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s Strongest Manager

[39] Suspicious Dance Party (3)

임원급 파티에 단순한 매니저를 데려 온 설영의 저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강준을 정말 신뢰하는 것이고, 어떻게든 키워주기 위해 이 자리에 데려온 것이었다.

“오, 설대표님. 이거 오랜만입니다.”

“진대표님 오랜만에 뵙네요.”

설영은 가슴께를 손으로 가리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고, 진대표라 불린 사람도 고개를 숙였다.

“강준씨, 여긴 로즈왈드 에이전시의 진다훈 대표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최강준입니다. 히어로 매니지먼트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습니다.”

“아! 자네가 그 요즘 소문이 자자한 그 매니저구만! 반갑네!”

강준은 찾아온 그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설영과 진대표는 잠깐 이야기를 나눴고, 강준과도 나중에 또 보자고 말한 뒤 돌아갔다. 파티장에는 음식은 물론, 샴페인 잔을 트레이에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잔을 권했다. 둘 다 한 잔 씩 받아들었다.

“그럼, 일단 파티에 왔으니 한 잔 해야겠죠?”

“그러죠.”

-챙

가벼운 건배와 함께 강준은 샴페인을 몇 모금 마셨다.

“로즈왈드는 외국계 매니지먼트에요. 한국에는 삼대 매니지먼트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아직 더 커지진 못했지만, 해외 본사까지 따지자면 로즈왈드가 실제 규모는 더 크다고 봐야겠죠. 한국에서는 중견이지만, 해외 진출로가 열려있다는 측면에선 확실히 나름의 메리트가 있어요.”

설영은 방금 다녀간 로즈왈드에 대해서 강준에게 간략히 설명해줬다. 설영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강준에게는 기억해야 할 정보였다. 단순히 놀러 온 게 아니라, 이 자리는 강준에게 교육장소나 다름없었다. 인맥의 기초를 다지는 동시에 각 매니지먼트마다의 특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몇몇 사람들과 마주치며 인사를 했고, 설영은 웃는 낯으로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강준을 소개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몇몇은 명함을 건네주기도 했고, 강준의 명함을 받아가기도 했다.

“청목 에이전시는 중견 매니지먼트로, 그렇게 크다고는 볼 수 없지만 헌터들에게 꽤 좋은 대우를 해주기로 유명해요. 계약서 가지고 장난질도 안 치고요. 대표님도 좋은 사람이긴 한데, 술을 너무 좋아해서 작년에 음주운전 걸린 게 좀 흠이에요.”

설영은 마주쳤던 모든 사람과 매니지먼트에 대해 설명해줬다.

“돌레르는 평판이 조금 안 좋아요. 마찬가지로 외국계 매니지먼트인데, 헌터들을 조금 과하게 굴리는 경우가 많아요. 작년에는 돌레르와 계약한 헌터들 중 세 명이 죽었어요. 정산 과정에서 장난질을 한다는 소문이 있죠. 여러모로 상부 지침이 조금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는 푸념을 많이 들었어요.”

“…….”

“강준씨?”

“아, 네?”

강준이 멍하니 설영을 쳐다보고 있자. 설영은 강준의 눈앞에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왜 그래요? ”

“음, 아뇨. 잠깐 좀….”

“역시 이런 자리는 좀 어렵나요?”

“아뇨, 어렵지는 않아요. 괜찮아요. 잠깐 멍해졌던 거니까.”

설영은 붉은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호텔 연회실은 곧 사람이 꽤 많아졌고, 연회실 전면에는 사회자로 보이는 사람이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마치 선을 긋듯 앞쪽의 지정 테이블에는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연회장에 서있는 사람들을 향해 적당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강준은 그들이 삼대 매니지먼트의 대표. 레셴, 알파소드, 클라우드의 임원급 이상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척 봐도 연회장은 파티 테이블과 지정 테이블 사이에 거리가 좀 있었다.

마치 이 선을 넘어오지 마라, 라고 대놓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명백하게 격리된 별개의 두 공간이었다. 그건 마치 '너와 나는 같은 급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만하네요.”

“원래 사람은 돈이 많을수록 거만해져요. 그리고 유치해지죠.”

대기업 일가의 생일파티에 갔더니 손님에게 냉동 푸아그라를, 일가족은 냉장 푸아그라를 먹였다는 얘기는 꽤 유명했다. 그들의 선민의식은 선민의식이라는 것조차 스스로 모를 것이다. 그 당연하다는 듯한 특권의식은 자각하지 못하기에 더욱 저열하다.

물론,

강준은 간략하게 말했다.

“애새끼들도 아니고 말이죠.”

“그러게 말이에요.”

