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죽음이 넘쳐 음울했다.

"십탱."

뭔가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앰창 구라 안치고 존나게 음울했다. 아니, 이것은 음울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사방팔방에 좀비의 것이 분명한 썩은 내장들이 이리저리 휘몰아쳐 있었다. 거의 일주일 이상 지속된 축제의 여파로 인해 숲은 좀비들의 썩은 내장 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내장뿐이라면 양반이었다. 머리를 잃은채 장기자랑을 하고 있는 썩은 시체들 역시 즐비했다. 사람이 보기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다.

ㅡ위이잉!

시체 파리들이 즐겁게 날아댕기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었고, 시꺼먼 구더기들이 나무를 타고 오르며 가지에 걸린 썩은 살더미들을 파먹고 있는 것에 이르러서는 그냥 절망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는 다르게 일행의 텐션은 드높기 그지 없었다.

일단 무표정의 대가였던 엘리제가 얼굴을 붉힌채 두근두근해 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녀는 이딴 살인적인 것에 가까운 몽환적인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뽐내었다.

"그래도 시체를 방치해 놓은 것은 좋지 않군요. 이렇게 많아서야 수습조차 하지 못할텐데요..."

그녀 역시 다시 죽음으로 돌아간 좀비의 시체를 보니 감개가 무량한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엘리제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다 같이 이 시체들을 수습하자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면 그냥 뒤통수를 후려치고 도망칠 계획이었다.

"나중에 타 교회와 힘을 합쳐 단체 화장식이라도 거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구만."

다행히도 그럴 기미는 없어 보였다. 숫자가 너무 압도적인 탓이리라.

"냄새는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네."

클라우디는 후각이 인간보다 좋아서 그런지 목토시를 마스크처럼 쓴 상태였다. 나 역시도 썩은 냄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나약해 빠진 언데드들을 다시 죽음으로 되돌려 보냄으로서 간단하게 좋은 장비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신이 났다. 이거는 콧노래를 부르지 않고서는 배기질 못했다.

뭐, 이미 시체들은 익숙했다.

죽은 사람이야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지 않은가.

"캇트, 더 깊숙히 들어가야겠어. 이 근방은 시체 뿐이네."

"그러게 말이다. 이거 언데드 씨가 완전히 말라버렸네."

도시 인근의 언데드들은 진작에 그냥 데드가 된지 오래였다.

시체는 쌓여있었으나, 더 이상 움직이는 이들이 없었다. 그것이 당연한 광경이었음에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우리들은 살아 움직이는 언데드들을 찾아 더욱 더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갔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시체의 수도 적어지고, 썩은 내도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아저씨 아줌마들이 주말마다 등산을 하는 것이다. 산의 좋은 공기를 마시고 에너지를 충전한다면 다음 주 역시 힘을 낼 수 있을 터였다. 거기서 발생하는 불륜은 일종의 덤이었다.

ㅡ오로롱.

ㅡ오로로롱.

"나타났군."

그리 숲을 탐색하면서 걷고 있자니 좀비들을 발견했다. 놈들은 하늘하늘 걸어다니면서 썩어 문드러진 성대로 기괴한 소리들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지옥의 밑바닥에서 불타는 영혼을 끌어 올리는 듯한 끔찍한 절규와도 같았다.

말하자면 정신 공격 그 자체였다. 내 마법 방어력이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머리를 부여 잡은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으리라.

ㅡ오로로롱.

이세계의 좀비라는 것들은 말 그대로 죽어 나자빠진 시체에 뭔가의 마력이나 영혼 비스무레한 것들이 정체불명의 작용을 해서 되살아나 돌아댕기는 기적의 산증인 같은 몬스터였다.

물론 의지도 희박하고, 욕구도 식욕 말고는 느끼질 못한다. 사실 살아난 것이 아니라 꼭두각시에 더 가까운 느낌이란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은 되살아난 즉시 썩은 몸을 이끌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식욕을 해결하려 한다.

마력에 영향인지 더 이상 썩어가는 일도 없었고, 굶어 죽는 일 또한 없었다. 그들은 그저 누군가가 자기를 다시 죽여줄 때 까지 방랑한다. 굳고 썩은 다리로 하염없이 걷는 것이다.

저들도 아마 어딘가에서부터 걸어왔을 놈들일 것이다. 넝마가 된 복장 상태로 봤을때 적어도 이 고장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네크로멘서가 모종의 목적 달성을 위해 도시쪽으로 유인을 한 것이겠지.

사람 된 자의 도리로서 그들의 긴 여정을 끝내줄 필요가 있었다.

ㅡ오로로로롱.

"성도님, 어저 저들을 정화해야 합니다."

엘리제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있는 것이 즐거움을 주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모닝스타를 쥔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엘리제 역시 바이브레이터핸드(VibratorHand)의 전수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이 지옥 같은 곳을 무슨 꿈 같은 놀이동산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물론이지."

