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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용병들이 야영을 위해 천막을 쳤다.

용병 단장 케이슬이 귀족으로 보이는 3인을 최대한 예의 있게 맞이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연금술사 한스는 마른 침을 삼켰다. 낮에 있었던 망령의 병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검고 보랏빛 기운, 붉은 안광을 가지고 있는 망자가 아니었다. 희고 밝은 빛, 푸른 안광을 가진 독특한 종류의 언데드였다.

지켜만 봐도 성스러운 느낌. 그것은 분명 성력이었다.

한스는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니겠냐는 의심을 하면서 같이 천막을 치고 있는 용병에게 물었다.

“낮에 보았던 언데드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못 느끼셨습니까?”

“이상한 기운?”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던 용병은 인상을 구기며 한스를 노려봤다.

포션을 지급 받기는 했지만, 독에 의해 용병단이 피해를 본 만큼 한스를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에 한스는 움찔거리며 움츠러들었다.

“그, 언데드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공포를 느꼈습니까?”

“공포?”

용병은 곰곰이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편안한 느낌을 받았지. 그래, 마치 구원받는 것 같았어. 실제로 구원 받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언데드 말입니다. 언데드! 편안한 느낌? 구원? 공포와 두려움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저 사제분.”

한스는 케이슬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3인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력을 쓰신 거 같단 말입니다. 그것도 성력을 이용한 사령술을 말입니다!”

“성력?”

용병이 놀란 눈빛으로 3인의 여행자와 한스를 번갈아 보았다.

어느덧 용병의 눈빛이 안타깝다는 듯 한스를 쳐다봤다.

“그렇군. 연금술사들은 약에 취해 치매에 잘 걸린다고 하더니.”

“네?”

“설마 고대 유적지에 보물산이 있다는 것도 헛소리였나. 젠장, 역시 의뢰를 받는 게 아니었어.”

“저, 지금 무슨 말씀을...?”

“헛소리 집어치우고 일이나 해.”

“헛소리라니! 제 안목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정말입니다! 저분들이 성력을...”

“세상에 성력으로 언데드를 소환하는 자가 어딨어?”

“지금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괴담같은 소문이기는 했지만, 성황법국에 신성 언데드가 목격되었다는 말도...”

“그건 예전부터 떠도는 헛소리잖아. 성황법국이 우리를 겁주려고 퍼트린 거짓말. 아슬란에서 공식적인 발표도 하지 않았나? 그들이 헛소문을 퍼트린다고.”

“그걸 믿습니까?”

“그럼? 애초에 성력으로 언데드를 조종한다는 게 말이 되나?”

용병의 말에 한스가 넋이 나간 채 말했다.

“...말이 안 되죠.”

“그래. 잘 아네.”

한스는 신음을 흘렸다.

“조, 좋습니다. 그럼 제가 직접 묻도록 하죠!”

한스가 3인을 향해 다가가려 할 때, 용병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무슨...?"

“이 인간이 진짜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저분이 우리를 구해주었다고 꼭 착한 귀족이라는 법은 없어. 물론 귀족치고는 자비로워 보이지만, 아무리 인성이 좋아도 사령술사에게 ‘혹시 성력을 사용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화를 내겠죠.”

“화 내는 정도가 아니라 손목이 잘라버릴지도 몰라. 심할 경우 죽여 망자로 만들어 영원히 노예로 살게 할지도 모르지. 허참,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거 보소.”

"..."

용병의 말이 맞았다.

사령술사가 성력을 쓴다는 건 죽음의 신 유다이를 부정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신을 부정하는 만큼, 사령술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헛소리 할 시간에 천막이나 쳐. 저분들이 지내실 곳을 최대한 빨리 마련해야지.”

그 말에 한스는 축 늘어졌다.

그는 의심어린 눈빛을 3인방에게 보내더니 천막을 쳤다.

* *

한스와 용병들의 대화를 멀리서 듣고 있던 티냐가 내게 속삭였다.

“믿지 않는 거 같아요.”

“역시 그런가?”

성력을 이용한 사령술.

그건 전설에서도 없을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믿음이 강했던 성황법국의 주교들조차 라파엘의 말을 의심했을 정도다.

