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망자는 말이 없다.

살베린 남작은 자신이 흘린 피 웅덩이에 빠진 채 뜬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모가지가 뻥 뚫렸음에도 입으로는 할 말이 없어 보인다.

그는 패드립에 내성이 없는 불쌍한 기사였지만, 그런대로 실력은 좋았다. 오늘 이 자를 참살한 것이 내일의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고맙다, 살베린 남작.

덕분에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생사결을 치른 경험을 얻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내게 그 귀중한 경험을 선사해주기 위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살베린 남작이 일종의 무슨 요정 비스무레한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ㅡ요정은 죽지 않는다.

죽은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 살아나 다시 나타난다.

벌버자도, 메르신도, 뷔갈도 그런 놈들이었다.

분명 그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

자연스럽게 그의 몸을 뒤집어 갑옷을 벗겼다.

"오오오!"

딱 봐도 명품 갑옷이다, 씨이발! 이거 챙기는 맛에 싸우지! 신나게 갑옷을 죄다 벗기고 나서 그가 착용하고 있던 장신구도 전부 다 챙겼다.

그리하여 팬티만 입은 살베린 남작의 시체가 방치되었다.

"아닛!!"

그리 노획품을 정리하려고 하니, 저쪽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로르말자 후작이 내게 던져줬던 보석이 주렁주렁 박힌 고급스러운 금목걸이였다.

"이 후작새끼 감히 날 모욕하고 결투를 방해했겠다!!!"

저것은 그 위자료로서 챙기리라!!!

잽싸게 목걸이를 챙겨 품속에 집어넣고 노획한 모든 장비들을 투기장 구석에 정리를 해 놓은 뒤에, 즉시 뛰어오르며 벽을 타고 올라가 아내들이 기다리고 있는 좌석으로 향했다.

"캇트!!!"

양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나를 보고 있던 클라우디가 내 이름을 부르며 좌석을 박차고는 내게 미사일처럼 안겨 들어왔다.

"클라우디!"

나는 날아드는 그녀를 안아 든 뒤에 한 바퀴를 빙글 돌았다.

"캇트, 멋있어! 멋있어! 최고야, 정말!"

"흐흐흐, 그렇게 좋아?"

"너무 좋아!"

ㅡ쪽. 쪽. 쪽. 쪽. 쪽. 쪽. 쪽.

클라우디는 웃으면서 내 안면에 키스 세례를 마구잡이로 퍼부어줬다. 오늘은 진짜 제대로 된 실력을 그녀들에게 보여줬다. 아직 클라우디에 미치려면 한참 남았지만,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클라우디. 나 슬슬 안면 내출혈로 죽는다고."

"캇트, 어쩜 이렇게 멋있을까! 누가 캇트를 이렇게 키운걸까, 응? 응?"

"바로 우리 클라우디 마마의 무한한 사랑과 애정이지."

"캇트으...!"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아 주고 있으니.

ㅡ짝짝짝짝짝짝!

카린 역시 만족한 것처럼 과장스럽게 박수를 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왔다. 아주 웃음꽃이 핀 것이 정말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존나 잘했다, 우리 수컷놈!!! 당연히 씨팔 누나한테 그 지랄로 배웠는데 좆털어먹어야지!!! 마무리 한 것까지 완벽했다!!"

"고마워 누나! 다 훈련 덕분이야!"

"누나 칼 어떻디?"

"존나 좋아!!"

이 보라색 칼 이거 진짜 중독이 될 정도로 강력한 칼이었다.

일단 뷔갈 이 씹병신 같은 새끼는 나가리다.

조금만 더 써먹다가 나중에 진짜배기 레어메탈 소드로 갈아타야겠다. 데스웜 잡은 돈이랑 팔라딘 활동하면서 버는 돈이랑 이거저거 다 합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진짜, 깜둥이...!"

위니아도 다가와서는 내 옷깃을 붙잡았다.

"보면서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줄 알아? 안 다쳤으니까 별말 안 하는 줄 알아!"

"흐흐흐, 당연히 안 다친다니까! 봤지? 그냥 개털어먹었잖아. 우리 위니아 앞으론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래두 난 불안하단 말이야."

"돌아가서 수유나 해줘."

"...응."

이어서 리즈티나 역시 얼굴을 붉히면서 다가왔다.

고급스러운 털목도리를 두른 그녀는 오늘따라 기품있는 귀부인처럼 느껴졌다. 그녀 역시 내 아내들과 나란히 앉아서 관람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 모인 건 저번에 소개하러 갔을 때 이후로 처음인가?

"뭐, 제가 빌려드린 건틀렛은 쓸 일이 없었네요."

마법을 쳐내는 성능이 있다는 건틀렛.

