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e a Meal Before You Go

< Living Hydra >

오늘은 시장에서 돼지껍데기를 2kg정도 샀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있고, 간만에 아주 물 좋은 킹핀의 껍질이 들어온 것이다.

철호는 간만에 주방으로 들어 서 몸을 풀었다.

킹 핀의 껍데기는, 특성 상 굉장히 질기고 두껍다. 사실, 보스급 몬스터이니만큼 강력한 방어수단인 껍데기가 질기고 억센 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게다가 웬만한 불길로는 타지도 않는 거칠고 뻑뻑한, 그래. 마치 가시 같은 털들이 특징이었다. 언뜻 보면, 혐오물 같기도 하다.

이걸 그냥 구워 먹으려고 한다면, 이가 다 부러지고 말 것이다.

우선.

표면을 뒤덮고 있는 층을 한 꺼플 벗겨내야 한다.

차가운 냉동실에 넣어 반나절 가량을 꽁꽁 얼린 뒤, 실온에 가만히 놔 둔다.

천천히 얼었던 표면이 녹아 내리며 이슬이 맺히면 다시 냉동실 행이다.

그런 식으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면, 단단하고 질긴 킹핀의 껍데기에도 잔 균열들이 가기 시작한다. 그때 가볍게 톡톡톡 건드려 주면, 마치 잘 익은 과실의 껍질이 벗겨지듯 겉표면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흉악스러운 겉 표면을 한 꺼플 벗겨내면 속살은 탱글탱글한 젤라틴으로 덮혀 있다. 색감은 연분홍색에, 아주 예쁘고 맛 좋은 식재료로 바뀐 것이다.

간장 소스를 슥슥 발라 주면 준비는 끝.

철호는 세계수 숯에 불을 붙여, 석쇠에 놓고 껍데기를 굽기 시작했다.

철호는 최근, 요리솜씨가 더욱 좋아진 것을 느끼곤 한다.

인간이 검에 익숙해지려면, 적어도 3년은 검과 한 몸이 된 것처럼 지내야 한다고들 한다.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가 볼 일을 볼 때도 검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게 에스판 대륙의 검술 명가 링 공국의 원칙이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면 검이 손에 익고, 다시 10년이 지나면 검의 길을 보게 되며, 단계가 점점 상승한다. 그래서 결국, 반백년을 검으로 살게 된다면 그제야 대가의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철호는, 슬쩍 안방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들어섰다.

복도 좌우로는 칸의 방과 에코의 방이 있었다. 철호는 우선, 에코의 방 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똑

방 안에서 아무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철호는 방 문을 슬쩍 열었다.

딸깍- 딸깍- 딸깍-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에코가 컴퓨터에 빠져 있었다. 푹 빠져서, 벌써 며칠을 저러고 있다. 검에 익숙해지려면 3년을 한 몸처럼 붙어 있어야 하는데, 에코는 컴퓨터에 단 3시간만에 익숙해져 버렸다.

“에코.”

“왜......”

에코가 나지막히 대답했다.

“......”

도심에 인터넷망이 개설되었다. 사용자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고, 컴퓨터가 값싸게 배포되는 시기였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핸드폰이 그렇게 발달하더니, 컴퓨터가 삽시간에 퍼져 나가 버렸다.

무인지대에서는 끊임없이 과거의 유물들이 발굴돼 나오고 있었다.

당장 오락실만 봐도 그렇고, 컴퓨터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컴퓨터는 정말로 물량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유?

철호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과거 이 땅에는 사람의 인구수만큼 컴퓨터가 있었다. 단 3분 거리에 피시방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정집마다 컴퓨터가 없는 집은 정말 드문 수준이었다.

섀도우 캣의 정보에 의하면, 컴퓨터를 발굴해 낸 건 지금보다 훨씬 전이라고 했다. 그걸 복원하는 기술에 난관을 거치고 있었는데, 케티쿰과의 교류로 빠르게 문명이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자.

