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제를 무사히 영입한 우리들은 마침내 4인 파티가 되었다. 나는 절대로 5인 파티를 모집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섯이 모이면 반드시 하나는 쓰레기이기 때문에.

"자, 자. 인사해. 이분은 광명성십자회 소속 엘리제 수녀님이야."

우리는 서로 자신을 소개했다. 메리아는 제법 강해보이는 수녀가 나타난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만족하는 듯한 눈치였다. 콥슨은 조금 미심쩍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 동네에선 광명성십자회가 좀, 그거니까 그런 것이겠지.

아무튼 포지션을 보자면 탱, 딜, 딜탱, 힐러가 한파티에 모인 기적같은 조합. 여기에 화룡정점으로 원딜이나 마법사가 한명 끼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말했듯이 그리하면 누군가 한명이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그러지 말도록 하자. 우리 넷이면 충분하다.

"반갑습니다. 엘리제입니다. 저희들의 신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나는 메리아야. 잘 부탁해, 수녀님."

"콥슨이라고 합니다. 광명성십자회의 악, 아니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지요."

"목소리 깔지 마 이색갸."

콥슨은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목소리를 깔았다. 그래봤자 멋져 보이지도 않으니까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니, 목소리 깔면 멋져보인다는 풍조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거냐.

"자꾸 내가 언제 목소리를 언제 깔았다고 그러는 것인가?"

"또 깔았네."

"제길."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와 메리아는 준비를 끝냈으니 넘어가고, 오늘은 나머지 파티원들의 출정 준비를 하고 대략적인 개요만 잡은 뒤에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될 것 같다. 나는 그리 생각하고 그렇게 말할려고 했다.

"그럼 바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예?"

"무슨 일이든 빠를수록 좋겠지요. 어차피 가는대도 시간이 걸리니까, 지금 출발하고 가서 야영을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제가 한수 더 빨랐다. 말하는 어조는 평온했지만 당장이라도 움직이고 싶어서 좀이 쑤시고 있다는 것이 전혀졌다.

"흐음..."

지금 출발이라.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지만, 엘리제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던전 탐사라는 것은 하루이틀로 땡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금 출발해 도착한 뒤에 야영을 하고 아침일찍 탐사를 시작해도 나쁠건 없었다. 술을 좀 들이키긴 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는 끄떡없지. 당장 출발해도 별로 상관은 없다.

"저야 준비는 끝났습니다만."

엘리제는 그리 말했다. 메리아와 나는 확실히 준비가 끝나있다. 그런대 콥슨은 한지 안한지 모르겠네.

"야, 콥슨. 뭐 따로 준비할거 있냐?"

"아직 안했다만... 가는 길에 잠깐 잡화점에 좀 들르면 상관없지."

어차피 도시에서 나가는 길에 상점은 하나씩 있으니 상관은 없다. 어차피 사는 것이라고는 잡화밖에 없으니까 특별히 어딘가로 갈 필요도 없다.

"메리아, 너는? 술 마신건 괜찮냐?"

"상관없어. 그정도는 문제 없는걸."

당장 출발하는 것으로 일행들의 의견이 모였다.

"그럼 어서 출발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던전을 향해 출발했다.

메리아에게 듣기를, 납골궁 오르코타 카타콤(納骨宮 Orkota Catacomb)은 이스반트 근처에서 최근에 발견된 던전이다. 물론 근처라고 해서 바로 지하철 한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는 아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했다. 어차피 마차를 탈려면 성문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일행은 거기까지 걸어가면서 필요한 물품을 사기로 했다.

"랜턴이라... 던전 안은 어두울테니 하나쯤 구비해 두는 것도 좋겠군."

그리 말한 콥슨이 랜턴을 하나 집어들더니 구매했다. 어두운 던전 안에서 횃불과 엘리제의 라이트 주문만으로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어차피 같이 쓸 물건이니까 나도 비용을 부담하려고 했는대 콥슨이 손을 저었다.

