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흔한 설정이군요?

환한 빛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뜨니 순식간에 꽤 익숙해졌던 하얀공간 대신 처음보는 장소에 떨어져있었다. 영화나 소설속에서나 나올법한 중세시대의 고풍스러운 느낌을 지닌 주변건물들. 성훈은 상반신을 약간 숙이며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서 휘두를수 있도록 대비했다. 식사를 끝마친지 얼마 안되서 속이 약간 더부룩한 느낌이 있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문득 제리의 마지막 말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럼 더 미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기전에 한가지 충고를 해드리겠습니다.'

'목숨을 아끼십시오.'

주린 배를 채우기위해 연신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도 귀는 열어놓고 있었다.

'이 상황이 게임의 형식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진짜 게임은 아니라는 뜻이죠. 게임처럼 죽고나면 몇번이나 다시 되살아날수 없습니다. 더 미션에서 허락된 부활은 단 한번. 절대불변으로 통용될 충고이자 규칙입니다. 목숨을 아끼십시오.'

자신은 이미 시작부터 세 명의 사람을 죽였다. 더 미션의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처음처럼 몇 명을 방안에 몰아넣고 한 사람이 남을때까지 반복하는 토너먼트 형식일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될 사람들 가운데 자신처럼 사람을 향해 망설임없이 흉기를 쑤셔박을 존재가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하늘이 탁 트여있고 사방이 트여있는 도시와 같은 곳이라면 적어도 어제처럼은….

우우우웅!

"뭐, 뭐야?!"

"꺄아아아아악!"

"이 새끼들아! 제발 날 내보내줘!"

환한 빛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은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는 동일했다. 남자는 녹색으로 물든 셔츠와 바지를 입고있고 여자는 파란색으로 물든 셔츠와 치마를 입고 있다. 튜토리얼을 완수하고 받은 초보자용 복장이다.

다만 그 중에서 몇 명은 숏소드를 들고있었고 몇 명은 활 따위를 들고있기도 했다. 성훈처럼 주위를 경계하는가하면 그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악을 쓰는 사람도 있고 주저앉아 눈물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다른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퀘스트 창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괴물이 나타난것도 아니다.

그러던도중 성훈은 순간적으로 번개에라도 맞은것처럼 깨달음을 얻었다.

'젠장. 여기서 죽치고 있을때가 아니야.'

제리는 더 미션의 세계가 시작된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지레겁먹고 있었지만 그 말을 하면서 동시에 최초의 도시가 처음 시작지점이라고 했다. 튜토리얼 퀘스트, 보상 지급, 그렇다면 다음에는 뭘 하겠는가?

제리가 말한대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게임의 형식이 어떻게되든 중요한건 먼저 움직이는것이었다.

'게임의 형식을 따른다지만 진짜 게임은 아니라고? 반대로 말한다면 어느정도 게임의 형식은 따라간다는 말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에게 좋은 보상을 주는 퀘스트가 있을수도 있어. 멍청하게 시간을 소비하고 있을때가 아니야.'

성훈은 빠르게 뛰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멍청한 눈동자로 주변을 경계하는 사람들부터 그 사이에 동료가 된듯 서로 등을 맞댄 사람들이 보였으나 성훈은 그런것따위에 신경쓸시간 따위는 없었다. 확실히 도시라는 이름이 어울렸다.

빼곡하게 차있는 건물들. 그리고 성훈은 얼마지나지 않아서 바로 목표를 찾을수 있었다.

미션이라는 단어가 고풍스럽게 새겨진 간판이 걸려있는 건물. 누가 쫒아오기라도 하는것처럼 성훈은 번개처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안은 한산했다. 사람이라고는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온 자신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주변을 잠시 둘러본 성훈은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데스크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최초의 도시 임무소에 첫 번째로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플레이어님!"

"아, 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니 그게…."

혹시나 「최초의…」같은 호칭이나 첫번째 이용자에게는 조그마한 특별이라도 주지 않을까하던 마음은 고이 한구석으로 밀어넣을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뭘 하는 곳인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예. 임무소는 플레이어분들에게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퀘스트."

임무소는 퀘스트를 부여하는곳. 그 생각을 머리속에 새겨넣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아직 모르는게 많이 있습니다. 이 최초의 도시 지도같은건 구할수 없습니까?"

"지도는 잡화점에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그렇…겠죠. 하하하. 그럼 이왕 질문한 김에 사냥은 어디서 하는지 알려주실수 있습니까?"

일단 사냥터의 위치만이라도 알아놓는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앞서갈수있다. 적어도 지금 자신은 튼튼한 기초장비와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상담아가씨는 밝게 웃으면서 아래에서 뭔가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사냥 퀘스트를 원하시는군요? 초보분이시니 쥐떼소탕이나 참새제거같은 퀘스트를 받으실수 있습니다. 조금 무리를 하시겠다면 들개사냥은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그냥 사냥터가 어디있는지만 알면됩니다. 아직 퀘스트를 받을 생각은 없어요."

"퀘스트를 받으셔야 사냥이 가능한데요?"

"예? 그건 무슨 소립니까?"

당황한 성훈의 표정에 상담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최초의 도시안에서는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냥을 하려면 도시 밖으로 나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도시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시는 나갈수 없습니다. 도시가 이 세계의 전부입니다. 길드를 벌고 싶으시다면 퀘스트를 받아서 임무를 수행하시면 됩니다."

