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Skin

00551, are you ready?

“ 별 다른 일은 없었다니까. ”

“ 그래도! 그래도! ”

“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겁습니다. ”

한 번 한 이야기를 두 번, 두 번 한 이야기를 세 번 한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안 그래도 말 주변이 없는 내가 최대한 재미있게 말을 하려니 더욱더 재미없어지는 느낌이었다.

“ 많이 달라지지는 않으셨네요. 어머님들끼리는 꼬리가 두 개가 되어있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는데. ”

“ 머리 위에 뿔이 두 개 더 생겼지. 꼬리 끝도 자세히 보면 조금 달라. 아무래도 남는 시간 동안 이 것 저 것 생각할 게 많았으니까. 그 외에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건 맞는 말이구나. ”

“ 그렇군요. ”

사실 특별한 변화가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모은 포인트로 대충 커스터 마이징을 하기는 했지만 훈련으로 익숙해진 몸의 신체구조를 바꾸는 것은 도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떠올린 것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꼬리와 정신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뿔이었다. 나태의 힘으로 뽑아낸 기관, 조금 도박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변화였다.

사실 나보다 달라진 것은 여인들 쪽, 변화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나를 독차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의 어머니들은 조금 힘들다. 벌써 몇 시간째 아이들에게 나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메브나 정하연, 장예리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나아 보였지만 이러다 하루가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하는 것 같은 표정이 모두의 얼굴에 보일 정도였다.

결국 먼저 칼을 빼내 든 것은 장예리 였다.

“ 이제 잘 시간이다. ”

“ 어머니, 아직 그렇게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 ”

“ 이제 그만 잘 시간이라고 하였다. ”

“ 그! 그래! 이제 잘 시간이니까! 라브아! 언제부터 엄마 말에 토를 다는 나쁜 요정이 된거니!? ”

기다렸다는 듯 언성을 높이는 메브의 모습은 가관. 라브아의 얼굴에 순간 배신감이 감돌았지만 어머니들의 눈에서 알 수 없는 열망을 느낀 아이들은 결국 천막을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이미 승자와 패자가 이미 결정된 싸움이었다.

“ ............... ”

“ ............... ”

“ 이제 조금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겠네. 김태성은 은주 언니가 제일 좋은가봐...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꼭 그렇게 한사람 이름만 불러야 직성이 풀려? ”

최슬기의 용건은 확실히 이쪽인 모양이다. 안 그래도 실수 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다. 저런 식으로 공격을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다.

“ 눈에 띄었을 뿐이야. ”

“ 조금 섭섭하기는 하더군... 최은주는 외관이 달라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째서 눈에 가장... 차별은 좋지 않다. ”

“ 차별 한 것이 아니라. ”

괜스레 부끄러워하는 최은주의 모습이 다른 이들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당연하지만 진심으로 짜증내는 이들은 없다. 작은 사건보다는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조금이지만 모두가 조금 달라졌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장예리가 가지고 있는 뿔, 뿔이 잘려나간 부분을 보고 본래의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더 아름답다. 정하연의 뒤에는 라프라의 것처럼 식물의 날개가 달라져 있었고 마치 레바테인과 일체화한 내 모습처럼 변신하는 메브의 모습도 시야에 비쳤다. 차이점은 물을 휘감고 있다는 것 뿐이었지만 말이다.

‘ 허... ’

일체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조금 힘들어 하는 것 같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콧대를 올리는 메브의 모습은 조금 황당했다. 그 놀고먹던 메브가 이런 식으로 힘을 얻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장예리의 말대로 최은주는 달라진 것이 없었고 백아연은 얼굴이 조금 수척해졌다. 최슬기는 조금 배가 부풀어 올랐다. 한참 민감한 시기에 신경을 써주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웃어주는 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 나는 천천히 모두에게 입을 열었다.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기분 좋은지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에 묘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안부를 주고 받고, 어떻게 지냈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정도의 성과를 얻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즐겁다. 메브가 가장 신나게 떠들기는 했지만 메브의 생각처럼 갑작스레 모든 주목이 쏠린다던가 하는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 회의는 그동안 누가 주관하고 있었어? ”

“ 스톰 쉐도우랑 이완용이지 뭐. ”

“ 맡길 만 하군. ”

“ 푸하하핫. ”

“ 조금은 불쌍하네요. ”

이완용이 아니라 스톰 쉐도우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나 역시도 조금 공감할 수 있다.

“ 구세주님! 성전의 정확한 시기는... ”

“ 아마도 곧.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을 기다리게 될 거야. 제대로는 알 수 없지만 작전부에서는 정확히 반년 이후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날짜를 반년으로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나 때문이다. 아가페의 성소 안에 있는 것과 나를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 성소의 신이 14장의 치천사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결정된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본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게 당연하다. 14장의 치천사들이 너무 많아진다면 이쪽 병력이 적들의 병력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 그렇다고 해서 급하게 들어간다면 우리 쪽의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성소의 신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척이나 머리 아플 것이다.

이완용, 하카진을 비롯한 각 대륙의 머리들이 내놓은 기한은 딱 반 년.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 이었다. 적들 역시 우리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첫 번째 공격이 막힌 것은 녀석들로써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일터, 신중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막 입을 열려던 찰나,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쟁 이야기는 그만 하는 것이 어떤가. 지금은 조금 더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고 싶군. ”

“ 아. 그렇군요. ”

“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럼 오늘은 난가? ”

“ 본래의 차례대로라면 내가 아닌가. 안 그래도 마음의 상처를 회복해야할 참이다. 양보해 주었으면 좋겠군... ”

“ 그, 그럼 저는 내일 구세주님을 맞을 수 있겠군요! ”

- 나...나는...