"가지고 있으면 내가 계속 쓸테니 그럴 필요는 없지. 기름만 주면 돼."

"그래. 그래라."

나는 기름이 담긴 병을 몇개 더 사고 잡화점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성문으로 이동. 성문 앞에서는 여러 마차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가는대 몇시간은 걸릴테니 이왕이면 좀 편한걸로 고르는 것이 체력 보존을 위해 좋을 터.

"저거 어때?"

메리아가 고른 것은 하얀 천으로 지붕이 덮혀있는 마차였다. 마부에게 가격대를 물어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서 그걸 타기로 했다. 정오를 넘긴 시간이 되어서야 우리는 본격적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이스반트령 정글지대로 가 주십시오. 납골궁으로 향할 생각입니다."

"예이~.

지도를 꺼낸 엘리제가 마부에게 그리 말했다. 듣기로는 납골궁은 정글지대 안쪽에 있다고 했으니까 나나 메리아나 콥슨이 길을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여서 이 부분은 엘리제에게 위임했다. 엘리제의 지도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지만 어쨌든.

"요즘 던전으로 향하는 모험가들이 많군요."

"길은 아시겠지요?"

"몇번이나 가 봤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모험가들이 많이 찾는 던전이라서 그런지 교통편이 제대로였다. 각자 돈을 각출해서 요금을 지불하고 마차에 오른 우리들은 옹기종기 앉아서 간단하게 전략을 토의했고 던전에 대해서 가장 아는것이 많아 보이는 엘리제에게 조언을 들었다.

"그러니까, 언데드들이 나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경악하며 물어본 나와는 다르게 엘리제는 담담했다. 아무리 이세계라지만 죽은 자가 다시 되살아나 움직인다는 것은 그다지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뭔가의 잘못된 상식이나 믿음, 또는 착각일 것이다. '언데드'라고 불릴 정도로 흉측하게 생긴 몬스터가 나온다든지?

"본디 전부 인간이었을 가엾은 영혼들이지요. 제 임무는 던전의 진실을 조사하는 것과 동시에 그런 이승을 떠도는 영혼들을 구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흐음... 콥슨, 언데드 본 적 있냐?"

"내 고향이 조금 외진 곳이라 종종 좀비들이 나타나긴 했지. 정기적으로 자경단원들과 힘을 합쳐 놈들을 토벌하긴 했다."

"뭐? 그게 뭐야 시발."

그딴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씨팔 뭔 고향이 외진 곳에 있다고 좀비가 처기어나와? 콥슨은 당연하다는 것을 말한다는 듯이 한치의 표정변화가 없었다. 나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좀비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좀비란거, 혹시 뒤진 사람이 살아 돌아온 그걸 말하는거냐?"

"바바리안의 나라에는 좀비가 그것 말고 또 뭐가 있나보군?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우상전쟁때 발생한 사악한 마력에 의해 되살아난 시체들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지. 밤에 떠돌다가 빛에 이끌려 마을에 도착한 것이겠지."

"뭔, 시발."

니가 뭔 얘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내 상식이 송두리째 부정 당한채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정글지대에 도착했다. 뭐, 마법도 있고, 괴물도 있고 드래곤도 있는 세상에 언데드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겠나. 깊게 생각하면 지는거다.

이 세상엔 언데드도 있구나. 그러고보니 신도 있는데 뒤진 사람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겠지.

"여기서부턴 걸어가야 합니다."

마차에서 내린 우리들을 반긴 것은 말 그대로 펼쳐져있는 광활한 정글 지대였다. 납골궁은 이 정글의 안쪽에서 발견된 고대 건축물의 일종이라고 한다. 고대 건축물이라지만, 긴 세월동안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안쪽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던전으로 불리는 것이고.

우리는 정글을 헤쳐나갔다.

"우으으~. 벌레 징그러워어어~."

