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Skin

00509 Frostbite

‘ 어떻게... 어떻게... ’

틀림없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항상 하던 일이었고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사렛은 주변을 둘러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 실수였어. 실수였어. 실수였어. ’

지금껏 만나봤던 인간들과 똑같은 이들 이었다. 자신들이 구원받을 거라고 믿으며 언젠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종류의 멍청한 인간들이었다. 구태여 먼저 입을 열기 전에도 자신들을 환영한 이들이었고, 먼저 고개를 조아렸던 이들이었다. 매일 매일 열심히 기도를 드리며, 별 것 아닌 말 하나에도 기쁘게 웃었던 바보 같은 놈들이었다.

수많은 신전을 다녔지만 이렇게 멍청한 인간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이들,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이들, 종교는 보통 인간들의 약한 부분을 파고든다. 이들 역시 유약한 이들이었고 기댈 곳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이토록 환영하는지 알 고 있었다.

분명히,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동상이 부셔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 몸이 결박 된 채로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예상하기 힘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이 틀어졌다는 것 뿐이었다.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동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아으아아아아아아아... 제발!! 제발 살려주...살려... ”

“ 죽...여...줘...제발....제...발... ”

“ 아아아아아악!!! ”

“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제발...제발! ”

바닥에는 이미 피가 흥건하다.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깃털들은 사방에 뽑혀져 있었고 이미 떨어져 잘려나간 날개를 향해 단검을 내지르는 미친 인간들이 시야에 비쳤다.

“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

이미 주인이 없는 날개다. 떨어져 나간 날개와 다리 따위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의 모습은 괴기스럽다.

‘ 미...미쳤어... 미쳤... ’

“ 아.... ”

동료들 중, 몸이 멀쩡한 것은 자신 밖에 없다.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미카엘님 조차 지금껏 본 적 없는 인간 마법사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본적이 없었던 인간, 아마 신전을 지키는 이들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으리라.

지옥에서 온 것 같은 악마들이 저마다 무기를 치켜들고 땅으로 떨어지는 미카엘님을 향해 무기를 내 지르고 있는 중. 땅으로 떨어지기가 무섭게 창과 단검들이 미카엘님의 날개와 몸을 유린한다. 비명을 내 지르며 온 몸을 비틀고 있는 도중에도 작은 단검은 끊임없이 내리 꽂혀 하얀색의 의복을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 날개와 팔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앞에서는 성녀라고 불렸던 인간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흐으으으윽...이...이죄를 어떻게... 흐으으으윽... ”

“ .............. ”

“ 하으으으으윽.... 어떻게... 어떻게... 용서를 받아야 할지... ”

“ ........ ”

“ 흐으으으으윽...흐으으으윽... ”

그 구슬픈 울음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 피와 비명이 얼룩진 이 신전에 있는 다른 이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뺨을 맞은 이후에도, 대놓고 모욕을 할 때에도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던 인간, 고개를 조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간이었다. 동상이 무너져 내린 그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비명소리와 함께 자신에게 쏟아진 신성력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동상을 부셔버린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미카엘님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 일을 망친 것이다.

이들은 평범한 사제들이 아니다.

계속해서 몸이 바닥에 끌려가고 있었을 때 시야에 비친 것은 함께 온 7명의 동료들, 모두들 성한 곳이 없다. 창에 몸이 관통되어 사타구니 쪽에서부터 목구멍에 꽂힌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이도 있었고, 날개에 덜렁거리는 살덩이만 매달려 있는 이들도 있었다.

혀가 완전히 뽑혀져 나간 이도 있는가 하면, 얼굴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는 이도 있었다. 다리가 잘려나가고 날개 한 쪽이 잘려나간 이들은 무척이나 많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동료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신도들이 오히려 죽이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포션과 신성력을 들이밀고 있다. 이미 움직이기조차 힘든 것 같은 동료들은 바닥에 고정된 채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미친 인간들은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거대한 신성력을 쏟아 부어 억지로 몸을 일으키게 하고 있었고,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는 동료들은 자신을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하아...아... ”

“ 우웨에에에에엑.. ”

“ 살...려... ”

“ 나...사...렛. ”

이윽고 도착한 미카엘님 역시 마찬가지. 아름다운 피부와 손과 다리, 자랑하던 날개는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머리카락이 완전히 뽑혀져 나가 모공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한 쪽 눈은 뽑혀져 나가 있었다.

멀쩡한 것은 자신 뿐이었다.

“ 아...으으으으으... ”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다. 어째서 아직 죽이지 않는 건지, 어째서 가장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은 멀쩡한 건지, 동상을 파괴한 자신은 어째서 털끝도 건드리지 않은 건지. 왠지 모르게 불안한 생각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방이 광기에 가득 차있다. 침을 삼키며 전방을 바라보자 천천히 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시야에 비친 것은 작은 여자아이, 다만 무척이나 표정이 어두운 여자아이였다.

