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 a Meal Before You Go

It's so exciting.

케티쿰.

항상 회색 빛 구름에 가려진 하늘은, 밤이고 낮이고 우중충하다. 가끔씩, 지금처럼.

우르릉! 콰광!

그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면 세상은 검댕에 시커멓게 물들어 버린다. 구름은 지극히 오염되어 있었고, 그 구름에서 쏟아지는 물은 일종의 재앙에 가까웠다.

위스퍼러는 그 하늘을 올려다 보다, 팔짱을 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갔다.

‘케티쿰의 왕.’

케티쿰의 왕에게는 왕의 징표가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닐 리는 없다.

차원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에게는 고유의 능력이 존재했다. 고유의 능력이 있다고 모두 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왕이 된 이들에게는 꼭 퍼스트 클래스가 존재했다.

얼마 전.

위스퍼러는 현재의 명목상 ‘황제’ 인 이에게 모든 정보를 캐내는 데 성공했다.

본래 케티쿰의 일황자는 시류 피티린. 지금의 황제가 된, 이황자였던 갈락 피티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재였다. 그는 완벽한 황제감이었다.

그리고, ‘갈락’ 은 자신의 아버지인 선대 황제가 자신이 아닌, 시류에게 황실의 보물을 승계하였다는 말을 토해냈던 것이다.

위스퍼러는 눈동자를 굴렸다.

‘칼 람페이지 님께서는 그들의 기술에 관심이 없어.’

초대 마왕인 칼 람페이지는 케티쿰의 보물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는, 그저 지금 몸을 완성하기에 여념이 없을 테니까.

현재 초대 마왕인 칼 람페이지가 퍼스트 클래스 ‘욕망의 항아리’ 로 흡수한 이능력은 총 서른 두 개.

그 중에는 물론 퍼스트 클래스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다른 클래스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을 자랑하는 퍼스트 클래스!

그 퍼스트 클래스를 두 개 이상 동시에 사용하려면, 그 어떤 유기체의 몸으로도 오랜 시간을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계의 몸을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이 지독한 검은 비가 그칠 무렵, 칼 람페이지는 완벽한 몸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관심이 없는 것도 그렇게 이상할 일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녀는 아니다.

‘나는, 아주 큰 관심이 있지.’

칼 람페이지는 그녀를 신뢰했다.

초대 마왕인 그에게 있어, 신뢰란 것은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녀는 칼 람페이지의 마력을 추출해, 네 개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신전을 이용할 수 있었다. 다른 심복들 가운데, 오직 그녀만이 그 권한을 부여받았다.

‘몰래, 마계에 퍼밀리어를 풀어 봐야겠어.’

우선 마계 쪽 부터다.

최근 케티쿰에서는 마계로 이어지는 게이트가 몇 번 등장한 바 있었다. 차원과 차원이 이어지는 게이트의 등장 조건은, 그녀로서도 알 방도가 없었기에 주된 연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시류 일황자가 마계에 떨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절대적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녀는 되새겼다.

‘절대로 지구 쪽 신전은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지구는 괴물이 있다.

강철호란 이름의 괴물은, 거의 일곱 개 클래스에 발을 딛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했다.

일곱 개!

그녀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고작 인간 주제에, 일곱 개 클래스의 경지까지 오르다니?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그녀의 입가에 곧 미소가 걸렸다.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거다.

몸이 완성된 칼 람페이지는 여덟 개 이상의 경지에까지 오를 테니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포획된 강철호를 연구할 생각에 그녀는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자자.

우선, 마계 쪽을 건드려 보자. 칼 람페이지는 요 최근 신전의 사용을 금했지만, 그녀는 아무도 몰래 조심스럽게 해 낼 자신이 있었다.

.

하늘은 맑음.

온 사방엔 눈이 가득 덮혀 있었다. 세상은 그야말로 눈밭이었다.

다행히 올해엔 스노우볼들이 그렇게 많이 떨어지진 않아, 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연말이다!

눈이 한껏 내린 하늘은 더없이 맑고 깨끗했고, 별들은 쏟아질 정도로 많이 떠올라 있었다.

“아,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의 저녁 손님은 류였다.

