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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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철.

그가 개미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며 전업 투자가의 길을 걸은 것도 벌써 10년째였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샤워를 하고, 간단히 과일로 아침을 먹으며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외우는 주문.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오늘 하루도 1%만 먹을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1%.

주식으로만 100억을 굴리는 장광철이다.

1%만 먹어도 1억.

일반인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을 벌어들인다. 그의 전문 분야는 스캘핑으로 전용 키보드와 마우스까지 구매해 놓고 투자하고 있었다. 주문을 외운 장광철이 HTS를 실행 시켰다.

“어디 보자······.”

누리증권 HTS 아이콘을 클릭하자 업데이트 진행 막대가 나타났다.

HTS 업데이트를 진행 중입니다. 1분 04초.

HTS 업데이트를 진행 중입니다. 44초.

HTS 업데이트를 진행 중입니다. 15초.

업데이트가 끝나고 상세 내용 팝업이 나타났다. 장광철은 차근히 그 내용들을 읽어 나갔다.

“스피드 매매 기능이 추가 되었고, 화면 크기 조정 기타 자잘한 버그들이 수정 되었다.”

혹시나 매매 시 도움이 될까하여 평소 장광철은 HTS의 기능 하나 하나 꼼꼼하게 읽고, 사용해 보는 버릇이 있었다. 사용 중에 불편한 점이 있거나 버그 또는 추가되었으면 하는 기능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누리 증권에 어필했다.

VVIP 만의 특권.

특히 그의 잔고가 50억을 넘어가고 나서부터 누리 증권에 요청한 내용이 묵살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스피드 매매 기능을 살피던 장광철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거 꽤 쓸 만하겠는데······.”

장광철의 특기는 스캘핑. 빠르게 매수,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이 수 백 만원을 버느냐, 잃느냐를 가르는 승부처이기도 했다.

오전 8시 45분.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를 마친 장광철은 주식 시장이 개장되길 기다렸다.

타닥. 타다닥.

한강이 보이는 장광철의 집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오직 그 하나.

고요한 가운데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찰칵 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리고 있었다.

타닥.

한 번의 소리에 매수가, 또 한 번의 소리에 매도가 이루어진다. 3분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거래.

"이런 페이스라면 오늘 3%도 먹겠어."

장광철이 씰룩 거리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12시. 장이 마감하는 오후 3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수익만 벌써 백만 원을 넘기는 중.

타닥. 타다다닥.

장광철이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호가 창을 노려보며 거래할 종목을 선별해 나갔다.

오후 3시.

장광철이 기지개를 켜며 HTS창을 꺼버렸다. 2008년은 아직 페이스 북 보다는 싸이월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장광철은 장이 끝나면 항상 그날의 수익을 짧게나마 정리해 싸이월드에 올렸다. 그와 일촌을 맺고 있는 사람만 수 천 명.

글을 올리자마자 그의 추종자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우와! 오늘도 수익률 짱이네요.

우왕ㅋ굳ㅋ 님좀 짱인 듯.

킹왕짱. 주거래 증권사가 어딘가요?

언제 한번 오프라인 강의 부탁드립니다!!

수익이 났을 때의 기쁨만큼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보는 재미도 쏠쏠 했다. 장광철은 장이 끝나고도, 한 참 동안 댓글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고는 생각이 난 듯 핸드폰을 들었다.

“장광철입니다.”

한 마디면 충분했다.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은 여성의 굽실거림이 전파를 타고 전해졌다.

아,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추가된 기능 있잖아요. 그··· 스피드 매매인가?”

스피드 매매 기능 말씀이십니까? 혹시 불편하셨던 점이 있으셨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 기능 꽤 괜찮은 것 같아서요. 근데 사용하다 보니 좀 더 추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요.”

알겠습니다. 고객님. 말씀해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장광철의 통화는 수 분 동안 계속 되었다. 전화를 받은 안내원은 열심히 받아 적었다.

현금으로 100억을 굴리는 VVIP.

증권사에서 돈이 많다는 건 곧 법이었다. 그의 말이 곧 법이니 그대로 따라야만 했다.

***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IT 전체 회의 시간.

월말 회의에는 한 가지 안건이 더 추가 되어 회의가 진행된다.

1월. ‘상·벌 점’ 운영 결과.

PPT가 나타나자마자 일순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대양 시스템

버그 발생 : 13건.

수정 완료 : 13건.

기능 개선 : 5건.

ST 데이터 시스템

버그 발생 : 23건.

수정 완료 : 20건.

기능 개선 : 6건.

엠쓰리 소프트

버그 발생 : 33건.

수정 완료 : 32건.

기능 개선 : 3건.

대산 시스템

버그 발생 : 19건.

수정 완료 : 19건.

기능 개선 : 1건.

수치를 확인한 조영석이 입을 열었다.