강준의 신랄한 말에 설영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정말로 매력적인 미소였다. 설영은 알게모르게 파티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었다. 실제로 설영은 나이에 맞지 않게 매력적이었고, 강준의 나이대 사람은 없었다.

파티가 진행되면서도 설영은 계속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설영은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정말 세세하게 잘 기억하고 있었고, 그건 다시 봐도 감탄할만한 능력이었다. 매니지먼트 관계자들, 그것도 임원급이 자리한 자리였지만 결국 친목도모의 일환일 뿐이었다.

강준은 이 파티가 어째서 모든 매니지먼트를 대상으로 열리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건 저 세 개의 거대 매니지먼트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기 위한 구실일 뿐이었다. 따로 모이면 담합이니 뭐니 하는 말을 듣기 쉬운 만큼, 매니지먼트 업계 전원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구실로 저 세 회사가 모일 구실을 만들어주는 장소일 뿐이었다.

강준은 예전에 레셴과 알파소드에 입사한 적이 있지만, 경력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그 두 회사에 악감정이랄 게 없었다.

말하자면 다른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은 전부 들러리인 셈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격리된 지정 테이블 건너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여기 있는 이들도 자신이 들러리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서로 살아남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는 중이었다.

‘사업이라는 거 정말 골치아픈데.’

강준은 아직 업계가 어떤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 생겨버린 거대한 벽 같은 걸 마주한 기분이었다.

설영은 그 쪽이 자신과 연이 없다는 걸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지 거기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열심히 이야기 중이었다.

“취약지역이라…. 요즘에는 강원도 쪽도 헌터들이 포화 상태라서요.”

“신도시 관할권은 삼대 매니지먼트 쪽에서 이미 나눠먹었고, 이제 남은 건 정말 섬밖에 없어요.”

설영은 일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어디에서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리 시원치 않았다. 매니지먼트는 이미 피바다라 불러도 될 정도로 짙은 레드오션이었고, 남으면 헌터가 남았지 취약지역이 남아있는 곳은 없었다. 그마저도 3대 대기업에서 나눠먹어대는 통에 중소 매니지먼트들은 강원도, 전라도, 심지어는 섬 지역까지 진출하는 중이었다.

여러모로 매니지먼트는 돈 되는 만큼이나 살아남기 힘들었다.

설영은 몇 번이나 허탕을 치고 한숨을 푹 쉬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설영은 곤란하다는 듯 강준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아…. 정말 힘드네요. 딱 한 동네 수준만 잡아도 좋은데 이렇게나 자리 잡는 게 힘들어서야….”

“아직 그렇게 급한 건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당장 헌터 팀은 아직도 성장 중이었으니 당장 팀 하나가 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둘은 테이블에 앉아 카나페 몇 개를 먹었다. 다시 일어나서 영업을 시작해보려던 찰나,

“설영 대표님.”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설영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급격하게 경직되었다.

“오랜만입니다.”

“아…. 정이사님…. 오랜만이네요.”

“회장님이 잠깐 뵙자고 하십니다.”

“…….”

설영은 그 말에 표정이 굳었다. 강준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그 사람을 빤히 쳐다봤지만,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설영의 시선이 연회장의 지정 테이블 쪽으로 향했고, 이미 다들 대화는 끝났는지 각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멀찍이에 있는 한 중년 남자는 설영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강준은 어림짐작하고 있었던 게 사실임을 깨달았다.

‘설영은 알파소드와 확실한 관련이 있군. 별로 좋지 못한 쪽으로.’

설영은 강준과 회장 쪽을 몇 번 번갈아 쳐다보곤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강준씨.”

“네.”

“잠깐 다녀와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설영은 죄책감과 미안함이 뒤섞인 미묘한 표정으로 강준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가죠.”

“네?”

설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준도 함께 일어났다. 설영은 난데없이 강준이 따라간다고 말하자 더욱 놀랐다.

“저도 대기업 회장하고 안면을 좀 트고 싶어서요.”

이게 무례한 짓거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강준은 설영을 혼자 보낼 생각이 없었다.

“강준씨,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생각 없는데요.”

강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로, 재벌이 뭔지 궁금해서 그래요.”

“회장님은 설대표님 혼자 오시길 바랄 겁니다.”

“그건 그쪽 사정이잖아요?”

강준은 대담하게 뻗댔고, 그 말을 들은 정이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나본데…. 일개 매니저 따위가 만나고 싶다 하면 회장님이 만나주셔야 하는 줄 아나?”

“아저씨가 저보다 나이는 확실히 많아 보이긴 하는데, 세상 물정은 제가 더 잘 알걸요?”