영향력이 있는 대주교의 말조차 의심이 됐던 판국에 아슬란 떠돌이 상인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용병들도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이상 성력과 마력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구분한다고 해도 용병의 말을 믿을 사람들도 없다.

이미 신성 언데드는 괴담처럼 퍼졌다고 하니, 헛소리로 치부하겠지.

일단은 위험요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도심의 경우는 위험 요소가 될 수가 있다.

조금만 주의하면 문제가 될 거 같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를 파악한 시점에서, 케이슬의 안내를 받아 상당히 좋은 텐트로 안내 받았다.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상당히 깔끔하게 만들어진 텐트를 내부를 바라보며 나는 케이슬에게 말했다.

“혹시 식량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식량을 말입니까?”

케이슬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가죽 가방을 들고 왔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게 이 정도뿐인지라, 또한 물은 없기에 드릴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이들도 식량이 부족한 모양이다. 물은 자기들 몫밖에 없는 거겠지.

케이슬이 눈치를 보자 나는 별거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고마워.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나는 가지고 있던 평범한 물을 그들에게 건넸다.

"이거라도 받아. 우리에게 있어 물은 충분하니까."

케이슬은 놀란 눈빛으로 물을 받고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케이슬은 우리를 귀족으로 봤는지 최대한 편의를 봐주며 물러갔다.

천막이 닫힌 것을 확인한 데이몬이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이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우리는 성수를 마시면 돼.”

나는 가죽 주머니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성력을 사용해 성수를 소환하자 손가락 끝으로 물이 줄줄 흘렀다.

데이몬이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내 손가락을 관찰했다.

“역시 천사님이시군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니!”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옆에 있던 티냐가 감탄했다. 그녀는 한 동안 나를 쳐다보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사님.”

"알렌이라고 불러.”

"네? 하지만 천사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용병들도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편이 나도 편해.”

“그럼 알렌님.”

“님은 빼줬으면 하는데, 왜?”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커다란 부탁이라도 할 것처럼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천한 신도가 청하옵니다. 스켈레톤을 소환해주실 수 있는지요?”

말투도 바뀌었다.

상당히 정중한 태도였다.

나로서는 어렵지도 않은 부탁이었기에 손가락을 튕겼다.

룬문자가 새겨지며 바닥에서 스켈레톤 한 구가 기어 나왔다.

그녀는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대화를 나눠 봐도 될까요?”

“스켈레톤과 대화한다고?”

티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망자와 이야기한다는 소리를 또 처음 듣네.

나는 신전에서 아이들과 놀던 스켈레톤과 푸른 산타를 떠올렸다.

아직 어리고 호기심이 많다 보니 신성 스켈레톤이 놀라운 모양이다.

“마음대로.”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티냐가 천막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스켈레톤이 티냐와 함께 가장자리에 가 앉았다.

티냐가 질문을 하면 스켈레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면서 의사소통을 했다.

데이몬은 그 모습을 한 동안 바라보다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티냐님을 구해주고, 저희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초에 구해줄 생각 따위는 없었어. 그곳에 너희가 있었을 뿐이지.”

검은 교단이 나를 불러들였고, 나는 그들을 없앴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심결에 티냐를 힐끔 쳐다봤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면서 스켈레톤에게 여러 가지로 질문하고 있다.

긴 귀가 종긋 세워지고 내려가는 것이 그녀의 기분을 나타내는 거 같다.

그것만 보면 아무리 봐도 평범한 아이처럼 보였다.

“왕녀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데이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설마 적국의 왕녀와 동행이라... 내가 성황법국의 황자라는 걸 알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신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왕녀가 노예 취급인가.”

신전에 찾아왔던 사령술사들마저 그녀를 무시했다.

그렇게 본다면 왕녀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데이몬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라함마께서는 100명이 넘는 자식이 있습니다.”

“100명? 부인이 얼마나 되길래.”

“왕비님은 한 분 계십니다. 남은 이들은 모두 노예입니다.”

“그분께서는 아인을 이용해 보다 강력한 자식. 아니, 정확히는 자신을 위한 무기를 만드는 데 활용하고 있지요.”

100명이 넘는 자식이 있고, 그들 모두 아인이란다.

그들은 극한의 훈련을 통해 라함마에게 인정받으면 그를 위한 ‘무기’로 쓰이고, 만약 인정받지 못한다면 ‘노예’로 버려진다고 한다.