“흐음··· ST에서 3건, 엠쓰리에서는 한 건이 완료가 안 되어 있네요?”

조영석의 말에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권현근이 황급히 입을 떼었다.

“확인을 해 봤는데, 3건은 저희 쪽 문제가 아닙니다.”

조영석이 슬쩍 턱을 문질렀다. 권현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대산 쪽 문제가 저희 쪽으로 잘못 집계된 걸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곽정욱이 황급히 나서며 말했다.

“차장님 잘못 집계 했다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분명히 ST 쪽 문제로 올라온 건들입니다. 제가 몇 번을 확인 한 줄 아십니까?”

조영석이 입을 떼었다.

“목록 열어봐.”

조영석의 말에 곽정욱이 엑셀 파일을 클릭했다. 거기에는 PPT에 적혀 있는 수치에 대한 근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곳에 유독 눈에 띄는 문제들이 몇 건 보였다.

스토캐스틱 지표 월 차트 속도 개선 및 미 응답 문제.

캔들 차트 월 별 속도 개선 및 미 응답 문제.

MACD 지표 월 차트 속도 개선 및 미 응답 문제.

하나같이 남경상이 대산에 항의했던 것들이었다. 윤기환이 흠칫 거리며 뒤쪽에 앉아 있는 우성을 쳐다보았다. 우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걱정하지마세요.”

그래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영석이 고개를 돌려 윤기환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윤기환이 말했다.

“말씀하신 건들은 저희 개발자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윤기환의 대답에 우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변 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ST에서 network library로 SNL(ST Network Library)이라는 자체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권 차장님?”

SNL.

ST 데이터 시스템에서 만든 소켓통신용 라이브러리로 이걸 사용함으로써 통신 관련 코드를 줄이고 개발자는 비즈니스 로직 구현에 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일종의 호미 같은 도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손으로 밭을 매는 것보다 호미가 있다면 빨리 편하게 할 수 있다.

우성의 질문에 권현근이 슬쩍 뒤를 보았다. 남경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SNL에 문제가 있는 것 도 아십니까?”

이번에도 권현근이 고개를 돌렸고, 남경상은 고개를 저었다. 잔뜩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성이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해당 라이브러리의 경우 요청하는 쓰레드(작업자의 일종) 개수가 100개를 넘을 때 전송 속도가 느려지거나 요청 자체가 유실되어 끊어져 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테스트를 많이 해보셨다고 하셔서 저희는 이미 알고 계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영석의 시선이 다시 권현근 쪽을 보았다. 권현근은 뒤를 보고 있었다. 결국 남경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SNL 라이브러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니 그 말 책임져야 할 겁니다.”

"지금 바로 재현해 보일 수 도 있습니다."

조영석이 둘 사이의 말을 끊었다.

"이건은 ST에서 확인해 보고 곽 대리한테 보고하세요."

명백히 ST의 잘못 이라 생각하는 말에 남경상이 이를 갈며 자리에 앉았다. 조영석이 기능개선 건을 보며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ST가 기능 개선은 가장 많이 했군요. 그리고······."

권현근의 입가에도 약간 미소가 피어났다. 잠시 뜸을 들이던 조영석이 말을 이었다.

"대산이 1건으로 가장 적군요."

남경상이 슬쩍 눈을 흘기며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윤기환이 마른 침을 삼키며 다시 우성을 보았다.

우성은 천하 태평한 모습.

그때 누군가 조영석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 그래? 음. 알았어."

주억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조영석이 다시 윤기환이 있는 쪽을 보았다.

"하하, 이거 대산에서 왜 한 건 밖에 없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요."

윤기환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골드 등급 이상 고객 여러 명에게 연락이 왔답니다."

골드 등급.

자산 5억 이상을 굴리는 고객을 말한다. 10억 이상이면 다이아 등급. 50억 이상이면 블랙 등급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고, 덕분에 거래하는 맛이 난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는 군요.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뒷말은 곽정욱이 받았다.

"정확히 27분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그리고 만나서 기능 개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조영석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고객의 적극적인 참여까지 이끌어 내다니 그 기능이 꽤나 쓸 만했나 봅니다."

곽정욱도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그 밖에 고객 분들이 꼭 필요했던 기능이라고, 쓸 만하다고 긍정적인 표현을 홈페이지에 올리신 게 수백 건이 넘습니다."

"우리 회장님께서 항상 강조하는 말씀이 바로 선택과 집중인데, 대산에서 그걸 그대로 실천해 주었군요."

윤가환도 서서히 웃음을 찾아갔다. 반면 남경상의 안색은 서서히 굳어졌다. 조영석이 말을 이었다.

"대산이 제안한 컨설팅도 확대 시행하도록 합시다. 금액도 3억이 아니라 5억으로 올릴 테니 제대로 한번 해주세요."

윤가환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결과 내도록 하겠습니다."

권현근은 똥 씹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