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에에에에에에에에엨!!!!!"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나는 마치 익룡처럼 소리를 질렀다. 포효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성량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끝이 났다.

숨을 들이쉬고 진정을 하고 있으니,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눈을 까뒤집은 채로 말했다.

"응. 무조건 따라갈거야, 이 병신들아. 나랑 같이 퀘스트 하던가, 아니면 나랑 같이 퀘스트 포기하던가. 둘 중 하나만 골라, 골라."

이 년들이 내가 그렇게도 좆같다고 하니, 지구 끝까지 쫓아가 줄 생각이다.

감히 나에게 모욕감을 줘? 이젠 단 두가지 결말 말고는 없다. 다 같이 퀘스트를 던지거나, 아니면 다 함께 좆같아진 기분으로 퀘스트를 진행하거나.

솔직히 내가 빠지고 이 세놈만 퀘스트를 성공해 돈을 받는 꼴은 뒤졌다 깨어나도 못 보겠다. 내가 못하면 너희들도 못해야 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상식이고 정의였다.

남들이 트롤이라면,

나도 트롤이 되면 되는 것이다.

"야, 씨팔, 커스토. 빨리 가자. 퀘스트 해야할거 아냐?"

비명을 지름으로서 속에 있는 것을 전부 게워내니 스트레스가 상당히 풀렸다.

ㅡ휘익!

검을 뽑은 나는 그대로 허공을 향해 칼을 힘차게 휘두르며 커스토를 불렀다. 그와 동시에 내가 수련중인 실장검법의 초식들을 이어나가며 그 솜씨를 뽐내었다.

단순히 위협의 목적으로 선보인 검술이다.

"미, 미쳤어... 커스토, 들었지? 이딴 미친놈이랑 무슨 퀘스트야! 당장 돌아가자고! 이래서 야만인과는 상종을 하면 안된다니까! 내 말 맞지!"

그 이질적인 광경에 기겁을 한 마법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진정해라, 로엘. 여기서 퀘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럼 어쩌자고? 저걸 그냥 가지고 가?"

"아니, 그럴 필요는 없지. 단순히 저 칼잡이 놈을 으깨주고 우리끼리 출발하면 되는거야. 그러면 되는거다."

험악한 표정이 된 세르카가 나를 노려 보았다. 노골적인 투기를 뿜어내는 것이, 여기서 나를 두들겨 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녀는 어깨를 돌리고 손먹을 풀며 전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소로운 새끼. 콧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꼬라지였다.

좋다. 내 칼을 보고 쫄지 않은 것은 칭찬해 줄만 하다. 겁이 없는건지 간땡이가 부은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칭찬을 해 주겠다.

그러나 나는 분명 기회를 줬다.

그녀는 애석하게도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나보다 약한 존재가 내게 깝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죽음(死). 그저 죽음말고는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 클라우디랑 다른 동네로 튀어볼까. 그녀와 함께 방랑을 하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그래, 그럼 그냥 퀘스트 하지 말자 이거지? 덤벼. 나는 여자라고 안 봐줘. 맘씨 좋은 주방장이자 인간백정 김캇트는 부드러운 여성용 고기도 취급해요."

"하아! 여자라고 얕보는 건가? 이래서 칼잡이들은!"

이제 진짜로 덤비려는 건지 세르카가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ㅡ성큼성큼!

성큼성큼? 아니다. 보폭이 일정한 것이 보법을 어느정도 배운 녀석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적당히 상대해선 안된다. 단번에 면상에 칼을 꼽아 넣어주마.

아가리에 칼이 들어가도 칼잡이가 병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보자 이 십새꺄. 그동안 무투가들을 죽이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 했었는데,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녀가 내게 반쯤 다가온 그때.

ㅡ짜악!

"아니 이럴수가!"

돌연 들려온 그 소리에, 나는 탄성을 지르며 전투 태세를 해제했다.

"아..."

커스토가 세르카의 뺨을 휘갈긴 것이다.

뺨이 붉어진 세르카는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듯, 커스터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얼빠진 얼굴이 '대체 왜?' 라고 묻는 것 같았다.

"이, 이제 돼, 됐어... 싸, 싸우지 말라, 말라...고 해도 마, 말도 안 듣고..."

커스토가 존나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진짜로 힘든건지 모르겠는다만은 말투만 보면 구라 안치고 에베리스트 산을 등반하고 온 것보다 더 힘들어보였다. 마치 생의 마지막 말을 토해내듯, 그가 말을 이었다.

