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년 씨팔 저거 운동부족이네.

바바리안이니, 뭐니 좆같은 말만 골라서 하던 법사년은 기껏해야 한두 시간 걸어놓고 완전히 지쳐버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나는 그저 분노를 씹어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씨팔. 저 새끼 저거."

"이, 일단... 가까이.. 가, 가 보죠..."

"내가 가 봐야 불상사만 일어날 것 같은데... 뭐, 일단 가봅시다."

한숨을 푹 쉰 나는 커스토의 뒤에 서서 앞서가던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법사년이 앙칼진 목소리로 찡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내 살다살다 전성기의 위니아보다 목소리가 듣기 싫은 년은 또 처음이었다.

왜 마법사들은 죄다 성격이 개판인 것일까. 옛날에 크라스하임의 그렘린 동굴에서 개짓거리를 했다가 파티를 터트린 마법사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본적으로 안하무인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마차를 타고 가자고 했잖아!"

"로엘. 마차를 타고 가면 오히려 의뢰금보다 마차 값이 더 나가게 된다."

"아, 몰라! 힘들어! 쉬었다 가!"

소리를 빽 지른 로엘은 그대로 대자로 뻗어서 드러눕고 말았다.

그녀의 초록색 머리칼이 주변의 초원과 동화되어 마치 잡초 같은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거 과연 오늘 내로 콘페이토를 채취해 올 수가 있을까? 딱 보니까 쉬고 일어나도 잠깐 걸으면 또 퍼질 것 같은데?

그리 두 년들을 흘겨보고 있으니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마법사가 발작했다.

"뭘 쳐다봐? 구경났어? 저리 좀 꺼져주면 안될까? 야만족 냄새 나거든?"

곧바로 힘껏 날아올라 배때지에 금강쇄를 처박아줄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F급일때는 늘상 이런 취급이었지. 여러모로 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여자였다.

하아.

요즘 이런 일이 통 없다보니까 이것 역시 좆같게도 신선했다. 그때에 비해서 나아진 점이 있다면 내가 맞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겠지. 돈 뺐기는 일도 없고 말이다. 여러모로 나아졌긴 한데, 역시 머리색이 문제다.

"...커스토 씨. 지쳤다니 좀만 쉬었다 갑시다. 어차피 못 움직이는데 억지로 가봤자 악영향만 생기겠지요."

대꾸를 했다간 욕을 한바가지 퍼먹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냥 무시하고 커스토에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드러 누운 로엘을 나무랐다.

"마, 마차 없는거... 알고 있었잖아... 그리고 마, 마탑의 의뢰라며... 네, 네가 무, 무조건 한다고 해, 해서 한, 건...데 이... 러면... 곤란해... "

"그치만 힘든걸. 그냥 느긋하게 하면 안돼? 안 그래도 하기 싫어졌는데, 억지로 해주고 있는 중이라고."

"그러면... 시, 시간이... 느, 늦어, 늦어 지잖아... 늦게 가면... 밤에도 도시로... 못... 도, 돌아 갈 수가... 있어..."

"아 몰라! 쉴거야! 쉬었다 가!"

법사는 소리를 빽 질렀다.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 조금 힘들어서 쉬는 것 뿐이니까.

사람이 힘들면 쉴 수도 있지 안 그런가?

퀘스트를 던지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할 지경이다.

다 쉬고 나면 일어 나겠지.

"로엘. 그러면 잠깐 쉬었다 가면 되는건가?"

무투가년 역시 조금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니까 무투가가 마법사한테 조금 지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 지금 상태론 더 못 걸어."

"그렇다면 잠시 쉬었다 가도록 하지."

그렇게 출발한지 반나절조차 되지 않아 휴식 시간에 돌입하게 되었다. 한 10분 정도 쉬면 적당할 것 같은데, 분위기를 봐서는 30분 이상 시간을 잡아먹을지 싶다.

씨발. 빨리 승급하고 돌아가고 싶은데.

나는 파우치에서 건량을 꺼내 씹었다. 지금 위액이 목까지 차오른 것이 뭐라도 처먹어야 속이 진정이 될 것 같았다. 게비스ㅡ콘 어디갔어, 제기랄. 하얀색 아저씨들 도워줘요.

휴식 시간이 되자 원래 아는 사이였던 세 명이 모여 앉아서 잡담등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로엘이 징징거리는 것을 진정시키려는 듯한 대화였다. 굳이 낄 필요도 없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주저 앉았다.

"좀 멀리가서 처먹으면 안돼? 쩝쩝거리는거 진짜 기분 나쁘거든?"

그러던 중 갑자기 마법사가 나를 노려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순간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칼을 뽑을 뻔 했다.

이런걸 상정하고 일부러 떨어져서 앉은건데, 이래도 부족하다고?

"...이미 멀리 왔다만?"

