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 a Meal Before You Go

Noble Sacrifice

철호는 카이와 함께 서점에 들렀다.

“카이.”

[예.(설렘)]

“여기서는 책을 살 수가 있어. 카이는 글을 잘 읽으니까,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을 다 골라 오렴.”

[정말요?(기쁨)]

“그래. 아저씨가 다 사 줄게. 엄청 많이 가져와도 괜찮아.”

[감사합니다!(환희)]

카이가 활짝 웃으며 책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철호는 빙긋 웃으며 동화책 코너로 향했다.

요즘 귤은 글자 읽는 재미에 푹 빠졌는데, 아기들 보기 좋은 동화책들을 조금 골라 볼까 했다.

동화책들을 여러 권 골랐다. 이 정도면 한동안 귤이 읽을 정도는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서점 내부를 구경해 보았다.

다양한 책들이 있다.

아주 오래된 책들도 많았고, 신간도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철학 서적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것은 찾아 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몬스터에 대한 서적들이 제일 많았고, 클래스에 대한 분석을 다룬 책들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사실 이 클래스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 자신이 어떤 클래스를 가졌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는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거다.

하지만.

그 모든 책들 사이, 베스트셀러가 존재한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역시나 대부님 시리즈였다.

그 중에서 ‘네 번째 대부님’ 은 사실상 최고의 히트작으로 무수히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었다.

철호 역시 본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짜임새 있고 가슴설레는 막장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였다. 여주인공은 사실 주인공의 배다른 남매였다는 설정에서 철호는 진심으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한 것은 여주인공의 희귀병인데, 이름이 대단히 길고 복잡해 도저히 무슨 병인진 모르겠다. 아마, 감기 비슷한 증상을 동반하는 것 같았다.

“어디보자.”

아직 시리즈의 연작, ‘다섯 번째 대부님’ 은 출간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동안 한달에 한 권 씩 무시무시한 기세로 출판되던 시리즈인지라, 아마 조만간 신작을 볼 수 있을 듯 하다.

철호는 묘한 기대감을 안은 채 계산대로 향했다.

.

“어휴.”

리세는 오늘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에코가 슬쩍 옆에서 돌아다니다가, 그런 리세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핫초코 잔을 리세에게 내밀었다.

리세가 핫초코 잔을 들더니 벌컥벌컥 다 마셔 버렸다.

“아으악!”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에코가 움찔, 하고 다시 놀랐다.

“아아악! 악!”

에코는 조심조심 걸어 리세의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리세 냄새가 났다.

오늘은, 마감일이다.

리세는 오늘 ‘다섯 번째 대부님’을 마감할 것이다. 초고에서 수정이 꽤나 되었기에, 스트레스를 제법 받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들어 본 바, 그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라고 했다.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지고 자꾸 한숨만 나오고, 짜증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오른단다. 그 뿐인가? 일은 하면 할수록 하기 싫어지고, 다 때려 치우고 싶어진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하는 거지? 라는 회의감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며, 우울증과 조울증이 찾아온단다.

하지만 그래도 마감이 끝나고 원고가 손을 떠나면, 그 때의 쾌감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까 더 가슴이 벅차다고.

그 동안의 고생을 한순간 다 잊어 버리고 다시 글을 쓰게 된단다.

쿵!

리세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쿵! 쿵!

짜증이 솟구친다는 듯 연속해서 머리를 박았다. 에코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조심 리세에게 다가갔다.

“저기, 리세?”

“왜요!”

리세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에코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큰 결심을 했다는 듯,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이 몸의 피를 빨아라.”

“.......네?”

“이 몸의 피를 빨면 조금 나아질 것이다.”

“어, 하지만.......”

리세는 피를 빨지 못 한지 오래되었다. 사실상 피를 빨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었고, 힘을 쓸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근의 그녀는 매우 청순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충만해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빨아라!”

에코가 큰 결심 했다는 듯 말했다. 리세는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하지만요 마왕님.”

“응?”

“피는 보통 목덜미 동맥 쪽을 이용해서 빨아요.”

“그래?”

에코가 눈을 깜빡이다가, 거울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목덜미를 살펴 보았다. 깨끗하다.

“그럼 여길 빨아라.”

“.......알겠어요.”

리세가 일어나 에코와 포옹을 했다. 에코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리세에게는 리세 냄새가 난다. 그건, 한없이 포근하고 좋은 냄새었다.

리세 냄새를 맡으면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건 예전에도 그랬다.

에코가 전장을 휩쓸고 돌아오면 리세는 말 없이 에코를 포옹해 주곤 했다. 에코는 그게 꽤 나쁘지 않아, 그러다가 잠들곤 했다. 그 때의 리세에겐 핏비린내가 났다.

하지만 이젠 그 냄새가 사라지고 포근함만 남았다.

리세는 조심스럽게 에코의 목덜미로 입을 가져갔다.

찌릿한 느낌이 든다. 에코는 눈을 깜빡였다. 깜빡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쩐지 부끄럽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푹!

리세의 송곳니가 에코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는 것은, 고통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오히려 쾌락을 느낀다고들 하는데, 에코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동안 쪼옥 쪼옥 소리가 들려왔다. 에코의 피를 빨수록 리세의 머리카락이 풍성해졌다. 약간 갈라지고 푸석푸석했던 머리카락이 윤기가 돌고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두 눈동자는 점점 선홍빛을 띄었고, 입술은 빨갛게 변해 갔다. 몸매는 굴곡이 도드라지며 손톱과 발톱에 반짝이는 윤기가 되살아났다.

피부는 더더욱 하얘진다. 마치 눈꽃 나라의 소녀 같았다.

