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 a Meal Before You Go

< Are you eating? >

에코는 정장을 입었다.

머리는 아주 말끔하게 빗어 넘겨 윤기가 자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고 뒷짐을 진 채 으스대며 걸어갔다.

저 편.

눈 앞에는 지글지글 익어 가는 고깃덩어리가 있었다. 이것은 한우다. 그것도 특등급 한우!

-한우는 말이죠, 아주 맛이 좋습니다요!

요리하는 것은 조리모를 쓰고, 하얀 조리복까지 갖춰 입은 철호였다.

철호는 턱수염을 기르고, 콧수염도 길러 아주 꼴불견이었다. 싹싹하게 굽실거리며 말 하는데, 에코는 괜히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빽! 소리쳤다.

-맛없군! 다시 만들어!

철호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주인님! 먹어 보지도 않으셨잖아요!

-이 몸은 냄새만 맡아도 알아! 이 고기는 썩었어! 썩어 버렸다고!

와당탕!

에코는 기어코 지글지글 타오르는 고기를 발로 차 버렸다.

속이 시원했다.

에코는 씩 웃으며 손을 뻗었다.

옆에서 정장을 입고 기다리던 칸이 정중하게 시가 담배를 내밀었다. 에코는 그것을 입에 물었다. 칸이 손가락을 펼치더니, 불꽃을 만들어 내 시가에 불을 붙여 주었다.

-주인님, 리세 님과의 저녁 약속에 늦으시겠습니다.

칸이 정중하게 말했다. 과연, 저 편에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리세가 높은 하이힐을 신고 또각 또각 걸어오고 있었다.

-훗, 갈까?

에코는 그대로 리세와 함께 걸어 가 버렸다.

홀로 남은 철호가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엉엉, 주인님 너무하세요.......

철호의 하얀 조리복이 움직일 때 마다 소리가 났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

“.......”

에코는 눈을 떴다. 그리고 킁, 하고 코를 훔쳤다. 당연하게도 꿈이었다. 귀 뒤를 긁적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본래 이 시간대엔 잘 깨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깨 버렸다.

부스럭!

방 너머 저 편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방 쪽이다.

물론 그것은 지극히 작은 소리로서, 아마 웬만한 상급 각성자가 아니라면 기척조차 느낄 수 없는 작은 소리였다.

킁킁

냄새를 맡아 본다.

이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주방 쪽에 누군가가 있는데, 그 냄새는 몇 번 맡아 본 적 있는 냄새였다.

“뭐야?”

에코가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에코의 눈에, 방 창문 옆에 앉아 저 하늘을 올려다 보는 철호가 보였다.

요즘은 꽤나 날이 더워졌음으로, 창문은 제법 열어 놓고 자는 편이었다.

그 열린 창문 사이로 아이러니하게도 밝은 밤하늘이 보였다. 하늘 위로는 별이 수놓여 있었고, 달빛이 찬란하게 비추어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철호는 그 창 너머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

“.......”

놈은 언제나 고독해 보였다.

속을 알 수가 없고, 항상 자신보다 몇 수나 앞에 있다. 놈은 아마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큰 사고를 치고 돌아와도,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도 피식 웃으며 넘어가 줄 것이다.

놈은 그러니까, 뭔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달랐다.

강자에게 한없이 강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약한 존재.

에코는 그런 철호가 이상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놈을 이해하는 것은 진작에 관뒀다.

“음?”

문득 철호가 에코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코가 손가락으로 방 너머를 가리켰다.

철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별 일 아니니, 그냥 다시 자라는 뜻이다. 에코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저 녀석이 깨어 있는데, 자신이 한 몫 거들 일은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거다.

에코는 어제 오랜 시간 동안 김을 구웠다. 김 위에 기름을 발라 세계수 숯불에 굽는 작업이었는데, 정말 고된 일이었다.

그래서 철호는 내일 아침, 에코에게 한우 구이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건 얼마 전 시장에 매우 고가로 풀린 고기로서, 맛이 무척 좋다고 했다.

에코는 기대 가득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 * *

다음날.

에코는 배를 긁적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내, 다시 이곳 저곳을 뒤졌다. 이 잡듯 뒤져도 없다.

없다.

없다!

몇 번이나 찾아 보아도 없다!

에코가 부리나케 테이블로 나가, 한가롭게 신문을 보며 모닝커피를 마시던 철호에게 소리쳤다.

“철호!”

“왜?”

“없다!”

“뭐가.”

“한우 말이야!”