강준은 피식 웃었고, 정이사는 강준의 무례한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강준은 목숨을 건 전장에서 십 년을 굴러먹은 헌터였고, 세상 물정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든 삶의 비참함에 대해선 강준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설영은 날이 서 있는 것 같은 강준을 보곤 테이블 밑에서 강준의 무릎을 톡톡 건드렸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같이 가죠.”

“네.”

“설대표님.”

“같이 갈 거에요. 별 상관 없잖아요?”

어차피 지정 테이블과 연회 테이블 사이에 펜스 같은 건 없었고, 그냥 걸어가면 될 일이었다. 강준과 설영은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알파소드의 임원진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알파소드의 회장은 중년 남성이었고, 노인은 아니었다. 굳게 다문 입과 이마에 진 주름은 그가 꽤 고집스러운 성격이라는 걸 대변했고, 약간 좁은 미간과 몰린 눈은 좋게 말해도 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알파소드의 회장은 설영을 보자 앉은 채로 고개를 까딱였다. 임원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고, 순식간에 테이블에는 회장 하나만 남게 되었다.

“여기 앉아라.”

“네.”

“이 사람은?”

“아, 신입 매니저에요.”

“……소식은 들었다. 꽤 유능하다지. 너도 결혼할 때는 한창 지났으니까…. 연애 정도는 해도 나쁘지 않겠어.”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설영은 굳은 표정으로 앉았고, 강준은 앉으라 말도 안 했지만 아무 데에나 앉았다. 회장은 강준의 그 태도가 눈에 거슬리는 것 같았지만 대놓고 지적하지는 않았다. 파티 자리였고, 괜히 신경질적으로 굴어 산통을 깨는 게 좋지 않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영아.”

“오랜만이네요.”

설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샴페인 잔을 마셨다. 다른 사람이 마시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설영은 개의치 않았다.

“오빠.”

“!”

그 말에 강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크게 움찔했다. 강준은 둘의 시선이 집중되자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 그….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아버지라고 생각해서….”

알파소드의 회장의 이름은 설우준, 혈연이라 치면 아무리 잘 쳐줘도 일찍 낳은 딸 정도로 보였다. 설영이 동안인데다가 회장이 노안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둘은 도무지 닮지도 않았다.

강준만 모를 뿐, 업계에서 알파소드의 설우준 회장과 히어로 매니지먼트의 설영이 혈연관계라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무척 사이가 안 좋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하지만 회장은 잠깐 인상을 찌푸리다가 툭 내뱉었다.

“요즘 헌터 팀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지. 축하한다.”

“뭘요. 능력 있는 신입 매니저가 알아서 다 해줬는걸요.”

“그래, 뭐든 맡은 일이 잘 된다는 건 좋은거겠지. 혹시 일거리가 없다면 알파소드에서 관할구역 하나를 떼어 줄 수도 있겠다만….”

“싫어요.”

“지금 한창 일거리 없을 때 아니냐?”

설영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빠 말 들어서 좋았던 적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잖아요.”

“그건 네가 일을 잘 못해서 생긴 문제였어. 너는 바보같이 착해빠져선 쓸데없는 데에 마음이나 뺏겨서 일을 그르치고…. 너는 사업 할 상이 아니야. 지금이라도 말하는데 전부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라. 너 정도면 좋은 남자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을텐데. 괜찮은 놈들도 줄을 설 거다.”

설영의 미모는 빼어나다 못해 방부제라도 먹은 것 같았다. 그러니 설영은 당장 재벌기업의 결혼시장에 내놓으면 절대 손해보지 않는 상품이었다. 그 사고관은 끔찍했지만, 설우준 회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동생을 정략결혼의 도구로 사용하겠다 서슴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진심이 아니라 그저 조롱일 뿐이었다. 강준은 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둘 사이에 있는 감정의 골이 평범한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빠는 삼대 매니지먼트의 회장인데, 동생은 이제 다 쓰러져가는 매니지먼트를 초라하게 맡고 있을 뿐이었다.

“저는 결혼 할 생각도 없고, 오빠의 사업 방식에 동의할 수도 없어요.”

“정의 찾는 작자들 중에 대성한 놈 없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겠지.”

“본론이나 꺼내요. 왜 부르신 거에요?”

“요새 몸은 좀 괜찮은지 물으려고 했다.”

“그거야말로 오빠 소관 아니잖아요.”

“이건 진심이다. 부모님도 항상 네 걱정뿐인 거 알고 있을텐데. 사업 같은 건 빨리 접고 지금이라도….”

“그만! 그만…. 더, 더 말하면…. 더 말하면 진짜로 오빠 안 볼 거에요….”

설영은 회장의 말을 중간에 끊어먹고 주먹을 꼭 쥔 채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회장은 여유로운 시선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저 녀석 눈치가 보이는거냐?”

“…….”

설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