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지나서야 끝난 설교회는 속되게 말해서 좆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상처 뿐이었다. 중간부터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화가 난 위니아가 내 몸에 온갖 종류의 상해를 가했기 때문이다. 피가 날 정도로 꼬집는다거나, 역시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문다거나. 이년은 몬스터랑 다를 것이 없었다.

"와! 이딴거 처받자고 아침 내내 그 지랄을 한거야?"

그리고 이것이 그 고생 끝에 성수를 받은 위니아의 짤막한 감상이었다. 음, 왠일로 나랑 위니아가 같은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딴걸 받으러 올 생각이 없었어.

"자, 자. 그러지 말고. 이거 처먹으면 존나 건강해져. 성수가 괜히 성수겠냐? 신의 축복으로 병이 나을거라고 사제들이 설명했잖아."

가만히 서서 몇시간동안 자외선을 직빵으로 받았더니 목이 타서 뒈질 지경이었다. 목 마를때 물 마시면 당연히 건강해진다. 나는 적당히 위니아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진정하라는 투로 이야기했다.

"깜둥이가 개소리를 참 잘하네.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이 좆같은게 대체 무슨 성수라는 거니. 오늘 뿌린거 전부 다 합쳐도 임프 한마리 못녹일 것 같은데?"

"목마르면 마시는 거지 뭘."

그렇게 말한 나는 곧바로 성수를 원샷했다. 예상대로 뭔가 달라진 듯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그냥 갈증이 해소되었다는 것 뿐이다. 위니아는 한숨을 쉬면서 성수를 집어 던졌다. 맹물정도의 가치도 없다는 듯한 그 무심한 행동에 딱 봐도 부랑자 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아귀도를 연출했다. 아아, 신의 축복에 굶주린 자들이여.

"정~말. 훌륭한 시간 낭비였네."

"넌 목도 안마르냐..."

기분이 더욱 더 나빠진 위니아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성질나쁜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부인조차도 이렇게까지 남편의 눈치를 보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을 알아야 돼."

"맞는 말이야."

"아무튼 깜둥이가 하고 싶은거 했으니, 이제 내가 하고싶은거 할까?"

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또 정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깜둥이 내가 귀찮아? 대답에 왜 이렇게 성의가 없는 것 같지?"

"진짜 전혀 안귀찮아! 무조건 니가 하고 싶은거 다 하자!"

다급해진 나는 말끝에 악센트를 넣어 전혀 귀찮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래? 역시 그렇지? 그럼 따라 와!"

그러자 갑자기 또 기분이 좋아진듯, 활짝 웃은 위니아는 힘차게 내 손목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손목을 잡아 비틀듯이 말이다. 대체 어디로 갈 속셈인 걸까.

"어, 어디가려고? 이상한데 가는거 아니지?"

"이상한데? 깜둥이 이상한데 가고 싶어? 돈도 없는 깜둥이 주제에 무슨 사창가 따위를 가?"

"뭔 망측한 소리야!"

이상한 곳 사창가라는 것은 편견입니다. 무엇보다 좆도 돈없는 내가 무슨 사창가를 가겠는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살면서 단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그냥 어디 가는지 궁금하잖아."

"그럼 맞춰 봐!"

나는 생각했다.

일반인과는 전혀 동떨어진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정신병자 위니아가 휴일에 갈만한 곳이라... 전장? 묘지? 폐허? 납골당? 아니다. 이따구로 대답하면 날 찔러 죽일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라...! 이 나이대 여자가 놀러갈만한 곳을!

"알겠다! 투기장이지!"

"뒤질래?"

아무래도 오답이었는지 주먹으로 옆구리를 강하게 맞았다. 입에서 오리의 울음소리같은 기괴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투기장이 오답이라고? 이상하다. 자기보다 약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인생의 보람쯤으로 여기는 위니아가 투기장을 싫어할 리가 없었다.

위니아라면 기꺼이 자신의 돈을 지불하고 사람이 죽는 꼬라지를 지켜 보기위해 갈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더 이상 다른 정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닛! 약! 그만 때려! 그만 때려 주세요! 너무 아파요!"

오답의 벌칙은 주먹질 한방으로 끝나지 않았다.

"왜! 투기장 좋잖아!"

"깜둥이 자꾸 여자한테 그럴거야?"

