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납득하기 어려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부조리한 일은 많고, 이해할 수 없는 일 또한 많다. 지극히 상식적인 대가리를 가진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일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KKK는 물론이고 네오나치나 제국주의자 같은 사회의 암덩어리들이 인터넷의 저편에서 음울하게 절규하며 발호한다.

이것이 바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인간은 어리석으며, 용서와 타협. 그리고 잘못의 인정을 모르고 끝없이 추악한 감정을 토해내면서 자신과 다른 것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학살하는 것이 본성이었다.

그릇되었다.

나는 이것이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퓨전유교의 구도자로서 이 세상을 구원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러한 풍조부터 손을 볼 것이리라 다짐했다.

"아이고 시발."

한참 그런 생각과 흑인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사탕수수 밭을 효율적으로 불태우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구상하며 거리를 걷고 있던 중이었다.

바캉스는 좆망해 버렸으나,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던가.

위니아가 마탑에 볼 일을 보러 갔고, 클라우디가 마탑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서 따라갔다. 위니아는 뭐 같이 가냐고 짜증을 부렸지만, 결국 좋아하는 언니랑 데이트한다고 나가버렸다.

나는 길드 쪽으로 가고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저금이나 해 두도록 하자.

가을은 몬스터들이 준동하는 계절이니까. 그놈들도 살아있는 생물인지라 겨울을 버티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을 향한 습격이나 약탈이 발생한다.

ㅡ잔향.

그러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

냄새는 마치 나를 유인하는 것처럼 넓게 퍼져 있었다.

뭐지... 이 냄새는?

기억에 있는 냄새다. 동시에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은 향... 잘은 모르겠다. 나는 마치 전등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홀린 듯이 그 냄새를 따라가고 말았다.

내 눈에만 보이는 색.

이 냄새에 색이 있다면 분명 주황색이었을 것이다.

ㅡ두근두근.

그 선명한 주황색 길을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심장이 빠르게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흥분? 기대감? 비슷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냄새는 나를 격렬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분노로.

이윽고 냄새의 진원지로 다가갔을 때, 나는 진실을 목도할 수 있었다. 충격에 빠진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쥐어뜯을 수 밖에 없었다.

"오...! 오오...!!! 오오오오오!!!!!!"

ㅡ부들부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 얼마인가?"

"무투가 아가씨가 곱게 생겨서 4쿠퍼!"

"후후, 곱지 않다. 내 팔뚝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겸손하기까지 하네! 겸손하니 1쿠퍼 더 깎아줄게!"

세르카였던 것이다.

그녀는 과일 장수와 평화롭게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세상 즐겁다는 듯이 실실 쪼개고 있었다... 뭐지? 나는 심각한 인지부조화가 와서 상황 자체를 인식할 수가 없었다.

잠깐 동안 그 병적이고 미친 광인의 꿈같은 비현실적인 광경을 관찰하고 나서야 드디어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

웃음이.

미소가.

웃음과 미소가 보였다.

나는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저런 KKK 우수 회원한테 웃음이라는 것이 허락되는 것이었나...?

...내 상식이랑 많이 다른데?

나는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종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종말이었고,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지옥의 밑바닥이었다. 말했듯이, 이 세상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악인들이 평화롭게 웃으면서 살아가는 시대, 이것이 지옥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어긋남과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비적들도 사람을 학살한 주제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그릇되었다.

주제를 모르고.

분수를 모른다.

심판받지 못했기에 잘못을 알지 못하고.

참회하지 않았기에 죄를 인식하지 못한다.

내 기분은 무저갱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ㅡ악인들은 웃어서는 안된다.

끈적거리는 어두운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차오르며 전신을 가득 채웠다. 시야가 암전한다. 세상이 검어진다. 어두워진 세상에서, 오직 저 앞에서 웃고 있는 세르카만이 보였다.

"고맙다. 잘 먹도록 하겠다."

"다음에도 또 깎아줄 테니까 또 오십시오!"

"반드시 다시 오겠다."

불교의 가르침. 유교의 가르침. 그리고 천마신교의 가르침과 나의 경험.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가르침과 혼합된 다윗 왕의 가르침이 나의 뇌수에 속삭였다.

[가라.]

「끼에에에에에에에엨ㅡ!!!!!!!!!!!!!!!」

분노의 폭발과 포효는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르카를 향해 초월적인 스피드로 달려가고 있었다. ㅡ탁탁탁!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녀가 나를 인식했다.

"세르카!"

