실리아는 병력을 사방으로 분산시켰다.

지금 싸우고 있는 장소는 사방이 확 트인 들판이나 사람이 살지 않은 폐허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하는 항구 도시였으니 그 점을 이용해야만 했다.

“우오오!”

란디우스가 재차 몸을 날린 뒤 손발을 놀려 마물들을 분쇄했다. 아까처럼 기공을 날려 한 번에 쓸어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못 했다.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테니까.’

사방이 트여 있던 중앙 광장과는 상황이 달랐다. 파괴력이 큰 기술을 사용하면 건물 정도야 우습게 무너질 터였고, 그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몰살을 피할 수 없었다.

“하아아!”

스칼렛이 사복검을 휘둘러 민가로 뛰어들려는 마물들의 목을 갈랐다. 블랙 핸드 용병단의 멧돼지 수인들을 때려잡은 카이사는 놈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빼앗더니 양손에 들고 날뛰기 시작했다.

“레나!”

란디우스가 다시 외치자 하늘 높은 곳에서 아룡들을 몰아치던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 지상으로 가요! 여긴 제게 맡기고!”

“네! 레나 님!”

바로 답한 코델리아는 허공에서 몸을 회전 시키더니 수십 개가 되는 마력 덩어리를 그대로 비산시켰다. 근방에 있던 아룡들을 마치 클레이모어 지뢰를 터트린 것처럼 쓸어버린 뒤 지상으로 몸을 날렸다.

레나는 그런 코델리아를 뒤따르는 대신 아룡들을 노려보았다. 예상한 그대로 저만치 뒤쪽에 있던 아룡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마물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민간인들을 공격하는 대신에 말이다.

‘아룡들이라도 건져야 한다.’

시실리아의 판단이었다.

지금 가진 전력으로는 카를로스의 신물인 얼티메이트 쓰리 용살검 아스카론을 빼앗을 수 없었다. 아니, 빼앗는 건 고사하고 그저 전멸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살린 건 살리고 포기할 건 포기해야 했다.

시실리아는 마물들과 블랙 핸드 용병단의 멧돼지 수인들을 포기하는 대신 그나마 건질 수 있는 아룡들과 마테오를 선택했다.

“꺄아악!”

“괴물이다!”

“살려줘!”

“도와주세요!”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싸우는 소리에 잠이 깨어 창문을 연 사람들이나 마물들에게 습격당한 이들이 지르는 비명들이었다.

“저리 꺼져!”

지상에 안착한 코델리아는 동시에 다섯 개나 되는 칠흑의 창을 소환한 뒤 그대로 투사해 마물 다섯 마리의 머리를 꿰뚫었다.

“괜찮아요?”

“흐윽, 흑. 괘, 괜찮······.”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나마 답했다. 딱히 다친 것 같지는 않았기에 코델리아는 바로 다시 돌아서며 마법의 칼날들을 소환하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직감했다.

‘사람이 더 필요해.’

완벽하게 막아내기 위해서는 좀 더 사람이 필요했다.

블랙핸드 용병단과 마물들의 숫자를 모두 합치면 이백이 넘었다. 한 자리에 모여 있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흩어진 상태면 제아무리 란디우스나 코델리아라 한들 모두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핑크폭탄!”

바로 그때 지붕 위를 달리던 스칼렛이 크게 소리쳤고, 코델리아는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돌아보았다.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카르멘!”

성십자 수호단의 베테랑 성투사.

그녀만이 아니었다. 마누엘을 비롯한 성십자 수호단의 단원들이 지붕을 박차며 달려오고 있었다.

“좋았어!”

막을 수 있다.

이대로 계속하면 모두를 지킬 수 있다.

코델리아는 광익을 펼쳐 날아오른 뒤 다시 마물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같은 시각 유더는 두 번째 드래곤의 가슴을 가른 뒤 드래곤 하트를 적출해 놈의 숨통을 끊었다.

