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Tennis

< 2ND ROUND QUALIFYING # 3 >

한우진이 한 포인트 따낸 것에 미처 기뻐할 틈도 없이,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다니엘이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판은 경기를 잠깐 멈추고 의료진을 불러 그의 손목을 검진하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 한우진은 심판석 주변에 있는 벤치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센 공은 아니었는데?’

분명 ‘슬러그’의 속도는 굉장했다. 위에서 아래로 덩크처럼 내려꽂는 스매시의 원리상 타구에 실린 힘 역시도 상당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결코 다니엘 같은 건장한 남성이 라켓을 놓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물며 테니스 선수의 악력은 통상적인 성인의 그것을 크게 뛰어넘는다. 라켓의 무게는 300g남짓이라지만, 그 부피로 인해 생기는 공기저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그립이 조금만 허술해져도 휘두른 라켓이 손아귀에서 빠지는 이유

가 거기에 있었다.

몇 천, 몇 만번 라켓을 휘두르며 단련된 테니스 선수들의 손목은 단단하고 두텁다. 스매시 한 방 세게 받아냈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의아했다.

다니엘의 표정은 날카로운 통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고, 얼음팩을 문질러대는 와중에도 끙끙 소리를 냈다. 적어도 엄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그를 마냥 기다려주는 게 아니었다. 경기 도중 생긴 사고로 인한 부상의 경우, 1회에 한하여 3분의 휴식을 요청할 수 있다.

즉, 3분 후면 다시 코트 위로 올라와야하는 신세였다.

‘올라올까?’

긍정이 반, 부정이 반이었다. 어느 스포츠나 그렇듯, 테니스 선수들 역시도 부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약간이라도 증상이 나타나면 기권해버리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메이저대회의 결승전이라면 몰라도, ATP250의 예선전에서 선수 인생을 끝내고 싶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메디컬 타임(Medical Time)이 끝나자 다니엘은 기어코 코트 위로 올라왔다. 경기를 속행할 생각인 듯했다.

심판은 염려가 담긴 얼굴로 그를 바라봤지만, 선수가 문제 없다고 주장하는데다 즉시 중단시킬 정도의 부상이 아니었던 터라 막을 방법이 없었다.

“Daniel, serving play!"

라켓을 세게 움켜쥐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있는지 다니엘은 공을 던져올리며 얼굴을 구겼다. 그래도 어떻게 라켓을 휘둘려 서브를 때려내기는 했다.

물론 서브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팡!

비실비실 날아온 서브는 한우진의 맹렬한 리턴에 의해 코트를 찍고 튀었다. 길항하고 있던 균형은 다니엘의 손목 부상으로 인해 크게 망가졌다. 아마 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 균형이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

한우진은 자신이 승기를 확실하게 붙잡았음을 깨달았다.

“Love Thirty(0 : 30)!”

끝났다. 아마 다니엘도 직감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 해도 앉아서 백기를 드는 건 사양이라 이건가? 궁지에 몰려서야 그 외모에 걸맞는 터프함이 드러난 셈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무너트려주는 게 선수로서는 예우다. 한우진의 움직임이 망설임을 떨쳤다. 그는 날아드는 서브에 맞서 빠르게 발을 놀렸다.

서브가 코트를 찍고 튀어오르자, 한우진의 라켓이 기다렸다는 듯이 응수했다.

파앙!

어떻게든 받아보려 라켓을 내밀었지만 손목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다니엘의 팔을 멈췄다.

라켓 끄트머리를 스치고, 공이 코트를 두들겼다.

“Love Forty(0 : 40)! Set Point!”

마침내 1세트가 끝을 보였다. 이제 한 포인트 남았다.

또한 이번 세트의 끝은 곧 경기의 끝을 의미하기도 했다. 다니엘의 손목은 경기시간이 길어질수록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을테니까.

더없이 분한 얼굴로 다니엘이 공을 때렸다.

마지막 서브가 날았다.

텅!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예리하던 서브는 둔탁하고 미적지근하게 변해있었다. 손목의 통증이 라켓에 힘을 실을 수 없게 만든 탓이다.

한우진은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다니엘이 받아낼 수 없을 장소로 공을 돌려보냈다.

팡!

“Game set! Set won by Ujin Han, Score 75!”

1세트 그리고 경기의 끝이 될 선언을 들으며, 한우진은 머릿속의 알림을 경청했다.

[치열한 플레이! ATP250리그에서 최초로 듀스 게임을 승리한 대가로 스텟이 랜덤으로 1 오릅니다.]

[치열한 플레이! ATP250리그에서 한 세트를 승리한 대가로 사용했던 스킬들의 경험치가 크게 오릅니다.]

