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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4 Moving Towards the Horizon (Modified)

제124장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자

“코델리아, 너를······.”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존재였다.

제국 곳곳에서 전쟁의 불길이 일었다.

바톨레인 원수가 이끄는 재상군이 실라테스 평원을 향해 다시 한 번 진군했다.

선두에 선 그랜드 소드 마스터 루시우스 그란데가 붉고 붉은 검기를 발하였고, 그의 머리 위를 지난 화살의 비가 실라테스 평원을 뒤덮었다.

불이 번진다.

고함이 터진다.

전열과 전열이 충돌했다.

수천과 수천의 격돌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지막지한 피해를 낳았다.

방패와 방패가 서로를 밀쳐냈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창과 칼이 서로를 찌르고 갈랐다.

누군가는 울음을 터트렸다.

누군가는 광소로 공포를 이겨냈다. 아니, 공포로부터 도망쳤다.

쿵! 쿵! 쿵!

지축이 울린다.

요란한 굉음이 가득한 전장에 또 하나의 소리를 더한다.

“꿰뚫어라!”

기병대가 달렸다.

적의 측방을, 후방을 후려치고자 전장을 질타했다.

왕국군만이 아니었다.

재상군도 그러했다.

서로 엇갈리거나 충돌했고, 긴 창이 병사들의 몸을 헤집었다. 돌진의 충격력이 그들의 몸을 산산조각냈다.

“물러나지 마라! 왕국을, 아니 세계를 지키는 거다!”

황금의 검성이 외쳤다.

왕국군을 도륙하고 있던 그랜드 소드 마스터 루시우스를 노려보았다.

루시우스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투구를 눌러 써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었다.

‘웃고 있어.’

악마에게 혼을 판 저 좆같은 새끼가 병사들을 인간을 도륙하며 웃고 있어.

황금의 검성은 지면을 박찼다.

총사령관인 그가 최전선에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였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막을 수 있는 것음 검성뿐이었다.

저 개 같은 놈을 벌할 수 있는 것 역시 오직 검성뿐이었다.

“루시우스 그란데!”

황금의 검성이 포효하듯 외치며 찬란한 황금빛 검기를 방출했다.

루시우스가 그런 황금의 검성을 돌아보았고, 투구 속에서 웃었다.

마인이 된 이후 멈추지 않는 고양감을, 스스로의 몸을 터트릴 것 같은 막대한 힘을 분출하며 황금의 검성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검과 검이 얽힌다.

핏빛과 황금이 서로를 깨트린다.

“으아아아아아!”

병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전장의 불길에 몸을 던졌다.

쿵! 쿵! 쿵!

병사들은 보았다.

실라테스 평원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

제국의 동부와 이어진 왕국의 땅.

마물들이 돌진해 오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흉측한 괴성을 질러댔다.

오크들이 거대한 병장기를 휘두르며 돌진했다.

하나만 나타나도 끔찍한 오우거들이 수십, 수백이나 나타나 함께 돌진해오는 광경은 악몽 그 자체였다.

와이번들이 하늘을 갈랐다.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불길에 휩싸인 검고 커다란 개들이 대지를 질타했다.

병사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두려움이란 독이 병사들 사이로 번져나갔다.

무서워.

죽을 거야.

이길 수 없어.

도망치고 싶어.

무기를 쥔 손이 떨렸다.

다리가 후들 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앞으로 나서는 자가 있었다.

병사들과 마물들 사이에 서서 등을 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칠살검 세류.

그녀는 과묵했다.

그렇기에 무어라 일장연설을 하는 대신 그저 검을 뽑아들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마물들을 마주함으로써 병사들에게 등을 보여주었다.

세바스찬 르귄 역시 구태여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세류 옆에 나란히 섬으로서 하나가 둘이 되게 하였다.

병사들이 그들을 보았다.

장교들은 병사들의 등을 떠미는 대신 앞으로 나섰다.

식은땀이 흘렀다.

두려워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장교들은 세류와 세바스찬 옆에 섰다.

둘을 다시 수십으로 늘려놓았다.

마물들이 돌진해 왔다.

놈들의 괴성과 발구름이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수십에 하나를 더했다.

수많은 하나들이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왕국군! 왕국을 수호하라!”

장교들이 소리쳤다.

병사들이 함성으로 응답했다.

전투 나팔 소리가 마물들의 괴성을 짓눌렀다.

“가자.”

세류가 나직이 말했다.

왕국을 지키는 십검호의 일원으로서, 왕국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소년의 눈에는 남들과는 다른 것이 보였다.

소년에게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너무나 쉽고 간단한 것이었다.

또래의 아이들이 하나를 겨우 깨달을 때 소년은 이미 열을 깨우쳤다. 아니, 겨우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년은 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싸움이 일어난다.

전화가 번진다.