난 널 여자로 보지 않아.

"난 투기장 좋은데..."

도시의 투기장은 문화 컨텐츠랄게 없는 이 세상에서 제법 즐거운 볼거리로서, 많은 인기를 누린다. 몬스터와 몬스터의 대결, 그리고 사람과 몬스터의 대결, 마지막으로 가장 인기있는 사람과 사람의 대결.

대결 종류는 서로의 목숨을 빼았지 않는 생결(生決)이나 둘중 하나가 죽어야지만 끝나는 생사결(生死決). 그리고 온갖 녀석들을 몰아넣고 최후의 일인을 가리는 데스매치(DeathMatch)가 있다. 그들이 피를 튀기며 싸우는 걸 구경하는 것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불타오르는 것은 승자를 가리는 합법적인 도박이었다.

난 꼴은적 밖에 없지만.

아무튼 꿀팁으로 몬스터의 알 같은걸 구하게 되면 투기장에 가져다 주는 것이 좋다. 이게 또 엄청 짭짭해서 전문적인 업자들을 [알사냥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럼 대체 어딜 가려는건데."

"진짜 모르는거야? 존나 멍청하구나 우리 깜둥이. 그런점이 좋기는 한데, 오늘은 좀 답답하네."

"..."

그럼 대체 어딜 가겠다는거냐.

"당연히 쇼핑 아니겠니?"

그건 진짜 상상도 못했네.

그렇게 잡아 끌려 가게 된 곳은 나랑은 전ㅡ혀 인연이 없는 상점가의 거리였다. 대장장이나 잡화점이 늘어서 있는 거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문화적인 것을 취급하는 거리였다. 쉽게 말해서 질 좋은 옷이나, 보석 장신구. 또는 향수등을 파는 곳이었단 소리다.

내가 살면서 이딴 곳에 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가격표들의 단위가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누가 1골드면 4인 가족이 한달동안 먹고 살 수 있다고 지껄였어? 씨팔아 난 1골드로 혼자서 몇 년은 버티겠다.

"뭐해? 안 들어오고?"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두려웠다. 나같은 병신이 이런 곳에 들어가도 되는건가? 하는 의문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옷이 신분을 나타낸다고, 지금 내 꼴로 이곳에 들어가기에는 내 철면피 레벨이 좀 낮았다.

"좀, 들어가기가 좀 그래."

"부끄러워서?"

"쪽팔려서."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니. 닥치고 들어오렴."

가게의 안쪽은 냄새부터가 달랐다. 나는 긴장이 되서 경직되고 뻣뻣해진 몸으로 위니아의 뒤를 따랐다. 위니아는 그런 내 위축된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 꼴을 본 점원들이 예쁘장한 마법사와 거지꼴을 한 거지의 관계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은 그때, 위니아가 내게 지팡이와 모자, 그리고 망토를 건넸다.

"잠깐 들고 있어."

그리곤 옷을 하나 집어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음?

아니, 이 전개는 설마!

"이거 어때?"

"애미."

놀랍게도 위니아는 탈의실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러곤 나한테 그 옷이 어떠냐고 묻는 것이다! 이 약속된 전개! 난 인정할 수 없어! 이런 애인 이벤트는 여자친구랑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단 말이다!

"어울리니?"

그러니까 위니아는 평소에 입고 있늠 보라색의 가슴 부분이 파여있는 로브가 아니라 프릴프릴하고 하늘하늘한 외출복을 시착한 상태였다.

어울리냐... 위니아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평가를 해 줘야겠지. 예로부터 여자가 옷을입고 어울리냐고 묻는다면, 대충 넘기지 말고 진지하게 대답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 옷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아."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때, 이곳은 현대 지구도 아니고 언제나 전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야만적인 세상이었다. 저런 옷이 보기에는 예뻐보일지 몰라도 실전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아니 오히려 방해였다. 내 감성으로는 하늘하늘한 부분을 타이트하게 고정하고, 흉갑과 견갑을 추가한 뒤에 관절 부위를 체인으로 보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니, 씨발. 옷 어울리냐고 묻는건데, 그딴 소리가 왜 나와?"

"제발 진정해! 농담이니까!"

또 맞을 뻔했다.

그래도 뭐, 위니아도 꼴에 여자라서 저런 옷을 걸치니 제법 예뻐보이기는 했다.