[발리의 레벨이 1 올랐습니다.]

* * *

경기는 그의 예상대로 끝났다.

손목의 통증이 한층 더 심해진 다니엘이 결국 기권을 선언했고, 한우진은 치열하기만 했던 예선 2차전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소모될대로 소모된 호흡과 근육이 영양을 요구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힘을 너무 뺐어.’

원인은 간단했다.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나버렸다는 것. 만약 다니엘이 ‘슬러그’를 받아치고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승패는 알 수 없었다. 한우진은 다니엘 패터슨의 노련한 솜씨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그나마 경기가 내일에나 이어진다니 다행이었다. 이대로 3차전까지 치르게 된다면 본 기량의 반도 발휘할 수 없을 게 뻔히 보였다.

그리고 경기를 마친 뒤 관중석으로 올라간 한우진은 일행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이기면 어떡하냐? 너 때문에 간이 바짝 쫄았잖아!”

“그게 내 탓이냐?”

등짝을 팡팡 두드려오는 최연혁의 복부에 주먹을 넣으며, 한우진 역시 장난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기고 나니 힘이 좀 났다. 신세연은 그에게 수건과 물을 건네준 뒤 가방을 뒤졌지만,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넉넉히 챙겨왔을 칼로리바가 싹 사라져있자, 그녀는 전상식 쪽을 째릿 노려보며 말했다..

“전 감독님, 혹시 여기 있던 견과류 바 드셨어요?”

“크, 크흠. 우진이 경기가 너무 긴박해서 그만…….”

결국 그가 다 먹었다는 소리였다. 흥미로운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씹듯이 말이다. 신세연의 황당한 눈초리를 피해서, 전 감독은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근엄한 목소리로 한우진을 향해 말했다. 앞서 있었던 해프닝으로 말의 무게는 이미 싹 다 달아나버린지 오래였지만, 내용만큼은 진지했다.

“고생 많았다. 아마 상대는 이번 예선에서 꽤나 잘하는 놈이었던 거 같은데, 용케도 이겼구나.”

“네, 감독님.”

한우진은 그의 칭찬에 맞춰 대답했다. 칭찬에 인색한 전상식이라 그런지 그 칭찬은 한층 더 기껍게 다가왔다. 전 감독은 하지만, 하고 말을 이었다.

“아직 네 실력이 많이 모자라다는 것도 알았지?”

뼈아픈 말이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소리였다.

한우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 패터슨은 그에게 기량의 부족을 절감하게 만든 선수였다. ‘슬러그’가 없었더라면 승부의 행방은 운에 맡겼어야 했겠지.

“결정구라 할만했던 스매시도 이상했어. 왜 그런 방향으로 친 거냐? 설마 노리고 쳤던 것도 아닐테고.”

전 감독이라 해도 생각이 거기까지 닿을 순 없었다. 한우진은 상대가 부상을 입을 정도의 공을 때릴 피지컬은 아니었으니까.

그가 전력을 다해 때린 공도 프로 선수의 손목을 상하게 하기엔 모자람이 많다. 바디샷을 직격시켜도 피멍 하나 들면 끝이지, 손목의 인대나 근육 손상을 일으키는 건 힘들었다. 공 한 방에 뼈가 부러지고 라켓이 망가지는 건 만화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그러나 한우진은 선뜻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슬러그’는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흠잡을 곳이 없었던 다니엘의 리시브를 정면에서 무너트렸다.

그가 대답하지 않자 전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침묵은 수긍이겠거니 싶었던 것이다.

“일단은 숙소로 가자. 가서 배부르게 먹고, 몸이나 푼 다음 자라. 대진표는 아까 찍어뒀으니까 가서 보면 되겠지.”

“네, 일어나죠.”

한우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일행의 이동은 빨랐다. 그들은 즉각 대회장을 벗어나 바깥에 주차시켜뒀던 렌트카에 올라탔다. 숙소가 그리 멀진 않았지만 경기 직후의 선수들을 굳이 걷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차에 올라타 시트에 기대자마자 선수 두 명의 눈꺼풀이 뚝 떨어졌다.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쌓였던 피로가 단번에 덮쳐든 것이다.

아마 10분 안에 다시 일어나야겠지만, 두 사람의 짧은 휴식을 위해 전 감독은 액셀을 부드럽게 내리밟았다.

차량은 가벼운 떨림과 함께 나아가기 시작했다.

2번에 걸친 예선전은 그들의 하루를 금세 저물게 만들었다.