"도, 돌아가자... 퀘스트는 여기, 여기까지야... 그리고 너, 너희...들과도 여, 영원히 이별...이야. 다시는 보, 보지말... 자..."

그것이 결정타였다.

세르카는 마음이 깨진 사람처럼 커스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야속하게도 커스토는 그런 세르카를 한방에 손절해버리고 마법사년을 돌아보며 다시 쐐기를 꽂아 넣었다.

"로, 로엘... 너, 너도 마찬... 가지야..."

"뭐어? 나, 나는 왜!"

"몰라, 몰라서 무, 묻는거지... 지, 금...? 이제... 너, 너도... 끝이야..."

"대체 뭐가 문젠데 이러는거야, 지금!"

커스토가 고개를 저었다. 정상인이고, 상식인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에게 모종의 호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젠 내게 다가온 그가 정중히 사죄를 전했다.

"카, 캇트님... 죄,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이, 이제, 이제는 어쩔 수, 수가 없... 네요... 도, 돌아가죠..."

근데 그건 안되겠는데.

씨팔, 다른건 몰라도 승급은 진짜로 하고 싶단 말이다.

"...커스토!"

내가 뭐라고 말을 할려고 하니까 세르카가 난입했다.

"미,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그, 그만할테니 이별이라는 말은...!"

세르카가 울먹일 듯, 커스토를 향해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 년놈들은 무슨 관계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지만,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이건 내가 기회를 잡은 것 같다.

흐음, 좋아. 아주 순조로워.

한동안 두 년들의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이 년놈들 사이에는 나의 인지를 초월한 종류의 기이한 유대가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울던 그녀들과 커스토가 합의했다. 내게 시비를 걸지 않고 퀘스트를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로엘이 퍼지면 세르카가 업어서라도 데려 가겠다는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다.

그렇게 상황은 정리된 듯 싶었다. 로엘과 세르카는 아직도 나를 탐탁치 않아 했지만, 커스토의 눈치에 별 말을 하지 않고 흘겨볼 뿐이었다.

"그... 럼... 추, 출발... 하겠습니다..."

아무튼 사제의 불꽃 싸다구 한방에 파티는 정상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리 길을 다시 출발했다. 시간 낭비만 존나게 한 느낌이다. 그 이후의 행보는 정말이지 순조롭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근데 왜 내 배알이 꼴리는거냐.

제대로 굴러가는 꼴을 보고 있으니까 또 배알이 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좆같게 굴던 년들이 마음을 다잡고 퀘스트를 하려고 하는 것을 보니 오장육부가 뒤틀릴 것만 같았다. 도저히 충동을 참지 못한 내가 말했다.

"아, 씨발. 힘들어. 야, 쉬었다가자."

"...?"

"야, 안 들려? 야 씨발! 나 힘들다고! 쉬었다 가자고!"

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납게 고함을 치니, 순식간에 파티의 분위기가 지옥나락의 저 편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얼굴이 시뻘게진 세르카가 내게 소리쳤다.

"저, 저 새끼가...!"

"뭐? 저 새끼! 이 씨팔 창년이 지금 나한테 저 새끼라고 한거야?! 야 커스토!"

나는 대지를 깨뜨릴 듯이 커스트로의 이름을 외쳤다. 이것은 인성질이 아니었다. 정당한 공중도덕(公衆道德)이었고, 부모님께 배운 예의범절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목소리가 몹시 큰 사람이었다. 그는 좆같은 것을 절대로 참지 않는 진정한 사나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고깃집에서 진상을 부릴때는 존나게 부끄럽긴 했지만, 이젠 아버지의 그 당당함이 내 미덕이 될 때였다.

"커스토!!! 지금 이새끼가 나한테 막말하는데 이래도 돼? 마법사는 쉬어도 되고 나는 안 되는거야?? 대체 왜! 대체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거야아아아아악!! 대체 왜애애애애애액!!!!"

"지, 진정! 진정하...세요...! 캇, 캇트님...!"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려고 하는 세르카를 커스토가 제지했다. 그녀는 다시 순한 양이 되어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돌아섰다.

이러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기분이 몹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권선징악(勸善懲惡). 죄를 저지른 자는 고통을 받는 것이 옳은 것이다.

악인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니, 내 안에서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적당히 눈치를 보니까 이미 다들 퀘스트를 성공해내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지랄을 해도 괜찮은 상태라는 것이겠지.

"쉬었다 가! 쉬었다! 아이고 힘들어!"