"허억!"

기겁을 한 세르카가 과일을 냅다 집어던지고 미친듯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이 천마 김캇트에게 등을 보이는 것이냐!

이 새끼가 나를 보자마자 모욕을 해!

아직도 잘못을 모르는군!

그야말로 분노의 추격전이 실시되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끌어올려 폭발적인 스피드를 터트리면서 질주했다! 하지만 세르카 역시 범죄자 특유의 날쌘 면모를 보이면서 잽싸게 튀고 있었다!

잡아야 한다!

"우오오오오오오ㅡ!!!!!!!"

흥분한 나는 파멸적인 덤블링과 비인간적인 풍차돌리기를 구사하면서 세르카를 뒤쫓았다. 무엇으로도 말릴 수 없는 충동이다!

내 충동이 극단적인 과잉행동으로 승화하면서 표출되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뒤를 돌아본 세르카가 공중에서 회전하는 아트로바틱한 모습의 나를 보더니 경악을 했다. 나는 마치 큰 소리에 놀라 흥분한 작은 동물들처럼 발광을 하면서 그녀를 쫓아갔다.

ㅡ후후...

동시에 머릿속에서 세르카의 웃음소리가 울리면서 그녀의 미소가 시야 한켠에 오버랩이 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아! 안돼! 이건 아니야! 인정할 수 없어!

"크아아아아아아!!!!!!!"

내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내게 몰리고 있었다!

"네 녀석이 웃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쿠루병과 조나하병에 걸렸을 때뿐이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그것조차 용서받지 못해!!!"

증폭된 분노는 끝을 모르고 뿜어져 나갔다! 하지만 기계체조를 선보인 탓에 좀처럼 세르카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송장벌레와 구더기들이 시체에 꼬이듯이 무투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르카가 비명을 지르면서 동네방네에 광고를 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무투가들이 딱 봐도 달려가는 나를 보고 뭔가 범인이라 단정 짓고 달려들어왔다.

"넌 뭐냐! 우리 애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일단 멈춰라!"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야, 야...! 잠깐! 저거 저 검은 머리 저거!"

"설마 그때 그...!"

하지만 그 사건의 결과는 결국 무투가들은 나한테 쨉도 안된다는 사실을 증명시켜줬을 뿐이다. 천 가까이 되는 어인을 학살한 내가 너희들을 두려워하겠는가!

"저리 꺼져, 이 머저리 새끼들아!!"

ㅡ쿠헉!

ㅡ케흑!

달려들다 말고 멈추려는 두 놈들에게 더블 래리어트를 꼽아 넣자 놈들이 마치 농담처럼 빙글 회전하면서 바닥에 처박혔다.

달리는 속도와 근력.

그리고 마나의 힘이 한대 어우러진 깔끔한 일격이었다.

"오, 오라버니들이!"

"멈춰! 세르카! 지금 멈추면 봐줄게!"

"거, 거짓말하지 마라!"

"나는 이 세상에서 거짓말을 혐오하는 사람이야 이 씨발년아!"

추격전이 이어졌다.

덤벼드는 무투가를 골로 보내고 있으니까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설마 이대로 추격 실패를 하게 되는 것인가? 신이시여! 그럴 수는 없다! 고지가 눈앞이다! 히틀러가 바로 저 앞에 있단 말이다...!

ㅡ파앗!

"드디어 나타났군, 이 야만족 칼잡이!!"

"뭐?"

그때 뭔가 커다란 외침이 쩌렁쩌렁 울리면서 누군가가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섰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착지한 그. 아니, 그녀는 긴 금발을 휘날리는 하얀 치파오 차림의ㅡ

"또 세르카에세 몹쓸 짓을... 덤벼라! 이번에는 저번처럼 비겁한 수에는 당하지 않을 것이다!"

ㅡ암말 같은 허벅지가 인상적인 무투사범이었다.

호기롭게 외친 그녀가 자세를 잡으며 내 앞에 섰다.

"넌 누구냐!"

발걸음을 멈춘 난는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뭐, 뭐라고?! 마리엘이다! 잊어버린 것이냐!"

"나는 좆밥새낀 일일이 기억 안 해!"

"이익!"

잠깐 멈춰 선 사이에 세르카는 이미 저만치 도망가 있었다. 운이 좋은 년 같으니라고. 기회를 잡았으나 저번처럼 혼쭐을 내주기도 전에 산통이 깨져버렸다.

이 씨발!

