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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3 MITIER STRIKE (Modified)

제123장 미티어 스트라이크

“알고 있어.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사랑의 대천사 에로스의 공중기함 에로티카는 다행히도 제국 북부 황제군의 영역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에로티카를 이용한 강습 작전 자체를 들키면 안 되었기에 란디우스는 에로티카의 발굴과 가동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 머물렀다.

“모여라.”

에로티카를 타고 대륙을 순회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때문에 각자의 볼일을 마친 유더 일행과 루카스 일행은 제국 북부를 향해 직접 발걸음을 떼었다.

“에로스의 마지막 신전이야. 알고 있지?”

“당연하지. 아델라이데의 스타팅 포인트니까.”

유더와 코델리아는 제국 동부를 가로질러 바로 북부로 향하는 대신 왕국 북부와 제국 서부를 거쳐 한마디로 빙 돌아서 제국 북부로 향했다.

물론 덕분에 여정이 거의 두 배이상 길어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악마 추종자들에게 점령된 동부를 가로지르는 것은 아무리 유더와 코델리아라 할지라도 위험했다.

세계의 운명을 건 대작전을 온전한 전력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위험은 피해야했다.

“그런데 유더야. 나 아델라이데 만나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

등에 업힌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쓰게 웃었다.

코델리아가 하고 싶다는 게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나도 좀 하고 싶을지도.’

초절미녀 아델라이데 헤이스팅스.

절세미소녀라는 별칭을 가진 코델리아를 뛰어넘는, 미모라는 영역에서의 세계관 최강자.

오죽했으면 맨 얼굴인 일러스트가 단 한 장도 없겠는가.

‘일러스트로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고 했던가.’

참 좋은 핑계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곳 플레이아데스의 아델라이데 역시 비슷한 이유로 늘 베일을 쓰고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아델라이데의 얼굴을 본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상사병에 걸리고 마니까라니.’

그래서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아델라이데 본인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했다. 전생의 기억들 속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몇 개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베일 좀 들춰보고 싶다고?”

유더가 정확히 맞추자 코델리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너두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긴 하지.”

여러 전생들 중에서도 아델라이데의 맨 얼굴을 본 전생은 없었던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 만나면 부탁해서 살짝만 봐보려고. 아주 살짝.”

“흠··· 흥미가 동하는군 나도 같이 부탁해볼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유더의 목을 졸랐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나만 볼 거야!”

“켁켁, 아니, 대체 왜. 설마 내가 아델라이데에게 반할까봐?”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유더의 목을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으응··· 호, 혹시 모르니까······.”

불안과 초조함이 섞인 귀여운 목소리에 유더는 움찔했다. 당장 코델리아를 끌어안고 격렬한 입맞춤을 나누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똑같이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내 눈에는 코델리아 너밖에 안 보이니까. 언제나 우리 공주님이 최고니까.”

[으아악! 제발! 제발! 여기 사람이 있어요!]

멜리사가 간절한 목소리로 비명처럼 외쳤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듣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하면 소름 돋는다며 저리 꺼지라고 외쳤을 코델리아였지만 방금 말을 무척이나 유치하면서도 듣기 좋은 저 말을 한 것은 유더였다.

코델리아는 얼굴을 붉힌 채 어쩔 줄 몰라 했고, 유더는 더더욱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참아요, 멜리사. 이게 우리 운명이랍니다.]

멜리사에게는 들리지 않는 벨렌시아의 목소리였지만, 사실 멜리사도 알고 있었다.

이 끈적끈적한 커플 사이에서 부끄러움과 소름 돋음으로 평생 괴로워해야 할 팔자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두 사람 다 불로장생이군요. 음··· 무척이나 길어질 것도 같네요.]

코델리아는 치천사였으니 하이 엘프 뺨치는 수명과 젊음이 보장된 상태였고, 유더 역시 초인이 되었기에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아예 다른 시간을 사는 몸이 되었다.

즉, 앞으로 적어도 천 년은 더 젊음을 유지할 거란 소리였는데 그 천 년 사이에 두 사람의 사랑이 식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천 년 내내 지금 같은 염장커플이면 모를까.

[으으으윽······.]

연구해서 남자 인공정령이라도 만들든가, 유적 탐사라도 해서 짝을 찾든가 해야지.

멜리사가 신음하는 사이 어느새 눈이 맞은 유더와 코델리아는 업고 업힌 상태로나마 쪽쪽쪽 입술을 부딪혀 댔고, 벨렌시아는 차게 식은 눈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하루.