“그리고 티냐님은 라함마께 인정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티냐는 사령술사를 위한 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씁쓸함을 느끼며 데이몬에게 티냐의 사정을 들었다.

얼마 후 텐트 밖에서 케이슬의 말이 들려왔다.

“음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드시겠습니까?”

“아, 나가서 같이 먹지. 듣고 싶은 것도 있고.”

나와 데이몬은 텐트에서 나왔다.

티냐는 스켈레톤에게 빠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모닥불을 둘러싼 용병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용병들이 긴장한 것이 보였다.

아슬란의 사령술사들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많기 때문이리라.

분위기로는 낄 자리가 아니었지만, 나로서도 급한 볼일이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릇에 담긴 수프를 받고서 분위기를 풀고자 한스를 바라봤다.

아직도 내가 소환한 스켈레톤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모양인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

“한스라고 했던가?”

말을 걸자 한스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네, 그렇습니다.”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의 시선에 주눅이 들었는지 그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한스의 독 폭탄에 의해 죽을 뻔하고, 더불어 내 심기를 건드릴 행동을 있기에 용병들로서는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는 그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심안으로 관찰한 결과 연금술이라는 특성이 보였다.

마법 도구를 만들 때 사용되는 기술 중 하나다.

중립적인 마나를 이용해, 성력 혹은 마력에 사용되는 마법 도구나 약품을 만드는 직업이다.

참으로 흥미로웠다.

“용병들 말로는 상인이자 연금술사라고 하던데.”

“네, 그렇습니다.”

“물건들이 훌륭하더군.”

칭찬을 하자 한스의 눈이 빛났다.

귀가 얇은 모양이다.

나는 은근히 그를 띄워주는 말투로 말했다.

“좋은 물건들이야. 괜찮다면 그것들을 사들이고 싶은데.”

“물론입니다! 여러 가지 있죠. 독을 넣고 터트리는 수정구부터, 함정을 감지하는 고글, 그리고...”

한스가 흥분한 듯 자신들의 물건을 소개했다. 듣고 나니 쓸만한 것들 상당했다.

“연금술도 배우고 싶은데. 그것도 가능한가?”

한스가 움찔거렸다.

그는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건…. 힘듭니다. 저희 집안의 연금술은 자손 이외에는 전해주는 것을 금기시하기에..."

"..."

"그... 죄, 죄송합니다!"

한스가 바짝 엎드렸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굳이 강제로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연금술보다도 아슬란과 성황법국의 현 상황이니까.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장 궁금한 이야기를 용병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보기에 지금 이 나라의 상황이 어떤 것 같나?”

나는 애매한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나를 아슬란의 귀족으로 보고 있다면 그에 호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용병들은 바짝 긴장했다.

침묵 끝에 케이슬이 식은땀을 흘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 아슬란과 성황법국의 전쟁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위대한 아슬란이 승리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설마 성황법국이 지고 있는 걸까 싶었지만, 케이슬의 말은 귀족의 입맛에 맞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데이몬도 아슬란의 상황에 놀란 눈빛으로 귀를 기울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해줬으면 한다. 나로서는 궁금할 따름이야.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고 싶을 뿐.”

그 말에 용병들이 눈치를 살폈다.

침묵이 흐를 때, 한스가 끼어들었다.

“현재 협상 중이랍니다.”

“협상?”

나는 한스를 쳐다봤다.

“아시다시피 아슬란이 성황법국의 황태자비와 황자들을 인질로 잡고 있지 않습니까?”

형님과 로즈가 인질로 잡혀 있다고?

“그럼에도 성황법국의 침략을 멈추지 않으니, 백성들이 힘들어합니다. 이미 5개가 넘는 도시가 불타고 피난민들이 생겨났죠. 전쟁도 패주만 하고, 아슬란에서 협박을 해도 전혀 통하지 않고 있으니 백성들이 제왕을 원망하고 있을 겁니다.”

하긴, 성황의 성격상 협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황자를 내놓지 않는다? 침략할 것이다.

황자를 인질로 협박한다? 도시를 불태울 것이다.

황자를 상처 입힌다? 귀족들의 사지가 찢겨 경고를 보내질 것이다.