분노한 나는 분노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주먹이 울기 시작했다.

"그날 굴욕을 당한 이후로 단 하루도 네 녀석을 잊지 못했다! 감히 그런 비겁한 방법으로 무인의 이름에 먹칠을 하다니!"

이 새끼는 내가 빡친 줄도 모르고 저 혼자 신나서는 소리쳤다.

그러고는 비겁함에 대해 논하면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처럼 폭력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빈틈이 많다. 습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니 허점이 너무 많이 보였다.

"비겁함이란 약자의 변명일 뿐이다. 너는 네 패배에 대해서 변명을 하는 것인가?"

그때보다 강해진 나의 눈에는 마리엘이 무척이나 허접한 존재로 보였다. 애초에 나한테 두 번이나 패배한 존재다. 기억할 가치조차 없지.

"그런 게 아니다! 헛소리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 하지 마라! 네가 벗으라 한 부츠를 벗는 중에 공격한 것을 잊은 것이냐!"

벗으란다고 진짜 벗냐?

이건 벗은 게 잘못이지.

"이 새끼야 그건 니가 방심한 거고. 실전에서 방심한 주제에 내 탓이냐? 어이가 없구만!"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리엘은 오히려 코웃음을 치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야만족 칼잡이! 다만 네가 무도했을 뿐!"

"먼 개소리야 씨발년아!"

감히 내게 무도(無道)를 논하는가!

ㅡ파파팟!

분노한 나는 즉시 실장권법의 살인적인 전투 자세를 잡았다! 이딴 모욕을 그냥 넘길 내가 아니다. 좋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두들겨 패고 지갑을 털어주지.

"덤벼라! 덤비지 않으면 내가 가겠다!"

그녀가 사납게 외쳤다.

"갈 필요 있나? 좆밥에겐 선공을 양보해야지. 한대 맞아줄 테니까 니가 와라."

"감히 그런 모욕을...! 후회하게 해주마!"

ㅡ파앗!

마리엘이 땅을 박찼다.

치파오의 밑단이 휘날리며 그녀의 암말 같은 탄탄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그 아래로 보이는 새하얀 긴 롱부츠가 나름대로 어울려 보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때 골반의 끄트머리에 하얀색의 묶인 끈이 보였다.

뭐, 뭣?! 끈 팬티를 입고 있다고?!

치명적이다!

ㅡ그러나 나는 미인계에 굴복하지 않는다.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완성한 내게, 그딴 미혹쯤은 길거리에 굴러댕기는 돌멩이만도 못한 것이다. 애초에 내 클라우디가 더 예쁘고 섹시해.

"오늘에야말로 설욕을 하겠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마리엘이 내게 발차기를 날려왔다. ㅡ부웅! 돌풍이 일 정도로 강력한 킥이었다. 담긴 위력은 분명 만만치 않을 테지.

그러나.

"느려."

단, 두 걸음.

실장보법을 행해 휘둘러진 다리를 피해낸다.

강한 공격은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동작도 크고."

창칼이 난무하는 실전에서, 목숨을 저당잡힌 채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싸워온 내게 이딴 미적지근한 킥은 닿지 않는다.

"궤도도 뻔하다."

팔을 올린다.

실장권법의 가장 큰 장점은 '변화'와 '응용' 그리고 '호환'이다. 태권도와 천마신공으로 물 흐르듯이 흘러가면서, 무술들의 기반을 견고하게 잡아주는 가장 기본적인 근원의 전투술.

ㅡ붕쯔붕쯔.

보법을 행하며 비틀린 허리. 그리고 올라간 팔.

"천마파천장."

마리엘의 빈 옆구리에 반격을 꼽아 넣는다.

ㅡ퍼억!

파천의 힘을 담은 펀치가 그녀의 옆구리 살을 파고들면서 꽂혀 들어갔다. 빈틈을 노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적을 죽일 수 있고,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전투의 원리(原理)란 그런 것이다.

"끄흑!"

마리엘이 채 킥을 회수하기도 전에 행해진 공격이다.

그대로 날아가 바닥을 구를 것이란 내 예상과 달리 마리엘은 신음을 삼키면서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좋은 판단이다.

옆구리를 부여잡은 그녀가 나를 노려 보았다.

"반응은 좋구나. 그러나 이 천마에게 닿기에는 부족해. 아니, 저열하다. 선공을 양보했는데도 이 정도라? 내가 가면 볼만하겠구나."

ㅡ뜨득.

나는 몸을 풀었다.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