북부에서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이 재의 여인과 격돌했다.

서부에서 엘룬이 재앙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제도.

세계의 운명이 걸린 땅.

“크롸라라라라라라라!”

에인션트 본 드래곤이 포효했다.

그 공포는 세상을 짓누르기 충분했지만 마인들과 악마들은 두려움에 떠는 대신 광소를 터트렸다.

마법으로 공포를 지운 그들이 성난 늑대무리처럼 아니, 모든 것을 휩쓰는 황충의 무리처럼 에인션트 본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대단한 광경이었다.

에인션트 본 드래곤의 브레스가 제도를 양단할 기세로 내뿜어졌고, 그 일격에 수백이 넘는 마물들이 소멸했다.

하지만 그보다 몇 배는 많은 마물들이 에이션트 본 드래곤의 몸에 들러붙었다.

“크아아!”

에인션트 본 드래곤이 크게 홰를 치며 강대한 마력을 발산했다. 몸에 들러붙은 마물들을 밀쳐냄과 동시에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지상을 휩쓸었다.

땅이 파이고 건물이 무너지며 수많은 마물들이 부서지고 뭉개졌다.

[돌돌진진하하라라!]

죽음의 기사들의 목소리가 서로 맞물렸다.

그들은 언데드 부대를 이끌고 노도처럼 밀려드는 악마 추종자들에 맞섰다.

리치들의 마법이 그들을 독려했다.

제도의 동쪽에서 불의 비가 내렸다.

제도의 서쪽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바람의 정령과 불의 정령이 거대한 불소용돌이를 일으켜 마물들을 집어삼켰고, 땅의 정령들이 땅을 꺼트려 악마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일방적인 싸움이 아니었다.

독의 악마가 정령들을 오염시켰다.

냉기의 악마가 정령들은 물론이고 언데드 군단의 발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벨키안은 사력을 다해 언데드 군단을 유지했다.

프란은 욕지거리를 토하며 새로운 정령들을 불러냈다.

피닉스와 하나 된 붉은바람이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태양노래가 칼날노래의 노래를 부르며 전의를 고양시켰다.

스칼렛과 카이사도 정신 없이 싸웠다.

사려깊은 스칼렛은 아델라이데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수많은 결계들로 도배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에로티카의 조종실에 숨어 있는 그녀를 지키고자 사복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루카스!”

신수 펜릴의 피를 각성시켜 부분 수화한 카이사가 고개를 돌렸다.

제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싸움의 중심이라 할 곳을 바라보았다.

솟구치는 피에 비명을 터트렸다.

[너는 특별하다.]

소년의 머릿속에 어느 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답고 늠름한, 그러면서도 성스러운 그 목소리는 어린 소년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너는 가장 빛나는 자이다.]

플레이아데스에서 가장 빛나는 재능을 타고난 자.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심판의 대천사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이끌어주마.]

소년은 올곧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랬기에 높은 곳의 목소리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소년의 삶은 달라졌다.

단순히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태어나기 이전과.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과거와.

[강해지거라.]

높은 곳의 목소리는 소년의 가능성을 보다 빨리 개화시켰다.

소년은 언제나 함께 했던 친우를 마주하는 대신 여행을 떠났고, 제국 곳곳을 돌며 필요한 것들을 손에 넣었다.

[그에게 배우거라.]

높은 곳의 목소리는 소년을 한 남자에게 이끌었다.

그는 검신.

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였다.

“제자야.”

검신의 주름진 얼굴에 수많은 감정이 어렸다.

지난번의 싸움으로 그는 큰 부상을 입었다.

검기를 제대로 다룰 수 없었고, 검 또한 뜻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전장에 섰다.

다시 한 번 제자를 마주하고자 했다.

막시밀리언 데 아비스.

성스러운 천계의 무구들로 전신을 무장한 그는 황금빛 역천사의 날개를 펼치며 심판의 검들을 부렸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다섯 자루의 검들이 막시밀리언의 적들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새하얀 투구.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막시밀리언의 얼굴.

검신은 거친 숨을 쉬었다.

제자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제자의 검을 보고 희열에 떨었던 과거를 생각했다.

이 아이라면 반드시 닿을 수 있다.

이 아이라면 반드시 펼쳐보일 것인다.

하늘의 검을.

저 지평에 닿은 자만이 펼칠 수 있을 지고의 검을.

콰가가가가가가!

비처럼 쏟아지는 심판의 검들이 죽음의 기사들을 파괴했다.

스스로 강대한 검기를 발산하여 언데드들을 분쇄했다.

그래서 검신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부서져 흩어지는 언데드들 사이를 뚫고 심판의 검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카카카카카카카!

검과 검이 얽혔다.

다섯 자루나 되는 심판의 검들이 모두 검신에게 향했다.