"꺼지라고 돌려 말한거야. 역시 야만족이라 대가리가 안 굴러가나 봐? 그리고 입 벌리지마. 좆같은 냄새 나니까. 아가리 닫아줘, 부탁이야."

아니 이 개새끼가.

"아나 씨팔 진짜."

너무나도 현란한 도발에 반사적으로 욕설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조금 참아보겠다는 의지가 산산조각 나려고 하는 순간이다.

"뭐? 씨팔? 세르카, 이 미개한 새끼가 지금 나한테 욕한거야? 존나 어이없네? 내가 이런 취급받아야 되는 사람이야? 내가 이상한 건가?"

"...칼잡이. 조금은 교양이란걸 가지면 어떻겠나? 하기사 비겁하게 칼질이나 해대는 새끼한테 너무 많은걸 바라는 것도 좋지 않겠군."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일종의 거대하고 초월적인 악의를 느꼈다.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저건 망치로 대가리를 후려 치면서 일부러 저렇게 말하라고 강요를 해도 절대로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진짜배기였다.

그들은 진정한 차별주의자들이었다.

그 옛날 미국의 악질적인 백인우월주의 성향의 잔학무도한 폭력 무장단체 KKK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착하고 성실하고 맘씨 좋은 이웃집 친구들 같은 흑인들을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총칼로 난도질하여 도살한 광기가 이곳에 있었다. 그들은 살려달라는 흑인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흑인이라면 여자와 아이조차 가리지 않고 산채로 사

지를 잡아 뜯고, 그 시체의 뇌수를 파먹으며 파티를 열었다. 심지어 죽어가는 흑인 여아들의 비참한 울부짖음을 레코드판에 녹음하여 매일 밤 꿈나라로 떠나기 전에 듣고 자는 기염을 토했다.

씩씩거리는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고 일어났다.

인중에 콧수염만 달면 히틀러로 보일 지경이었다.

"너 잘 걸렸어. 야만족 새끼들이 도시에서 꼴값을 떠는게 평소부터 좆같았거든. 이번 기회에 청소라도 좀 해줘야 겠네."

나는 분노로 미간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양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퍼석, 그 단단한 건량이 가루가 되며 흩어졌다.

평소 이딴 분쟁이 일어나면 일단 칼질부터 하고 보는 내 특기이자 장점은 지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마법사를 두드러 패거나 죽인다는 것은 나의 죽음을 야기하기 때문이었다.

설령 저기서 저 새끼가 내게 마법을 쏴서 내가 정당방위로 죽였다고 한들, 그것에 대해서 귀를 귀울여 주는 착한 마법사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냥 내가 나쁜걸로 단정하고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지.

"아이고, 우리 씨발 영감님. 힘들다고 존나게 징징거린 주제에 갑자기 힘이 넘치시네? 왜 일어나셨어? 그냥 앉아서 쉬지."

그러니까 말로 깝사는거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냥 돌아가서 길드에 알려? 마법사가 나를 죽이려 했다고? 그러면 길드에서 이렇게 말하겠지. '아, 그래요? 그러시구나. 근데 그게 왜요?' E급 모험가의 의견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같이 퀘스트에 나간 누가 좆같이 행동했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해 주는건 없다.

뭘 해도 내가 손해잖아.

너무 불합리한거 아니냐?

내가 스트레칭을 하며 일어나니, 마법사가 내게 지팡이를 겨눴다.

이쯤되면 어쩔 수가 없다. 승급전을 포기하고 패널티를 안고 혼자 돌아가거나, 아니면 생사결을 벌이느냐. 모욕도 이쯤 참아줬으면 부처다. 부처님 얼굴도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다만 이미 녀석의 도발은 뇌절씹절을 넘어섰다.

내가 기어이 칼질을 안하려고 해도 그냥 앉아서 죽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마법사들에게 쫓기게 된다고 해도 이딴 식으로 나오면 칼질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로엘, 내가 전위를 맡아주지."

"고마워. 세르카."

아예 무투가까지 난입했다.

"아니, 존나 웃기네. 씹새."

저 새끼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지?

법사는 몰라도 무투가는 진짜 좆도 없는데.

아니,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좆도 없는게 저레벨 무투가다. 고레벨쯤 가면 달라지는 것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겠지만, 저레벨 무투가는 그냥 단검 든 뒷골목 강도한테도 끔살을 당하는 병신이란 말이다.

제 아무리 무술 솜씨가 대단하다고 한들 끽해야 E급 수준에선 특출 날 것도 없는 대다가, 맨손으로 칼든 강도를 상대한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태까지 강도를 어떻게 이겼겠는가. 다 걔들이 단검 들고 설칠때 나는 바스타드 소드로 그들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마치 몬스트를 사냥하는 것 같군."

"저건 몬스터 맞아. 야만족 바바리안이면 몬스터지, 안그래?"