칸의 방을 볼까.

칸 역시 별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

두 멍청이는, 컴퓨터에 완전히 중독돼 버렸다.

“하......”

참나 원.

살다살다 정말 별 일을 다 겪는구나, 싶다.

.

과거를 떠올리자면, 철호는 컴퓨터란 것에 대해 할 말이 정말 많다.

라이카스 PC방!

원래는 라이코스 였지만 오타로 인해 라이카스가 된 아버지의 pc방은, 당시 아홉살 철호의 전부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오락실에 있다고 생각하던 무렵에서,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당시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부모님이 pc방을 하는 아이가 최고의 부러움을 샀다. 언제든지 pc방에서 게임을 할 수 있지 않느냐, 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면, 부모님은 운영하는 피시방에 철호가 오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는 점일 거다.

대신, 어린 철호에게 풍족한 용돈을 주었다. 철호는 친구들과 함께 매일 pc방에 다녔다. 집이 pc방을 하지만, 아버지의 가게엔 가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진 다른 동네의 피시방의 단골 손님으로서, ‘길 건너 강사장 아들’ 로 더 유명했다.

친구들과는 정말 이골이 날 정도로 게임을 했다. 컴퓨터란 정말로 신묘하고도 중독성 높은 친구였다. 해도 해도 질리지 않고, 늘 새로운 게임이 철호와 친구들을 반겼다.

FPS게임 ‘레인보우 세븐’ 은 항상 즐거웠고, 전략시뮬레이션 ‘스타즈 크래프트’ 는 말도 안 되는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그 뿐인가?

RPG게임 ‘바람의 전설’, ‘디아블로우’, ‘린에지’ 등은 철호와 친구들을 그야말로 푹 젖게 만들었던 것이다.

시대는 바람처럼 흘러갔다.

철호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 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친구들과의 대화는 항상 피시방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게임이란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상징이었다. 그 시절 즐겼던 게임의 동영상이나 음악소리만 들어도, 어느새 그 시절을 떠올리고야 만다.

온 몸이 싸 해지면서,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그 시절의 기억이 생생해지는 것이다.

게임을 할 생각만 하면 몸이 근질거리고, 학교 수업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간다.

방과 후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해방되었을 때, 피시방으로 달려가던 그 흥분감도 가끔씩은 떠오른다. 돈이 없으면, 동네 형들이 하는 게임을 뒤에서 구경하면서도그것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아무튼, 돌아와서.

최근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망이 펼쳐지며 컴퓨터 게임 역시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30년 전, 이 땅에 존재하던 컴퓨터를 복원했을 무렵.

모든 컴퓨터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던 ‘스타즈 크래프트’ 에 대하여.

그 단순한 듯, 복잡미묘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해서 말이다.

각자의 본진을 강화하여, 병력을 생산하고 지략과 병력조합을 이용해 적을 제압하는 종류의 게임.

잘 만든 게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재미있는 법.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은 접속이 안 되지만, 스타즈 크래프트는 아직도 가동이 된다. 인터넷이 없어도 즐길 수 있었으며, 단순해 보이지만 아주 깊은 묘미가 담겨 있었다.

“우우......”

오늘도 에코와 칸이, 눈 밑이 시커매져 좀비처럼 기어 나왔다.

놈들은 스타크를 일주일 내내 한숨 자지 않고 플레이하고 있었다. 서로 만나기만 하면, 스타크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밥도 안 먹고, 좀비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심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귤 역시 시무룩해서, 밥을 깨작인다. 밥집이 아무튼 총체적 난국이었다.

철호는, 결국 칼을 빼들었다.

“너희들. 오늘부터 컴퓨터 금지.”

“뭐시라!”

“뭐라고!”

에코와 칸이 동시에 빼액 소리질렀다. 시무룩한 얼굴로 밥을 깨작이던 귤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훌쩍이기 시작했다.