"어울리다 못해 진짜 존나 예쁘네. 아마 이 도시에서 네가 제일 예쁘지 않을까?"

"또 씨발, 성의 없게 대답한다. 깜둥아?"

"아니, 아니! 진짜야! 진짜 예쁘다고! 난 여자 예쁜걸로 절대 구라 안쳐! 그러니까 주먹 좀 내려줘, 제발!"

"정말?"

"정말 너무 예쁘십니다, 위니아님."

대충 그런 느낌으로 한시간 정도 시착회가 진행되었다. 위니아는 자신이 입어본 옷들에 대해서 나한테 점수를 메겨 보라고 했다. 나는 하나 같이 전부 너무나 아름다워서 점수를 메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입에 발린 칭찬을 하니 위니아는 조금 기분이 좋아진듯 보였다.

"네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 다 계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손님!"

옷이 뭐가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 시바.

위니아는 엄청난 양의 옷을 전부 원큐에 질러버렸다. 왠지 갑자기 나한테 이것들 다 사달라고 지랄을 할까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사실 내 전재산을 합쳐봐야 여기서 옷 한벌도 못사긴 한다.

"눈 돌아가겠네."

역시 여자는 쇼핑을 좋아하는 것인가. 나한테 저런 돈이 있었다면 우선 갑옷부터 사고 칼도 좀 좋은 걸로 바꿨을 것이다. 나는 저런 돈낭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안 들고 뭐해?"

그리고 당연하게도 짐은 전부 내가 들게 되었다. 이건 씨발 말이 안돼. 어째서 남의 물건을 내가 들어야 하지?

"좀 같이 들자..."

"깜둥이는 허약하니까 이럴때라도 운동해야 돼. 응? 고맙지?"

"..."

"아니, 깜둥아. 고마우면 고맙다고 인사를 해햐지? 그게 상식이야~."

역시 이년은 싸이코가 맞다.

"고마워."

고마워 미도리.

"그럼 이제 어쩔거야?"

나는 물었다. 설마 위니아가 벌써부터 나를 풀어줄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해가 떨어질 때는 되야 해방될 것이다.

"그걸 나한테 묻니?"

"니가 대장이니까, 니한테 물어야지."

"대장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나랑 나왔는데 아무것도 생각 안해둔거야?"

난 니가 오늘 찾아올 줄도 몰랐어.

"아니, 사실 여자랑 뭐 하는게 처음이라 감이 잘 안잡혀."

돌이켜보니, 나는 딱히 여자랑 놀아본 적이 없었다. 이세계에선 말할 것도 없고, 고향에서도 남중남고공대군대 테크를 훙륭하게 타서 별다른 접점도 없었다. 나처럼 테크타도 생길 놈은 다 생긴다는데,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고 이 씨발럼들아.

"뭐? 처음?"

"그래 처음."

그 말에 위니아는 드물게도 경악했다.

"깜둥이 여자랑 논 적이 한번도 없어?! 그 나이에?"

"왜 거기서 놀라냐고..."

오늘 당했던 고통중에 그 무엇보다 아팠다.

"어머어머! 세상에!"

"제발 그만 놀라줘..."

위니아는 날뛰기 시작했는데, 왠지 그 모습이 몹시도 기뻐보였다.

대체 왜?

어째서 내가 한심한 인간임이 밝혀질수록 기뻐하는 것이지???

"음... 생긴거랑 출신지 보면 그럴만도 하지! 깜둥이 바바리안 여자애들이 안놀아준거야?"

"몰라, 씨발..."

애초에 '바바리안 여자애'라는 것은 본 적도 없었다. 말이 바바리안 출신이라는건 구라고 사실 지구 태생이니까. 애초에 이 도시에 머리 검은 새끼들이 너무나 드물었다.

"음... 흠... 그렇구나... 그래, 좋아. 그러면 내가 알려줘야겠네!"

"그래... 고맙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육체적 고통과 갈굼은 어느정도 감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런 민감한 문제를 위니아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니, 그 무엇보다 가슴이 쓰렸다.

"놀아줘서 고맙지? 깜둥이같은 거지새끼랑 놀아주는 착한 사람은 이 세상에 나 밖에 없을거야."

"진짜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는데, 이게 고마워서 그런건지 슬퍼서 그런건지 알 수가 없네."

마음에 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