"알겠... 습니다... 쉬, 쉬었다가... 가, 가도록 하지요..."

결국 내 억지에 다시 휴식 시간이 부여되고 말았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 주저앉았다. 두 년들이 나를 노려 보았지만,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

나는 굴러다니던 작은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던졌다.

ㅡ따악!

"아악!"

"나이스."

돌맹이는 정확하게 세르카의 뒷통수에 적중했다.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린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야, 심심한데 노래 불러봐."

"뭐, 뭐라고? 저, 저 칼잡이 새끼가!"

그녀는 땅을 박차고 일어서려다 말고 커스토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잠시 세르카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이 되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카, 캇트...님? 지, 지금, 지금 무슨... 짓을...?"

"예? 아니. 어차피 오늘 하루 같이 퀘스트 할 사이인데, 조금 친해져 볼려고 그런거에요. 장난이 조금 과했나? 미안합니다. 야! 세르카! 미안해! 많이 아팠어?!"

"저, 저저... 저... 저 새끼...!"

이 분노조절장애년 같으니라고.

아무튼 충분히 쉬었으니 자리에서 일어서도록 했다.

"야! 다 쉬었다! 이제 출발해!"

얼굴이 울그락불그란 해진 세르카를 보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었다. 그녀는 차마 내게 달려들지 못했다. 커스토한테 단단히 조교된 것이리라. 다시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파티의 분위기는 대환장 그 자체였다.

"로엘로엘로엘로엘로엘, 로에에에에에엘!!!"

나는 걸으면서 마법사를 불렀다. 처음에는 반응을 전혀 하지 않으려던 그녀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닥쳐! 닥치라고!"

"따라하지 마!"

과장된 몸짓을 하며 그녀의 말을 따라하니, 아예 미쳐서 돌아가시려는 듯 뒷통수를 부여잡기 시작했다. 요즘 살면서 통 기분 좋은 일이 없었는데 그 꼬라지를 보니 미친듯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흐윽... 흐윽... 내가, 내가 왜 이딴 꼴을..."

결국 참지 못한 로엘이 눈물을 터트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서 위로를 하기로 했다.

"영감님 갑자기 왜 울어. 마음 아프잖아."

"으아아아아앙!!!"

"울지마."

울지마 톤즈.

"야, 야. 씨발. 그만 처질질 짜고 가자, 이제."

그래도 일단 출발은 해야했기 때문에 위로는 그만두고 건설적인 제안을 했다. 세르카를 보니 그녀는 당장이라도 분노를 터트리려는 듯이 부풀어올라 있었고, 커스토는 기껏 바로잡은 판이 우주저편으로 흘러나가니 완전히 정신이 나갔는지 골골 거리고 있었다.

이것이다.

이거야말로 내가 원하던 분위기였다.

"야, 세르카. 빨리 가자. 퀘스트 하자매? 이년 좀 진정시켜 봐. 뭔 애새끼도 아니고 계속 처우네, 진짜."

"이...! 이...!"

"뭐야 그 눈은? 야, 커스토. 나 이년이랑 싸워도 되지? 아니, 존나 시비터네, 씨팔년이! 둘중하나 죽어 봐? 야! 대답해! 대답하라고! 왜 사람이 말을 하는데 무시하냐고오!!!"

ㅡ스릉!

나는 다시 칼을 뽑았다.

그 난폭한 행동에 커스토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내게 애원의 눈초리를 보냈다. 여러모로 정상인들은 고통을 받는 법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년들이랑 다닌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역시도 미친 새끼일 것이리라.

"그, 그만... 그...만.... 그만 해 주세요, 제발... 저희가 잘못했... 습니다..."

"흐음, 그런가요? 역시 그쪽 분들이 잘못한게 맞죠?"

그는 아예 머리를 숙이며 내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꼴이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무투가와 마법사는 기겁을 하면서 그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나는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광경이라서 마치 이곳만 세상에서 분리된 것 같다는 불길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파티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이미 두 여성의 마음은 질척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세르카에게 찝쩍대기로 했다.

"병신 같은 년. 세르카! 어디가! 이리 와! 내 옆에서 걸어!"

"더, 더는 참을 수 없다! 죽여버리겠어!"

그리고 다시 움직이자마자 이꼴이다.

하아.

진짜 세상 좆같은 일 밖에 없구나.

ㅡ케에에에에엑!!

이번에 우리 싸움을 말린 것은 커스토가 아니라 몬스터였다.

저편에서부터, 몬스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