기껏 빌려왔지만 리샤의 대마법 아티팩트가 너무 강력해서 쓸 일은 없었다. 물론 이런 것까지 전부 완벽하게 준비를 했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원래 뭐든지 다 준비 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철저한 준비만이 승리를 가져다준다.

"아니. 이게 있었으니까 자신감이 생긴거지. 아주 좋았어, 리즈누나. 어디, 내 결투 구경은 잘했고?"

"생각보다 엄청 잘 싸우시던데, 멋지긴 하네요... 살짝 가슴이 두근거렸다고나 할까... 특히 허벅지 차면서 제가 알려준 그거 쓴 것도 볼만했네요. 마지막에 목살 뜯은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뭐, 만족할만한 여흥이었어요."

"흐흐흐, 그랬으면 다행이고."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붉어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면서 허벅지를 비비 꼬고 있다. 리즈티나 역시 클라우디나 카린처럼 무력파인 여자라서 그런지 이런 걸 참 좋아한다.

그때, 그런 리즈티나를 보고 있던 카린이 그녀의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

ㅡ찰싹!

"꺄윽?! 카린?! 이게 갑자기 뭔 개짓이야!"

"이년 이거 암컷냄새 풍기는 것 좀 봐라?"

"뭐, 뭐요?"

"젖었냐? 앙?"

"저, 젖기는 누가 젖었다고 그러시는 건가요...!"

"지랄, 딱 봐도 애액으로 팬티 푹 적셔놓고 어디서 구라야? 이 음란한 암컷년이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는 줄 아세요?"

아니, 카린누나?

"자, 잠깐! 들추지 말아요옷...!"

성큼성큼 걸어간 카린이 리즈티나의 치파오 앞섬을 들추려했다. 나는 카린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그것을 제지했다.

"아니, 카린. 너무 괴롭히지 말고. 응?"

"야, 야. 장난이야, 장난. 그냥 저년 저거 얼굴 붉히고 있는 거 보면 괜히 그러고 싶어져서 그래."

"카린 당신...!"

서로 사이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네 이거. 아무튼 그러고 있던 카린이 웃으면서 리즈티나에게 물었다.

"캬흐흐, 그래, 뭐. 내 남편 어떻디? 존나 멋있지?"

"저, 저도 부인은 부인이거든요?"

"아니, 어떠냐고 묻잖아."

"마, 말했잖아요... 멋있긴 하다고..."

"그래, 그랬으면 된 거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은 카린이 내 얼굴을 잡았다.

"응? 우리 귀염둥이. 누나가 아주 감개무량해."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그윽한 것이, 나의 성욕을 심하게 자극하는 것이었다.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그냥 싹수만 있는 개좆밥 새끼였는데 언제 이렇게 강해져서는."

"누나가 많이 도와줬지. 검술 쪽은 누나 도움이 제일 컸어."

"진짜, 누나가 우리 남편 가르쳐 줄려고 어릴 때부터 열심히 했나 보다. 뭐,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때 노력했던 것도 다 의미가 있었네."

"나 눈물 나올 것 같애."

확실히 이스반트 처음 와서 검사길드에 등록을 한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나 다름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때 나 줘팼던 무투가 씹새끼들도 일종의 요정 비슷한 것이었다.

그걸로 어떻게 인연이 닿아서 카린이랑 리즈티나를 내 것으로 만들었으니까.

"후후후, 많이 즐거워 보이는구나."

아직도 작아진 모습인 리샤가 다가와 말했다.

아니, 이거 적응이 진짜 안된다...!

"이렇게 잔혹하고 사나운 사내가 어찌 커다란 젖가슴만 보면 그리도 얌전해지는 거니?"

그게 내 분노 진정제야.

"그런 점이 참을 수가 없구나. 이렇게나 난폭한데, 정작 그곳을 잡아 쥐고 만져주면 한없이 순해지니..."

"리샤... 그러니까 빨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줘..."

말해주는 것은 상당히 흥분되는데, 정작 이렇게 어린 모습이어서야 마음이 동하질 않는다.

당장 내 폭유 리샤를 보고 싶어...!

"후후후, 아티팩트만 돌려주면 오늘 저녁쯤에는 그렇게 해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아무튼 정말 멋진 결투였단다."

"빨리 가서 돌려줘야겠군! 리샤 고마웠어!"

돌아가면 엉덩이도 만져줘야 한다.

"아버님..."

아리 역시 내게 다가와서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어, 아리야."

"잘은 모르겠지만, 이기신거죠...?"

"그래, 내가 이겼다."

"축하드려요. 그러면 이제 아까 그 사람들이 아버님에게 더는 무례하게 굴지 않게 되는 건가요?"

아리의 물음은 제법 날카로운 것이었다.

과연 그 새끼들이 얌전히 사과를 할까?

"아버님이 화를 내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요."