"그 말도 맞군. 어이, 칼잡이. 덤벼라."

검사를 혐오하는 그녀의 투지는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설마 이 새끼들 이인조 바바리안 사냥꾼들인가?

들어 본 적은 없지만, 그런 놈들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만!!!"

"음, 커스토씨."

그런 우리들의 사이로 난입한 것은 하렘킹 커스토였다.

그가 외치니, 마법사는 스태프를 내리고 무투가는 팔을 내렸다.

"싸, 싸우지 말라고 했잖아!!! 왜 자, 자꾸 싸우는, 거야!"

"커스토. 못 들었어? 저 야만족 바바리안 새끼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구. 이번엔 우리 잘못 없어."

"맞는 말이다, 커스토. 이번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군."

저 어메이징한 사고 방식의 출처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자라야 저렇게 생각을 하는 걸까.

너무 빡쳐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마,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자꾸 이, 이러면... 너희들...이랑 다, 다시는 파티, 파, 파...티를 하지 않을거야...!"

아무래도 그는 말을 길게 하는것에 별다른 재능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 답답한 꼴을 보니 오히려 치솟은 분노가 그 말투에 향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힙겹게 말을 이었다. 자연스럽게 거기에 집중하게 되니, 신기하게도 분노가 잦아드는 것이다. 과연 싸움 중재의 비결은 이 특이한 말투에 있었던 것인가? 답답해서 분노의 방향성이 달라졌을 뿐이지만.

"커스토. 나도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기분이 팍 상해버렸단 말이야. 야만족이랑 같은 파티라니, 진짜 너무 불쾌해. 저주받은 놈들. 가까이 가기만해도 소름이 끼칠 지경이라고."

그럼에도 마법사의 지랄발광은 멈추지가 않았다.

"이봐, 칼잡이. 커스토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알아서 꺼져주지 않겠나? 솔직히 짐꾼겸 호위가 필요해서 한명을 더 받기로 했지만, 이래서야 같이 가는건 무리겠군."

비릿하게 웃은 무투가가 말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쯤되면 끝이다.

클라우디 한테는 존나 열심히 설명을 해 보도록하고, 다른거 열심히 해서 다시 승급하면 되지 뭐.

"그래 뭐, 꺼져줄게. 그런데 이건 순전히 너희들 사정이고, 내 잘못은 없는거잖아?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돌아가면 길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지.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돈을 달라 이 말이야. 내 손해를 매꿀 돈을."

나는 딜을 제안하기로 했다.

"딱 2실버만 줘. 그럼 조용히 꺼져줄게. 알아들었냐?"

이것이 가장 이성적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것을 그녀들에게 말한 뒤에 커스토에게 다시 말했다. 두 년이 줄 생각이 없는 것은 당연할테니, 커스토한테라도 받으면 아무래도 상관 없기 때문이다. 그라면 말이 통할 것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미친거 아냐? 내가 왜 너 따위한테 그런 돈을 줘야 하는데?"

이렇게 말이다.

"말했잖아. 늬들 사정 때문에 꺼져주는 거니까 그만한 보상금을 달라 이거지."

"역시 야만족답게 우리랑 사고 회로가 좀 다르네. 이거 죽여도 무죄지?"

"아니, 늬들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애?"

이 애송이년들.

딱 봐도 미성년자들인데, 나보다 실전경험이 많을 리가 없다. 무투가야 그냥 덤비는 순간 10초컷이고 마법사년은 메모라이즈도 없을테니 그냥 영창하기 전에 칼로 찌르면 되면 끝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하? "

"솔직히 니년들 잡아 죽이는데 1분이면 떡을 쳐, 이 병신들아. 커스토씨. 그래서 줄거야 말거야? 솔직히 이래봐야 죽도밥도 안돼. 그냥 돈주고 퉁치자? 안 그러면 둘을 죽이고 너도 죽이는 수 밖에 없어."

"그... 그건..."

"커스토! 듣지 마! 그냥 구워버리자고!"

그녀들의 바람과는 달리 커스토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내게 설명을 하려 했다.

"저, 저기. 카, 캇트님... 자, 잠시 진정하고... 그, 그런 큰돈은 어, 없으니까... 제가 저 아, 아이들을 지, 진정 시켜 보겠..."

"안 준다니까! 커스토! 걔 말 듣지 마!"

그런데 듣고 있자니, 돈을 준다는 소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할 말은 하나 뿐이다.

"뭐? 돈 못줘? 그럼 씨팔 끝까지 따라갈거야, 늬들 뒤질때까지 따라간다고! 알겠어? 끼에에에에엨!!!! 무조건 따라간드아아아아아악!!!"

너무 빡친 나는 말을 하다 말고 포효를 하고 말았다.

"뭐, 뭐야 저건!"

"미친거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