검신은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그 모든 검들을 밀어내고 흘리고 쳐내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순백의 기운으로 뒤덮인 성검을 든 채 벨키안을 노려보는 제자를 바라보았다.

“막시밀리언!”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스승을 베었던 제자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벨키안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개화한 소년은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났다.

[남쪽으로 가라.]

그곳에서 간악한 무리들의 손에 들어갈 것들을 네가 먼저 취하도록 해라.

위화감이 높은 곳의 목소리를 이끌었고, 다시 높은 곳의 목소리가 청년을 이끌었다.

청년은 세계를 보았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언젠가, 정말로 자신의 힘이 필요한 그 날이 오면 사람들과 세계를 지키는데 일조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하지만 그 날의 광경은 청년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막시밀리언이 검을 휘둘렀다.

죽음의 기사들이 그를 막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불을 향해 달려드는 벌레 떼와 다름이 없었다.

성검 바리사다의 빛이 한 번 휘몰아칠 때마다 죽음의 기사들이 통곡하며 무너졌다.

벨키안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죽음의 기사들의 수장조차도 막시밀리언의 검을 서너 번 받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길이 열린다.

벨키안과 막시밀리언 사이를 가로막는 자들의 숫자가 줄어만 간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막시밀리언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죽음의 기사들을 분쇄하며 거침없이 나아가던 그였지만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필사적인 스승의 부름에도 반응하지 않던 그가 투구 속에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빌트바인.”

상대는 이쪽을 보고 말하지 않았다.

하늘을 우러르며 홀로 읊조리더니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한 번 꺾은 상대였다.

상대의 팔은 피에 젖어 있었고, 가슴 위에도 커다란 상처가 하나 있었다.

막시밀리언은 알았다.

상대는 강했다.

기습적으로 펼친 심판의 검들 덕분에 비교적 쉽게 일격을 가했을 뿐, 그리 쉽게 쓰러질 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왜일까.

그 이상의 감정이 들었다.

막시밀리언은 성검 바리사다를 들어올렸다.

루카스는 클라우솔라스를 고쳐쥐었다.

두 사람의 검이 다시 한 번 서로를 노렸다.

청년은 성스러운 투구를 썼다.

의식을 통해 제5계위 역천사로 거듭난 청년은 언제나처럼 높은 곳의 목소리를 따랐다.

그녀의 말에 의구심을 품는 대신 그저 순순히 받아들였다.

스승을 마주했다.

예를 표하고 세계를 유랑하며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는 대신 검을 뽑아들었다.

높은 곳의 목소리께서 스승을 베라 하셨기에 검을 휘둘렀다.

[네가 지키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를.

시간의 흐름을.

세계의 순리를.

청년은 그 말을 믿었다.

아니, 청년에게는 이미 자유의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청년은 성스러운 갑옷을 걸쳤다.

세계의 멸망을 돕고자 제도에 섰다.

검신은 알 수 있었다.

루카스 흐레스벨그는 강했다.

이제 겨우 십대 후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막시밀리언은 루카스를 능가했다.

지평에 훨씬 더 가까운 존재였다.

더욱이 막시밀리언은 이제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제5계위 역천사로 거듭난 그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들조차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신체 능력을 손에 넣었다.

콰가강!

검과 검이 마주한 순간 파문이 세상을 휩쓸었다.

어마어마한 힘의 충돌에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막시밀리언의 검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루카스의 검은 볼썽사납게 흔들리고 있었다.

굳건한 막시밀리언의 두 다리와 달리 루카스의 다리는 후들거리기까지 하였다.

쾅! 쾅! 쾅!

막시밀리언이 힘으로 루카스를 누르고자 하였다.

올바른 선택이었다.

성검 바리사다는 루카스의 몸이 아닌 검을 노렸고, 한 번 충돌할 때마다 루카스의 두 팔이 떨렸다. 상처에서 다시 한 번 피가 터져나왔다.

루카스가 쓰러진다.

다음 일격을 견뎌내지 못 한다.

검을 놓치고, 빈틈을 드러내어, 마침내는 목을 내어주고 만다.

카이사가 비명을 질렀다.

스칼렛이 루카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검신은 보았다.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검이 검을 밀어낸다.

루카스는 쓰러지지 않는다.

성왕의 검은 흔들릴지언정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검격이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던 루카스의 검이 막시밀리언의 공격을 모두 받아냈다.

밀어낸다.

때로는 흘린다.

검술로서 막시밀리언의 힘을 이겨낸다.

“우오오!”

막시밀리언이 목소리를 높였다.

검신을 공격하던 심판의 검들이 어느새 하나 둘 루카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이번에도 흔들렸다.

무척이나 힘겨워했다.

하지만 기어코 막아냈다.

넘어져 쓰러지는 대신 다시 한 번 성왕의 빛을 발하였다.

분명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막시밀리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세를 펼치고 있는 막시밀리언의 검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어째서.