철호는 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오늘 하늘이 무척 맑군요.”

“그렇습니까.”

철호가 아는 한, 류는 이 도시에서 밤하늘을 가장 좋아하는 남자였다. 본인이 살던 케티쿰에선 볼 수 없는 절경이라나.

류는 최근엔 자주 밥집을 찾아, 나름 단골이라고 칭할 만 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역시나 회 쪽이었다. 오늘, 철호는 아주 물 좋은 방어를 준비했다.

방어란 특히 겨울철 맛이 아주 좋다. 지방이 잘 끼어 있는 겨울철 방어란, 참치와 비견될 정도니까.

철호는 류에게 방어 모둠회를 내밀며 한쪽 눈을 찡긋였다.

“류 씨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느새 시간이 쭉쭉 흘러, 한 달이 지나간다. 하늘엔 다시금 보름달이 떠오를 테고, 이제 내일이면 올 해가 끝난다.

철호는 류의 목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냥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조금 신경 써서 살펴 보면 투명한 형체가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미묘한 차이였지만 철호는 알 수 있었다. 저 목걸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 정돈.

* * *

[강철호.]

드물게 바람의 정령왕 라르가, 먼저 철호를 찾았다. 철호는 마지막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대답했다.

“네.”

[오늘 밤, 심상치 않아요.]

“심상치 않다니요?”

라르는 대답하는 대신 하늘을 가리켰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서서히 달이 모습을 드리웠다.

[방금, 케티쿰에서 소환사가 나타났대요.]

“......”

[케티쿰에서 소환의 부름이 와, 물의 중급 정령이 소환됐다는군요.]

그렇다면, 저 보름달은 케티쿰과 이어지는 보름달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렇군요.”

철호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철호는, 오늘 장사를 일찍 마쳤다.

더 놀아 달라고 칭얼거리는 귤을 재우고, 칸과 에코에게 집단속을 시켰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어느새 철호는 과거, 포리너의 근거지가 있던 무인지대에 도착해 있었다.

아공간을 열어, 이 곳에서 수거했던 신전을 꺼냈다.

쿠구구궁!

거대한 건물 한 채가 허공에 둥둥 떠올라, 아공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본래 서 있던 곳에 착! 하고 안착했다. 철호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보름달이다.

이제 조심스럽게 신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전 내부엔 기묘한 음각이 온 사방에 새겨져 있었고, 하늘은 동그랗게 뻥 뚫려 있다.

그 구멍의 한가운데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검으면서도 묘하게 밝은 밤하늘이 구멍을 통해 보였다. 손을 뻗어 엄지와 검지를 말아 동그라미를 만들어 본다.

손가락이 만들어 낸 구멍 사이로 천장이 겹쳐졌다.

‘이 정도 크기라.’

밤이 깊어갈수록, 달은 움직인다.

천장의 구멍으로 보름달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사방은 차갑고 철호는 한없이 냉정해졌다.

달이 차오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천장의 구멍과, 보름달이 딱 맞아 떨어지는 위치에 섰다.

‘우연 치곤 기묘하군.’

신전의 위치, 그리고 보름달이라는 단서.

그 순간.

지-이이잉!

신전이 살짝 살짝 진동을 시작했다. 철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천장을 타고 달빛이 신전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동시에, 음각으로 새겨진 것들 하나 하나에 빛이 들어찼다.

지-이잉-!

하나 하나가 달아오르며 저마다의 형상을 밝혔다.

그건 거대한 하나의 마법진이었다. 달빛을 받아 달아오른 틈새 하나 하나에 아주 잠깐 동안 마력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본 적 없는 마법진이다.’

철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에스판 대륙의 언어? 그건 아니다.

마계?

“마계도 아니군요?”

문득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리니, 보이카가 서 있었다.

“놀라셨어요?”

“아니.”

철호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녀석이 그림자 속에 숨어 졸졸 따라오고 있었음은 대강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필요하지 않을까, 란 생각에 가만히 놔 두었던 것이다.

“마계의 언어도 아니에요.”

[정령의 언어도 아니네요.]

가만히 지켜 보던 바람의 정령왕 라르도 대답했다. 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알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마법진이라?’