나는 벌레가 싫었다. 이렇게 생겨먹은 정글 지대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 끈적거리는 벌레들이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전위에 서서 콥슨과 함께 칼로 덩굴을 헤치면서 진입을 하니 어깨에 애벌레가 떨어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절로 내 입에서 신음성이 세어 나왔다. 내가 몸서리를 치자 그런 나를 보면 콥슨이 일갈했다.

"미친놈. 징그러운건 너다, 바바리안."

"아."

입장객이 많아서 바닥에 길로 보이는 것은 형성되어 있었지만, 역시 정글이라서 그 위로는 다시 자라난 신목들이 진로를 방해했다. 혹시 몬스터 튀어나올 수 있으니 메리아는 후방을 경계를 했다.

"후, 속도가 안나는군요. 철퇴는 이래서 불편합니다."

엘리제는 마음이 급해졌는지 철퇴로 나무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인간을 위한 종교답게 대자연을 상대로는 가차가 없는 그녀였다. 그러나 어지간한 초인이 아니고서야 철퇴로 나무를 쓰러뜨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역시 철최로 덩굴을 헤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녀는 덩굴과 드잡이질을 하다가 질렸는지 한숨을 쉬었다.

"비켜주십시오. 전부 태워버려야 합니다. 라이트 볼트를..."

"주문은 아껴두시지요."

진지한 표정으로 모닝스타를 겨누는 엘리제를 만류했다. 그렇게 해가 떨어져 노을이 질때 쯤이 되어서야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하아, 드디어 도착했네. 와, 땀좀 봐. 나 냄새 안나?"

메리아가 외투를 벗어 던지며 말했다. 그 광경에 절로 눈이 갔지만 아쉽게도 외투 안쪽에도 제대로 된 옷이 있었다.

"전혀 안나."

아무튼 체력 고갈이다. 존나 힘들었다. 돌아갈때도 비슷하겠지?

던전의 입구 주변에는 다른 모험가들의 캠프들로 보이는 것들이 몇군대 있었다. 간단한 천막이나 캠프파이어의 흔적들이.

이런식으로 던전 앞에 이렇게 야영장을 설치하고 몇날에 걸쳐 탐색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딱히 그런 장비들을 챙겨오지 않았지만, 그런 것 쯤이야 현지에서 조달하면 그만이었다. 땅바닥에 낙엽을 깔고 나무와 큰 잎사귀를 모아 벽과 지붕만 만들면 되니까. 모험가들은 비박과 노숙의 달인들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안쪽에 들어가서 불침번을 정해서 자면 될거고. 그편이 더 따뜻하긴 할 것이다. 실내니까. 나는 다른 모험가들의 천막과는 조금 떨어진 적당한 곳에 포인트를 잡고 말했다.

"여기서 아영 준비를 하죠."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돌로 만들어진 빛바랜 던전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 주변에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 같았지만, 워낙 오래되어 글자인지 그림인지 제대로 구분이 가질 않았다. 왠지 둘 다인 것 같지만.

온갖 신목들과 덩굴들로 둘러쌓인 던전의 입구는 심연으로 이어진 구멍이라는 듯이 아주 어두컴컴했다. 저것이 지하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납골당이라... 내일부터는 저곳으로 들어가는 것이겠지.

이 지하 던전의 규모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라는 것이 메리아의 설명이다. 다만 왕국의 그 어떤 건물을 그대로 땅에 묻는다고 해도 이 납골궁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미리 안쪽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군요."

엘리제가 던전의 입구를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오늘은 쉬자...

"어차피 내일 들어갈테니 오늘은 바로 야영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해가 완전히 지면 야영준비도 품이 많이 들어갈테니까요. 아침 일찍 일어나 곧바로 탐사를 시작하도록 하죠."

"그렇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우리는 야영을 준비했다. 역시 서바이벌의 달인들이라 전부 능숙하게 행동해 순식간에 야영장이 만들어졌다.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우리는 불을 피우고, 각자 챙겨온 식량들을 데워서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