왜.

대체 무엇 때문에!

계속해서 나아가던 청년은 멈춰섰다.

높은 곳의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지배한 그 순간 빛은 오염되었다.

나아가던 발걸음은 멈추고 말았다.

루카스는 알았다.

막시밀리언은 가장 빛나는 자였다.

유더와 코델리아조차 능가하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전생에서도 그는 언제나 앞서 나갔다.

마치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빛나는 자였다.

‘강해.’

유더와 코델리아처럼 전생과 다른 길을 걷기라도 한 것인지 작금의 막시밀리언은 믿을 수 없을 만치 강했다.

훨씬 더 일찍 개화시킨 재능과 최고의 스승, 역천사의 육신과 수많은 신성기들이 더해진 결과.

압도적이었다.

최상급 마인으로 화한 제일검보다도 더 강한 존재였다.

하지만 루카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준비해준 용장비들에 의존했다.

신성한 빛을 발하는 클라우솔라스의 힘에 기대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견뎌냈다.

발버둥 치며 성왕의 검을 펼쳐보였다.

그것은 결코 아름답지 못 했다.

진흙탕 위를 뒹구는 것과 같이 추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루카스의 자세가 안정되어 갔다.

조금씩 막시밀리언의 검격이 어그러졌다.

검신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루카스와 막시밀리언의 격돌을 보며 생각했다.

지평으로의 길.

처음에는 어렵지 않다.

누군가가 닦아놓은 길 위를 그저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길이 어두워진다.

한치 앞도 분간치 못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럴 때면 주변을 보게 된다.

자신의 길만을 나아갈 때는 인지하지 못 했던 타인의 길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곧고 아름다운 길들이 보인다.

저만치 앞서 나가는 자들이 보인다.

그러면 생각하게 된다.

저들의 길이 옳았구나.

나의 길이 틀렸구나.

나의 길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구나.

발걸음이 멎는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된다.

“틀리지 않아.”

루카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길 위에 있었다.

그의 눈에는 곧고 아름다운 유더의 길과 저만치 먼 곳에서 빛나고 있는 막시밀리언의 길이 보였다.

둘에 비하면 루카스 자신의 길은 조금도 아름답지 못 했다.

하지만 루카스는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이어진 삶을 통해 이미 깨닫고 있었다.

“틀리지 않아.”

그저 다른 것뿐이다.

비록 곧고 아름다운 길이 아니라 할지라도, 구불구불하고 보기 흉한 이 길 또한 저 지평에 닿을 터이니.

걷고,

걷고,

또 걷고.

미혹에 지지 않는 자.

설사 다른 자의 길을 보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자.

의심하고, 때로는 뒷걸음치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나아갈 수 있는 자.

검신은 숨을 헐떡였다.

루카스와 막시밀리언의 싸움을 보았고, 두 사람의 길을 보았다.

막시밀리언의 발걸음은 멎어 있었다.

그의 길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빛이 났지만 끊어져 있었다.

더 이상 발걸음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제일검도 같았다.

독을 사용했던 전생들을 떠올린 순간 그는 길을 잃고 말았다.

자신의 길이 끊어졌다는 사실에 비통한 울음을 터트렸다.

검신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알았다.

검신 자신은 생각해버린 것이었다.

자신의 길은 끊어졌다고.

자신의 길로는 결코 지평에 닿을 수 없다고.

하지만 모두 착각이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루카스가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알려주고 있었다.

“길은 끊어진 것이 아니야.”

막시밀리언의 길도, 제일검의 길도, 검신의 길도.

발걸음을 내딛는다.

모든 미혹을 이겨내고 나아간다.

어둠 저 너머를 향해,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몇 번이나 반복된 삶 속에서 언제나와 같이

“우오오오오오오!”

막시밀리언이 전력을 다한 일격을 펼쳤다. 심판의 검 다섯 자루가 동시에 루카스를 찌르고 들어갔다.

루카스는 그것들을 보았다.

검신은 어둠을 향해 나아가는 루카스의 등을 보았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검과 검이 얽힌다.

검과 검이 서로를 밀어낸다.

검신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보였다.

더 이상 루카스의 길은 어둡지 않았다.

막시밀리언이라는 시련을 마주함에 따라,

그 시련에 굴하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은 결과,

그는 마침내 도달할 수 있었다.

“루카스.”

“유더.”

하나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마침내 눈부신 지평에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루카스가 검을 휘둘렀다.

심판의 검 다섯 자루가 모두 튕겨져 나갔고 바리사다가 발하던 성스러운 기운이 분쇄되었다.

막시밀리언의 검이 볼썽사납게 바닥을 향했다.

루카스가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것은 성왕의 검.

검신은 눈을 감지 않았다.

진정한 하늘의 검을 목도하였다.

제124장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자 (수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