“그래?”

철호는 신문을 슬쩍 내리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그렇군.”

에코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제 머리를 양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렇군, 이라니? 어쩌면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이 몸은 오늘 아침을 몸이 닳도록 기다려 왔단 말이다!”

철호는 아공간을 열었다.

“카심.”

“예! 강철호 님!”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 카심이 쏙, 고개를 내밀었다. 카심은 요즘 얼굴이 훤해졌다. 아무래도 얼마 전 아공간에 생긴 친구들 덕분인 듯 했다.

“거기 보관해 두라던 고기 좀 가져와 봐.”

“예!”

카심은 싹싹하게 고기 한 덩어리를 가져왔다. 한우 꽃등심살이었다. 철호는 그것을 받아 들곤, 주방으로 향했다. 금세 에코의 얼굴이 풀렸다.

그리고 마치 주인의 뒤를 따라다니는 개처럼, 철호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물었다.

“어제 밤에 온 그 놈이겠지?”

“.......”

“다크 엘프 냄새가 나던데? 그런데 그 놈, 어디 다친 것 같더라. 피 냄새도 났어.”

“내버려 둬.”

“뭐?”

철호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내버려 둬, 당분간은.”

그날 밤부터 철호는 괜히 테이블 위에 음식을 하나 둘 남겨 두곤 했다.

언젠가는 왕만두를, 또 언젠가는 빵을, 햄을, 가끔은 군고구마를.

.

유진수는 피곤에 절은 눈을 비비며 창 밖을 쳐다보았다. 협회 꼭대기에 위치한 회장실은, 굉장한 경치를 매일매일 보여준다.

태양이 비추는 도시!

그 도시를 보면, 그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밀린 업무는 대강 보았고, 엊그제부터 커피 몇 잔 밖엔 마시지 못 했다. 아무리 힘을 내 보려고 해도 절대 힘이 나지 않았다.

활력소가 필요했다.

“으랏차!”

그는 숱 많은 백발을 질끈 묶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럴 땐 입맛이 없어도, 뭔가 맛이 있는 것을 먹어 주는 것이 좋다.

꽤 오래 전에 마창사를 비롯해, 수호자와 1급 각성자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라는데, 그 곳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그 집 막내 꼬맹이다.

어찌나 귀여운지, 한번 보면 또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집 사모님이다.

항간에는 사모님이 아니라 동생이라는 설이 있는데, 사모님이다 와 동생이다 라는 주장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다.

“어디, 그 소문의 밥집을 한번 찾아 가 볼까.”

유진수는 가벼운 재킷을 걸치며 회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지금 시각은 새벽 5시 반.

거리의 식당들이 문을 열 리 없는 아주 이른 시간. 하지만 이 시간에도 문을 여는 식당이 하나 있다면, 그 곳 뿐일 거다.

* * *

밥집에 들어서자 마자 본 것은 작고 하얀 여자 아기 하나가 아장 아장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아기는 잠에 잔뜩 취했는지, 눈을 감고 걷다가 화장실 문에 머리를 콩, 박곤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저 나이 대 아기들은 울 만도 한데, 그 아기는 달랐다. 그대로 뒤로 누워, 다시 쿨쿨 잠들더니 고롱 고롱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잠옷에는 병아리가 그려져 있었다.

유진수는 그 아기를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과연. 명성이 자자한 그 꼬마아이가 맞는 모양이다. 유진수는 그 아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철호는 밥집을 방문한 손님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밥집에는 처음 오는 남자다. 아마 그는 철호를 모를 테지만 철호는 그를 아주 잘 안다.

바로 협회장 유진수였다. 그는 극도로 피곤한 얼굴이었다.

“아, 저희 아이가 또 바닥에서 자고 있었군요.”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유진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귤을 내밀곤, 테이블에 앉았다.

듣던 대로 평범하면서도 허름한 구조였다. 아마, 이 근방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일 것이다.

철호는 유진수에게 말했다.

“오늘의 메뉴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은, 손님들께서 원하시는 걸 만들어 드리고자 합니다만.”

“네?”

유진수는 이 의외의 상황에 다시 생각에 잠겼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이제 턱까지 내려올 지경이다. 잠을 하도 못 자, 혓바늘이 아주 잔뜩 돋아 버렸다.

그 뿐인가?

속은 쓰리고 입맛은 정말 하나도 없었다.

“흐음.......”

그는 고민에 빠졌다.