“ 백아연님...흐으으으윽... 백아연님... 죄송합니다. ”

성녀라고 불렸던 제인이라는 인간이 무릎을 꿇고 사죄를 들이고 있는 것을 보고 나사렛은 눈 앞에 있는 여자가 백아연 대주교라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자신들이 기다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 아...으... ”

“ 백아연님...죽여 주시옵소서. 흐으으으윽. 제가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간교한 이교도들에 혓바닥에 속아, 구세주님의 모습이 담긴 동상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흐으으으윽... 저의 잘 못입니다. 모두다 제 잘 못입니다. 제가 조금 더 빨리...흐으으으윽... ”

“ 일어서세요. 제인 성녀. 당신의 죄는 잠시 후에 묻겠습니다. 상처를 입히지 않고 데리고 온 것을 고려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흐으윽....흑... 죄송합니다. ”

“ 죄를 사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구세주님이십니다. 아마 구세주님게서는 당신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

광기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작은 여자의 모습은 어딘가 기괴하다. 입이 돌아간 모습이 평범한 인간과 많이 달랐던 탓이다. 히죽 히죽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호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 수 있다.

기대하는 표정이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나사렛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 네...네가! 감히... 구세주님의 사도들인 우리에게! 무슨..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고 있는 것이냐! ”

“ ................ ”

“ 구세주님께서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거다. 감히! 극진한 대접을 해도 모자른 판에 이...이런! ”

“ 더 떠들어 보시지요. ”

“ 이...런... ”

“ 더 떠드셔도 됩니다. 즐겁군요. 지금 힘차게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당신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히히히히힛... 푸흣...히히히힛. ”

“ ............... ”

“ 당신이군요. ”

“ .......... ”

“ 당신이 구세주님의 모습이 담긴 동상을 무너뜨렸군요. ”

“ ......... ”

“ 구세주님의 온전한 모습이 담긴, 구세주님을 위해 제가 직접 만든, 구세주님이 멋지다고 이야기하셨던. 그 동상을 무너뜨린 것이 당신이군요! 당신! 당신이! ”

“ ...... ”

나사렛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 그...그것은 제 보물이었습니다. 보물, 보물 말입니다. 흐으으으윽... 당신이 밉습니다. 당신이 미워요. 히끅...흐으으윽... ”

“ ..... ”

“ 일단은 말입니다. 그 간교한 혓바닥부터 뽑아내겠습니다. 히히힛.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당신이 인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힘들지도 모릅니다. 죽고 싶어 질 수도 있겠지요. 허나 저는 절대로 당신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알고 있는 모든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해드리지요. 차라리 지옥이 편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

“ 으... ”

몸이 덜덜 떨려올 수밖에 없다. 그 만큼 현재의 분위기가 공포스럽다. 우는 건지 웃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 든 것 같은 눈 앞에 여자 때문에 몸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이 신전이 맞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작은 여자가 천천히 다가오자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시작, 온 몸이 묶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꿈틀 거리며 뒤쪽으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이것 뿐 이었기 때문이다.

“ 오지마! 오지마! 제발 오지마! ”

“ 푸히히히힛. 도망치셔도 됩니다. 지금은 정화의 의식을 치루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당신이 두려워하면 두려워할수록 더욱더 즐겁습니다. 그렇고요! 그렇고말고요! ”

“ 아으아아아아! 오지마! 제발! ”

엉금 엉금 기어가고 있었을 때였다.

“ 아... ”

시야에 무엇인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 ...... ”

무언가 이질 적인 것이 바닥에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꽤나 수준이 높은 마법사가 주문을 걸어놨다는 회의 결과가 있었지만, 신전을 보호하고 있는 장치 정도로만 생각했다. 신전의 대주교가 올 때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미카엘님의 전언이 없었다면 이미 걷어놨을 것이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마력이 걷힌 이후에 보이고 있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지하...도시...

지하도시다. 틀림없이 지하도시였다.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몰려 있는 인간들이 공중으로 손을 뻗고 있다. 이곳에서 일어난 축제를 바라보며 손을 벌리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희망이 없다. 배고픔과 공포, 그리고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이 떨어지고 있는 날개를 받기 위해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그 위층, 또 그 위층 무척이나 깊게 보이는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 기괴한 가면을 쓴 신도가 한 인간의 내장을 마구잡이로 헤치고 있었고 그 위층에서는 몸이 녹고 있는 고문을 당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 아...으아... ”

“ 아으아아아아아아아악! ”

“ 아아아아아아아악!!! ”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비명이 이곳까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 지...옥... ”

지옥, 실제로 지옥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리라.

이곳이 평범한 신전이 아니라는 것 따위는 당연히 알 수 있다.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는지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질 따름, 단순히 멍청하게 느껴지는 인간들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이들은 어딘가가 빠져 있는 것 같은 인간들 이었다.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인간들이다.

이단 심문관 들을 가지고 있는 신전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지옥을 만들어 놓은 이들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 아...으... ”

발을 들여서는 안 될 곳에 발을 들였다.

그것이 떠오르는 생각의 전부였다.

“ 푸히히히힛. 당신은 저곳으로도 가지 못할 겁니다. 저곳은 정화의 의식을 치룰 가능성이 있는 이들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당신 같은 저주받은 이가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지요. 가능성이 없습니다. 커다란, 아주 커다란 죄를 저지른 당신에게는 단 요만큼도 정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

“ 아....살...살... ”

“ 그래도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들은 언젠가는 죽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영원히 살아있을 겁니다. 영원히, 영원히 살아 이 신전에 상징 같은 존재가 될겁니다. 감히! 감히! 구세주님의 대신전, 구세주님의 동상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표본이 될겁니다! 이곳에 찾아온 이들은 가장 먼저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당신을 말이지요. 푸히흐흐흣. ”

“ 살려...살려... ”

“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절대로, 죽지 않고... 이곳에 살아있을 거라고요.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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