하나는 아스카론으로 흡수했지만, 다른 하나는 챙겨서 코델리아게 줄 요량이었다.

“워워, 진정하시고.”

하지만 그런 유더의 생각과 달리 아스카론의 하얀 칼날에서는 날카로운 한기가 마치 불꽃처럼 솟구쳐 올랐다. 드래곤을 증오하는 드래곤인 아스카론은 드래곤의 영육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도 안 돼.”

코델리아에게 줘야 했으니까.

재차 아스카론을 억누른 유더는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보석 덩어리인 드래곤 하트를 갈무리한 뒤 시선을 돌렸다. 사방이 전투로 시끄러운 가운데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왔나.’

항구를 지키는 왕실 직할 기사단과 경비병들.

하늘을 뒤덮을 기세였던 아룡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했고, 레나는 그런 놈들을 뒤쫓는 대신 지상으로 향해 마물들과 멧돼지 수인들을 정리하는 한편 부상당한 민간인들을 치료했다.

‘진정국면인가.’

성십자 수호단의 단원들과 경비병들까지 더해졌으니 이제 굳이 유더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때문에 유더는 바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작은 기운을 향해 돌아섰다.

“헉! 이건 설마 드래곤? 아니, 유더 공자?!”

화들짝 놀라 소리친 것은 벤담이었다.

자다 뛰쳐나왔는지 잠옷 차림이었는데, 뒤에는 비슷한 차림의 드워프들이 저마다 망치나 도끼 같은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소란을 듣고 뛰쳐나온 모양이었다.

“유더 공자, 이게 대체······.”

“일단은 진정국면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자세한 설명은 사태가 완전히 정리된 뒤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구천구문 제육문을 개문한 상태의 유더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조금이지만 초월자에 가까워진 상태였고, 그렇기에 유더의 말에는 언령이라 해도 좋을 힘이 깃들어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벤담이 수긍하자 다른 드워프들 역시 무어라 군말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애당초 드래곤의 시체를 본 순간 관심사가 바뀐 것 같은 그들이었다.

유더가 없었다면 바로 달려들어 해체라도 시작했을 것 같았다.

때문에 유더는 무어라 경고를 할까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얼추 상황을 정리한 란디우스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정리했습니다.”

유더의 대답에 란디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유더가 붙잡을 새도 없이 다시 어느 한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정리해야 할 일이 남은 모양이었다.

‘언제 봐도 놀랍단 말이야.’

철인 란디우스.

그가 블랙 드래곤의 성체를 두들겨 패서 내동댕이치던 광경이 머릿속에 선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지만, 란디우스가 하니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무엇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때문에 유더는 다른 부분에서 새삼이라 해도 좋을 위화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강한 거지?’

란디우스는 분명 강한 인물이 맞았다.

영웅전기1편의 진주인공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선조회귀와 구천구문이 더해졌고, 10년의 수련이 있었으니 1편 때보다 더 강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 폭이 너무 크다고 해야 할까?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막강한 란디우스의 힘이었다.

‘원작에서는 대체 어떻게 죽은 거지?’

물론 란디우스가 정말로 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이번에 대적할 적인 말레키스만 하더라도 란디우스보다 더 강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적어도 말레키스 급이 나서지 않는 한 란디우스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없다는 소리와 같았다.

‘듀크로는 무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듀크는 아니었다. 란디우스의 죽음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나비효과로 인해 달라진 걸지도.’

란디우스의 생존 여부는 물론이고, 어쩌면 그 강함까지도.

‘정말로 많은 것들이 변했으니까.’

당장 손에 쥐고 있는 아스카론만 해도 그랬다.

원작에서는 가모르 칸이 찾아낸 유적에 안치되어 있던 아스카론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원작에서는 그런 식으로 언급이 되었을 뿐 진짜로 그 유적을 뒤질 수는 없었으니··· 어쩌면 거기에 안치된 건 가짜일지도 모르지만.’