“흐응, 흐응......”

철호는 귤을 품에 안은 채 등을 토닥이면서 두 이종족을 째려보았다.

“컴퓨터 금지, 이 자식들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들이 절제력이라는 건 없는거야?”

“시끄럽다 철호! 네가 스타크를 알아?”

“까불지 마라 철호! 우린 지금 우주 대전쟁으로 한참 바쁘다!”

두 이종족은지지 않고 맞섰다.

“......”

철호는 물끄러미 두 녀석을 내려다 보았다. 철호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뭐라고?”

철호는 그 어떤 소리를 들어도 참지만, 딱 두 가지는 못 참는다.

첫째. 가족에게 어떠한 위험이 되는 모든 것.

둘째.

게임을 못 한다는 취급을 받는 것.

“이것들이 안되겠군. 한 판 해 보자는 건가?”

칸이 벌떡 일어섰다.

“아무리 네가 대항공시대의 고수여도, 스타크는 안 될걸! 철호 네가 이긴다면 설거지를 1년치 해도 좋다!”

에코도 지지 않고 일어섰다.

“이 몸은 귤 당번 1년에 바닥 청소 1년을 건다!”

철호는 기세등등한 두 이종족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목을 좌우로 꺾었다.

“좋다, 따라 와.”

.

스타크는 기본적으로 3개 종족으로 나누어진다.

저크, 데란, 프로토즈.

철호는 망설임 없이 저크를 택했다. 저크는 괴물 종족이며, 데란은 인간, 프로토즈는 기계 종족이라고 보면 편하다.

“마, 마, 마, 말도 안 돼!”

에코가 절망했다. 에코의 프로토즈 본진이 철호에게 단 10분만에 털려 버렸다. 저항조차 못 하고 당한 처참한 패배였다.

에코의 본진은 철호의 병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크의 히드라라는 도마뱀처럼 생긴 유닛이었다.

“히드라는 이 몸이 키우는 애완동물인데......”

에코는 연신 화면을 쳐다보다가 철호를 바라보았다. 철호는 자비란 없는 얼굴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에코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종이와 철호를 번갈아 보며 애원했다.

“처, 처, 철호. 3판 2선승으로 바꾸자.”

“반성문 10장이 추가될 수 있다.”

철호의 엄포에, 에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내, 고개를 푹 떨군 채 펜을 들었다.

[나, 에코네스 카트록시브 로한은 귤 당번과 밥집 청소를 1년동안 할 것을 맹세한다......]

에코는 귤당번 1년, 청소 1년에 당첨되었다.

다음 희생양은 칸이었다.

칸의 종족은 데란이었다. 물론, 칸 역시 10분 안에 본진이 털리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말도 안 돼......”

칸은 머리를 움켜쥔 채 절규했다. 하지만, 칸은 1년 설거지라는 형벌을 피할 수 없었다.

철호는 그런 녀석들의 컴퓨터 모니터에 경고문을 붙여 둔 채 훗, 웃으며 나섰다.

[하루에 2시간 이상 사용 금지.]

[1분 초과시마다 반성문 10장.]

그렇게 방을 나서 밥집으로 온 철호는 테이블에 앉아, 과거를 떠올렸다.

놈들은 싸울 상대를 잘못 골랐다.

철호의 학창시절은, 대한민국 전역의 pc방에서 스타크 상비군이 무럭무럭 자라나던 격동의 시기였다. 스타크를 해 보지 않아도, 유명한 선수 이름과 유닛 이름을 하나씩은 기억할 시기.

그 뒤로 스타크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민속놀이로 자리잡게 돼 버린 것이다.

참고로 철호의 별명은, 살아있는 히드라였다.

< 살아있는 히드라 > 끝

ⓒ 고두열

작가의 말

식사들 하셨나요?

오늘은 연재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비가 하루종일 옵니다. 축축 쳐지는 하루에요. 내일 뵙겠습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