메뉴 고민에서, 이제 잠 잘 생각에 벌써부터 심란한 마음이 일었다. 잠을 안 자는 것에 몸이 길들여졌는지, 요새는 잠을 자도 숙면 취하기가 힘들다.

단 한두 시간 자면 깨어나고, 피곤하더라도 누우면 눈이 더 말똥말똥해지는 것이 불면증이 온 듯 했다.

“잘....... 모르겠군요. 요즘 통 입맛이 없는 것이 고민이었거든요. 솔직한 심정으론 술이나 한 잔 하고 잠들고 싶습니다.”

유진수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불면증에, 만성피로라.’

철호는 그를 보며 쓰게 웃었다.

그 역시 겪어 본 적이 있어, 남 일 같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기묘한 일이다.

인간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술을 찾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술은 답이 아니다.

철호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튜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여름이라지만, 속을 부드럽게 달래 주며 뜨끈하게 만들어 주는 스튜는 언제라도 먹을 수 있다.

아침이고, 또 첫 끼니니 만큼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크림 스튜를 만들어 볼까 한다.

철호는 냄비 하나에 또복이의 젖으로 만든 버터를 아주 듬뿍 떠내 녹이기 시작했다. 치익, 치익, 하며 버터가 녹아들었다. 진하고 고소한 향이 훅! 풍겨왔다.

버터 녹는 냄새는 정말 기분 좋은 냄새여서, 철호는 빙그래 웃음을 머금은 채 녹은 버터를 냄비 전면에 골고루 도포시켰다.

그 다음 잘게 썬 양파를 넣은 다음 볶기 시작했다. 양파를 한참 볶아 갈색으로 축 처지며 단맛이 우러나면, 밀가루를 조금 뿌려 다시 볶다가 그 위에 또복이의 젖을 부어 준다.

냄비의 절반 가량 또복이의 젖이 차오르면 그대로 끓여 준다.

요즘 또복이는 대단히 많이 자라, 젖도 굉장히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덕분에 냉장고에는 언제나 카우 홀의 젖과 그것을 이용한 치즈, 버터가 상비돼 있었다.

한번 팔팔팔 끓이다가 뭉근한 불로 줄인다. 스튜에는 마지막으로 세계수 잎을 잘게 썰어 넣어 준 뒤, 바다의 눈물로 소금을 치고 후추도 조금 쳐 주면 완성.

철호는 스튜 냄비의 옆에서 삶아지고 있는 감자 냄비로 시선을 돌렸다.

뚜껑을 열어 본다. 잘 익은 감자 냄새가 났다.

철호는 잘 익은 감자의 껍질을 까, 으깼다. 스튜를 조금 넣고 으깨면 걸쭉하면서도 부드러운 으깬감자가 된다.

그나저나.

이 밥집엔 손님이 적은 편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 시대의 굉장한 인간들은 다 모이는 것 같다.

사람이 모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고민과 고통, 슬픔, 그리고 기쁨을 안고 살아가니까. 그들을 보면 철호는,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두 개의 메뉴를 들고 테이블로 나간다.

유진수는 철호가 말 없이 내민 메뉴가 썩 내키지 않는지, 살짝 스튜를 찍어 입에 가져다 대 보았다.

기존의 크림 스튜가 눅진하면서도 진한 맛이었다면, 지금의 크림스튜는 가볍고도 산뜻한 맛이었다. 마치 초여름의 날씨처럼, 가볍고 신선했다.

“음?”

느릿 느릿하던 숟가락이 조금 빨라졌다.

이내.

유진수의 숟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크림처럼 보드라운 으깬 감자도 좋고, 아주 산뜻하면서도 고소한 스튜도 좋았다.

금세 먹어 치운 유진수의 얼굴엔 어쩐지 활기가 돌아와 있었다.

“조금 살겠군요.”

“그런가요?”

유진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맛의 비법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복잡한 것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이 조금은 개운해 진 기분. 상당한 상쾌함이 몰려와 기분이 꽤나 좋아졌다.

“보통, 몇 시 까지 영업하십니까?”

“새벽 두어 시 까지는 합니다. 편하실 때 오시면, 적당한 시간에 열려 있을 거에요.”

“아아.”

이 식당이 썩 마음에 들어, 3불만 달라는 철호의 말에도 10불짜리 지폐를 억지로 들이 밀고 나온 유진수는 모처럼 즐겁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아마, 오늘 밤엔 다시금 비가 내릴 것이다.

< 밥은 먹고 다니는거냐? > 끝

ⓒ 고두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