"...우리 아리가 보기 싫다면 안 내야지. 아마 더이상 무례하게 굴지는 않을 거다."

아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면서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스반트 영주가 직접 해결을 해주겠다고 했으니 별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개념이 없는 놈이라고는 해도 그들의 근본적인 사상은 귀족 우월주의였다.

공작위를 지닌 이스반트 영주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로르말자 후작 그 새끼도 영주가 뜨자마자 꼬리를 내렸고.

설마 그 새끼들이 또 지랄을 할까.

그리 아리랑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리즈티나랑 카린이 조금 뒤쪽에서 뭔가 또 티격태격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지도 젖꼭지 빨딱 세워놓고 저한테만 뭐라 그러죠!!"

"지랄 이 털도 없는 년이!!"

"뭐, 뭐?! 그, 그따위 천박한 말이나 해대고! 그리고 캇트씨는 털 없는 거 더 좋아하거든요! 만질 때마다 귀엽다고 해주시는데!"

"뭐, 뭐라고?!"

카린이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어... 리즈티나 거기가 매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지런히 정리된 카린의 털을 싫어하는 것은 또 아닌데... 각각 맛이 다른데 싫어할 리가 있나.

다 좋아하지.

"누나들? 진정 좀 하고..."

"우리 남편 진짜니...?"

"아, 아니. 누나. 그런 게 아니라."

카린이 다가와서 내게 물었다.

아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

"캇트, 캇트."

클라우디는 여전히도 내 목에 팔을 두른 채 시종일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 정말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가보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상태였고 말이다.

"흐흐흐, 왜."

"그냥. 너무 기뻐서. 캇트, 아주 잘싸웠어... 정말로.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이렇게... 흐으읏...!"

순간 클라우디의 몸이 절정을 하는 것처럼 떨려왔다. 뭐? 아니. 하는 것처럼이 아니라 실제로 절정을 해버린 것이다.

"가버릴 것 같아..."

클라우디 몸이 너무 음란해졌어.

"아니, 실제로 절정했구만, 뭘."

"후후후, 그런 걸까?"

대충 결투가 끝나고 장비를 다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쉽게도 리즈티나는 일 때문에 바빠서 나중에 둘만 있을 때 개인적으로 축하를 해주겠다고 한다. 이 기쁨을 당장 같이 나누고 싶은데 말이다.

아무튼 돌아오고 나서 밥 먹고 씻고 침대에 누운 채로 계속 휴식을 취했다. 물론 내게 휴식이란 섹스다.

전투의 흥분과 승리의 쾌감으로 비대해진 성욕이 내 자지를 강철처럼 만들었으니까.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욕구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남작이 조금 더 강했다면.

아니. 확실하게 나보다 강했다면.

그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내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었을 테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다지 만족할 수 있는 적수는 아니었다.

조금 더 아슬아슬한... 알라우네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은 느낌이나, 하피들에게 납치를 당했을 때. 레이스퀸의 결계에 갇혔을 때나... 안드로말리우스를 대면했을때... 그것도 아니라면 데스웜을 끝장냈을 때...

그때와 같은 아슬아슬함을...

"응? 누나가 뭐 해줘야 되냐?"

"어? 뭐?"

순간 카린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깨웠다.

"뭐야? 누나 말 안 듣고 있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아 이러고 있으니까 개편하네."

"이걸로 만족하려고?"

카린이 내 것을 젖가슴 사이에 끼운 채 열심히 문질러 주고 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살의 감각이 내 마음속의 만족감을 채워준다.

"막 뭔가 해주고 더 싶어서 마음이 근질거리는데... 콕 찝어서 정할 수가 없네. 우리 남편 뭐 하고 싶어? 누나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데. 원래 뭐 잘했으면 상을 줘야지."

"흐흐흐, 그래?"

뭔가를 부탁해줬으면 좋겠다라, 솔직히 어지간한 건 밤에 다 해주니까 특별하게 부탁할만한 것은 없다. 부탁하면 다 해주는데 대체 뭐가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지금만 해도 침대에 누워 있으니까 스스로 가슴으로 해주고 있다. 카린의 존재 자체가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카린. 나랑 같이 리즈티나 좀 보러 가자."

그럼 이것 좀 부탁해 볼까.

"뭐? 그년은 갑자기 왜?"

내 말에 카린이 파이즈리를 중지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둘이 좀 친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이미 존나 친한데?"

"아니. 안 친하거든."

"뭐, 안 친하다고 하면 또 안 친하긴 한데, 뭐하려..."

말을 하려던 카린이 내 눈을 응시했다. 카린은 드물게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뭔가 머뭇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설마... 지금 그년이랑 누나를 동시에 따먹고 싶다... 뭐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

"흐흐흐, 그냥 친분 좀 쌓자는 거지."

"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