“하-”

그제야 흡혈을 멈춘 리세가 에코를 바라보았다. 청순하고 아름답던 모습은, 어쩐지 퇴폐미가 덧칠된 모습으로 변했다. 리세는 에코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요, 마왕님.”

“응, 으응.”

에코가 쭈뼛거리며 다시 리세의 침대로 가 앉았다. 어쩐지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리세는 기운이 나는 지, 열심히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히익!’

리세의 집에 놀러 오려고 살짝 문을 열었던 엘리스가 그 모습을 다 보았다. 그리고 얼굴 가득히 홍조를 띈 채 뒷걸음질쳤다.

‘리세! 역시 빨라! 결혼을 엄청 많이 해서 그런지, 엄청 능숙해!’

그건 엘리스에게 있어 굉장히 부러운 부분이었다.

툭!

“뭐야?”

마침 걸어오던 칸에게 부딪힌 엘리스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앗! 칸 님!”

“응.”

“저긴 가시면 안 돼요.”

“안 돼? 왜? 철호가 이거 주고 오랬는데.”

바구니에는 토스트가 들어 있었다.

“저기선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방해해선 안 돼요!”

엘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이건 우리끼리 먹어 치울까.”

“그럴까요?”

* * *

“에코.”

“.......”

“에코?”

“아, 불렀나?”

“그래.”

철호는 에코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녀석, 요즘 왜 이렇게 비쩍 말라 가는 걸까?

“흠-”

눈을 자주 비빈다는 건 눈이 침침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비실비실하고, 어쩐지 의욕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보통 그런 증상은 혈액 부족 시 나타난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걸까.’

철호는 다양한 방법에서 추측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다만, 이럴 때 좋은 요리를 하나 알고 있긴 하다.

철호는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는 간 정식이다.

우선, 간은 아이보리 버팔로의 간을 사용한다. 이 녀석들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데, 덕분에 어마어마한 지구력을 가지고 하루 종일 평원을 뛰어다니는 물소였다.

싱싱한 간은 생으로 먹어도 좋고, 요리를 해서 먹어도 아주 좋다. 생간은 보드랍고도 촉촉한 맛이 일품이다. 입에 넣고 씹으면, 간 씹는 특유의 촉감이 좋다. 고소하면서도 약간은 비릿한, 하지만 즐거운 맛을 즐길 수 있을 거다.

우선.

철호는 아이보리 버팔로의 간을 카우 홀의 젖에 담갔다. 보통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우유 등을 사용하곤 하지만, 카우 홀의 젖을 사용하면 그 시간이 더 단축되고 고소한 맛이 생겨난다.

그 다음, 한 입 크기로 썰었다. 선홍빛 색감이 좋은 간과, 참기름과 소금을 섞은 기름장을 준비했다.

생간은 이 정도면 끝.

이어지는 메뉴는 간 볶음이다.

한 입 크기로 자른 또다른 간을 소금과 후추로 간 해 둔다. 방법은 마치 나물을 무치는 것처럼. 잘게 빻은 마늘과 참기름을 추가해 버무려 주고, 카심을 불렀다.

“카심, 가서 백혈초(白血草)를 좀 가져다 다오.”

카심이 금세 백혈초 두 뿌리를 가져왔다.

백혈초란 체내의 혈액순환을 돕고, 혈액 회복을 가속시키는 동방의 약초였다. 또한 기력회복의 효과도 있어, 동방대륙의 부유층은 매 끼니마다 백혈초로 만든 차를 마시곤 했었다.

백혈초는 마치 백합 같이 하얀 꽃잎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부분만 사용한다. 잘게 썰어, 역시 같이 버무려 준다.

그리고 볶는 거다.

짭쪼름하게 간이 된 소 간이 잘 볶아지면, 파와 부추 등도 살짝 볶아 접시로 올린다. 그 위에 세계수 잎을 채썰어 얹으면 완성이다.

철호가 두 가지 메뉴를 에코에게 먹였다. 입맛 없어 보이는 그 녀석이, 금세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한숨 자고 나자, 확실히 예전처럼 돌아간 것이 느껴졌다.

“와.”

“.......”

에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이거 좋은데?”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건데?”

“있다. 그건 비밀이라 말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

에코는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앞으로 매 끼니 이걸 먹을 수 있을까?”

“음....... 그래, 나쁜 일 하는 건 아니지?”

에코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몸의 숭고한 희생이, 모두의 기쁨이 될 것이다.”

.

그로부터 일 주일 동안 에코는 간 정식을 먹었다. 그리고, 딱 이 주일 되던 때 신간이 나왔다.

다섯 번 째 대부님이었다.

대부님의 인기는 실로 대단해 발행된 지 하루만에 절판 사태에 이르렀다.

며칠 뒤 증쇄가 이어졌고, 증쇄는 한동안 이어질 기세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금방이라도 죽어 버릴 것 같던 여주인공에게, 보라색 머리의 뱀파이어가 나타나 수혈을 해 주어 살아난 점일 거다.

아무도 예상치 못 한 그 전개에 모두가 열광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여주인공이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그 보라색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졌다. 바야흐로 이야기는 삼각 관계로 이어졌는데, 뱀파이어 일족과 마피아 일족의 전쟁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

철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이게 무슨 얘기지?’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막장이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재미는 있었다. 철호는 자신도 모르게 대부님 시리즈의 팬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문득.

에코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 손에는 ‘다섯 번 째 대부님’ 이 들려 있었는데, 에코가 철호를 보자마자 자랑을 했다.

“보아라, 철호.”

책의 속지에는 큼직한 사인이 있었다.

[매력적인 당신에게.]

[R]

작가의 친필 사인인 것 같았다.

“부럽지?”

에코의 말에 철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후후.”

에코는 흐뭇하게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숭고한 희생 > 끝

ⓒ 고두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