숙소에 도착한 두 선수는 피곤함을 뛰어넘는 허기를 못 이기고 식당을 찾았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느니만큼 식비 정도는 얼마든지 지출할 수 있었다. 그걸 기회로 둘은 호사스럽게 속을 채웠다.

유럽 지역에서 특별한 요리를 하나 꼽자면 크리스마스에 먹는 전통음식, 송아지머리 요리가 있다.

Tete de veau라고 부르는 이 요리는 쫄깃하면서도 특유의 풍미를 가져 한우진과 최연혁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와인까지 곁들였더라면 완벽했겠지만, 대회 일정 도중에 술을 마시는 건 미친 짓이었다.

10분도 안 되어 그릇을 비운 그들은 로렌 지방의 특산물인 키쉬 로렌(Quiche lorraine)마저 두어 개 시켜 우물우물 씹어넘겼다. 다진 베이컨과 계란 타르트가 크림에 섞여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잘 먹었습니다.”

“저두요.”

일행은 질린 얼굴로 두 사람이 쌓아놓은 접시들을 보았다. 경기로 체력을 좀 썼다지만 이렇게 흡입을 해도 되나? 빠르게 먹으면서도 소화에 지장이 없도록 한 입에 스무 번은 씹는 게 참 대단했다.

전 감독은 소고기를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발음이 좀 뭉개졌지만 듣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 딴데로 새지 말고 들어가서 쉬어라. 자도 상관은 없는데, 소화 좀 되게 한 시간쯤 있다가 자.”

식사 직후에 수면을 취하면 위액의 분비 등이 느려진다. 전 감독은 그들이 컨디션 불량이 일어나지 않도록 섬세하게 충고했다. 두 사람 역시 알았다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의 식사는 끝나려면 30분은 더 걸릴 것 같았다.

식당 문을 열고 나오자 두 사람은 차가운 밤공기에 잠시 몸을 떨었다. 프랑스의 8월은 한국과는 좀 달랐다.

“으, 추워. 반팔 입긴 좀 그렇구만.”

“잠바라도 하나 챙겨올걸.”

영상 15도 정도일까? 둘은 잽싸게 숙소로 달렸다. 각자 방을 찾아 들어가려던 때, 한우진이 고개를 돌려 최연혁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가 없으면 안 될 일이 하나 있었다.

“연혁아.”

“어, 왜?”

방문을 반쯤 열고 있던 그는 즉각 반응했다. 한우진은 혹시 폐가 되진 않을까 싶었지만 소화 목적의 운동도 되는 셈이니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손 모양으로 라켓을 휘두르는 제스쳐를 하며 제안했다.

“가볍게 연습하러 갈래? 연습하고 싶은 공이 하나 있어서.”

“음… 10분만 있다가 가자. 너무 많이 먹었더니 화장실이 급해.”

“그런 건 안 말해도 되거든? 그럼 현관에서 보자.”

“그러지 뭐.”

다행히 최연혁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받아주었다. 한우진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불을 켜자 탁상 위에 덩그라니 놓인 라켓이 그를 기다리는 게 보였다.

라켓을 잡아들었다. 곧장 상태창이 머릿속에 떠올라 현재 한우진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한우진】

근력 59 / 체력 62 / 민첩 54

HP 1650/2480 SP 410/600

포핸드(Forehand) : 10 / 20

백핸드(Backhand) : 9 / 20

서브 레벨 : 12 / 20

발리 레벨 : 8 / 20

스매시 레벨 : 10 / 20

드롭샷 레벨 : 6 / 20

로브 레벨 : 5 / 20

특수기술 : 스패로우(서브), 슬러그(스매시)

‘많이도 썼군.’

HP나 SP나 어마어마하게 소모했다. 식사하고 회복을 거친 후에도 2/3 정도라니. 2세트까지 정상적으로 진행됐더라면 탈진 상태였을지도 몰랐다.

한우진은 잠시 상태창을 체크하던 걸 멈추고 하단의 특수기술 란으로 관심을 모았다. ‘슬러그’라는 3글자가 걸렸다.

다니엘 패터슨의 손목을 망가트린 공.

스매시.

점핑 스매시?

바디샷.

여러 가지 생각과 추측이 떠올랐다가 부스러졌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한 번 쳐본 공을 자세히 알 수 일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슬러그를 관찰해보기 위해 최연혁에게 연습을 부탁한 것이다.

물론 최연혁의 손목을 망가트릴 생각은 없었다. 스매시를 칠 수 있는 구도만 만들어줬으면 했다.

‘어디 한 번 볼까.’

새롭게 손에 넣은 무기의 위력을 말이다.

< 2ND ROUND QUALIFYING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