이 말을 이해하는데는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서 상담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수 있었다.

"쥐떼소탕 퀘스트를 받을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쥐떼소탕.

등급 : E

창고안에 수많은 쥐떼가 발생해서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창고안에 있는 쥐떼를 처리하십시오.

달성조건.

1.쥐잡이 : 쥐 다섯 마리를 잡으십시오(0/5)

2.사냥꾼 : 쥐 스무마리를 잡으십시오(0/20)

3.학살자 : 쥐 백마리를 잡으십시오(0/100)

기초보상 : 500길드, 명성 +1 (달성조건에 따라 보상이 추가됩니다.)

학살자 난이도 최초 클리어 보너스 : 보너스 스탯 포인트 +1

보상은 별것 없었다.

다만 그 옆에 있는 최초 클리어 보너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쥐떼소탕 퀘스트를 받으셨습니다. 미션 장소로 이동합니다.

우우우우웅!

"젠장. 꼭 이런식의 이동밖에 없나?"

눈을 감았다뜨자 이번에는 난생 처음보는 거대한 건물안에 옮겨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수 있었다. 순식간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한 성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더 미션은 자신의 생각처럼 만만한 세계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오픈월드 형식을 돌아가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상담원이 말한대로 최초의 도시는 벗어날수 없는 도시다.

그리고 길드를 벌거나 더 강해지기위해서는 퀘스트를 받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제리의 말이 사실이라고 치면 플레이어들을 보고있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있겠지. 그리고 이 미션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얼마나 강력한 미션을 수행하는가를 보고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하겠다는건가?'

"어쨌든 여기에 이렇게 퍼져있을 시간은 없어."

보상란에 있던 최초 클리어 보너스라는 말이 떠오른다. 다른건 다 틀렸어도 적어도 빨리 움직이면 뭔가의 보상이 있을것이라는 성훈의 예측은 맞아들어간것이다. 이 게임은 레벨이 없고 스탯을 어떻게 올리는지에 대한 충고도 없는 매우 불친절한 게임이었다.

그런 게임에서 유일하게 찾은 스탯을 올릴수 있는 방법.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스탯 포인트를 독점해야한다.

'머리 돌아가는 녀석은 나 혼자만 있는게 아닐거야. 이런 간단한 퀘스트는 순식간에 동나고만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한다.'

찍?

"거기구나!"

소리가 들리는곳을 향해 성훈은 망설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은 야속하게 땅바닥에 부딪혀 돌조각을 튕길뿐이었다. 검과 살짝 떨어진곳에 있던 쥐새끼는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찍!

"거기 안서?!"

그렇게 한참이나 검을 들고 난동을 부리기를 반복하던 성훈은 얼마지나지 않아서 검을 지팡이 삼아서 서있었다. 칭호 보너스를 받고도 일반인보다 약간 떨어지는 체력이다. 그런 체력으로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채 검을 마구 휘두르며 다니자 금새 지친것이다.

쉬고 움직이기를 몇번이나 반복하고나서야 성훈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이를 갈았다.

"젠장, 쥐잡기라고 쉽게 보는게 아니었어."

시작의 방에서 살생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경험은 쥐를 잡는데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통 게임에서 기초중의 기초로 여겨지는 쥐잡기.

하지만 현실에서 그 쥐잡기는 어마어마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차라리 어느정도 크기를 가진 적을 상대하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 커다란 창고에서 자그마한 쥐새끼를 잡으라는것은 그야말로 극악한 퀘스트였다.

그리고 동시에 등에서 소름이 돋았다.

"분명 퀘스트 달성조건이…."

가장 최저의 달성조건이 쥐 다섯마리를 잡을것. 그러나 지금 하는 꼴을 보면 쥐 다섯마리는커녕 한 마리라도 잡을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게다가 퀘스트를 중단하는 방법도 몰랐다.

퀘스트를 완료해야만 이 창고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얘기는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면 영원히 이 창고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음식과 식수를 사놓은게 천만다행이었다. 잘못하면 여기서 쥐를 잡다가 굶어죽는 사태가 찾아올수도 있었으니. 바싹 목이 말라오는 느낌에 입가를 메만진 성훈은 문득 인벤토리를 띄워놓았다.

인벤토리를 차지하고 있는건 바로 물과 음식. 자신이 찾는 물건이 인벤토리 안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성훈은 코트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코트는 무려 3천길드를 주고 구입한 비싼 코트다. 가죽갑옷을 간신히 넘어서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만 코트 안 주머니에 단검이나 포션같은 물건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는것이 가능하다.

품에 손을 넣고 더듬거리자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리는 포션이 손에 잡혔다.

최하급 포이즌.

등급 : 노말(中).

종류 : 포션.

최하급 독초들을 조합해 만든 독입니다. 신체 능력을 떨어트리고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힙니다. 살상력은 매우 부족하지만 대상이 작은 동물이라면 문제없이 쓰러트릴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이거다.

혹시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고안에 식량같은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체를 알수없는 잡동사니들 투성이. 자신의 계획에 한층 자신감을 가지며 성훈은 포션을 마저 꺼내들었다.