나는 칼을 뽑아들었다. 클라우디 역시 곡도를 하나 뽑았다. 좀비들은 수는 총 열마리였다. 원체 느릿느릿한 놈들이라 나도 조심만 한다면 충분히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는 물량이다.

물리지만 않으면 된다. 사실 물려도 크게 상관은 없다. 좀비의 허약한 치악력으로는 내 천갑옷조차 뚫을 수가 없었으니까. 얼굴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근데 진짜 얼굴을 물려버리면 답이 없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열병에 시달리다가 면역력이 다하면 곧 죽어 좀비가 되어버리고 만다.

상급 사제의 큐어라면 치료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물리는 순간 패가망신하기 십상이었다. 소문을 들어보니 몇몇 멍청한 모험가들이 벌써 그런 꼴을 당하고 말았다는 말이 있었다.

"질서신이시여!"

돌연 포효한 엘리제가 흥분한 물소처럼 뛰쳐나갔다. 그녀는 높이 쳐든 모닝스타를 그대로 좀비의 가슴팍에 꼬라박았다.

ㅡ퍼억!

ㅡ오로롱!

그러자 좀비는 기괴한 단말마를 내지르며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고 말았다. 개 씨발 엄청난 위력이었다. 단 한방에 상반신이 뜯겨나간 것이다. 하반신 역시 예상 외의 사태에 당황했는지 몸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다.

"뭐하고 있나 몸통아!"

나는 그 하반신을 강력하게 걷어찼다. 반쯤 썩어서 가벼워진 그것은 그대로 나무까지 날아가서 처박혔다. 하반신은 그제서야 침묵했다.

"실장검법!"

나는 절도있게 참격을 내리그어 바로 옆에 있던 좀비를 깔끔하게 베어냈다.

지난 한달간의 수련으로 내 검술 실력은 눈에 띄게 상승한 상태였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에서 비롯된 참격이 좀비를 말 그대로 절단냈다. 좀비는 그대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움직이는 짚단을 베는 것 만큼이나 쉬운 작업이었다.

"엘리제! 클라우디! 머리는 상처내면 안되는거 알지!"

"응, 당연하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조금 아쉽긴 하군요."

엘리제는 적의 머리통을 부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쉬움은 넘어가도록 하자.

"칼에 냄새가 안 베게..."

ㅡ쉬익!

클라우디가 칼을 휘두르자 한방에 세마리의 머리가 떨어졌다. 좀비들은 자기 머리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한참을 꼭짓점 댄스 비슷한 괴기한 춤을 추다가 쓰러졌다.

"음, 깔끔하네."

그녀에 곡도의 날에는 티끌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내 칼은 이미 거뭇거뭇한 진액으로 오염된 상태였다. 더 이상 칼이 오염되는 꼬라지를 볼 수 없었던 나는 칼을 집어 넣고 내 장기인 태권도로서 그들을 상대하기로 마음 먹었다.

ㅡ오로로롱!

"환마각!"

나는 곧바로 옆에서 팔을 뻗으며 달려오는 좀비에게 환마각(幻魔脚)을 때려박았다.

"선풍각!"

그리고 연격으로 선풍각(旋風脚)을 꽂아 넣어 마무리를 했다. 녀석은 내 엄청난 돌려차기의 위력에 척추뼈가 부러진 채 바닥에 처박혔다. 말은 그리 했지만 사실 그냥 두어번 싸커킥을 날려줬을 뿐이었다.

애초에 전혀 태권도 기술도 아니었다.

그냥 구라를 친 것이다.

"끝났습니다."

그 주접을 떨고 있으니 상황이 끝이 났다. 엘리제가 물만난 물고기마냥 주변을 질주하며 좀비들을 전부 박살낸 것이다. 내가 두마리에 클라우디가 세마리. 그리고 엘리제가 다섯마리라는 경이적인 스코어를 올렸다.

"캇트, 머리는 내가 베줄까?"

"아니, 가만히 있어. 내가 할게."

쓰러진 좀비들의 머리를 채집하려는 클라우디를 막아섰다.

죽은 좀비들의 머리를 잘라서 등에 둘러멘 자루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이것들이 전부 달란트였다.

나는 도마 위에 올려놓은 고기를 썰듯이 머리들을 전부 베어냈다. 이런 험한일을 클라우디에게 시키고 싶지는 않았고, 엘리제는 가진 무기라고는 모닝스타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이 옳았다.

전부 베어낸 머리들을 자루에 넘으니 금새 빵빵해졌다. 썩어서 쪼그라 든 머리통이라도 열개나 집어 넣으면 제법 무게가 느껴지는 것이다. 이래서 스켈레톤을 잡는 편이 더 좋았다. 걔들은 냄새도 덜 난다.