구석에서 겉돌고 있는 아이작이 시야에 비친다.

“ 아이작은 시험해 볼게 있으니까 나중에 따로 시간을 가지도록 하지. ”

- 정! 정말?!

“ 물론이다. ”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양심이 조금 찔려오지만 한꺼번에 다수의 무기와 일체화 하는 것에도 익숙해 져야 한다. 다인과 아이작을 한꺼번에 일체화 했던 감각은 아직 남아있다.

여인들은 오늘의 차례가 누구인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중. 3개월이 지난 시점이니 초기화 해야 된다는 의견, 본래대로 로테이션이 돌아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에는 후자로 결정된 모양, 몸을 섞는 것 외에 대화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마치 잡아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달려든 장예리를 시작으로 매일 밤이 조금 힘들어졌다. 심지어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둘이 함께 들어온 경우도 있었으니 무척이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즐거운 시간은 조금 빠르게 흘러갔다.

방구석 폐인 마냥 한 곳에서 틀어박히는 수련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히 수련을 멈추지는 않았다. 초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참가한 회의는 점점 길어졌고 남대륙으로 건너갈 배는 점 점 더 완성되고 있었으니까.

드워프들과 오크들이 함께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들려오는 것은 내 신경을 조금씩 긁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수련은 온전히 하유리와 한소혜에게 맡겼다.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조바심이 나더라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그날의 하루를 끝냈다. 욕을 하던 것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하유리는 내게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 나쁘지 않네. ”

다음날도,

“ 좋아. ”

그 다음날도,

“ 괜찮았어. ”

생각할 시간은 많아졌다. 물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역시 많아졌다. 모두와 함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나가기도 했고 식사를 하고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앞으로의 대한 것, 삶에 대한 것, 아이에 대한 것, 주제는 무척이나 여러 가지였지만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낸 것 뿐 만이 아니다.

“ 난다! 날아! ”

“ 왔군. ”

“ 블러드 대거를 위하여! ”

고블린 삼자매, 방패의 오르보, 가르크와 하르크가 속속들이 영광스러운 땅에 도착한 것이다. 물론 클랜은 조금 더 시끌벅적 해졌다. 클랜원들과 시간을 보낸 것도 물론 오랜만이었다. 모두의 안부를 물었고 모두와 한잔 씩 술잔을 기울였다. 고블린 자매들은 너무 많이 마셔 안에 있는 것들을 게워낼 정도였다.

“ 우웨에에에엑... 난다... 날아... ”

“ 적당히 마셔야 한다. ”

물론, 검을 휘두르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좋네. ”

다음날도,

“ 흐음... 괜찮아. ”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머리위에 달린 나태의 뿔은 조금 더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 아빠! ”

“ 야! 김태성! 이것 좀 봐바. ”

최슬기와 라브아를 비롯한 가족과 대륙 곳곳을 돌아 다녀왔다.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회의에도 물론 참여했다. 적들의 전력에 대해 세라핌이나 나사렛 비둘기들을 심문해 최대한 정보를 모았고 부대를 개편하는 한편 준비를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이 금방 복잡해 졌지만 금방 나태해지기도 했다.

“ 블러드 대거님. ”

엘리샤와 엘리아를 비롯한 엘프가 도착했고,

“ 싸우기 위해 찾아왔소. ”

드워프들의 군대가 도착했다.

“ 형제여. ”

“ 오랜만이군. 많이 달라진 것 같네. 블러드 대거. 하하핫. ”

고프와 블랙 스피어, 그리고 브로큰 보우 역시 함께 영광스러운 땅을 밟았다. 고프의 몸은 망신창이, 한 쪽 눈에 길게 난 상처는 굳이 치료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은 조금 더 거대해졌고 블랙 스피어는 검은색 마력이 어깨까지 뻗어 있었다. 브로큰 보우는 늑대 가죽으로 자신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대충 보기에도 둘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다.

그날 밤 역시 취할 정도로 마신 것으로 기억한다.

라기아의 무덤을 다녀오고, 나아진 가오운 쿠라진의 무덤에도 들렸다. 미카엘의 딸과 니코르, 부족의 어린아이들과 시간을 보냈고 남는 시간에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 더 좋아졌어. 분명해. ”

“ 정말인가. ”

“ 내 눈은 정확해. 믿고 휘둘러. ”

“ 뜻대로 하지. ”

다음날도,

“ 거의 완벽해. ”

“ 거의? ”

“ 응. 조금 더 해볼까. ”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

“ 초조해 하지마. ”

“ 알겠다. ”

그 다음날도,

“ 오늘 은 한 번 더 해보자. ”

“ 말대로 하지. ”

그리고

그 다음날도 말이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머릿속이 꽤나 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휴식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루에 단 한 번.

땅을 밟고 손아귀에 힘을 쥐고 매일 같이 휘둘러 오던 검을, 조용히 숨을 내쉬며 휘둘렀다.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쓸려 있는 풍경,

온 몸에 비가 내리듯이 흘러내리고 있는 땀. 왠지는 모르겠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감돈다.

완벽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손과 발이 점점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쾌감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하유리를 바라본 순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 준비는 끝났어? ”

무엇에 대한 준비인지는 당연히 눈치 챌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가자. 비둘기 잡으러. ”

그리고,

하루가 저물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리리플이 없어요! ㅜㅡ 죄송해요! 내일 향방기본 나가서 내일 분량까지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ㅜㅡ

항상 고마워요! 선추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