마침내 에로티카의 발굴지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반가운 얼굴들을 맞이하였다.

“제자야!”

“스승님!”

“코델리아.”

“레나 님!”

와하고 달려가는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똑같이 란디우스와 레나가 와하며 달려왔다.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코델리아가 제일 먼저 소리치며 예를 표하자 란디우스가 껄껄껄 시원하게 웃었다. 전신의 근육을 불끈불끈 부풀리더니 주먹을 내밀며 화답했다.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여기도 정상은 아닌 게 분명해요.]

멜리사의 넋두리는 이번에도 외면 받았다.

레나는 까르르 웃었고, 그 모습에 코델리아 역시 해맑게 웃었다.

“그런데 제자야, 편지는 잘 받았느냐?”

“예, 스승님.”

애당초 편지를 받지 못 했다면 여기 이렇게 올 수가 없었을 테니까.

[뭔가 숨은 의도가 있는 것 같네요.]

벨렌시아의 말은 정답이었다.

그리고 유더는 그 숨은 의도를 알고 있었다.

“흠, 흠, 흠.”

살짝 붉어진 뺨과 어색한 헛기침.

조금이지만 으쓱으쓱하는 커다란 어깨.

“팔문을 여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흠흠, 고맙구나. 편지에 쓴 것처럼 네게도 팔문의 길을······ 잠깐.”

저도 모르게 유더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어본 란디우스는 눈을 깜박였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다시 한 번 유더의 전신을 살피더니 이번에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자, 잠깐. 잠깐.”

저게 뭐지.

왜 유더의 몸이 저렇지.

저거 지금 초인이 된 건데.

환골탈태를 넘어 경계에 다다른 건데.

응? 왜지?

왜.

어떻게?

“씨발.”

답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유더 역시 팔문을 열었다.

헤어지기 전에는 분명 육문이었는데 어느새 칠문을 넘어 팔문까지 열어젖히고 말았다.

“흠흠, 그··· 어쩌다보니······.”

유더는 어색하게 웃었고, 코델리아는 얼른 두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그 눈이 무척이나 즐겁게 웃고 있었다.

천무지체.

하늘이 내린 무의 화신!

“후······.”

팔문을 열다가 죽은 것이 몇 번이던가.

문자 그대로 사선을 몇 번이나 넘은 끝에 도달한 경지이거늘.

하지만 란디우스의 좌절(?)은 길지 않았다.

이내 억지로나마 씩 웃더니 유더의 어깨를 두드렸다.

“장하구나 제자야.”

강한 전력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유더는 누구보다도 많은 전생을 기억하는 이였다.

팔문을 열다 실패하여 대소환 이전에 목숨을 잃은 자신과는 달랐다. 유더는 언제나 대소환을 경험했고, 그 지옥 같은 시간들을 살아가야 했다.

그러니 인정할 수 있었다.

단순히 천무지체 하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유더에게는 팔문을 열 자격이 있었다.

“스, 스승님.”

“그래, 제자야. 인정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그, 그게 아니라······.”

퍽! 퍽! 퍽!

유더의 어깨를 두드리는 란디우스의 손에서 찰진 타격음이 터지고 있었다.

마치 어깨를 두드려서 땅에 박아버리겠다는 것 같은 사랑의 손길.

“란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레나는 란디우스의 팔을 잡아당겼고, 코델리아는 얼른 유더의 팔을 끌어안았다.

“후, 아무튼 제자야. 다시 한 번 축하하마.”

“예, 스승님. 감사합니다. 저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나름 훈훈한 마무리를 지은 네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에로티카로 향했다.

“역시 예뻐.”

에로티카는 전투선이 아닌 유람선이었고, 사랑의 대천사의 탈것답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곳곳에 금색 장식이 들어간 순백의 배.

소위 말하는 비공정이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범선보다는 비행기나 우주선에 가까운 형태였다.

“아델라이데 헤이스팅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로티카 안에 들어서자 에로스를 모시는 신관 세 사람과 아델라이데가 일행을 반겨주었다.

‘와, 진짜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순백의 베일.

보통 귀부인들이 쓰는 것처럼 반투명한 것이 아니라 하얀 천위에 금색 실로 수를 놓은 물건이었기에 대략적인 얼굴형태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베일 아래 드러난, 새하얀 성의로 감싸인 아름다운 몸의 선과 분위기만으로도 대단한 미인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코델리아?”