"시체들은... 그냥 방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습해 주고 싶기는 하지만, 수가 너무 많군요. 조우하는 족족 수습을 한다면 시간낭비가 크겠지요. 나중에 한꺼번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언데드 정화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엘리제가 방언이 터진 사람마냥 청산유수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듯한 그녀에게 끌리듯 숲의 종심으로 들어갔다.

엘리제는 거침없이 선두에서 나아갔다. 그녀는 언데드 격살의 전문가였고, 몇가지 흔적을 발견하는 것 만으로도 적들이 모여있을 만한 장소를 특정하는 것에 성공했다.

"발견했습니다."

ㅡ그가가각.

이번에 발견한 것은 분대급으로 모인 스켈레톤들이었다. 솔직히 나 혼자 가도 태권도로 전부 박살낼 수 있는 녀석들이다.

"이곳의 스켈레톤들은 뭐랄까, 너무 약하지."

스켈레톤들이 활보하는 꼴을 보던 클라우디가 나지막히 말했다.

"사막의 유적 스켈레톤들은 온갖 무장을 하고 있어서 상대하기가 까다로운데 말이야."

"유적 스켈레톤이라고?"

"그래, 매장된 왕가의 보물들을 지키는 호위병들인데, 뼈도 단단하고 동작도 빠른대다가 군대처럼 몰려 다녀서 그런지 여간 어려운 상대가 아니야. 그들을 보통 [가디언 스컬]이라고 불러."

왕가의 보물이라니 이집트 비슷한 느낌인가.

"이름 개살벌하네. 싸우면 내가 이길 수 있을랑가?"

"음, 일대 일이라면? 그들이 무서운건 대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서. 두세명 모이면 조금 힘들 것 같네."

"나 너무 약한거 아니냐..."

"응? 아니아니, 괜찮아. 너는 강한 남자야. 사실 실력보다 중요한 것이 의지력이지. 의지가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어. 그래서 캇트 네가..."

나와 클라우디의 시선이 맞았다. 갑자기 그런 부끄러운 말을 들으니 대번에 얼굴에 열이 오르고 말았다. 그녀의 입술이 가까웠...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이시는군요. 그렇다면 방해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 저 언데드들은 제가 책임지고 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말한 엘리제가 다시 성난 황소처럼 튀어나갔다.

"질서신이시여!"

ㅡ뻐걱!

ㅡ빠각!

모닝스타를 치켜든채 장군처럼 돌진한 엘리제는 말 그대로 스켈레톤들의 한 가운대로 들어가 날뛰기 사작했다. 그 철구가 반바퀴 궤적을 그릴때마다 무수한 뼛조각들이 튀었다.

한낱 스켈레톤들 따위로는 저 괴물같은 성녀를 어찌 할 수 없음이라 속수무책이었다.

그리하여 스켈레톤들의 두개골 역시 재료템으로 화하여 내 자루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식으로 우리는 산을 들쑤시면서 언데드들을 찾았다. 좀비랑 스켈레톤에 머미까지... 온갖 언데드들의 향연에 나는 그만 정신을 잃을 뻔했다.

"씨발!"

그리고 그러던 중에 일이 터졌다.

ㅡ휘유우우우우!!

"씨발 귀신이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고스트(Ghost)였다. 나는 패닉에 빠져 클라우디의 뒤쪽으로 달려나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몸을 가렸다. 나 김근태는 옛날부터 귀신을 극도로 무서워했다.

"하, 하읏?! 나 허리 뒤편은 약하다고...으읏!"

"존나 무섭다 나 어떡해!"

나는 발작하듯이 공포를 토해내었다. 그러자 고스트는 우리들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김캇트 인생 역사상 몇 안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귀신을 직접 본 것은 군대에 있을때 말고는 처음이었다!

"진정하십시오. 성도님. 저것은 그저 미물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때 엘리제가 종교인 특유의 대범함을 보이며 말해왔다. 그렇다. 엘리제는 수녀였다. 그녀라면 저따위 귀신 정도는 간단하게 개박살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천사를 보는 듯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버프를 걸어드리겠습니다."

ㅡ영광스러운 신의 힘으로 하여금 사악을 몰아낼 지니...

"홀리 인챈트(Holy Enchant)."

그러자 돌연 내 칼에서 성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옷, 오오...! 이 힘은!"

"그로서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이형의 존재들을 베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빛이 찬란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고스트에게 칼을 겨눴다. 홀리 인챈트라, 그런 버프를 받으니 자연스럽게 용기가 치솟는 것 같았다. 방금전까지의 공포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엘리제에게 시선을 보냈다.

"해 보십시오."

"좋아!"

ㅡ휘유우우우우!

나는 고스트와 대적했다. 놈은 빛나는 칼날을 보고 움츠러든 듯 했다.

그대로 고스트에게 망설임 없이 칼을 내질렀다.

"만해(卍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