진짜 보물을 숨기기 위해 가짜를 전시하는 일은 흔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해낸 건가.’

새삼 어깨를 늘어트린 유더는 여전히 서슬퍼런 한기를 내뿜고 있는 아스카론의 힘을 거두었다.

평범한 검의 형태로 되돌린 뒤 허리에 차니 영혼 깊은 곳에서 벨렌시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이 느껴졌다.

이도류 아닌 이도류를 펼치다 다시 일도류로 돌아오자 만족한 모양이었다.

‘진짜 쌍검술이라도 쓰면 어찌되려나.’

그때는 양다리를 넘어 세다리라고 화를 내려나.

살짝 궁금해진 유더였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스카론 하나만으로도 차게 식은 눈을 한 채 별의 별 소리를 다 하던 벨렌시아였는데 여기에 두 자루를 더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아무튼··· 성과가 좋아.’

카를로스의 신물을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말레키스의 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아스카론까지 획득했다.

여기에 란디우스를 필두로 한 파라곤의 영웅들까지 합류하였으니 말레키스에 맞설 전력이 단번에 구축된 셈이었다.

‘괜한 시간은 끌지 않아.’

말레키스가 부활해서 공격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하책이었다.

‘말레키스를 친다.’

놈이 제대로 부활하기 전에 이미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시실리아.’

이번 공격으로 말미암아 확신하게 되었다.

현재 말레키스의 수하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시실리아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이제부터 어찌할 것인가.

가모르 칸에 이어 마두르스를 잃고, 아스카론까지 빼앗긴 그녀가 다음에 할 행동은 무엇인가.

‘하나 밖에 없지.’

그녀가 다음에 할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예상하기에 유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대응책.

속이 까만 미소를 지은 유더는 남쪽을 향해 돌아섰다.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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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아룡들과의 정신 연결을 끊자마자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거친 숨을 토했다.

“하악··· 하······.”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닦아낼 여유조차 없었다. 그대로 숨을 고른 시실리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섰다.

가모르 칸이 사라졌다.

마두르스는 죽었고, 아스카론은 적에게 빼앗겼다.

더욱이 손해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기껏 붙잡아 세뇌했던 세바스찬이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바다에 혼란을 야기하고자 풀어놓았던 크라켄 역시 어느새 다시 봉인되고 말았다.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체이스.’

악마 추종자들이 입을 모아 경고한 두 사람.

사실 시실리아가 몰라서 그렇지 계획한 모든 일이 꼬이고 있는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 때문이 맞았다.

가모르 칸의 생포와 마두르스의 죽음, 크라켄의 봉인과 아스카론의 강탈.

여기에 영원의 숲의 자바워크까지.

사실상 말레키스가 부활하기 전에 남부를 혼란에 빠트리고자 준비한 거의 모든 일들이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에 의해 엉망이 된 상황이었다.

‘마테오 루클리아.’

시실리아는 머릿속에서 그의 이름을 지웠다.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그였지만 살았든 죽었든 다시 전력으로 쓸 수 없다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그렇다면 더욱 거칠게 몰아칠 수밖에.’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선 시실리아는 새삼 다시 숨을 골랐다. 뒤늦게나마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정면에 자리한 커다란 강철 문을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자.

말레키스의 삼기사 가운데 필두인 동시에 용군단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강력한 존재.

“오르가, 들어가겠습니다.”

시실리아의 목소리에 응답하듯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철 문이 좌우로 열렸다.

마치 무저갱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온통 새카만 문 너머 광경에 마른 침을 삼킨 시실리아는 다시 한 번 숨을 골랐다. 각오를 다지듯 주먹을 움켜쥔 뒤 발걸음을 내디뎠다.

말레키스의 후계자인 용장군 오르가의 거처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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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야, 몇 문이라고?”

“육문이요.”

“씨발.”

< 제91장 아르곤 항구의 밤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