그럼. 혹시 이건 케티쿰의 언어인가?

아니다.

케티쿰은 마법이 발달하지 못 한 세계. 그 곳의 언어로 마법진이 그려졌을 리 없다.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급하게 생각해 낸 것이지만, 일리는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오고가던 그 무렵.

지직-!

아공간이 열렸다.

그 안에서 카심이 급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 강철호 님! 신전이 이상해요!”

“이상해?”

철호는 곧바로 마계의 신전을 꺼내 왔다. 육중한 신전이 허공에 떠올라 둥실둥실, 곧 땅에 안착했다.

지직- 지지지직-

‘어?’

그 신전의 내부에서 기묘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마치, 끊어진 전선 사이에서 전기가 튀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잠깐만, 잠깐만.’

철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 위에 떠오른 보름달, 빛나던 각인, 그리고 스파크?

지이이이잉!

포리너의 근거지에 서 있던 신전을 들어 올려 옆으로 치워 버린 뒤, 마계에서 가져온 신전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쿵!

하늘의 달은 아직 그대로다. 철호는 다급히 신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천장에 뚫린 구멍 사이로, 달빛이 들어왔다.

화아악!

신전의 온 사방에 빛이 강림했다.

파지지지직!

동시에, 스파크가 터지며 신전 내부를 요란하게 밝혔다.

직-

철호는 똑똑히, 허공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지지직

균열은 점점 더 커졌다.

싸 아 아 아 악!

사방에 새카만 기운이 몰려들더니, 사방에 가득한 빛을 몰아낸 뒤 기괴한 형태를 이루었다.

땅에서 솟아오르듯 문 하나!

문은 끼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박쥐 떼가 튀어나와, 저 편으로 사라져 갔다.

끼리릭-

다시 문이 닫히려는데, 철호가 문을 잡았다.

파지지직! 파지직!

어마어마한 스파크가 튀었다. 마력의 농도로 치면 거의 일곱 개 클래스 이상의 거대한 힘이었다. 하지만, 철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 문을 꽈악 잡았다.

‘짜릿한데.’

온 몸을 강타하는 굉장한 통증이 몰려왔다.

철호는 어쩐지 슬며시 피어오르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잇몸 사이로 피가 쏟아져 나오고, 귀며 눈이며 온 전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이런 고통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철호는 점점 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억지로 벌린 문 사이로 몸을 집어 넣었다.

두근 두근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

.

쏴 아 아 아 !

비 내리는 케티쿰의 높은 궁전 꼭대기.

새카만 먹물 같은 비를 뒤집어 쓴 채 양 팔을 활짝 벌린 위스퍼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 앞에는 거대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은 색 문이 있었다.

그 문 사이로, 방금 그녀의 퍼밀리어가 대거 출격했다. 퍼밀리어는 그녀의 수족들로서, 대부분 새나 박쥐 등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모두 그녀의 정보로 차곡차곡 수집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문을 닫자.

온 사방에 맴도는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 마력의 근본은, 칼 람페이지에게서 추출한 마력들이었다. 그 거대한 마력들에 손이 닿기만 해도, 아마 그녀는 잿더미가 되어 버릴 지도 모르겠다.

끼릭-

문이 닫혀가다가, 멈추었다.

“.......?”

우르릉! 콰과광!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쳤다. 검회색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하얀 광채가 아른거리다 사라졌다.

굉장한 천둥 번개였다. 일순, 온 사방이 완전히 새카맣게 변했다.

그리고.

콰과과광!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요란한 날씨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몸이 굳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아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쪽으로.

“어...... 어라?”

그것은 인간이었다. 전신에 피칠갑을 한 그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섬뜩한 두 눈 만이, 허공에 떠올라 그녀를 꿰뚫어 버리려는 듯 직시하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흘끗 문 쪽을 살폈다. 저 문은 곧 닫힐 것이다. 우선, 저게 닫히면 놈은 돌아가지 못 한다는 생각을 한 그 순간.

그녀는 기절했다.

그리고 몸이 붕 떠, 기묘한 곳으로 흘러 흘러 간다는 생각을 했다.

< 짜릿한데 > 끝

ⓒ 고두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