코델리아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유더의 팔을 꼭 끌어안았고, 유더는 작게 웃었다.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입니다. 이쪽은 제 약혼녀인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이고요.”

가볍게 예를 표한 두 사람은 아델라이데에게 에로티카의 구조와 배정받은 방 등의 안내를 받았다.

딱 한 번이지만 전생에도 에로티카를 방문해본 적이 있는 유더는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들을 되새기며, 아까부터 긴장 상태인 코델리아의 귀여움을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유더 공자, 다녀왔습니다.”

클라우솔라스를 허리에 찬 루카스가 에로티카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일까.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전의 루카스가 그저 해맑기만 한 소년이었다면, 지금은 그보다 더 성숙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전생의 기억 때문인가.’

루카스는 유더처럼 여러 전생들을 거의 비슷한 정도로 떠올리지 못 했다.

마인이 되었을 때의 전생은 거의 기억하지 못 했고, 다른 전생들도 스칼렛과 카이사와 함께 했던 추억들만을 어느 정도 깨달은 정도였다.

하지만 단 하나.

지평으로 이어진 길에서 마주했던 검리에 닿은 유더와 함께하던 시절의 자신에 대해서는 달랐다.

많은 기억들을 떠올렸고,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성숙해질 수 있었다.

“오올, 우리 루카스 멋있어졌는데?”

“감사합니다. 코델리아 양도 더 아름다워지셨군요.”

예전 같았으면 뺨을 붉히며 수줍어했을 루카스였거늘, 지금은 빙긋 웃으며 가볍게 받아치는 여유가 있었다.

“이야, 진짜 멋있어졌네? 방금 살짝 두근두근했을지도?”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가 흠칫하든 말든 루카스는 다시 여유롭게 웃었다.

그리고 뒤에 두 사람.

스칼렛과 카이사.

‘으으음··· 어떻게 결론이 난 거지?’

코델리아는 입술을 움츠리며 열심히 세 사람을 관찰했고, 결국 한 가지 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직 결론 못 냈네.’

뭐랄까, 무척이나 중요한 싸움을 눈앞에 둔만큼 모두들 일단 한 걸음씩 물러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세 사람 모두 무척이나 친밀했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인 선을 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이게 루카스답기도 하구.’

나중에는 결국 두 사람 다 못 고르겠다고 그냥 도망치는 거 아냐?

‘스칼렛이랑 카이사가 그런 게 어디 있느냐며 루카스 쫓아가고.’

엉망진창이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가능성 높아 보이는 미래를 상상해본 코델리아는 쓰게 웃었다.

남의 일이라고 너무 대충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세 사람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짧게나마 솔라리에게 기도를 바쳤다.

“그럭저럭 다 모인 것 같구나.”

그날 저녁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은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이었다.

“아델리아의 선조회귀가 성공했다.”

“와!”

체이스 백작이 대뜸 꺼낸 낭보에 코델리아는 자리에 폴짝 뛰어오르며 좋아했고, 유더 역시 미소를 지었다.

‘에드워드 빼고는 다 같이 천사인 집안이네.’

자기도 선조회귀하겠다며 징징 거리는 에드워드의 모습이 눈에 선한 유더였다.

“란디우스 님, 출전 준비는 끝난 것입니까?”

바이엘 백작의 물음에 란디우스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보다··· 이제야 만나 뵙게 되었군요. 유더의 스승인 란디우스입니다.”

“유더의 아비인 알렉스 바이엘입니다. 유더의 스승이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두 사람 모두 정중히 예를 표하자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서로 예를 표하는 상황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지만, 란디우스가 저렇게 존댓말을 하며 예를 표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했기 때문이다.

[자꾸 잊지만 스승님도 이제 겨우 30대시니까.]

란디우스의 나이는 이제 30대 후반.

40대 후반인 바이엘 백작에게 지금처럼 존대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보겠다.”

최연장자인 벨키안에게는 역시 거침이 없었다.

일행을 한 자리에 모은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대천사 강림까지는 앞으로 약 6일에서 5일 가량이 남은 상태이다.”

전력을 갖추고 에로티카를 가동시키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진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차피 건곤일척의 한 방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남은 시일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강습 작전에 참가하는 것은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이다.”

유더와 코델리아.

루카스와 스칼렛과 카이사.

파라곤의 다섯 영웅들.

붉은바람과 태양노래.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

그리고 도착한 이후 에로티카의 가장 깊은 곳에 틀어박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제국의 검신.

다른 검호들이나 대마법사들을 제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의 움직임을 들켜서는 아니 된다.”