황자가 죽을 위기다? 더는 협상 따위는 없다.

아슬란의 왕족과 귀족들을 학살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지금쯤 아슬란도 눈치 챘을 터.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형님과 로즈를 보내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조짐이 없다는 말은...

“사실 진짜로 황자와 황태자비를 데리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지만요. 백성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한스의 말에 용병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의 언사는 아슬란을 불신하는 발언이었다.

딱 봐도 눈치 없고 나불거리기를 좋아하는 양반이다.

나로서는 편했기에 그를 그대로 두었다.

“오호, 그거 참 흥미롭군. 어떤 소문이지?”

“사실 황자나 황태자비는 행방불명. 제왕 라함마께서는 성황법국을 막고자 어떻게든 그들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많지만, 그렇다면 소문이 퍼졌을 리가 없겠지요.”

"으음."

백성들에게 소문이 퍼질 정도라면 아슬란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까?

이 정도면 성황법국 측에서도 눈치 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걸 알기에 성황이 더욱 미쳐 날뛰는 거겠지.

“듣기론 3황자와 7황자, 검왕 오스칼, 그리고 황태자비가 모두 행방불명. 성황법국도, 아슬란도 그들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한스의 가벼운 입에 용병들이 내 눈치를 살폈다.

케이슬이 슬쩍 나와 데이몬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나리님들, 저 녀석의 말은 무시하셔도 됩니다. 모두 헛소리이니...”

“괜찮아. 재밌어 보이는 데 뭐. 그래, 계속해봐.”

내가 긍정적으로 나오자 한스는 더욱 입이 가벼워졌다.

그는 나불나불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감탄했다.

이 녀석, 용케 살아 있다. 귀족에게 대하는 태도나 가벼운 입은 아무리 봐도 명줄이 짧아 보였다.

운이 좋은 녀석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귀를 기울이자 한스가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 게다가 저는 초상화도 있습니다.”

“초상화?”

“네, 실종된 성황가의 황족들, 그들의 초상화이지요!”

이번엔 내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상위 귀족들이 카펫으로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실제 모습과는 다르긴 합니다.”

한스는 짐수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초상화 하나를 꺼내왔다.

“성황가를 모독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상화입니다. 귀족들이 밟고 다니는 카펫으로 사용되었지요. 모두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그림들이기는 하지만 모습은 대강 비슷... 어?”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한담?

나는 한스에게 걸어갔다.

한스는 손에 들린 초상화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어, 어? 어?”

한스는 어리벙벙한 모습이다.

나는 그런 한스의 어깨에 손을 올려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초상화를 바라봤다.

“오, 뭔가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군. 실물은 이보다 더 잘생겼는데 말이야. 이거 가까이서 비교하지 않는 이상 모르겠는 걸?”

“그, 그게… 하, 하하... 설마?”

“설마 뭐?”

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한스는 떨리는 손으로 초상화를 접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뻣뻣하게 굳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역시 이 녀석은 운이 좋다.

입도, 행동도 가볍다. 용케 이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행운도 끝난 모양이다.

한스의 등 뒤로 그림자가 졌다.

소환된 스켈레톤들이 한스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용병들이 흠칫 놀라며 눈치 빠르게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우리 천천히 이야기나 해볼까?”

나는 싱글거리며 웃었고, 한스는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땀을 뻘뻘 흘리던 한스가 나를 보며 한마디했다.

"연금술, 가르쳐 드릴까요?”

태세전환이 빨라 좋다. 하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잠, 잠깐만요!”

그는 상당히 골돌히 생각했다.

살 방법을 모색하는 거겠지.

아무리 눈치가 없는 이 녀석이라도 이번만큼은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리라.

그는 눈을 굴리며 무언가를 떠올린 듯 손뼉을 쳤다.

“아, 호’ 혹시 고대 유적이 있는 보물산을 아십니까?”

“고대 유적?”

이번에 반응을 보인 건 데이몬이었다.

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다 한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드래곤 레어로 보이는 고대 유적지가 있습니다.”

한스는 품에서 뒤적거리며 손바닥만한 비늘조각을 꺼내 들었다.

“용의 비늘입니다.”

한스는 마른 침을 삼키며 나에게 말했다

“그곳이 어디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