대사교 마누엘라는 간교한 자였다.

이쪽에서 어떤 식으로든 제도를 노릴 거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간파했을 터였다.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던 강자들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은 너무 노골적인 신호가 될 수 있었다.

이쪽에서 강자들을 모조리 빼 에로티카에 모으면, 악마 추종자들은 똑같이 제도에 강자들을 집결시킬 수 있었다.

“재상군은 지난 보름동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재상군 측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나 최상급 마인들도 자신들의 전선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일 것이다.”

이대로 방어만 하고 있을 대사교 마누엘라가 아니었다.

이쪽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행동에 나설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벨키안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이 에로티카에 도착한 그 날 재상군이 마침내 움직임을 개시했다.

제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대신 맹렬한 기세로 진군을 개시했다.

동서남북.

사방을 향한 진군.

더욱이 단순한 진군이 아니었다. 진격하는 재상군의 선두에서 떨쳐 일어선 자들이 있었다.

“7대 재앙.”

이미 유더와 코델리아가 셋을 막았기에 남은 것은 넷뿐이었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아직도 넷이나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네 개의 재앙은 각기 하나씩 사방으로 진출하는 재상군의 선두에 섰다.

검문을 부순 자.

학살자 게오르그가 왕국군을 향해 자신의 대도를 들어올렸다.

제국을 죽인 자.

역병의 화신인 순백의 기사가 죽음을 흩뿌리며 동부를 통해 남부로 향하였다.

대륙을 집어삼키는 홍수.

지상에서 일어난 어마어마한 노도가 서부를 휩쓸며 나아갔다.

하늘을 죽이는 자.

전신이 잿빛인 여인이 북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발이 닿은 대지는 생기를 잃고 잿빛으로 물들었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태양을 감추었다.

대사교 마누엘라는 공격으로 방어를 꾀했다.

그간 아껴온 재앙들을 한 번에 출진시켜 제국군과 왕국군을 유인했다.

재앙들을 방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들을 내버려두면 셀 수 없을만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말 터였다.

“재앙을 막아라.”

막기 위해 너희들이 가진 전력들을 쏟아부어라.

다른 짓을 할 수 없게.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도록.

제법 유효한 전술이었다.

대사교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반복된 역사들 속에서도 인류는 재앙을 휘두르는 대사교의 손짓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흔들릴 이유는 없다.”

바이엘 백작이 말했다.

체이스 백작과 함께 하늘을 죽이는 자 잿빛의 여인을 막기 위해 북부로 향하기 전 유더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너희 덕분에 지금 우리에게는 강한 전력들이 많이 남아 있다.”

별의 검성 무수가 학살자 게오르그를 막아섰다.

게일과 아델리아가 게오르그의 군대를 대적했다.

칠살검 세류와 신속검 세바스찬이 영원의 숲의 엘프들과 함께 순백의 기사를 가로막았다.

엘룬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이 함께 했다.

그림자 숲에서 떨치고 일어난 엘프들이 정령들을 부려 노도에 맞섰고, 야생의 땅에서 온 주술사들이 거친눈사태의 지휘에 따라 자연의 힘으로 노도를 흩어놓았다.

북부 또한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이 나서고 있었다.

바이엘 백작 자신과 체이스 백작이 합류하여 재의 여인을 막아설 터였다.

“그러니 유더, 우리에게 맡기거라.”

바이엘 백작이 물러섰다.

체이스 백작이 흥흥 거리며 유더의 손에 작은 주머니 하나를 쥐어주었다.

“엘릭서다.”

체이스 백작가에도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다.

“변변찮지만 쓰도록 해라.”

“예, 장인어른. 정말 감사합니다.”

유더의 미소에 체이스 백작은 다시 한 번 흥하고 코웃음을 친 뒤 에로티카에서 내려섰다.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북부를 뒤덮기 시작한 재의 여인의 구름 때문일지 몰랐다.

하지만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은 제자리에 서서 정면을 보았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불을 뿜으며 솟구치는 순백의 배를 바라보았다.

“코델리아를 부탁한다.”

체이스 백작이 작게 말했고, 바이엘 백작은 숨을 깊이 삼켰다. 마지막으로 본 유더와 코델리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운명의 두 사람.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세기의 커플.

“다녀오거라.”

바이엘 백작은 다시 한 번 말하며 하늘을 우러렀다.

태양을 향해 솟구치는 에로티카를 바라보았다.

제123장 미티어 스트라이크 (수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